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몸둥이를 드러내놓고 있는 계곡을 가로질러 13성문의 첫 문인 시구문의 들머리를 찾아 들었다.

대부분 시구문 들머리는 덕암사 절길을 따라 가는것이 보편적이나 한참을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덕암사로 향하는 지름길을 주로 이용한다. 

별로 탐방객들이 이용하지 않는 이 좁은 길엔 솔잎과 상수리나무 잎이 소복히 쌓여 정취가 난다.

솔향이 코끝에 맴돌다 이내 폐부 깊숙히 자리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발걸음에 힘이 솟구친다.

원효대사가 참선 수도했다는 덕암사

덕암사에 오르면 절간 마당에 깔아둔 자갈 밟는 소리가 좋다.

대웅전 입구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서계신 커다란 불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절간에 올라서자 회원님들이 걸을 때 마다 다그락 다그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파도에 구르는 몽돌소리처럼 들린다.

식수를 공급해주던 절 간 옆 약수터는 바닥이 드러나 있다.

내 기억으론 가을 가믐이 이토록 심한 해는 없었던듯

덕암사를 뒤로하고 시구문을 향해 숲길로 접어드니 솔향이 더욱 은은하다.

덕암사에서 시구문까지는 10여분도 채 아니되는 지척간이다.

시구문에 도착하니 시구문 매표소를 지키는 국립공원 직원이 빗자루로 성문 바깥을 쓸고 있다.

효자동에서 올러오면 이곳에서 매표를 해야한다. 

13성문의 첫 문인 시구문에 대해 회원님들에게 설명 드리자 다들 잘 경청해주신다.

 


시구문(尸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성내에서 생긴 송장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이 시구문(屍久門)이라 불리웠고, 원래 성문 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서암문은 대서문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지형이 낮고 험하지 않으므로 방어상 취약지임을 감안, 주변 성벽을 구축하고 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문과 연결된 성벽을 'ㄱ'자 모양으로 돌출 되도록 축조하여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설명을 마치고 배낭을 메는데 온 몸에서 기운이 뻗힌다.

컨디션이 베리굿이다. 

기분이 좋다.

"첫 문을 통과하였으니 이제 반은 넘긴겁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쟎아요"

모두들 웃음으로 화답 주신다.

"자~이곳에서 부터 1시간정도 산신령님께 사탕을 선물 주십니다. 1시간 정도는 단내가 날겝니다"

길라잡이가 던진 죠크의 뜻을 아는 분들은 "휴우~"하며 한 숨을 내쉰다.

이곳부터 원효봉까지 약 40여분 깔딱고개가 이어진다.

돌계단길이 쭈욱 이어진 구간이라 오름 내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이곳을 오를 때면 그 옛날 이곳을 오르내리던 병사들, 그 들의 고초를 몸소 체험해본다는 생각을 해본다.

허구헌날 이 구간을 오르락내리락 했을테니 말이다.

어릴적 만화에서 보았음직한 하늘로 향하는 길, 그 그림같은 길을 따라 오른다

땀방울이 이마에서 맺히기 시작하고 심장의 박동수 또한 빨라지기 시작한다.

대퇴의 근육이 뻐근해짐이 좋다.

한 발 한 발 목적을 위한 오름짓을 할 때마다 쾌감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회원님들이 줄줄히 따라 오른다.

나같은 심정이시겠지?

오름길 중간에는 원효암이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도 참선 수도를 하였다고 하여 원효를 흠모하는 불자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탐방한다고 한다.

원효암을 지나치면 시야가 확 트인 암릉을 만나는데 그 암릉을 산꾼들은 "전망 좋은 방"이라 부른다. 

전망좋은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마중나온 바람과 포옹을 했다.

바람이 달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저 멀리 회원님들을 태우고 온 관광차가 쉬고 있다.

바로 발밑으로는 우리가 올라온 길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구불구불한 계곡과 덕암사 지붕도 내려다 보인다.

정면으로 시선을 옮기니 의상봉이 우뚝 서 있고 그 좌측으로는 용출봉이 의상봉을 엄호하고 있다.

저 용출봉과 의상봉 사이에 가사당암문이 있다. 그 가사당암문을 거쳐 국녕사로 내려올 것이다.

회원님들에게 용출봉을 가리키며 저곳에서 하산할것이라고 하자 믿기지 않는듯 놀란 눈을 한다.

사람의 걸음이 무섭다.

한 발 한 발 걷는 걸음이 오늘 14km의 거리를 줄여갈것이다.

그 걸음걸음 마다엔 떨구어낸 땀방울 만큼 역사의 혼이 따라 다닐것이다.

13성문을 완주하고 나면 북한산을 제대로 실감할것이다.

바람이 쉬지 않고 달려든다.  

바람은 땀도둑이다.

바람은 땀을 훔쳐간다.

어디에다 쓰려는 것일까?

원효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능선길을 따라 가는 동안에도 바람은 줄곧 따라온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에서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낄 때면 그 맛이 너무 좋다. 

온몸에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산의 높이에 따라 바람의 맛이 틀리다.

바람이 걸어갈 때와 내 달릴 때의 소리도

마른날과 젖은 날에도 그 맛이 틀린다.

오늘은 바람에게서 왠지 모르게 가을을 타는 남자의 구멍뚫린 가슴을 오고가는 그런 맛이 느껴졌다.

차분히 가라앚아 있는 바람이 아닌 뭔가 바람이 잔뜩 들어 있는 그런 바람처럼 느껴졌다.

오랜 가믐에 몸살을 앓고 감성이 말라버린 탓이리라.

원효능선의 암릉을 줄이다 보니 어느덧 원효봉에 다다랐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배낭에서 연실 간식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건네주는 배가 너무나 달콤하다.

내미는 포도맛은 어떻고.

복숭아 통조림속 단물이 왜 그리 맛있던지?

염초봉이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뒤에 우뚝 서있는 백운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서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 올라 북한산을 예찬할까?

배낭을 다시 메었다.

원효봉에서 5분정도 거리에는 우리 일정상 두번째 성문인 북문이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탓인지 회원님들 모두 북문에 금새 도착한다.

역사란 그 나라의 얼굴과도 같은 것인데

북문을 탐방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방치되어 있는 역사를 느끼곤 한다.

언제가는 관리되겠지?

언젠가는 복원되겠지?

아픈 역사도 지워버리면 아니되는 역사다.

상처 투성이의 몸뚱이로 역사를 말하고 있는 북문을 바라보노라면 울상짖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회원님들에게 북문을 설명하면서 올려다 본 옛 누각자리에는 잡초만 무성이 자라있다.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한 당초 홍예식에 문루를 갖춘 큰문으로 축조되었다. 문루는 오래 전에 소실된 채 육축상단을 마감한 장대석은 전부 무너져 내리고 홍예돌 윗부분이 완전 노출된 채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상부의 초석도 절반은 없어지고 5개만 위험한 상태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1988년 큰비에 육축을 포함한 성벽이 15m가 무너져 성문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바 대책이 절실하다.


북문을 뒤로하고 세번째 문인 위문을 향해 산길을 접어들었다.

위문을 오르기위해서는 상운사와 대동사를 거치는 중간 지름길을 찾아든다.

상운사 입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제법 이어진다.

누군가 내리막길이란면서 좋아하신다.

"공을 튀기면 튀긴 세기만큼 튀어 오르는 법이지요. 내리막길이 심하면 오르막길이 그 만큼 기다리고 있으니 좋아하지 말라"고 하자 몇몇분들의 엄살이 뒤통수에 꽂힌다.

상운사 입구를 찾아 들어서니 소롯이 난 절간으로 이어지는 길위로 참나무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다.

그 낙엽사이로 떨어진 도토리를 주어 모으던 다람쥐가 화들짝 놀라 몸을 숨긴다.

 

상운사(祥雲寺)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元曉峰)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元曉:617∼686)가 삼천사(三千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露積寺)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太月)과 지청(智廳)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亘弘)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漢庵)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法延)과 덕산(德山)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범종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 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


상운사를 거쳐 빼곡이 뚫여있는 숲길을 줄여가면 대동사를 만난다.

대동사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데 어느 불자의 말에 의하면 비구승들이 머무는 곳이라 들었다.

이곳 절 마당에는 백구가 한 마리 있다.

수년째 만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지라 나만 보면 꿍꿍거리고 꼬리를 흔들어댄다.

아주 잘생긴 진구다.

대동사를 비켜 위문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회원님들께 "이곳에서도 산신령님께서 사탕을 선물주신다고 하자" 금새 눈치를 채신다.

먼지가 풀썩거리는 등산로엔 나무 뿌리들이 온통 흙을 뒤집어 쓰고 뻗어있다.

저 뿌리들도 비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풀썩거리는 등산로로 땀이 뚝뚝 떨궈진다.

뒤따라 오던 바람은 북문에서 숨어버렸다.

바람이 숨어버린 숲에는 습도가 활개 친다.

바람은 땀을 말려 훔쳐가는 도둑이지만 습도는 땀을 짜내어 가져가는 도둑같다.

숲을 꿰는 동안 습도가 훔쳐가는 땀을 잃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몸속에 필요없는 불순물들을 모두 훔쳐가고 있으니 말이다.

약수암 바로 밑 커다란 공터의 그 쉼터는 위문까지 오르는 사람들에겐 맛있는 곳이다.

이곳은 턱밑까지 차 올랐던 사람들의 숨을 찾아주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의 혈색이 금새 틀려진다.

힘들어 굳어있던 표정도 금새 화안하게 변한다.

정말로 맛있는 쉼터다.

풀잎 한 줄기를 따서 입에 물고 새들을 불렀다.

새들이 모여든다.

산을 찾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새들을 부른다.

자연과 동체가 되고 싶음에서.

새소리의 이벤트에 모두들 즐거워 하신다.

모두들 마른 목이 축여지자 배낭을 메신다.

그 맛있는 쉼터를 뒤로하고 약수암을 향해 오름을 잇는다.

약수암에서 염불소리가 은은히 숲으로 스미고 있다.

그 염불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밀치고 오르는 두다리에서 강한 힘이 솟구친다.

산신님이 끌어 올려주시는 힘이 느껴진다.

산을 사랑하는 놈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약수암을 뒤로하고 가파른 깔닥고개에 접어들자 오름짓하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염불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오를 때

뻐근해오는 다리 근육의 펌핑이 느껴질 때

난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쾌감과 희열을 느낀다.

차라리 오르가슴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쾌감

어떤 산을 찾더라도 한 두 곳은 반드시 있다.

그래서 산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지도 모른다.

사부작 사부작 오르다 보니 목적한 곳에 이르른다.

위문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배낭을 내려 놓았다.

오를적 뒤돌아 보면 바짝 따라 오시는 분이 계셨다.

체구가 작으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걸음이 가뿐하신지 존경스러웠다. 

지난밤 약주를 많이하셔서 사모님께서 산행에 나서는것을 말리셨다는데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며 힘이 좀 부친다고 겸손을 보여 주신다.

대단한 체력이셨다.

회장님께서 교장선생님이라 귀뜸해주신다.

산에 오면 건강관리를 잘 한 사람들을 쉽개 알아볼 수 있다.

건강은 게으름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건강은 땀의 대가없이는 절대로 얻어지지 않는다

건강하는 사람을 만나면 절로 신이 난다.

건강한 사람옆에 있기만 해도 내 몸의 피가 뜨거워지는듯하다.

교장선생님의 강건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 도착하기 시작한다.
몸이 흠씬 땀에 젖어있다.

후미까지 다 오르고나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배낭을 벗어두고 위문으로 향했다.

위문까지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력이 좋은 회원님 셋이 백운대를 다녀온다고 일행이 쉬는 사이 미리 출발했는데 지금쯤 백운대 올랐으리라.

위문에 도착하니 도선사쪽에서 오른 사람들이 백운대를 오르기 위해 속속 위문으로 도착하고 있다.

건너편 인수봉 몸통 곳곳에 바위꾼들이 듬성듬성 붙어있다.

백운대를 올려다 보니 흔들거리는 태극기 아래 산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출입구는 네모난 형태이며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문루는 당초부터 없었으나 문짝을 달았던 흔적은 남아 있다. 출입문 주위는 대체로 양호하나 여장을 비롯한 상단의 성돌이 무너져 내려 높이가 상당히 낮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위문에서 다시 만난 바람과 포옹을 하고 배낭이 있는 쉼터로 내려갔다.

계단이 식간에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복잡해진다.

오늘 북한산에는 단풍객들로 메어질것이다.

그러나 실망이 대부분 실망이 클텐데.

가믐에 단풍은 들지않고 말라비틀어 꼬스러져 있는 나무잎과 풀썩 거리는 먼지만 만나고 갈테니 말이다.

그러나 단풍객이 아닌 산꾼들은 상관치 않으리라.

산에 온 그 자체로도 행복할테니 말이다.

세번째 문인 위문을 뒤로하고 네번째 목적지인 용암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2006/11/18 12:47 2006/11/1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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