내 기억의 앞자리에는 빨간 돌절구가 있다. 십여 리 떨어진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소달구지 뒤쪽에 앉은 나의 치마폭 속에는 여덟 살 위의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돌절구가 있었다. 장난감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에는 자연 그 자체가 장난감이었다. 뭐든지 만들 수 있는 돌절구는 나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엄마는 일본에서 가져온 내 키만 한 경대와 서랍을 열 때 하모니카 소리가 나던 장롱을 귀하게 다루었지만, 내게는 돌절구가 더 귀했다. 내가 살던 일본식 관사 집과 사철나무 울타리가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달구지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까딱까딱 발가락 춤을 추었다. 돌절구를 안고 달구지에 실려 가는 기분은 마치 구름 위에 올라앉은 것 같았다. 어디로 가도 돌절구만 있으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무 걱정이 없었다.

 

어느새 높다란 돌담 너머로 감나무 석류나무가 나를 반기는 새집에 도착했을 때 안심하고 돌절구를 내려놓았다. 얼마 후 새 동무가 된 옆집 ‘두리’와 소꿉놀이를 하다가 돌절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절구가 내게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막내의 철없는 고집과 어리광으로 엄마에게 찾아내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며칠 후 ‘두리’가 내 귀에 대고 말해 주었다.

 

‘니가 찾는 돌절구- 뒷동네 ’자야‘가 가지고 놀더라.’

 

동그래진 내 눈을 보면서 ‘자야가 니보다 키도 크지만, 싸움대장이라서 돌절구는 찾기 힘들 거야.’ 했다.  그러나 나는 싸움대장도 겁나지 않았다. ‘쟈가 아들이었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 텐데’ 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란 나, 상고머리 말고도 여름날 개울에서 미역을 감다가 슬그머니 서서 오줌을 누면서 아들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곤 했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그날부터 자야가 싸우는 모양을 눈여겨보았다. 다음날 두리와 함께 자야의 집으로 간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자야 이리 나와라. 내가 돌절구 찾으러 왔다. 안 주면 가만있지 않겠다.’

 

째지게 흘겨보고 있던 내 눈과 불끈 쥔 주먹을 보고서도 자야는 네까짓 것 하는 표정으로 ‘이 가시나야 니 돌절구를 내가 우째 알끼고 쪼만한 가시나가 까불기는.’ 순간 더 말할 틈도 없이 성난 장닭처럼 달려들어 자야의 단발머리를 힘껏 움켜잡았다. 자야에게 잡힌 내 머릿밑이 불에 덴 것 같았지만, 돌절구 생각에 참고 버텼다. 바로 내가 알아낸 싸움대장 자야의 비법이었다.

 

하나둘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더 참을 수 없어 옹다문 입술 사이로 울음이 나오려는데

 

‘그까짓 돌절구 주면 될 거 아이가.’ 하면서 자야가 먼저 손을 놓았다. 결국 자야가 던져서 귀퉁이가 부서진 돌절구는 내게 돌아왔고, 아무도 못 이긴 자야를 이겨낸 나는 자야 대신 싸움대장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내 손가락 사이에 제법 뽑혀 있던 자야의 머리카락이 몇몇 날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돌절구에다 분꽃 씨를 찧어 하얀 분가루를 만들 때도 빨간 채송화를 찧어 물감을 만들 때도 자야의 머리카락이 생각나서 손바닥을 펴보곤 했다. 장사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업고 있는 자야를 보고는 내가 먼저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내가 나쁜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어린 마음이 괴롭기도 했다.

 

그 일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내 손바닥에 있던 자야의 머리카락처럼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싸움에 이긴다는 것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누구에겐가 아픔을 주고서는 어떤 소중한 것이라도 그 가치가 흐려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게 되었다.

 

이웃에게서 억울한 소리를 들었을 때도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줄 알게 되었고 때로는 지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알게도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돌절구가 좋으면 갖고 놀다가 돌려줘.’라고 말했을 것 같다.

 

 

1970-01-01 09:00 2013-07-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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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건망증은 비례한다. 나는 근래 들어 그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다행한 것은 오래 된 기억들이 선명해 진다는 것이다.

꽃집 앞을 지나다 무더기로 쌓여있는 다홍빛 꽈리 앞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잊고 지낸 어린 날의 보물, 반가워 한 묶음을 사 가지고 안고 왔다. 꽈리 하나를 땄다. 야무지게 꼭 여미고 있는 주머니의 끝을 살짝 열어보았다. 보석함 같은 주머니 안에서 나의 유년이 동그랗고 말간 얼굴을 쏘옥 내밀고 ‘안녕’ 하고 웃는다.

 

여섯 살쯤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닭장이 있었다. 그때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한가로운 시기여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 주변에서 보냈다. 닭장 안에서는 장닭이 ‘꼬꼬,꼬꼬’ 위엄 있는 소리를 내며 암탉을 안쪽으로 몰아 놓고서 작아서 더 용맹스럽게 보이는 눈으로 나를 경계하며 한참씩 쏘아 보았다.

 

닭들과 눈싸움하는 짓도 흥미로웠지만 그 둘레에서 피고 지는 봉숭아, 꽈리, 과꽃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할 때면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와 함께 즐거웠다. 특별한 호기심은 꽈리에게 가 있었다. 닭장 한 귀퉁이에서 등불처럼 환하던 꽈리가 언니의 입 속에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소리를 낼 때는 꽈리도 언니도 요술쟁이 같았다.

 

나도 언니처럼 불어보고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언니와는 여덟 살 차이 막내로 귀여움을 받고 자란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하고야 마는 고집쟁이었다. 그런 내가 채 익지도 않은 꽈리의 주머니를 벌려 놓기 일쑤여서 언니에게 미움을 받았다. 언니는 아침마다 꽈리가 몇 개 달려있는지 세어보고 ‘손대지 마’ 엄포를 놓고서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럴수록 조그맣던 꽈리가 어떻게 그렇게 커지는 건지, 언제 붉게 익는 건지 나의 호기심은 날로 더했다. 어느 날 꽈리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닭장 기둥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꽈리 하나를 발견 하게 되었다. ‘요것은 언니도 모르겠지’ 나는 주머니 끝을 살짝 벌려 놓았다. 언니의 무서운 얼굴이 생각나고 손이 떨리고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한편 ‘이제는 주머니 속에서 꽈리가 커지는 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예쁜 빛깔로 익어가는 것도 볼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은 아무도 몰라도 좋았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주머니를 벌려서 들여다볼 때는 호흡을 멈출 만큼 열중하다가 언니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슴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콩닥거렸다. 언니는 이틀도 못 돼 벌려놓은 꽈리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넌 이제 꽈리가 익어도 한 개도 안 줄 거야.”

 

나는 왜 꽈리를 벌려 놓으면 안 되는 건지 알지 못한 채 몰래 한 짓이 잘 못인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떼도 쓸 수가 없었고,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그해에는 유난히도 꽈리가 많이 열렸다. 잎 진 가지에 소담스럽게 달린 꽈리들을 오래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꽈리를 더 이상 벌려놓지 않아서 일 것이다.

 

세상이 온통 예쁘고 신기한 보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해 주었던 꽈리로부터 나는 자연에 대한 신비로움을 처음 감지하게 되었다. 그 기억은 나의 마음 밑바닥에서 조약돌처럼 세월에 씻겨 빛을 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단내가 나도록 힘겨운 순간들을 지긋이 견뎌낸 힘도 마음이 황폐해 지지 않도록 다독일 수 있는 여유도 흐려지지 않은 그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리라. 건망증이야 점점 늘어간다 해도 산속 옹달샘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의 영혼을 맑게 지켜주고 있다.

 

 

1970-01-01 09:00 2013-07-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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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돌아온 남편의 옷이 비 맞은 듯 흠씬 젖어있다. 나는 차게 준비해 둔 매실청 물을 건네며 ‘이렇게 더울 때는 무리하면 큰일 나요, 나이를 생각해야지’ 했다.

 

“내 알아서 한다.”

 

늘 그랬듯이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상도 남자의 표본인 남편의 말투는 늘 내 감정의 파고를 높인다. ’나이가 많으면 부지런도 적당히 해야지 과하면 그것도 욕심이라는 걸 왜 모를까, 건강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정작 내가 과욕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일 앞에 놓여있다. 그 건 3개월 째 접어들고 있는 한문 공부를 하면서 생겨난 일이다. 단순한 한문 공부가 아닌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한 기초를 배우려 하다 보니 선생님이 너무 멀리 계셨다.

 

‘좀 멀어도 감수할 수 있어’ 하는 각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에서 학교까지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버스와 지하철을 다섯 번씩 갈아타야 하는 일이 문제이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출근시간대이고 보니 젊은 사람들 틈에 샌드위치가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거기다 왕복 소요 시간이 5시간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한몫을 더 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고 언제나 배움의 자세로 사는 것이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할 때 건강을 해치는 일이라면 과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학교에 가는 2시간여 동안 전철 안에서는 ‘아무래도 계속 다니기에는 무리야’ 하면서 심각하게 갈등하다가도 교실에 도착해서 공부할 때면 그 생각은 저만치 가 있다. 그동안의 무지한 부분에 대해 깨닫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두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러면 또 ‘힘들더라도 해 보는 데까지 해 볼까’ 하는 생각에 갈등하고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더디 가는 길, 그러니까 혼자 공부하는 길을 모색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경험해 봐서 알지만, 그 또한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러니 이번 기회에 마음 비우기 연습을 하는데 의미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70이라는 나이는 종심이라 해서 뜻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비록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배우고자 하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과욕'이라면 이쯤에서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적당히 한가하게 지내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건강을 도모하는 것을 첫째에 두어야겠다. 욕심 버리기에 한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1970-01-01 09:00 2013-07-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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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기온이 30도라는데 남편은 텃밭에 갔다.

'밭에 있는 쑥갓 상추 열무가 목이 탈 텐데' 하면서

페트병 다섯 개에 물을 담아서 배낭에 넣어 지고 갔다.

내가 말려도 "내 알아서 한다"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애인을 만나러 가듯 발걸음도 바쁘게.

 

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를 그 절반만큼이라도 생각해주지

하다가 금방 취소한다.

 

밭에 있는 채소가 시장도 먼 우리 집 먹을거리가 돼주고

우리 내외의 입맛을 살려주고 있지 않은가.

남편에게는 소일거리가 되고 말벗이 되어주지 않는가.

땀 흘리며 밭일을 한 뒤에 샤워하고 막걸리 한잔하는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라고 할 때는

남편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못난이 열무와 상추를 놓고

먹고 싶지 않을 정도의 벌레 먹은 쑥갓을 보고

나는 약을 조금만 치자하고 남편은 안 된다 하고.

대화가 말다툼이 되고 말다툼이 침묵이 되기도 하지만, 

씀바귀처럼 쓴 세상 오늘 하루는 푸르지 않은가.

 

 ***********

 

우리 밭은 아니지만, 남편은 밭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면서 벌써 몇 년째 소득도 시원치 않은 채소를 가꿉니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남편이 땀 흘려 가꾼 채소라서 소중히 다듬고 먹습니다. 농부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지 깨달으면서요.

1970-01-01 09:00 2013-06-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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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급히 전송해야 하는데, 내 실력으로는 되지 않았다. 서둘러 서비스 센터로 갔다. 책을 보면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린 지 1시간, 오후 7시가 되어간다. 대기실 안은 한산해 졌지만,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고 보니 조바심이 나면서 짜증이 났고, 초조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는데 젊은이가 내 앞에까지 와서 ‘상담의자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뜻밖이었다. 젊은이의 적극적인 친절도 그렇지만 상담의자까지 가는 몇 걸음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나의 짜증스러운 기분이 스르르 풀리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아마도 그의 표정과 행동에서 우러나는 진정함이 내게로 전달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 순번이라서 업무가 종료되는 시간이었고 종일 많은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피로도 쌓였을 것이고 또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친절함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젊은이는 왜 사진 전송이 안 되는지 한참을 조작해 보더니 워낙 기종이 많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는 눈치였다. 몇 달이 멀다 않고 새로 생겨나는 최신 휴대전화, 더군다나 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아니던가. 내 전화는 4년이 지난 구형이니 센터 직원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7시를 넘긴 시계를 쳐다보면서 나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그때 젊은이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사실 오늘 회식이 있거든요, 그래서 동료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내가 사진을 전송할 수 있는지 직접 작동해 보라고 하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는 방법도 내가 잊어버릴 것처럼 보였는지 자세히 메모해 주었다. 서비스하는 게 그들의 책임이라고 해도 찾아오는 손님이 각양각색일 텐데 얼마나 어려운 점이 많을까. 더구나 퇴근 시간대에 나 같은 노인을 상대하게 된 것이니 그 고충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무의미하게 보낸 1시간에 대한 불만은 싹 가셔졌지만, 센터를 나오면서 여러 상념에 마음이 무거워 졌다. 많은 고객의 불만을 하나하나 없애기 위해 젊은이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또 친절이 몸에 밴 그 젊은이를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산업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고 있는 것은 이런 젊은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수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진정이 담긴 친절함이 한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한다는 것도 그 젊은이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1970-01-01 09:00 2013-06-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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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남편은 칠순입니다.

아직도 일을 합니다.

성실과 진실이 재산인 분은 은퇴가 없나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밭에 나가 시간을 보냅니다.

밭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심었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몇 평이나 되느냐, 부자냐고 먼저 묻는데요. 당연히 부자지요.

하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부자와는 비교할 수 없게 다릅니다.

 

아파트를 짓고 남은 자투리땅에서 돌을 골라내어 희망을 뿌린답니다.

그걸 골라내면서 마음속에 구르는 돌인들 골라내지 않았겠습니까.

지렁이가 숨을 못 쉰다고 잡초방지용 비닐을 씌우지 않는다니 놀랍지요.

그래서 아무리 부지런히 잡초와 씨름을 해도 모든 채소가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민망할 정도로 벌레가 빠끔빠끔 뚫어놓는답니다. 

  

무엇보다 이분이 훌륭한 점은 

집에서 쌀과 채소를 씻은 물을 모았다가

밭으로 싣고 가서 돌려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거지요.

우리는 채소 씻은 물을 한 번이라도 채소에 돌려주었나요?

아무 생각 없이 하수도에 쏟아 버렸지 않았습니까.

 

씨앗 한 번 뿌려보지 않은 사람은 채소가 비싸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모양이 근사한 것만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벌레 한 마리 잡아보지 않았거나,

밭고랑이 바싹바싹 말라갈 때 물 한 바가지 주어보지 않은 사람은

채소를 사러갈 때 공손해야 합니다.

사람만큼 그들도 대접 받으면서 자랐으니까요.

1970-01-01 09:00 2013-06-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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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다말고 햇빛 쏟아지는 우면산을 바라본다.

여린 연둣빛 틈에서 희게 수를 놓던 산벗꽃도 지고

초록이 짙어가는 6월의 나무들,

 

나무들 속잎 흔들고 달려와 내 마음 초록물 들여놓고

달디 단 바람 입속 가득 고이게 한다.

 

어느새 마음은 6월의 우면산으로 내닫는다.

 

산기슭에선 노란 애기똥풀이 반갑게 눈인사하고

유년의 손가락에 피어 꿈을 펼쳐주던 진보라 제비꽃도 만나리라.

 

논둑길 지나 할머니 댁 갈 제 쪽찐 맵시가 달개비 꽃 같았던,

눈물같이 푸른 달개비 꽃 같았던 그리운 어머니도 만나리라.

 

첩첩 일상의 갈피에 청청한 하루를 살게 하는 6월의 우면 산.

잡목이 주연인 우면산의 6월은 어느 높은 산 부럽지 않게 깊고 기품이 있다.

그 초록의 옅음과 깊음이 아름다운 교향악이 되어

내 마음에 울려 퍼지니 말이다.

 

 **********

우면산을 바라보면서 산 지가 수십 년입니다.

내 고향에 뒷동산과 많이 닮아서 더 좋아합니다.

산을 바라보면 유년으로 돌아간 느낌도 있지만,

저를 애지중해주시던 할머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집안일을 하다가도 바라보고

고향 친구 그리울 때도 바라봅니다.

1970-01-01 09:00 2013-06-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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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갈아놓은 벼루 앞에서
섬세한 촉수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고개를 바짝 쳐들지도
깊이 숙이지도 않는 시점(時點)이다.

순식간에 응집시킨 묵(墨)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호흡을 멈춘 채 곧기를 고집하며 내려긋는다.

모필(毛筆)의 정수(精髓)가 당도한
아주 작은 끝점에서
하얀 세상으로 유순하게 스며든다.

내 삶의 모양도 닮을 수 있을까.
다시 또 써보는 한글 내려긋기.

 **********

붓글씨를 오랫동안 배우고 있습니다.
배울수록 쉬워야 하는데 배울수록 어렵습니다.
잡중할수록 우리 인생사처럼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수히 연습하다 보면 친해지는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1970-01-01 09:00 2013-06-0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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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단테 2013-06-02 19:1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궁~~손 떨리는 붓글씨를 힘있게 내려 긋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ㅎ

    1. 소운 2013-06-04 09:56 # 수정/삭제 퍼머링크

      안단테님, 예쁘게 상상해주세요.ㅎ

  2. 후리지아 2013-06-04 00:1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붓글씨는 마음의 수양이지요. 한획 한획 정성들여 써 내려가다보면 마음수련도 되더군요.
    아주 옛날 써 봤던 붓글씨가 지금은 생각도 못하지만, 소운님의 열정이라면 아주 좋은 작품도 기대 할 만 하겠습니다.

    1. 소운 2013-06-04 09:5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용기를 주셨으니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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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두 방울, 깨소금 한 숟가락.
마지막 양념 넣고 조물조물
아차, 그만 그릇이 쨍그랑~떨어졌다.
 
순간,
마루에서 놀던 다섯 살 손녀가
구르듯 달려와서 내 목을 꼭 끌어안는다..
"할머니, 안 다쳤어?"
"응 괜찮아. 그런데 시금치나물이 다 쏟아져버렸네."
"괜찮아 할머니. 다치지 않았으면, 우린 한몸이잖아."
그러면서 작은 팔목에 힘을 더한다.
 
갑자기 쨍~하고 햇살이~
검은 하늘의 먹구름을 싸악 걷어간다.
그동안 내게 새겨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처들
그 상처들이 남긴 크고작은 흉터들까지도 사라졌다.
앗! 더듬이가 나온다.
 
봄볕 그 하나로 죽은 것처럼 보이던
흙 속의 모든 생명이 깨어나듯
따뜻한 위로의 말, 그 하나로
오래전 잃어버린 행복한 더듬이가 나온다.
 
**********

가끔 손녀가 어른처럼 철든 말을 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내외만 있어 덤덤하던 집에

웃음과 행복을 만들어 주는 귀여운 외손녀입니다.

1970-01-01 09:00 2013-06-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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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말풀/그림/소운*

2009-08-23 08:19 2008-12-0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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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루(東星) 2008-12-09 00:1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사진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그리셨나요?
    재주가 많으시군요.

    1. 앨리스 2008-12-09 13:46 # 수정/삭제 퍼머링크

      녜, 그린 건데 많이 부족합니다.

  2. 이광수-3 2008-12-09 12:4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꽃은 본 것 같은데,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본인이 무식한 탓이지요. 미안합니다.

    1. 앨리스 2008-12-09 13:46 # 수정/삭제 퍼머링크

      무식하시다니요.
      흔한데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있지 않은 꽃이랍니다.

  3. 사랑하는것들 2008-12-09 22:0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헉~~~~~~
    저게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구요??

    1. 앨리스 2008-12-18 17:4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잘 그렸다는 말씀인가요?
      감사합니다.

  4. 소운 2009-08-27 16:4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과찬이십니다.

  5. 소운 2009-08-27 16:4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상해졌어요.
    댓글이 몽땅~~~

  6. 소운 2009-12-06 14:20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스킨을 바꾸었더니 댓글이 살아났네요.ㅎ

  7. 박미령 2012-01-08 01:2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화가이시군요. 야생초인가 봐요. 참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8. 소운 2013-01-08 11:0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그림을 좋아하여 배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독말풀'이랍니다. 미령님, 감사해요.

  9. 후리지아 2013-01-25 14:40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세상에나 소운님 방이 이렇게 아담하게 존재하고 있었군요.
    그림에 재주가 많으십니다. 그림이 아주 사실적입니다.^^

    1. 소운 2014-11-17 11:2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자주 들어오지 못해 이제서 답을 보았어요.
      투병하신다고 들었는데 잘 견디시지요?
      빨리 건강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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