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산에 올라 가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산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라고 영국의 등산가인 "멀로리"경은 이렇게 말했다.

"네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고 독일의 어떤 시인은 노래 하였다.

인생이 우울해지면 산으로 가는것이 좋다. 배낭을 메고 조용한 산길을 정다운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면 인생의 우울이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산은 무언의 표정으로 우리에게 정다운 손짓을 한다.

 

1)봄의 산은 연한 초록빛의 옷을 입고"수줍은 처녀처럼"우리를 부른다

2) 여름의 산은 풍성한 옷차림으로 "힘있게"우리를 유혹한다.

3)가을의 산은 단풍으로 성장하고 "화사하게"우리를 초대한다.

4)겨울의 산은 순백한 옷차림으로 "깨끗하게"단장하고

우리에게 "맑은미소"를 던진다.


삶에 지치고 생에 권태를 느겼을때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산의 정상을 향하여 전진할때에 우리는 "생의 용기"를 느끼고 "삶의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정신이 피곤하고 인생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면 산을 찾아가라. 맑고 깨끗한 산의 정기는 우리의 정신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는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산에는 산의 언어가 있다. 산은 몸짓으로 말한다. 큰 바위는 억센형태로 말하고,잔잔한 샘물은 맑은소리로 말하고, 흰 폭포는 "힘찬운동"으로 말하고,푸른초목은 빛깔로 말한다. 나무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은 소리로 말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로 말한다. 산속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언어가 있다. 우리는 그 언어를 읽을줄 알아야 한다.


산의 언어는 바로 침묵 그것이다.


침묵의 언어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풍성한 것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산의 언어를 듣고,새기고,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자연(Nature)은 신(조물주)이 만든 위대한 책(冊)이다. 우리는 산이라는 큰 책에서 많은것을 배운다. 악성 베토벤은 자연을 가장 사랑한 예술가였다. 그는 특히 숲을 사랑했고,숲의 나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다. "숲속의 전능자여,숲속에서 나는 행복하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가 당신을 통해서 말을 건네온다. 오오 신(神)이여,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산상(山上)의 숲에는 정적이 있다. 신에 봉사하는 정적이 전원에 있을 때에도 하나하나의 나무가 나를 향하여 찬송하라고 말해오는 것 같지 않은가. 숲 속의 황홀한 환희 이 모든 것을 누가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산은 자연의 철학자다. 산은 우주의 교육자다. 산의 "침묵의 소리"를 경청하기 위해서 산을 찾아가자.


인생의 많은 위대한 것이 산에서 잉태 하였다.


1)인도의 심원한 철학은 히말라야 산속의 명상에서 나왔다.

2)타고르의 아름다운 시(시)는 깊은 산의 산물이다.

3)괴테는 산에서 위대한 시의 영감을 얻었다.

4)동양의 많은 아름다운 '시의 고향"은 산이다.

5)파우스트는 인생에 권태를 느끼고,향락에 지쳤을때

산속의 "대자연의 소박한 미(美)"와 건강한 샘명을 보고

"재출발'하는 힘찬 용기와 활력소를 얻었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시원한 공기를 마시며,푸른 자연을 즐기면서, 넓은 대지를 힘차게 걸어갈때 우리의 생명은 젊고,순수하고,아름다워진다. 걷는 것을 배워라. 걷는 것을 사랑하여라. 걷는다는 것은 내가 내 발로 혼자 늠름하게 서서 목적지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발이 땅을 밟지 않을때 심신(心身)이 질병이 생긴다. 적어도 하루에 만보는 걸어라. 걷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없다.

*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요,대지의 딸이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면 멀리 할수록 정신병,문명의 질환에 걸린다. 현대인은 문명에 지쳤다. 우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산의 정기"를 마셔야 한다. 산의 정기와 침묵에 안길때 우리는 "생의 싱싱한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서 악인이 없다.


산의 정기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때 누구나 인간 본연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어머니품에 안기면 모든 자식들이 다 착해지는 것과 같다.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더러워지지 않은 자연속에서 자기를 되찾고 나의 마음을 맑게 씻어야 한다." 산의 정기로써 마음의 세탁을 하자.세심정혼 낙엽을 밟으면서 말없이 산길을 걸으면 정신의 때가 자연히 씻어지고,생명의 오염이 저절로 정화된다. 산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의사"다. 산은 우리의 정신에 힘과 기쁨을 주는 "우주의 목사"다. 산은 자연의 철학자다. 산은 우리에게 인생의 많은 진리와 지혜를 가르친다.


우리는 산한테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첫째로 산은 우리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침묵의 힘"침묵의 위대성을 가르친다. "나처럼 의젓한 침묵의 법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과 싸울때의 "진중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중여산(靜重如山),즉 조용하고 무겁기가 산과 같다고 했다. 산은 침묵의 천재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떠들 필요가 없다.

 

둘째로 산은 또 우리에게 장엄(莊嚴)을 가르친다.

산은 "장엄미"의 상징이다. 산은 높을수록 장엄하다. 우리는 왜 높은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가. 산을 정복하는 "승리의 쾌감'을 위해서다. 또 멀리 바라보는 시원한 "전망의 기쁨"을 갖기 위해서다. 고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의 장엄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나는 스위스 갔을때 4,000M 육박하는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본 일이 있다. 흰눈이 덮인 높은"영봉의 품"에 안겼을때 산의 다시없는 장엄미의 황홀함을 느꼈다. 산은 신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장엄한 미다. 우리는 높은산의 장엄한 미 앞에 설때 압도되는 감을 느낀다. 인간의 힘이 도저히 미칠수 없는 우주의 대생명력을 느낀다.

 

셋째로 조화의 진리를 가르친다.

산속에서는 모든것이 다 제자리에 저답게 놓여있다. 하나도 부자연한 것이 없다. 자연은 곧 조화요,조화는 곧 미다. 인간의 행동에는 부자연과 부조화가 많지만,자연은 조화 아닌것이 없다.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다." 산속의 그바위,그나무,그생물,그길,그돌맹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그렇게 자연스럽게 놓여 있을까.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위대한 조화에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질서의 천재(天才)요,조화의 천재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생명이 길다. 산속에서 우리는 조화의 미와 진리를 배운다. "자연속에 있는 모든것은 법(法)과 더블어 행동한다"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법은 질서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질서속에서 움직인다. 옛날의 그리스인들이 우주를 질서라고 말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코스모스(Cosmos)는 질서란 뜻이다. 우리는 산에서 질서의 정신과,질서의 진리를 배운다.

네째로 진실의 덕을 배운다.

산속에서는 모든것이 말할수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잇는 그대로다.가식이 없는 세계다. 꾸밈이 없고 허영이 없다. 자연은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진실이 있을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기만한다. 산은 위대한 교육자다.우리르 착하게 만든다. 인간의 기교,아첨,술수,거짓,가식은 자연의 위대한 단순성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이다.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라고 시인(詩人)단테는 말했다. 자연은 신의 에술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다. 가짜가 없다.진실이 있을뿐이다. 우리는 산의 소박과 단순과 진실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다섯째로 산에는 우정이 있다.

산처럼 인간과 인간을 가깝게 "결합"시키는 것이 없다. 산에 가면 미움이 없어진다.미움이 있을 수가 없다. 모두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진실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미움의 감정이 있을수가 없다. 우리는 산에 가면 모두 착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산에 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산속에서는 미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 진실한 인간적 대화가 꽃핀다. 참말의 향연이 이루어진다.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여섯째로 인간의 분수와 한계를 느끼게 한다.

산은 따뜻하게 미소짓는 어머니의 얼굴을 가지는 동시에 용서와 아량을 모르는 비정한 무서운 얼굴을 나타낸다.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아무 준비없이 산에 갔다가는 무서운 재난을 당한다. "산은 비정하다." 세상에 등산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난데없는 산사태가 일어나고 짙은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산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분별과 능력과 준비가 없이 산을 대하다가는 산한테 희생을 당한다.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분수와 능력의 한계를 준엄하게 인식 시킨다.

 

우리는 산과 친하되 산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은 자모(慈母)인 동시에 엄부(嚴父)이다. 우리는 산의 비정을 알아야 한다. 산앞에 겸손한자만이 "산의 벗'이 될 수 있다. 나는 산(山)의 철학(哲學)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이 위대한 자연의 철학자인 산한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1.산의 침묵의 덕(德)을 배우고

2.장엄미를 배우고

3.조화의 진리(眞理)를 터득하고

4.진실(眞實)의 정신을 깨닫고

5.우정(友情)을 알고 6.또 인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산이 우리를 정답게 부르고 있다.
 

한라의 웅자,내장의 단풍,가야(伽倻)의 계곡,속리(俗離)의 숲, 설악의 골짜기,백운(白雲)의 바위,소백의 철쭉,월악산의 영봉 등이 철따라 옷을 갈아 입으면서 우리에게 반가운 손짓을 한다. 일에 지쳤을때,정신이 피곤할때,인생의 고독을 느낄때 삶이 메말랏을때 우리는 산을 찾아가야 한다. 산의 정기,산의 빛,산의 침묵,산의 음성,산의 향기는 우리의 심정에 새로운 활력소와 생명의 건강성을 줄 것이다.

우리는 산이라는 자연의 위대한 철학자한테서 깊은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는 두려우면서도 친밀한 우리의 벗입니다.


자료출처/조병욱 박사의 수필에서

2006/12/06 18:02 2006/12/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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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에서 노는 바람이 절간 풍경을 흔들적

자인사 마당에 둘러모인 신있으뫼 산꾼들 상견례가 정겹다

산신님께 입산을 알리고

하늘에 걸쳐놓은 사다리를 타고 명성산을 오른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적마다 귀볼을 훔쳐가려는 바람이 따라온다

턱까치 차오른 숨 고르려고 발걸음 멈추고 뒤 돌아보면

산정호수에 하늘이 빠져 색경속에 비추이는 신선도 같다

앞서가는 바람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꽃잎 다 날려보낸 억새들 총총히 모여
지난 가을 이야기들 풀어놓고 있다.

그 억새품을 파고 들어
땀식어 한기어린 몸 곡차 돌려 뎁히고

사부작사부작 발품에 고팠던 시장기는

부대찌게 내장탕 보골보골 끓여 달래니

이런 순간을 두고 애인보다 산이 좋은 이유이리라.

山頂에 올라서 하늘을 올려 보니

돌맹이를 던지면 쨍하는 소리가 날듯이

잘 닦아 놓은 유리같이 맑고 푸르다

나목들이 벗어제낀 이파들 하산길에 수북히 쌓여

밟힐 때마다 버석버석 그 소리 너무 정겨워

시인이 따로없이 절로 싯귀가 읊어졌고

산길을 벗어나 신작로에 다다르니

갈대들 몸 흔들며 하산을 축해해준다.

나선자가 누리는 축복이요
나선자만이 받는 선물이라 생각커니
절로 콧노래가 난다.

오늘도 내게 온전히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 준 

나의 님인 산을 향해 입맞춤을 보낸다.

2006/12/05 17:06 2006/12/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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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을 끝자락과 겨울 문턱, 그 틈새라는 제목을 달고 찾은 검단산!
행복한 나들이였습니다~
만추의 산자락은 짙은 갈색톤으로 채색된 한 폭의 수채화폭 같았고,
낙엽송 단풍 떨어져 쌓인 숲마당은
마치 금빛 비단이 수 놓여진듯 아름다웠습니다.
다람쥐 바지런히 도토리 주워 나르느라
여념이 없는 참나무 숲으로는
바람이 걸어다니는 바스락거림 소리 또한 정겨워
내내 산중 풍경에 취한 그런 시간이었습지요~~
산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줍니다.
하여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2006/12/05 16:58 2006/12/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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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 석천매표소를 통과한 여섯친구

     산남 셋 산녀 셋이었어라

     사패능선을 더듬고

     포대능선 살짝 비켜

     낙엽 주단같이 푹신히 깔린
     숲길로 숨어들어

     푸짐한 먹거리에

     배부르고

     취했어라


     덧칠하지 않은 이야기들

     서로들 풀어낼 땐

     너나없이 고개 절로 끄떡끄떡


     쉰 냄새는 숲바람이 훔쳐가고

     발품에 산기운 만충전되었어라


     도봉에서 하룻동안 정나눈 여섯친구

     헤어질 때 부딪힌 손바닥에서

     아쉬움이 물씬 했어라

     다음 산행에 또 만나자는

     기약이 묻어 뜨거웠어라.

 

 



2006/12/05 16:57 2006/12/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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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녕사 들머리를 찾아 들었다.

모두들 좋아 하신다.

앞에 우뚝서있는 의상봉을 넘을줄 알았단다.
모두들 저 봉우리를 어떻게 넘나 염려를 했었단다. 
그런데 의상봉이 아닌 가사동암문 아랫길로 접어 들었으니..
하산을 하며 "이제는 더 오를곳이 없다"고 하자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10여분의 발품으로 절간에 도착하자 기뻐들 하신다. 

국녕사 경내는 저녁 예불을 드리느라 엄숙하다.
신도들이 불경을 열심히 외고 있다.

대불상앞 마당에 음료와 과일을 마련해놓고 등산객들에게 보시한다.
부처님의 지비로운 뜻이리라.
대불상앞에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린 후 북한동으로 내려갔다.

굿당들과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북한동에 도착하니 로적사와 태고사쪽에서 하산하는 등산들이 등산로를 가득 메우며 내려간다.

잠시 후 궁녕사를 거쳐 하산 한 우리팀들도 속속 도착한다.

도착하는 회원님들의 배낭을 공터에 모두 내려놓게 하고는 중성문으로 올려 보냈다.

후미가 도착하면 뒤따라 올라가겠노라고.

잠시 후 후미를 맡아주셨던 박희만 약사님께서 내려오신다.

김영대님의 마나님께서 부왕동암문에서부터 인대통증 대문에 고생을 하신듯 하지만 그래도 11문까지 무사히 마치고 내려와 주신것은 일전 일본의 북알프스 오쿠호다카다케의 3,190m를 오른 저력이 발휘된것이 아닐까.

후미팀을 모시고 중성문으로 향했다.

13성문 종주 트레킹을 할 때마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이 갈등을 많이 한다.

중성문을 눈앞에 두고 탐방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8시간 넘게 산행을 한 후라 피로가 누적되어 꽤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능한한 중성문을 탐방하도록 유도한다.
이번 팀은 호응도 높다. 

13성문 중 12번째 문을 향해서 오름을 시작하였다.

태고사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무리지어 내려온다.

등산로가 좁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다. 

오르는 중 앞서 올랐던 선두팀들이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손을 흔든다.

잘 다녀오라며.

중성문에 도착하여 누각에 올라서니 노적봉이 듬직하게 서있다.

암벽하는 사람들이 암벽에 붙어있고 정상에 오른자는 하늘을 만지고 있다.
도전을 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노적봉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는 회원님의 표정이 밝으시다.
행복해 보인다.

 

 
중성문(中城門)

중성문은 서쪽의 비교적 낮은 지역에 위치한 대서문이 함락되었을 때, 제 2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의상봉(義相峯)과 원효봉(元曉峯)
사이의 협곡에 축조한 성문이다. 전면의 성곽은 북한산성 축성 다음해인 숙종 38년(1712년) 산성수비 봉한대책의 일환으로 축조한 중성이다. 당시 별도의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지형이 평탄하고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여 행궁, 유영, 창고 등 성내 시설물과 인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곽의 규모는 영취봉과 중봉 방향으로 약 200m에 달하며 성문으로 홍예 형태의 중성문과 그 외에 시구문 수문을 건립하였다. 중성문의 당층문루는 19세기 말, 수문은 1915년 8월의 홍수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했다.
 
배낭을 내려 놓은 장소로 돌아오니 앞서 내려오신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
로적사 불자들을 실어나르는 승합차가 좁은 도로에서 차를 돌리느라 애쓴다.
김영대님 마나님과 또 한 분의 여성분은 로적사 승합차를 이용하여 산성입구까지 이동하시라 하고 나머지 회원님들은 대서문을 향해 내려갔다.
음식점들의 호객행위가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음식을 먹으면 산성 주차장까지 태워준다며 음식점마다 손님잡기에 야단들이다.
나뿐만 아니니라.
이곳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 음식점들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짜증이 난다.
쾌적한 국립공원의 취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음식점들은 정리되어야 할것이다.
대서문을 향해서 내려가는 도중에 안종순님이 내옆을 따라 붙는다.
내 보행속도에 맞춰 걸어보고 싶었단다.
어찌 그리 걸음속도가 빠르냐고?
여름에 북알프스를 함께 갔었기에 낯섫지 않은 분이다.
오늘 산행에 참가하신 스물일곱분중 열두분이 일본 북알프스 등반을 함께 하셨던 분들이다. 
최경호 회장님을 비롯 오늘 총무직과 후미를 맡아 주신 박희만 약사님, 일본에서도 마지막 번호를 받고 후미를 지키셨던 김영달님도 오늘 함께 하셨다.
모두들 산행을 꾸준히 하셨단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을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 인연은 아닌듯 싶다.
좋은 사람들과의 산행~!
분명 행운이다.
북한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데 열심히 따라 붙는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데 승합차들이 손님들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살구나무 과수원을 지나 대서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40분이다.
북한산 13성문의 마지막 목적지인 대서문인것이다.
아침 8시5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9시간30분만이다.
9시간을 예정했으나 점심식사 후 30여분 휴식을 길게 갖었던 탓에 30분의 오차가 생긴것이다.
문루에 올라서니 빛바랜 단청이 고풍스럽다.
배낭을 내려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19명이 오늘 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의 온전한 완주의 주인공들이다.
점심식사 후 내려가신 다섯분과 로적사 승합차로 내려가신 두 분도 오늘 북한산에 대한 추억은 잊혀지지 않으리라.
사진촬영을 마치고 대서문 밖으로 모두 나와 일렬의 횡대를 이루고 최경호 회장님을 선두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부딪히는 손바닥에서 북한산의 기운이 넘쳐난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나다"
모두들 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을 완주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이 순간 가슴이 벅차도록 차오르리라.
모두 무사하게 9시간 30분동안 13성문을 느끼신 분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 감동의 전율이 느껴졌다.
 "오늘도 행복한 산행을 하게 해주신 산신령님 감사드립니다"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동안은 도로가 아닌 숲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늘 이 순간의 행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리라.
뒤 따라 오는 회원님들도 모두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는듯 허다.


 

  


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으로써
군사상 적(당시 청, 왜)의 목표가 되기 쉬운 취약지이기도 하였다. 대서문은 홍예식에 문루를 갖추고 있다. 현재 문루는 복원된 반면 문짝과 문루 양편의 협문 그리고 담은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용마루와 추녀마루의 일부가 폭풍우로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되고 있어 최근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육축은 무사석(무사석)으로 정교하게 수축하였으나 전쟁의 상처로 보이는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차량 진동으로 인하여 벽석이 균열되는 등 파손이 심화되고 있다. 육축위에는 몸을 숨기고 총포를 쏠 수 있는 문루여장 전면에 10개 두었는데, 일반 성벽의 여장과는 달리 한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된 평여장이며, 총구가 아래로 향한 근총안을 1개씩 둔 것이 독특하다.
이문은 성내 북한리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하던 애환이 깃들인 문으로 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하여 달구지에 싣고 새벽같이 이 문을 통하여 서대문 영천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또한 이 일대는 살구나무가 많아 이른 봄철이면 화사한 살구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로 붐비었으며 성곽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아름다워 문인, 화가 등 예술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이라는 분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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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을 마치면서....
 
수원 산사랑산악회 회원님들~~!
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함께하여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함게하여 주신 모든분들을 사랑합니다.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은 제게 있어서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최경호 회장님
박희만 총무님
홍은기님
김영달님
정지석님
황진희님
김영대님
정지형님
안종순님
신규순님
김붕구님
송병무님
정정애님
정옥분님
박옥자님
이미경님
김형려님
원윤숙님
원점숙님
김명균님
이진숙님
김외옥님
이명숙님
박숙자님
전성숙님
백남정님~!
이번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를 무사히 마친 님들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또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더욱 회원님들께서 만족해하시는 산행, 감동하실 수 있는 산행의 길라잡이가 되겠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한 분은 기록속에 빠졌습니다. 어느 분이 빠지셨는지?
2006/11/18 12:50 2006/11/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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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도 앞서 떠난 세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

회장님 말에 의하면 북한산을 처음 방문하는 친구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13성문 종주를 하다보면 대남문에서 사람들을 자주 놓친다.

청수동암문으로 가지 위해서는 문수봉쪽으로 가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성을 따라 내달리다보면 문수봉으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문수봉을 살짝 비켜 왼쪽 등산로로 접어들면 문수사 절로 내려가던지 아니면 릿지구간을 이용하여 사모바위 쪽 코스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헤메다가 대남문으로 다시 돌아와 청수동암문 들머리를 찾게 된다.

앞서 더난 세사람이 부디 나누어준 등산 개념도를 보고 문수봉이 아닌 청수동암문쪽으로 접어들어 내려 가주었기를 바랄뿐이다.

대남문을 뒤로하고 청수동암문으로 향했다.

탐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샛길로 접어들었는데도 마주치는것이 사람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단풍숲이 망가져 있다.

꼬스러져 있는 이파리가 볼상사나웁게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다.

등산로는 온통 먼지 투성이다.

풀썩 풀썩

디딜 때 마다 먼지가 피어 오른다.

청수동암문에 도착하니 쫓아온 바람이 반긴다.

13성문 중 9번째로 맞는 문이다.
스무명의 얼굴에서 만족감이 넘쳐난다.

모두들 13성문 종주를 온전히 즐기고들 있어 기분이 좋다.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비틀어 짜니 물이 줄줄줄 떨어진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내 몸안에 쌓여 있는불순물이리라.

이 노폐물이 내 몸안에 쌓여 있다면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순간 산에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미친다.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승가사 뒷산 능선에 있는 비봉과 연결되며 대남문과 부왕동 암문 방향으로 갈라지는 요충지인데 이 문도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네모난 출입구를 갖추고 있으며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문에는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다.
 
청수동암문 성문위로 올라섰다.
이곳에 올라서면 허물어진 성을 만난다.
여기저기 나 딍구는 돌들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헝어지는듯 하다.
언젠가는 보수하겠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 훼손이 심해진다 싶어 안타까웁다.
그 허물어진 성길을 더듬어 올라가면 라한봉에 올라선다.
라한봉에서 직진하면 상원봉을 만난다.
상원봉 바로 아래에 행궁지터가 있다.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북한산성 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워졌는데 큰 홍수에 떠내려가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언젠가 신문에 행궁을 복원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언제가 될지?
라한봉에서 왼쪽 급사면을 타고 내려가면 부왕동암문으로 이어지는 의상봉 능선길로 들어선다.
라월봉과 증취봉 사이에 부왕동암문이 있다.
이 곳은은 아기자기한 암릉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바위를 넘나드는 재미가 솔솔한 구간이다.
세미릿지 구간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바바닥이 간질거리는 그런 구간이기도 하다.
라월봉에 올라서면 확트인 시야가 북한산에 오르기를 잘했구나라고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아스라히 족도리봉이 보이고 그 앞에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와 진관사쪽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이 펼쳐져 있고, 뒤를 돌아보면 노적봉과 만경재, 인수봉과 백운대 그리고 염초봉과 원효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북한산의 산세를 한 눈에 담아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회원님들 모두 북한산을 예찬하기 시작한다.
오늘 나서기 잘했다하신다.
오늘 중간에 내려가지 않고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찬하시는듯한 표정들이다.
바위구간을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하고, 쇠줄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라월봉을 내려서니 10번째 문인 부왕동암문이 반긴다.
온통 바지가랑이가 먼지 투성이다.
부왕동암문에서도 바람을 만났다.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 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인다. 암문중 제일 규모가 커서 폭은 16~54㎝, 높이는 53~81㎝ 차이를 보여 폭이 2.54m, 높이가 2.83m에 이르고 있다.

 

부왕동암문에서 가사당암문까지 이르는 성곽도 구간구간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다른 곳의 성곽과 차별되는 것은 이곳 성을 쌓았던 돌을 보면 바위를 깍아 만든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돌을 운반해서 쌓았다는 것이다.

허물어진 돌의 형태를 보면 정으로 쪼아진 흔적이 전혀 없다.

성 바깥에서 둘러보아도 아주 엉성해 보인다.

산세가 험준하여 다른 곳보다 전략적으로 보아 안전한곳이었을까?

하옇튼 청수동암문부터 가사당암문까지는 여장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애초에 여장을 만들지 않았을까?

부왕동암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바로 가사당암문을 향했다.

증취봉을 넘고 용혈봉과 용출봉을 차례로 넘어 11번째 문인 가사당암문에 도착하였다.

선두가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데 후미에서 내려오던 회원님이 넘어지샤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순간

본능적으로 내달렸다

잠시후 달려오는 나를 본 후미그룹의 회원님이 안심시킨다.

괜챦으시단다.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 오르는 회원님이 받쳐 주었다고 한다.

받쳐 주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단다.

자그마한 체구의 전성숙님과 눈이 마주쳤다.

애써 괜챦다며 웃음을 주신다.

놀란 가슴을 가라 앉히라고 덕담을 건넸다.

"신령님께서는 산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항상 지켜주신다"라고 하자 환하게 웃으신다.

다행이다.

용출봉에서 내려오는 동안 김영대님의 마니님께서 다리의 인대가 늘어나 절뚝 거리는것을 보았던지라 은근히 걱정을 했지만 11개문까지 잘 소화해주어 고마웠다.
부상자가 생가면 모두가 신경이 쓰인다.
쌩쌩한 사람이 괜시리 미안해지기 까지 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일지도.

11번째 문인 가사당암문

그 앞에서 모두들 즐거워 하신다.

이제 2개만 해내면 13성문을 모두 종주하게 된다.

이제 오르는 길은 없고 오로지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고 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눈앞에 의상봉이 우뚝 서있으니 그럴만도.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2006/11/18 12:49 2006/11/1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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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성길을 따라 걷는다.

대동문에서 대남문에 이르는 성곽은 최근 보수를 하여 옛맛이 없다.

장비가 좋은 현대기술을 동원하여 보수한 성곽을 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정으로 돌을 쪼아 다듬어서 쌓아놓은 옛 성곽을 보노라면 정교함과 셈세함까지 느껴진다.

북한산 칼바위 능선의 전망을 위해 마련된 치(雉)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칼바위 능선에 붙어 있다.

동쪽 건너 수락산자락 밑으로 상계, 중계 지구 아파트들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서있다.

그 앞으로의 다운타운도 내려다 보인다.

치(雉)에서 인원을 점검하니 부족하다.
회장님에 여쭈었더니 여성회원 5명이 점심식사를 한 장소에서 대동문쪽으로 올라서지 않고 출발지점인 북한산성 주차장쪽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다섯명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인데 13성문을 다하고 나면 내일 출근에 지장이 있을것 같아 하산을 하였다한다.
27명 모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13성문 종주를 마치고 싶었는데...

그러나 다른 회원님들을 위해 양보한것으로 이해하니 마음이 편했다.

성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보국문에 닿는다.

보국문을 나서서 1시간 정도를 내려가면 정릉 청수장에 이른다.

청수장에서는 북한산의 여러코스를 탐방할 수 있는 등산로가  여러곳 나있다.

정릉 청수장에서 산성으로 이르는 길 중 보국문으로 오르는 길이 등산객들 사이에선 가장 힘든 길이라 한다.

보국문에 이르니 남쪽에서 달려오는 바람이 좋다.

 

 

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의 높은 지점에 위치하여 정릉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현재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다.
 
회원님들에게 13성문 중 6번째 문인 보국문이라고 하자 모두들 즐거워하신다.

인원 점검을 하니 대동문에서 하산 한 5명을 빼고 세명이 모자란다.

누구지?

백운대를 올라갔던 그 세사람이 안보인다.

산행을 하다보면 여러 성격을 본다.

길라잡이 보다 앞서 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단체 산행시에는 자신의 체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팀을 위해 보조를 맞추는것이 예의다.

체력이 좋을 경우 후미에 서서 부족한 사람을 끌어주는 것이 산악인으로서의 군자다.

오늘 팀을 리딩하면서 세 사람이 튀는것을 보았다.

결국 그 세사람이 앞서 내달린것이다.

대성문이나 대동문에서 만나겠지?

그곳에서 팀들과 함류키위해 기다리고 있겠지?

최종 인원을 파악을 하니 20명이다.

대성문으로 가는 길은 성길을 피해 숲길로 들어섰다.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넘는 성길을 올려다 보니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다.

대성문으로 향하는 이 숲길도 가을에는 멋진 길인데...

유난히 활엽수가 많아 단풍이 들 때면 그 어떤 곳보다 정취가 있는 곳이다.

올해는 정말 아쉬웁다.

대성문에 도착하여 목을 축이고 바로 대남문으로 향했다.

 

 

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 형제봉을 거쳐 보토현봉으로 이어지는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문으로는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대성문에서는 성밖으로 나가면 보현봉 밑에 자리한 일선사 입구를 경유한다. 
일선사 입구에서 정릉 청수장으로 쪽으로, 평창동쪽으로, 형제봉을 거쳐 국민대학교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성안에서 북쪽 골짜기로 내려가면 대성사가 있고  금위영, 어영청, 훈련도감 그리고 행궁과 태고사 노적사를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곡이다.
이 계곡에 들어서면 역사의 흐름을 지켜 보았을 느티나무와 석축들이 고스럽다.
아직도 조선시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듯 하여 경건함까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남문은 대성문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다.
용암문부터 평탄한 성길을 따라 걸어오다 대남문 코밑에서 약 5분여의 오름길이 나타난다.
대부분 등산객들이 이 구간에서 힘들어 한다.
대남문에 도착하자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소금기가 느껴진다.
이 바람은 강화로부터 달려온 바람이리라.
성문을 나서자 바로 앞으로 보현봉이 우뚝 서 있다.
우측으로 눈길을 돌리자 문수봉이 내려다 보고 있다.
저멀리 사모바위와 비봉과 향로봉이 차례로 보인다.
비봉 위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물거린다.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이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해 있다. 앞뒤로 넓은 터를 갖고 있어 마치 평창동 일대를 긴팔로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대남문은 백운대쪽에서 바라보면 성문이 보일 듯 말 듯 아득하게 보이며 보현봉에서 백운대를 뒷배경으로 내려다 보는 맛도 일품이다. 이문은 대동문과 구조가 흡사하다.
2006/11/18 12:48 2006/11/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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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가운데 몸통을 가로 지르는 용암문으로 향하는 이 등산로는 경사진 암릉사면으로 쇠줄이 쭈욱 설치되어져 있다.

이곳은 상습 정체구간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이른 산행을 시작했기에 정체를 겪지 않고 지날 수 있었다.

노적봉이 건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회원님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13성문의 들머리가 내려다 보이고 원효봉과 북문 그리고 상운사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저곳을 거쳐서 이곳에 서 있다고 하자 모두들 발을 의심한다.

그렇다

산에서는 내 걸음만큼 무서운것이 없다.

까마득히 멀리 느껴진곳도 산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회원님들의 표정을 훑어보니 아직은 힘들어 보이는 분들은 없다.

백운대의 펄럭거리는 태극기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고는 용암문쪽을 향해 출발했다.

노적봉 입구 쉼터에서 배낭을 내려 놓았다.

회장님께서 곡차가 한 잔 고프신가보다.

꺼내신 곡차는 칡술이다.

한 모금 입에 머금자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찬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금새 혈관으로 스며 드는듯 좋다.

회원님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한 병 뿐인지라 조금씩 따라 돌렸지만 넘기는 소리에서는 애주가들이 감칠맛나게 넘길적 그 맛있는 소리가 나는듯 했다.

쉼터에서는 어김없이 먹거리들이 연실 쏟아져 나오고 서로 주고니 받거니 먹고 마시고...

나눔이란 이래서 좋은가 보다

콩 한 쪽도 나누면 행복하다라는 말, 그 말이 딱 맞는 말인듯 싶다.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옆사면 길이다.

단풍이 좋은 해는 이 코스로 들어서면 불타는듯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어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그 선물을 받지 못해 가믐이 밉기까지 하다.

용암문에 도착하니 도선사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고 서 있다.

이 문에 서 있으면 동쪽에서 달려오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도선사에서 피우는 향내음을 묻혀 달려온다.

두 팔을 벌려 마음껏 바람을 맞이했다.

 

 

 
용암문(龍岩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 용암문이라고도 부르며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선사, 북한산장, 노적봉과도 맞닿아있으며, 옛날에는 중흥사, 태고사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한편, 부근에는 과거 이 일대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岩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어 무너진 탑과 석축이 남아 있으며, 북한산장이 자리하여 많은 등산인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후미를 기다리는 사이 선두는 기다림이 지루했던지 배낭을 멘다.

"5분여 직직하면 넓은 광장이 나오니 그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금새 우르르르 내달린다.

후미를 만나 북한산장 광장에 이르니 곳곳에 자리를 펴고 때 이른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은 식수를 보충할 수 있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도 있는 곳이다.

광장 맞은편 작은 봉우리가 용암봉이며 이곳은 용암사가 있던 곳인데 전란에 불에타고 없어지고 현재는 그 주춧돌만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한 때는 이곳이 북한산장으로 운영되어 노적봉이나 만경대 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쉼터로도 사랑받던 곳이기도 하다.

식수를 보충하고 용변도 해결한 후 대동문으로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대동문까지는 마치 산보(散步)길과도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충동 또한 이는 곳이기도 하다.

비가 내릴 때 이 숲길을 걸을때면 시인이 아니라더도 누구나 시 한 귀절 절로 지어 지리라.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빼곡히 서 있는 사이로 등산로가 빼꼼히 뚫여있다. 

분위기 있는 길이라고 설명하자 특히 여성 회원님들이 좋아하신다.

그 숲길을 지나치면 동장대가 우뚝 서있다.

동장대(東將臺)는 성의 동쪽에 누(樓)를 높게 만들어 장수가 올라가서 지휘하도록 만들어진 곳인데 1990년대에 새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주춧돌은 옛것이지만 단청이 선명하여 옛맛이 나지 않는다.

동장대에서 200여미터 내려가면 재미있는 나무를 만난다.

북한산장에서 쉴 때 김영달님께서 과거 북한산을 찾았을 때 희귀한 나무를 보았는데 후일 다시 방문하여 그 나무를 찾으려해도 찾지 못했다며 내게 알고 있느냐며 물어 오셨었다.

하여 찾아 드린다고 했었다.

그 희귀한 나무 앞에 모두를 멈추게 했다.

한 그루의 참나무가 두갈래로 뻗어 자라다가 오른쪽 나무 가지가 왼쪽 나무 몸통에 대여 자라는 과정에서 몸통쪽 나무 껍질이 가지를 덮고 자라 앞에서 보면 마치 몸통사이로 가지가 뚫고 들어간듯 보인다. 

어떤 이는 남여가 사랑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고도 한다.

한 가지 사물을 놓고 보는 시각에 따라 제각기 다른 상상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것 같기도 허다.

회원님들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어대신다.

산에는 자연이 연출해 주는 신기한 것들이 참으로 많다.

아기자기한 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대동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라 대동문 주변 공간에는 등산 인파로 시끌법적하다.

회원님들에게 대동문 현판을 꼭 볼것을 권하였다.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의 소위 '진달래능선'이 시작되는 해발 54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서문과 같은 큰문이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다. 대동문은 산성을 지키는 삼군의 하나인 금위영 본부 자리다. 대동문이 지키고 선 고갯마루 일대를 옛날에는 석가령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동문의 현판 글자는 북한산성을 쌓은 숙종왕의 어필을 집자한 것이라고한다. 
 
대동문을 둘러보고 점심식사 장소로 옮겨갔다.
평소 대식구들과 함께 산행을 할 때면 찾던 곳을 더듬어 내려갔다.
다행히 넓은 터에 그 누구도 차지한 사람없이 텅 빈채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회원님들에게 "산령님에게 예약을 부탁했더니 명당을 내려 주셨다"고 하자 모두들 좋아하신다.
내가 늘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커다한 돗자리를 폈다. 그 옆에 회원님들이 준비해오신 작은 돗자리를 이어 펴니 훌륭한 자리가 만들어진다.
점심거리가 돗자리위로 쏟아져 나온다.
곡차를 한 잔 따라 산신님께 시래를 하고는 얼려온 맥주를 한 잔 들이키자 갈증이 싸악 가신다.
먹는 시간은 어디서든 행복한데 특히 산에서의 점심시간은 더욱 행복하다.
아마 산행에서 먹는 시간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물들이 펼쳐지면 금새 산상 부페로 변한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임금님 수라상이 따로 없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웃고...
점심시간은 언제나 넉넉함이 넘실댄다.
회원님들 모두 행복해한다.
북알프스를 갔을 때 내게 교정을 받은 분들이 있다.
오늘 점심이 끝난 후 내 손길이 필요하다고 만나자마자 언질을 주신분들이 있었다.
내가 산행 길라잡이를 할 때믄 가능하면 식사가 끝난 후 30분 이상 반드시 휴식을 취한 후 움직인다.
식사를 하고 바로 걷기를 시작하면 위하수가 오기 때문이다.
하여 30여분은 주로 동절기 빼고는 오수를 즐기게 한다.
배부른자는 한 숨 만큼 맛난것이 없다 하였듯이 숲속에서의 오수는 산신도 부러워하는 짓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수보다는 자세가 바르지 못한 분들을 교정해주기로 했다.
바르지 못한 자세가 우리 몸의 중심을 흐트러트리고 그로 인해 근육의 언바란스와 순환기 장애 등 신체적 고통을 주게된다.
바른 생활 실천만으로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
내게 몸을 맏기는 사람 대부분 바르지 못한 생활으로 인한 골반 뒤틀림이 진행되어 있다.
척추가 안좋은 사람, 경추가 안좋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내 손길에 비틀어져 있던 척추며 경추가 바로 교정되자 신기해들 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분들까지 내게 몸을 맡긴다.
믿음이란 이래서 무서운것이다.
운동처방을 전공하면서 배운 신체교정술이다.
과거에는 직업적으로 활용했으나 지금은 산행 때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교정을 해주곤 한다.
바른 자세를 생활화할것을 잔소리처럼 권유해도 사람들은 들을 때 뿐 돌아서면 바르지못한 자세를 갖곤한다.
교정을 하다보니 30분이 아닌 1시간을 넘긴듯하였다.
교정을 받은분들의 표정이 좋아 보인다.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내 손길이 닿아 누군가의 불편한 곳이 편하게 되었을 때 그 때 행복을 느낀다.
각기 배낭을 꾸리고는 다음 목적지인 보국문으로 향해서 등산로로 접어 들었다.
배가 부르니 콧노래가 절로 난다.
2006/11/18 12:48 2006/11/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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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몸둥이를 드러내놓고 있는 계곡을 가로질러 13성문의 첫 문인 시구문의 들머리를 찾아 들었다.

대부분 시구문 들머리는 덕암사 절길을 따라 가는것이 보편적이나 한참을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덕암사로 향하는 지름길을 주로 이용한다. 

별로 탐방객들이 이용하지 않는 이 좁은 길엔 솔잎과 상수리나무 잎이 소복히 쌓여 정취가 난다.

솔향이 코끝에 맴돌다 이내 폐부 깊숙히 자리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발걸음에 힘이 솟구친다.

원효대사가 참선 수도했다는 덕암사

덕암사에 오르면 절간 마당에 깔아둔 자갈 밟는 소리가 좋다.

대웅전 입구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서계신 커다란 불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절간에 올라서자 회원님들이 걸을 때 마다 다그락 다그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파도에 구르는 몽돌소리처럼 들린다.

식수를 공급해주던 절 간 옆 약수터는 바닥이 드러나 있다.

내 기억으론 가을 가믐이 이토록 심한 해는 없었던듯

덕암사를 뒤로하고 시구문을 향해 숲길로 접어드니 솔향이 더욱 은은하다.

덕암사에서 시구문까지는 10여분도 채 아니되는 지척간이다.

시구문에 도착하니 시구문 매표소를 지키는 국립공원 직원이 빗자루로 성문 바깥을 쓸고 있다.

효자동에서 올러오면 이곳에서 매표를 해야한다. 

13성문의 첫 문인 시구문에 대해 회원님들에게 설명 드리자 다들 잘 경청해주신다.

 


시구문(尸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성내에서 생긴 송장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이 시구문(屍久門)이라 불리웠고, 원래 성문 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서암문은 대서문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지형이 낮고 험하지 않으므로 방어상 취약지임을 감안, 주변 성벽을 구축하고 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문과 연결된 성벽을 'ㄱ'자 모양으로 돌출 되도록 축조하여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설명을 마치고 배낭을 메는데 온 몸에서 기운이 뻗힌다.

컨디션이 베리굿이다. 

기분이 좋다.

"첫 문을 통과하였으니 이제 반은 넘긴겁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쟎아요"

모두들 웃음으로 화답 주신다.

"자~이곳에서 부터 1시간정도 산신령님께 사탕을 선물 주십니다. 1시간 정도는 단내가 날겝니다"

길라잡이가 던진 죠크의 뜻을 아는 분들은 "휴우~"하며 한 숨을 내쉰다.

이곳부터 원효봉까지 약 40여분 깔딱고개가 이어진다.

돌계단길이 쭈욱 이어진 구간이라 오름 내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이곳을 오를 때면 그 옛날 이곳을 오르내리던 병사들, 그 들의 고초를 몸소 체험해본다는 생각을 해본다.

허구헌날 이 구간을 오르락내리락 했을테니 말이다.

어릴적 만화에서 보았음직한 하늘로 향하는 길, 그 그림같은 길을 따라 오른다

땀방울이 이마에서 맺히기 시작하고 심장의 박동수 또한 빨라지기 시작한다.

대퇴의 근육이 뻐근해짐이 좋다.

한 발 한 발 목적을 위한 오름짓을 할 때마다 쾌감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회원님들이 줄줄히 따라 오른다.

나같은 심정이시겠지?

오름길 중간에는 원효암이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도 참선 수도를 하였다고 하여 원효를 흠모하는 불자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탐방한다고 한다.

원효암을 지나치면 시야가 확 트인 암릉을 만나는데 그 암릉을 산꾼들은 "전망 좋은 방"이라 부른다. 

전망좋은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마중나온 바람과 포옹을 했다.

바람이 달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저 멀리 회원님들을 태우고 온 관광차가 쉬고 있다.

바로 발밑으로는 우리가 올라온 길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구불구불한 계곡과 덕암사 지붕도 내려다 보인다.

정면으로 시선을 옮기니 의상봉이 우뚝 서 있고 그 좌측으로는 용출봉이 의상봉을 엄호하고 있다.

저 용출봉과 의상봉 사이에 가사당암문이 있다. 그 가사당암문을 거쳐 국녕사로 내려올 것이다.

회원님들에게 용출봉을 가리키며 저곳에서 하산할것이라고 하자 믿기지 않는듯 놀란 눈을 한다.

사람의 걸음이 무섭다.

한 발 한 발 걷는 걸음이 오늘 14km의 거리를 줄여갈것이다.

그 걸음걸음 마다엔 떨구어낸 땀방울 만큼 역사의 혼이 따라 다닐것이다.

13성문을 완주하고 나면 북한산을 제대로 실감할것이다.

바람이 쉬지 않고 달려든다.  

바람은 땀도둑이다.

바람은 땀을 훔쳐간다.

어디에다 쓰려는 것일까?

원효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능선길을 따라 가는 동안에도 바람은 줄곧 따라온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에서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낄 때면 그 맛이 너무 좋다. 

온몸에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산의 높이에 따라 바람의 맛이 틀리다.

바람이 걸어갈 때와 내 달릴 때의 소리도

마른날과 젖은 날에도 그 맛이 틀린다.

오늘은 바람에게서 왠지 모르게 가을을 타는 남자의 구멍뚫린 가슴을 오고가는 그런 맛이 느껴졌다.

차분히 가라앚아 있는 바람이 아닌 뭔가 바람이 잔뜩 들어 있는 그런 바람처럼 느껴졌다.

오랜 가믐에 몸살을 앓고 감성이 말라버린 탓이리라.

원효능선의 암릉을 줄이다 보니 어느덧 원효봉에 다다랐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배낭에서 연실 간식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건네주는 배가 너무나 달콤하다.

내미는 포도맛은 어떻고.

복숭아 통조림속 단물이 왜 그리 맛있던지?

염초봉이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뒤에 우뚝 서있는 백운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서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 올라 북한산을 예찬할까?

배낭을 다시 메었다.

원효봉에서 5분정도 거리에는 우리 일정상 두번째 성문인 북문이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탓인지 회원님들 모두 북문에 금새 도착한다.

역사란 그 나라의 얼굴과도 같은 것인데

북문을 탐방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방치되어 있는 역사를 느끼곤 한다.

언제가는 관리되겠지?

언젠가는 복원되겠지?

아픈 역사도 지워버리면 아니되는 역사다.

상처 투성이의 몸뚱이로 역사를 말하고 있는 북문을 바라보노라면 울상짖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회원님들에게 북문을 설명하면서 올려다 본 옛 누각자리에는 잡초만 무성이 자라있다.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한 당초 홍예식에 문루를 갖춘 큰문으로 축조되었다. 문루는 오래 전에 소실된 채 육축상단을 마감한 장대석은 전부 무너져 내리고 홍예돌 윗부분이 완전 노출된 채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상부의 초석도 절반은 없어지고 5개만 위험한 상태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1988년 큰비에 육축을 포함한 성벽이 15m가 무너져 성문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바 대책이 절실하다.


북문을 뒤로하고 세번째 문인 위문을 향해 산길을 접어들었다.

위문을 오르기위해서는 상운사와 대동사를 거치는 중간 지름길을 찾아든다.

상운사 입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제법 이어진다.

누군가 내리막길이란면서 좋아하신다.

"공을 튀기면 튀긴 세기만큼 튀어 오르는 법이지요. 내리막길이 심하면 오르막길이 그 만큼 기다리고 있으니 좋아하지 말라"고 하자 몇몇분들의 엄살이 뒤통수에 꽂힌다.

상운사 입구를 찾아 들어서니 소롯이 난 절간으로 이어지는 길위로 참나무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다.

그 낙엽사이로 떨어진 도토리를 주어 모으던 다람쥐가 화들짝 놀라 몸을 숨긴다.

 

상운사(祥雲寺)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元曉峰)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元曉:617∼686)가 삼천사(三千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露積寺)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太月)과 지청(智廳)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亘弘)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漢庵)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法延)과 덕산(德山)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범종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 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


상운사를 거쳐 빼곡이 뚫여있는 숲길을 줄여가면 대동사를 만난다.

대동사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데 어느 불자의 말에 의하면 비구승들이 머무는 곳이라 들었다.

이곳 절 마당에는 백구가 한 마리 있다.

수년째 만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지라 나만 보면 꿍꿍거리고 꼬리를 흔들어댄다.

아주 잘생긴 진구다.

대동사를 비켜 위문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회원님들께 "이곳에서도 산신령님께서 사탕을 선물주신다고 하자" 금새 눈치를 채신다.

먼지가 풀썩거리는 등산로엔 나무 뿌리들이 온통 흙을 뒤집어 쓰고 뻗어있다.

저 뿌리들도 비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풀썩거리는 등산로로 땀이 뚝뚝 떨궈진다.

뒤따라 오던 바람은 북문에서 숨어버렸다.

바람이 숨어버린 숲에는 습도가 활개 친다.

바람은 땀을 말려 훔쳐가는 도둑이지만 습도는 땀을 짜내어 가져가는 도둑같다.

숲을 꿰는 동안 습도가 훔쳐가는 땀을 잃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몸속에 필요없는 불순물들을 모두 훔쳐가고 있으니 말이다.

약수암 바로 밑 커다란 공터의 그 쉼터는 위문까지 오르는 사람들에겐 맛있는 곳이다.

이곳은 턱밑까지 차 올랐던 사람들의 숨을 찾아주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의 혈색이 금새 틀려진다.

힘들어 굳어있던 표정도 금새 화안하게 변한다.

정말로 맛있는 쉼터다.

풀잎 한 줄기를 따서 입에 물고 새들을 불렀다.

새들이 모여든다.

산을 찾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새들을 부른다.

자연과 동체가 되고 싶음에서.

새소리의 이벤트에 모두들 즐거워 하신다.

모두들 마른 목이 축여지자 배낭을 메신다.

그 맛있는 쉼터를 뒤로하고 약수암을 향해 오름을 잇는다.

약수암에서 염불소리가 은은히 숲으로 스미고 있다.

그 염불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밀치고 오르는 두다리에서 강한 힘이 솟구친다.

산신님이 끌어 올려주시는 힘이 느껴진다.

산을 사랑하는 놈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약수암을 뒤로하고 가파른 깔닥고개에 접어들자 오름짓하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염불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오를 때

뻐근해오는 다리 근육의 펌핑이 느껴질 때

난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쾌감과 희열을 느낀다.

차라리 오르가슴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쾌감

어떤 산을 찾더라도 한 두 곳은 반드시 있다.

그래서 산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지도 모른다.

사부작 사부작 오르다 보니 목적한 곳에 이르른다.

위문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배낭을 내려 놓았다.

오를적 뒤돌아 보면 바짝 따라 오시는 분이 계셨다.

체구가 작으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걸음이 가뿐하신지 존경스러웠다. 

지난밤 약주를 많이하셔서 사모님께서 산행에 나서는것을 말리셨다는데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며 힘이 좀 부친다고 겸손을 보여 주신다.

대단한 체력이셨다.

회장님께서 교장선생님이라 귀뜸해주신다.

산에 오면 건강관리를 잘 한 사람들을 쉽개 알아볼 수 있다.

건강은 게으름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건강은 땀의 대가없이는 절대로 얻어지지 않는다

건강하는 사람을 만나면 절로 신이 난다.

건강한 사람옆에 있기만 해도 내 몸의 피가 뜨거워지는듯하다.

교장선생님의 강건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 도착하기 시작한다.
몸이 흠씬 땀에 젖어있다.

후미까지 다 오르고나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배낭을 벗어두고 위문으로 향했다.

위문까지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력이 좋은 회원님 셋이 백운대를 다녀온다고 일행이 쉬는 사이 미리 출발했는데 지금쯤 백운대 올랐으리라.

위문에 도착하니 도선사쪽에서 오른 사람들이 백운대를 오르기 위해 속속 위문으로 도착하고 있다.

건너편 인수봉 몸통 곳곳에 바위꾼들이 듬성듬성 붙어있다.

백운대를 올려다 보니 흔들거리는 태극기 아래 산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출입구는 네모난 형태이며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문루는 당초부터 없었으나 문짝을 달았던 흔적은 남아 있다. 출입문 주위는 대체로 양호하나 여장을 비롯한 상단의 성돌이 무너져 내려 높이가 상당히 낮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위문에서 다시 만난 바람과 포옹을 하고 배낭이 있는 쉼터로 내려갔다.

계단이 식간에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복잡해진다.

오늘 북한산에는 단풍객들로 메어질것이다.

그러나 실망이 대부분 실망이 클텐데.

가믐에 단풍은 들지않고 말라비틀어 꼬스러져 있는 나무잎과 풀썩 거리는 먼지만 만나고 갈테니 말이다.

그러나 단풍객이 아닌 산꾼들은 상관치 않으리라.

산에 온 그 자체로도 행복할테니 말이다.

세번째 문인 위문을 뒤로하고 네번째 목적지인 용암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2006/11/18 12:47 2006/11/1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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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9일(일) 네이버 카페의 "산있으뫼"와 다음카페의 "아웃도어캠프"와 연합하여

북한산 13성문 종주를 했었다.

그 때 46명이 참가하여 시구문을 시작으로 마지막 하산지점인 대서문까지

총 9시간을 걸쳐 종주를  마쳤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 여성 5명이 대남문에서 하산을 했었지만

나머지는 시구문부터 대서문까지 13성문 모두를  탐방할 수 있었다.

때가 여름이었던지라 더위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 했지만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9시간동안의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산성 주차장 앞에서 뒤풀이 때 생맥주 잔을 부딪혀가며

13성문 종주라는 의미를 되세길 때의 행복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더위와 싸운 극기 트레킹이 아니었나 싶다.
행사 주최 당사자는 많은 인원을 리딩한다는 부담  때문에

공지하는 그 순간부터 심적 부담이 크지만 행사를 마무리 짖고 나면

그 누구보다도 행복감이 크다.

그래서 길라잡이를 자청하고 나서는지도 모른다.  

7월에 종주했던 그 길을 내일 또 나서게 되었다.

올 7월에 일본 북알프스 오쿠호다카다케(3,160m)를 가이드 했던

수원 산사랑 산악회(최경호 회장)의 요청으로 내일 북한산 13성문 트레킹을 하게 된것이다.
일본에서 북한산 13성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10월 셋째주로 약속이 되어져 버린 행사다.

어제 수원에서 산사랑 산악회 회장님과 미팅을 가졌다.

40여명이 참가신청을 냈다고 한다. 
의예로 13성문 탐방을 다 해보신 분들이 없다고 하여 놀랬다.
서울 수도권의 산악회 대부분이 관광차를 이용하여 지방산 나들이는 자주 하는 반면

정작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북한산, 도봉산 명산은 별로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북한산 13성문 개념도와 북한산 城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텍스트를 전해 드렸다.
무전기도 충전해 두셨단다.

이른 아침 수원역에서 출발하여 북한산 산성 주차장에 7시30분까지 도착한단다.

내일은 새벽에 나서야 할 듯허다.

가을 날씨라지만 내일도 여름날씨 못지 않을듯 싶다.

그러나 여름철과는 바람의 맛이 틀리리라

북한산 13성문 그 성곽을 따라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바람은 서는곳 마다 그 맛이 틀리다

시구문에서 만나는 바람은 들큰하다.

위문에서 만나는 바람은 살로 가는듯 하고

대남문에서 만나는 바람에서는 후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사당암문에서 만나는 바람에서는 왠지 짠맛이 나는듯 허고...

난 개인적으로 산에서 마주치는 바람을 좋아한다.

볼을 스치우는 바람과

몸을 휘감는 바람의 맛 또한 다르다

계절마다 만나는 바람이 틀리고 낮과 밤 또한 다르다.

낮에 만나는 바람 소리는 록큰롤같고 밤에 만나는 바람은 오케스트라 연주같다.

낮은과 높은 곳에서 만날 때의 맛은 가슴을 파고드는 그 깊이가 다르다

바람 타령이 길어졌나?

이즈음

또 한끝 멋진 것이 있다면

성곽을 한 없이 오르며 영역을 넓혀가는 댐쟁이 넝쿨이 연출하는 작품이다.

잎을 곱게 물들였으리라

빨갛게 물든 작은 이파리

성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곳곳에 화가가 세워둔 캔버스처럼 펼쳐져 있다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가는 담쟁이의 근성을 본다.

결코 서둘르지 않고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

왠 또 담쟁이 타령?

내일~~

북한산 13성문 종주 트레킹에 앞서 가벼운 흥분이 인다

행복한 발걸음이 주는 오르가슴~~

한없이 느끼리라

2006/10/14 12:54 2006/10/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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