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이다.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0.0067%를 알며서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다는 오류를 범한다고 한다.

내게 이번 여행은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제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공지를 보고 3박4일의 여행을 신청했다.

난 스케즐 정리를 못한 탓에, 첫날 합창연주가 있는 것을 체크하지 못한 이유로

둘째 날부터 함께하기로 했다.

중간에 합류하기로 할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생각이 되었으나,

합창을 마치고 집에 오니 합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밤새 뒤척이며 비행기를 탈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친구들과 하는 여행이라면 그래도 편히 합류하겠지만,

도보대장님만 앞면이 있었던터라 망설임은 더 했다.

그래도 비행기표 티켓팅도 되어 있고 하니 여행에 합류하기로 하고 가방을 쌌다.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새로운 사람과 만남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어색함이었다.

비행기에 내리니 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니 김성헌대장님의 전화가 왔다.

일행은 쇠소깍으로 출발 한단다.

쇠소깍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오면 차가 있으니 일행과 합류 할수 있단다.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가니 유병호님이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정방폭포에 차를 주차하고 일행을 만나러 쇠소깍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소천지 근처에서 일행을 만났다.

일행은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허그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색할거라는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되어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저녁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하면 서로를 알아갔다.

길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보꾼들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많이 웃고, 많이 수다 떨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갔다.

 

2박 3일의 제주 여행길

화창한 날씨로 제주는 속살을 보여주었다.

여행은 여행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광과 좋은 사람과의 만남, 행복한 여행은

거문오름에서 해설사님의 이야기처럼 우리 조상이 나라에 좋은일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수고 많이해주신 대장님 이하 총무님 그리고 운영진님 특히 유병호님께 감사를 드린다.

함께한 우리 예쁜 회원님들께도 감사할뿐이다.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1970-01-01 09:00 2014-11-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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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택균 2015-12-09 06:4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처음 들어와본 블로그 볼거리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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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리운 내 친구

어제 너와 함께 했던 길을 다녀왔어

남몰래 감춰두었던 널 꺼내놓았지

너의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눈가를 촉촉해지게 하더군

 

가을이면 갈색코트를 입고 커다란 초록의 가방을 들고 있던 너

환하게 웃으며 집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

난 지금도 네가 있을것 같아 뒤를 돌아보곤 하지

너와 함께 했던 여행 길

항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주었던 너이기에

그 배려에 감사 했었지

 

하얀 밤송이 같은 짧은 머리칼

우수에 젖은 커다란 눈동자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체구

외롭고 쓸쓸해 보이던 뒷모습

힘겨움에 지친 너의 모습

우린 그렇게 가을속으로 들어 갔지

 

친구야

잘 있는거지?

가을은 내겐 아픔이란다.

그리고 사랑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지.

가을이 내속으로 깊숙히 들어오면

난 깊은 한숨을 토해낸단다.

그리움으로.....

 

 

                                  하늘나라로 소풍간 친구를 그리며....

1970-01-01 09:00 2014-11-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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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 곱게 핀 봉숭아 꽃 한아름 따다
손톱에 곱게 물들이고
첫 눈 올때까지 남아 있기를
그리운 님 만날 수 있으려나.....
1970-01-01 09:00 2014-07-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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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1955년~1963년 사이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라 부른다.

2014년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는 7백2십만여 명으로 전체 대한민국 인구의 14.7%를차지하고 있다.

연령 범위를 고려했을 때 전체 대한민국 인구 중 비중이 가장 큰 연령대라고 차지하고 있다.

몇년전부터 베이붐세대들의 은퇴를 시작했고, 그세대들이 갈곳을 잃고 헤메고 있다.

이세대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보건복지부의 메뉴 중에도 베이비붐세대라는 메뉴를 만들어 '고령자 고용촉진 장려금제도 제고', '과학연구분야 퇴직인력 활용도 제고', '기업-고령자 친화적 임금 피크제 활성화'라는 꼭지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나 역시 한국전쟁이후 출생한 사람으로 베이비 부머이다.

 

1년전 사회연대은행에서 은퇴자인 베이비붐세대들을 모집했다.

모집의 내용은 시니어 "재능 나누고 행복 더 하기"라는 프로젝트로 진행 되었다.

시니어의 작은 재능 나눔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 시키고, 시니어의 행복한 제2 인생 출발을 응원하는 취지이다.

나는 2013년 9월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많은 베이비붐세대들이 신청하여 35명의 인원으로 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은 동아리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나는 자연건강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데,

자연건강동아리에서 하는 일은 운동을 통해 건강을 찾거나, 식품의 궁합을 통해 건강을 지켜나가는 것등이다.

이번 자연 건강동아리에서 80세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미리 예방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자연건강 생활 건강법"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시니어타워 두 곳에서 강좌를 연다.

강좌의 소제목은 (1) 자연건강 필요성 (2)건강보장 생활 습관 6가지 (3) 웃음치료 (4) 웰다잉 (5) 수면과 건강 (6) 산소와 건강법 (7) 호흡과 건강 (8) 걷기운영 으로 되어있다.

그 강좌에서 나는 웃음치료와 걷기운영이라는 꼭지를 가지고 강의를 맡았다.

동아리 회원들이 직장에 있을때 강의를 하는등 많은 일을 했었지만,

이제 다시 제2의 인생의 발걸음을 내딛으려한다.

가락시장역에서 상담을 하다보니 베이비붐세대들이 은퇴를 하고 일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비록 시작은 작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예방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용트름하고 있는 자연건강동아리 회원들께 화이팅을 외친다.

 

 

 

 

1970-01-01 09:00 2014-07-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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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신영-1 2014-07-12 10:3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걷기에는 경험이 많으니 인기있으시겠습니다... 걷기가 가장 간단하고 경제적인 건강 관리법이죠~~

    1. 기윤덕 2014-07-14 10:33 # 수정/삭제 퍼머링크

      네 그렇지요
      어르신들은 무릎이 많이 불편하셔서 스틱을 가지고 걸을수 있는 운동을 가르쳐 드렸어요
      잘못 걸으시면 관절에 더 무리가 있거든요

  2. 박미령 2014-07-12 16:2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눈부신 활약에 늘 감탄합니다. 앞으로도 더 뛰어난 도약을 발돋음하시길 바랍니다. 늘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1. 기윤덕 2014-07-14 10:3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이궁 미령님만 하려구요
      전 그냥,,,,
      감사합니다

  3. 육영애 2014-07-14 22:1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그저 놀라움만 ..... 언제나 저를 놀래켜 주는 분!! 항상 화이팅 하는 모습에 감탄 만발~~ 좋아요!!

    1. 기윤덕 2014-07-15 14:4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제가 육선생님만 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예쁘게 봐주시니요

  4. 박택균 2015-12-17 08:3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보람있게 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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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거"
 
막내 아이는 봉투 하나를 주며 쑥스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출근을 했다.
봉투 안에는 5만 원짜리 4장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이렇게 엄마께 편지를 쓰려니 쑥스럽기만 하네요.
이제 엄마하고 함께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말썽꾸러기 막내를 아무 탈 없이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행복하게 살게요.
항상 씩씩하게 사시는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저희 엄마라서 너무 고맙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막내아들이 설에 내민 봉투 안에 들어있는 삐뚤한 아들의 손 편지다.
아들은 5월의 결혼을 앞두고 방을 얻어 2월 말이면 내 곁을 떠난다.
 
막내는 어린 시절부터 말썽꾸러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난히 말썽꾸러기였던 막내 때문에 나는 학교에 자주 불려 다녔다.
호기심이 많은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아이의 이야기), 교실의 책상에 구멍을 뚫고, 머리는 부분염색을 하는 등 평범하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성장해서는 친구를 좋아해서 매일 새벽에 들어와 아버지와 자주 다투곤 하였다.
그런 막내가 24세 되던 해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막내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항상 철없이 밖으로 나아가 친구를 만나던 아이가 혼자인 엄마를 위해 엄마 곁에 있어주는 등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 방에 컴퓨터를 놓고도 엄마 방에서 컴퓨터를 하기도 하고,
장을 보러 동네 마트로 가면 따라 다니며 잔소리도 하고, 엄마를 위해 음악 CD도 사다주곤 하며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 막내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엄마가 너무 불안해 보였어요. 왠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 해보여 자기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 했어요'라고 한다.
그런 막내가 이제 31세가 넘어 혼인을 앞두고 있다.
항상 엄마 곁에서 지켜주겠다던 아이가 새가정을 꾸며 나의 곁을 떠나려는 것이다.
30년을 돌이켜 생각하면 막내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참 많다.
남편의 18년의 병간호로 난 다른 엄마처럼 꼼꼼히 챙겨주지 못했었다. 
내겐 항상 남편이 우선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아이는 항상 말썽을 피우고 자기주장을 내세웠었다.
또 아버지의 아픔으로 막내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식장에도 함께 참석하지 못했었다. 막내에겐 불만이 있었을 텐데도 아무 말 없이 혼자서 다녀왔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막내는 나의 아픔이며 사랑이다.
그런 막내가 이제 가정을 꾸미는 것이다.
한없이 작게만 생각되었던 아이었는데...
이렇게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감개무량이다.
한편으론 막내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뻥 뚤린듯 가슴이 시려온다.
 
"사랑하는 막내야. 네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엄마는 항상 너를 사랑한단다. 두 사람이 한몸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렴. 막내야 너는 나의 아픔이며 사랑이란다. 아들 사랑해"
 
 
 
 
 
1970-01-01 09:00 2014-02-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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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수현 2014-03-08 20:4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엄마에게 자식은 항상 아픔이고 사랑이지요.
    모자의 사랑이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가슴에 다가옵니다..
    착하고 사랑스런 아드님의 결혼생활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1. 기윤덕 2014-07-14 10:36 # 수정/삭제 퍼머링크

      그러게요
      자식은 언제나 그런것 같아요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2. 이종철 2014-03-20 22:5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착한 막내아드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이종철

    1. 기윤덕 2014-07-14 10:35 # 수정/삭제 퍼머링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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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뭐하는 곳이요?"
"네 노후설계 및 일자리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어요."
"나같이 나이든 사람도 일자리가 있나?"
두 분이 앉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예 반갑습니다. 편히 앉으세요."
 
"내 나이는 돼지띠야 그러니까 47년생이지." 하시며 말을 이으신다.
어른신은 경찰공무원 생활을 하시고 정년 퇴직하셨다고 한다.
퇴직하신 후 학교지킴이를 2년간 하시고, 조그마한 개인회사에 관리직으로 7년간 근무했다고 하신다.
그곳에서 퇴직하신 후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나셔서 많은 충격에 쌓였다고.
대다수의 곳에서 60세까지의 일력만 구하고 있었다고.
뒤돌아보면 너무 빠르게 나이를 먹은 같다고 하셨다.
퇴직을 앞두고 여러가지 자격증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나이가 들어보니 그 자격증도 아무 쓸모가 없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자리가 앞에는 막혀있는 골목이고 뒤를 돌아보면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집 근처에 조그만 텃밭 하나를 구입해 농사를 짓고 있기는 한데 농사철에는 그래도 농사짓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요즘에는 자꾸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아. 용기가 없어지고 있어. 이곳도 저 친구가 있으니 들어왔지 아마 혼자서는 들어올 수 없었을 거야. 그래도 내가 고위직 경찰공무원까지 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말을 이으신다.
"집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왜 눈치가 보이는지... 그렇다고 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막막해. 건강은 좋은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심각하지." 잠시 말을 잊지 못하신다.
"그런데 도대체 노인은 몇 살부터야?"
"70세부터 이지요."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중년? 장년? 도대체 나는 어느 분류에 속하는 거야?"
"글쎄요. 장년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시니어란 이야기를 하시는데 편하게 시니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럼 시니어란 무슨 뜻이요?"
"예 시니어란 '연장자, 상급생'을 뜻하는 말로 보통 50대 이상의 중, 장년층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지요."
"그렇군. 집에만 있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야." 그렇게 이야기하시며 노후준비종합진단서를 작성하셨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드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가 노령사회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
특히 60세가 넘어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현실에서는 그들을 받아 줄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70세가 넘어도 건강하다고 당신의 건강을 보여주시면서 일자리를 찾는 분들의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르신의 물음처럼 사회(일)에서 말하는 노인은 과연 몇 살부터 일까 나 역시 궁금하다.
 
1970-01-01 09:00 2014-02-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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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자리 있어?"
까만 패딩점퍼를 입고 50대 후반의 중년이 의자에 앉으신다.
"당신네 뭐 일자리가 있기나 하는 거야?"
"우리 일자리 준다고 당신네 일자리만 만들어서 돈 받는 거 아니냐고."
"저 뒤에 가면 노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느냐고"
"넥타이 매고 앉아 있으면 다야?"
"우리네들 도우려면 밥을 줘야지. 추위에 떨고 앉아서 자는 거 알아?"
"정말로 우리를 도우려면 이런 거 다 집어치우고 밥을 주라고."
"우리는 이런 곳에서 떨고 있는데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뛰라고."
"이 천막 걷고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현장으로 찾아가 보라고"
"당신들 윗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라고. 그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라고"
술 냄새를 풍기며 어눌한 말투로 앉아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나이는 족히 40대 후반 되어 보인다.
잠시 안정시키고 그분의 사연을 들어보니,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셨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약간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상속해주셨다.
어머님께서 상속해주신 금융자산으로 형님과 나눠 가지고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현재는 형님과 공동명의로 된 부동산만 있다고 한다.
형님께 부동산을 팔 것을 권했고 형님의 반대로 형님과 집에서 쫓겨나와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 하는 일자리를 찾고 싶은데 현재 공동명의로 된 부동산 때문에 취업자리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일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자기에게 일을 주는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것 포기하고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술을 마시면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들어서면서 버럭 화를 내더니 1시간가량 당신의 이야기를 하더니 눈물을 보이신다.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다고 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담하면서 찾아온 내담자는 이야기할 상대와 사람의 정이 그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사랑의 쌀 운동본부에서 홀몸노인과 노숙자에게 밥을 퍼주는 봉사를 한다.
추운 겨울이면 언 손을 호호 녹이며 고픈 배를 움퀴지고 와 한 그릇의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배부르게 먹고 빈 식판을 가져오면 환한 웃음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럴 때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었으면 좋겠다.
 
1970-01-01 09:00 2014-02-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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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맡아 줄 수 있나? 금방 올게"
"예 어르신 두고 가세요."
 
 
2달 가까이 지하철역사에서 상담하다 보니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오신다.
술이 잔뜩 취해 횡설수설하시는 어르신,
아버지의 도박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30세의 젊은이.
봉사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중년의 아저씨,
나라의 불만으로 위정자들을 욕을 하시는 분,
집사람과 별거 중이니 여자친구 소개해 달라는 어르신,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힘이 겹다고 눈물 흘리며 이야기하시는 분,
길을 묻는 사람들, 짐을 맡겨 놓고 일을 보고 오시는 분,
재산상속 때문에 노숙자가 되었다고 울며 호소하시는 분 등 삶의 애환이 있는 곳이 부스이다.
 
우리 부스에 오시는 분 중에 가끔 오셔서 물건을 맡기곤 하시는 분이 계시다.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성남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이시다.
작은 키에 구부정한 허리를 가지신 분이시다.
물건을 맡기실 때는 빈손으로 오시는 적이 없이 작은 초콜릿을 가져다주신다.
"어르신 괜찮아요."
"괜찮긴 내가 미안해서 안돼."
어르신은 그렇게 물건을 맡겨놓으시면 1시간 후엔 다른 채소를 잔뜩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상자 한 뭉치를 들고 돌아오신다.
"어르신 그 상자는 무엇에 쓰시려고요."
"응 노점이라도 자리싸움이 심하거든. 상자라도 가져다주면 그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쓰지 않아도 상자는 가져가야 해." 어르신은 피곤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신다.
뜨거운 물 한잔을 드시곤 물건을 캐리어에 싣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신다.
 
어르신의 연세는 72세라고 하신다.
자녀를 다 출가시키고 작년까지 조그마한 아파트에 사셨는데, 큰아들의 사업 실패로 당신의 부동산을 다 처분해 주시고 이젠 작은 고시원에서 당신의 몸을 의지하고 사신다고 하셨다.
"이번 설 명절이 지나면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 같아. 노점상 일도 못 할 것 같아. 나도 일자리 찾아 줄 거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셨다.
그 후 어머니는 도라지를 까서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새벽에 나가시곤 했었다.
가족을 위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새벽에 나가신 어머니,
큰아들의 사업실패로 당신의 부동산을 모두 팔아서 주시고 고시원에서 기거하시는 어르신,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부스에 오셔서 일자리를 찾으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녀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자녀가 잘 되기만은 기원하고,
백발이 되어 당신의 끼니를 걱정하시면서도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이야기도 못하시며
힘겨운 모습으로 일자리를 찾으신다.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얼마전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는 너무 편하게 살아. 아들 장가 가는데 신경 좀 써봐."
"아들이 가는거지 뭐 내가 장가 가는거니? 막내가 알아서 할거야. 난 그냥 해 달라는 것만 해주면 돼."
지인의 이야기처럼 난 너무 편하게 살아온거는 아닌지,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1970-01-01 09:00 2014-02-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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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루 2014-02-05 13:4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어려운 어른신들의 모습을 자주 볼 테니 마음 아프시겠습니다.
    인내심 많고 인정 넘치는 게 우리 부모님 세대지요.
    소리 님의 애정이 엿보입니다.

  2. 기윤덕 2014-02-05 21:0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예쁜 모습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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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11월에 노후 설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작년 12월부터 노후 설계 및 일자리상담 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내가 봉사하고 있는 곳은 지하철 8호선 가락시장역 안에 있는 작은 부스다.
이곳에 찾아오시는 분들의 나이는 대체로 50대 초반부터 70대 중반까지이다.
위치적 특성인지 아니면 현재 사회상인지 많은 사람이 찾아와 일자리를 구하신다.
가락시장을 다녀오시면서 잠시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삶의 애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급한 일자리를 찾기도 하신다.
 
며칠 전 이야기다.
70세가 조금 넘으신듯한 어르신이 부스를 방문하셨다.
어르신은 조금은 어색한 얼굴을 하시며 자리에 앉으셨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르신."
"내가 일을 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으신다.
"저희는 일자리를 소개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서류를 작성해 주시면 접수해드리고 있어요."
"나는 44년생이야. 아이들은 모두 출가시켰어. 전기통신 일을 35년 했었지. 그리고 얼마 전까지 부동산 일과 건물관리인으로 일을 했었어." 잠시 말을 잊지 못하신다.
"작년 10월까지 홀몸노인의 도시락배달일을 하며 생활을 했었지."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국민연금은 타지 않으세요?"
"으~~음"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어르신은 말씀을 이어가신다.
"집사람과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집사람에게 연금통장을 줬지. 그 사람도 살아야잖아."
"당장 먹을 게 없어. 어디 일자리 없을까?"
"예 접수 해드릴게요."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막막해 보이고, 어르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이틀 후 가락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주관하는 홍 반장이라는 분이 오셨다. 급하게 아르바이트 할 사람을 찾는데 나이와는 무관하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어르신이 생각나 전화를 드렸더니 얼른 가보시겠단다.
어르신이 하실 일은 가락시장에서 경매 차를 유도하는 일이다.
다녀오시고 어르신께 문자가 왔다.
'전화와 문자로 적극적인 협조에 깊은 감사를 드림. 그곳 팀장도 내일처럼 많은 도움을 줌. 구정 전까지 근무 올해는 좋은 명절 대단히 감사'
 
며칠이 지나 어르신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찾아오셨다.
"선생님 고마워요. 이렇게 빨리 일자리가 생길 줄 몰랐어요. 전화받고는 긴가민가했었거든. 덕분에 내가 취업이 돼서 이번 명절에는 떳떳하게 지낼 수 있겠어요. 내가 번 돈으로 제사상에 음식도 올릴 수 있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상기된 얼굴로 행복하게 말씀을 하신다.
"제가 더 감사하지요. 일하시는 것은 괜찮으세요?"
"처음에는 8시간 근무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남의 돈 먹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요.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올 명절은 따뜻하지요. 조금 힘든 것이 있다면 날씨가 추워서 그런데 이제 견딜만합니다."
하시며 코를 훌쩍거리신다.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권하니 마시면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가락시장에 가서 배운 것이 정말 많아. 그곳에 계신 상인들은 정말 열심히 살더라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말이야. 난 정말 좋은 환경에서 살았구나. 고생을 덜 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까지 하더라고.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들더군. 희망은 없어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실패하지 말고." 하시며 긴 한숨을 내쉬신다.
"잠깐만요. 어르신" 나는 얼른 창고에 가서 진흥원에서 입으라고 주신 패딩 코트를 가지고 나왔다.
"어르신 저 입으라고 진흥원에서 주신 코트인데 작더라도 입으세요. 치수가 100이에요. 긴 코드이니 덜 추우실 거예요."
"치수 100 이면 맞아요. 내가 100 입거든. 그렇지 않아도 퇴근하고 들어오면 내일 일기예보는 꼭 보거든. 날씨가 추우면 두껍게 입고 나와야 하거든.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다리 부분이 상당히 추웠어."   말씀하시면서 껄껄 웃으신다.
"정말 고마워,"
어르신의 얼굴에는 환한 행복이 보이는듯했다.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 일어서시면서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놓으신다.
"너무 작아. 미안하이. 2만 원 넣었어. 작지만 내 성의니 받아 주시게."
"어르신 이러시면 안돼요. 이런 거 받으려고 해 드린건 아니에요. 어르신 마음만 받을게요."
"아니야. 받아 주었으면 정말 고맙겠네."
이렇게 잠시의 실랑이 끝에 어르신의 주머니에 다시 넣어 드렸다.
"고마워요. 내가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땐 맛있는 것 사다 드릴게요."  어르신은 내 두 손을 꼭 잡으셨다.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의 손의 따뜻함이 내 온몸으로 퍼져 나오는 듯 했다
 
어르신이 가신 후에도 난 한참을 시선을 띨 수 없었다.
왠지 눈가가 불어지고 가슴이 먹먹함이 느꼈다.
단지 전화를 해드렸을 뿐인데 어르신의 삶 속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1970-01-01 09:00 2014-01-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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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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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루 2014-01-30 11:5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소리 님,정말로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바빠도 설맞이는 하시겠지요.
    올해도 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1. 기윤덕 2014-02-01 20:12 # 수정/삭제 퍼머링크

      감사합니다
      설 명절도 행복하셨지요?
      청마해에도 청마처럼 건강하세요

  2. 김혜숙 2014-01-30 16:1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그노인처럼 노인들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혼 하지말고
    두손 꼮 붙잡고 살면 견디기도 나을 텐데요. 어차피 언젠가는 홀로 되는것인데,,,

    1. 기윤덕 2014-02-01 20:13 # 수정/삭제 퍼머링크

      그러게요. 서로 화평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텐데...
      감사합니다

  3. 신기옥 2014-02-03 11:0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다른사람의 행복을 찾아 주시는 뜻깊은 일을 하고 계시군요~
    소리대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대장님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추운날씨 건강 챙기시고 행복하세요~

    1. 기윤덕 2014-02-03 14:06 # 수정/삭제 퍼머링크

      감사합니다
      신기옥님과 함께 길을 걸어 많이 행복합니다.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4. 하진구 2014-09-01 05:3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마음에서 나오는 삶의 대화속에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글 표현을 너무 잘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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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다 되어서 남자 어르신이 들어 오셨다.
감기에 걸리셨는지 맑은 콧물이 어르신의 인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른 휴지를 꺼내드리니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앉으신다.
"일자리 있는가?"
"앉으세요. 따뜻한 커피나, 둥굴레차 드릴까요?"
"응"
어르신은 단 한마디 대답으로 자리에 앉으신다.
유자차 한잔을 타 드리니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언 몸을 녹이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께 볼펜을 드려 상담일지를 쓰게 했다.
천천히 상담신청서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신다.
어르신의 성함은 구** , 37년생이시다.
 
"내가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어,"
"아내와는 5년 전에 사별하고,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둘은 미국과 호주에 살아.
딸내미는 부산에 살고 있지. 그런데 말이야 떨어져 살면 다 남이야."
"어르신 사학연금은 타고 계시겠네요?"
"아니. 아이들 공부하는데 다 사용했어. 외국에 집 산다고 해서 돈도 부쳐주고 했는데 이제는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야. 아내가 죽고 나니 자식들이 소식을 끊어버리더군." 하시며 유자차를 천천히 마신다.
"과거는 필요 없어. 현실이 중요하지. 내가 학교 선생이었으면 뭐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데"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삶이 무료하더군. 그래서 친구가 권하는 유통이라는 것을 시작했지."
"그런데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더니 점점 내 돈은 사라지는 거야. 처음에는 미치는지 알았지."
"지금은 가지고 있는 돈 다 날리고 이제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어. 월세 30만원 짜리.."
"어르신 그럼 어떻게 생활하세요?"
"고시원에선 밥을 주거든. 나처럼 혼자인 사람이 살기는 편해. 그런데 몇 달 전에는 쫓겨났었어.
고시원은 방세를 선지급해야 하는데 내겐 돈이 없었거든. 내 수입은 고작 고령연금 98,600원이야."
"얼마 전 고시원에서 만난 이가 이야기하더라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신청하라고."
"그래서 신청하러 갔더니 애들한테 사인을 받아오라더구. 연락도 안 되는 아이들한테 어떻게 받누."
"따님하고는 연락되신다며 요."
"딸내미하고 이야기해 봤는데 내가 잘못되면 피해가 갈까 봐 그런지 답이 없네. 미국에 있는 아들도 뭘 그러냐고 야단이야."
"아버님께서 이렇게 힘들다고 이야기하시지 그러셨어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아."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상담일지를 작성하면서 어르신 성함을 다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당신이 쓰신 상담신청대장의 이름과 불러주시는 성함이 다른 것이다.
"어르신 성함이 다르네요."
"응 사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볼까 봐."
"제자나 학부형들이 나를 알아보면 창피하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는 어르신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예 어르신. 여기서 상담한 내용은 다 비밀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에 어르신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신다.
어르신이 보여주신 주민등록증에는 나중에 가르쳐주신 성함이 맞았다.
난 어르신께 주민센터에 가서 사회복지담당을 다시 만나보라고 권해 드렸다.
 
어르신과 상담을 마친 후 기운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
손까지 조금씩 떨고 있는 어르신.
당신의 힘든 상황에도 자녀에게 피해  당신의 상황을 알리지 못하는 어르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제자나 학부형께 보이고 싶지 않으신 어르신.
그래서 성함까지도 정확히 쓸 수 없었던 어르신
어르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나의 25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
 
 
 
1970-01-01 09:00 2014-01-2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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