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파송송

 

                                                                                                                박원명화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이다. 누군가는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누군가는 꼬물꼬물 산길을 돌고,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이고, 누군가는 흙수저로 살아간다. 이 또한 저마다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대로 살기보다는 나보다 앞선 사람들을 닮고 흉내 내며 살고 싶어 한다. 그것은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타인지향적인 사회 속에서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는 데 있다.

   ‘라면에 파송송은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뮤지컬연극이다. 스펙터클한 인생도 액션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현실의 공감대를 불러와 감동을 전한다. 배달,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인턴에 이르기까지 세상 허드렛일만 하며 살아온 다훈은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다. 막다른 길에서 그는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음을 탄식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물에 빠져 죽고자 뛰어들지만 그 또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듯 마음대로 죽음수 없음을 슬퍼할 즈음 뜻하지 않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다훈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라면에 파송송식당을 찾아간다. 권리금도 없고 보증금도 없는 값싼 식당을 계약하려 들지만 치매가 있는 주인 할아버지는 다훈의 간절한 소망은 외면 한 체 엉뚱한 소리만 한다. 그때 라면가게를 찾아온 여고생 영아, 어릴 적 헤어진 엄마가 그리워 스타 되어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기를 꿈꾸지만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 소녀이다. 여기에 등장한 또 한사람, 한류스타 강훈이다. 군중속에 고독한 스타는 겉보기엔 화려할지 몰라도 내면의 사생활은 그야말로 만진창이다. 인기가 높을수록 비난도 비례하기 마련이런가. 세상의 풍문은 남의 사생활에 대해 입에 올리기를 즐긴다. 마치 밟으면 밟을수록 억세게 솟아나는 잡풀처럼 풍문은 무성하다. 그토록 열광하던 대중들의 비난에 막다른 길로 내몰린 강훈의 선택 역시 죽음뿐이다.

   세상에 대한 원망, 미움, 분노, 슬픔의 무늬가 다를뿐, 절망의 색깔은 세 사람 모두 한가지인 듯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로도 위로 할 수가 없는 슬픈 사연들이 너무나도 애처롭다.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듯, 나 좀 안아 달라는 듯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낸다. 무대를 넘어 극장 안까 가득 이들의 무거운 삶의 분위기가 어둡게 깔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관객들의 가슴 아래로 슬픈 사연들이 겹겹이 쌓이는 것 같다.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라면집 주인 할아버지, 치매노인의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한마디 한마디가 틀린 말이 없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경험이랄까, 죽음을 눈앞에 둔 세 사람의 젊은 청춘들이 무사히 인생길을 다시 걸어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서 그 옛날 인자한 외할아버지의 넉넉한 인품을 만난 듯, 관객의 박수갈채는 멈출 줄을 모른다.

   상처로 얼룩진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명치끝에 묵직한 돌 하나가 매달린 듯 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의 처절한 몸부림 사이로 밝지 않던 내 뒷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들이 서 있는 길 위에서 한 때 방황하고 고뇌하던 내 처량하던 모습을 떠올린다.고무 타는 냄새만 풀풀 풍기던 그때, 나 또한 안녕을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몹시도 앓았던 듯싶다. 

     삶은 유희와 같다. 행복하다고 영원히 행복하지 않듯 불행하다고 영원히 불행하지 않다. 그것들은 언젠가 비켜갈 길이고 언제 어디에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길이다.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행복과 불행을 가지고 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나름의 고독한 삶의 형태와 색깔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욕망이든,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고 싶은 게 인간의 속성이라 채워도 채워도 삶의 허기진 갈증을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네 삶의 등짐이 너나없이 무겁다고 하는지도.

   삶은 신이 내린 엄숙한 선물이다. 슬프다고, 절망스럽다고, 함부로 내어 던질 게 아니다. 귀하게 지켜나가는 것도 삶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라면에 파송송이 전하는 메시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점점 메말라가는 세상인심을 향해 한 줄기 시원한 물줄기를 쏘아대는 느낌이다.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고 지친 이웃들을 되돌아보는 세밑에 누구나 꼭 보아야 할 연극인 듯싶다.

 

 

 

1970-01-01 09:00 2018-11-26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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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만화방 미숙이’)

                                                                                                  박원명화

 

    ‘인생에는 해피엔딩은 없다. 다만 하루의 삶이 행복할 수 있기를...’ 홀아비로 삼남매를 키우는 가장(家長) 강억배님의 말씀이시다. 변화의 물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년을 한결같이 만화방을 운영하는 그 남자의 옹고집은 어쩌면 영원한 아날로그 풍경에 갇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어려움은 크지만 만화방은 그 남자의 삶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삼남매를 키우며 그럭저럭 행복을 키워온 곳이기에 가족 간의 사랑이 흐르는 애착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재개발의 바람으로 2~3배를 준다 해도 우리의 강억배님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버틴다. 요리가 되고 싶은 첫째아들 미원이,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며 만화방을 지키는 장녀 미숙이, 작가의 꿈을 키우는 막내 미소는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완고함에도 거역하거나 반항하지 않는 효녀효자이다.

   어느 날, 강억배님은 세 자녀를 불러 놓고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만화방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그 자격은 황혼 연애를 즐기고 있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자신의 꿈을 버린 채, 가족에게 희생되어 살면서도 원망조차 않을 만큼 착하디착하기만 한 미숙이다. 자신의 생일 날, 남친에게 이별을 통보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떠나보낸다. 그런 미숙의 곁을 은근히 맴도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또 다른 사랑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남자 기찬의 속셈은 따로 있다. 만화방을 인수하라는 업무를 띤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자 아버지와 황혼의 연인 조여사의 외동아들이다. 미숙을 만나면 만날수록 사랑의 감정의 싹이 자라는 것을 느낀 기찬은 미숙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황혼연애도 위기를 맞게 된다. 미숙이가 보낸 편지가 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그 부상으로 받은 건강검진증서를 아버지를 준다. 건강검증 결과 방광암이 발견되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남매는 어쩔 수 없이 일수를 쓰기로 한다.

    미숙이는 만화방을 지키기로 하고 장남 미원과 막내 미소는 아르바이트를 나서지만 하루 15만원이라는 일수를 찍기에는 녹녹치가 않다. 결국, 열흘도 못돼 미원과 미소는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일수쟁이 바우의 폭언과 공갈협박을 받아야 하는 위기를 맞는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미숙이의 연인 기찬은 실의에 빠진 삼남매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전한다. 함께 뭉쳐야 한다는 것, 기울어져 버린 만화방을 다시 재건하자는 제의는 그들 삼남매가 하나 되는 계기가 되면서 가족애의 흐뭇한 사랑을 확인한다. 아버지도 수술에 성공해 건강이 완쾌되고, 미숙과 기찬이도 결혼해 예쁜 아기까지 생겨 또 다른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으로 연극은 끝을 맺는다.

   연극 만화방 미숙이는 가족애의 따뜻한 사랑을 담은 이야기이다. 인생에는 해피엔딩이 없다지만 이 연극에서는 분명 해피엔딩을 전한다. 연장 공연임에도 객석을 메운 걸 보면 기대에 찬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음이다. 연극이 전하는 잔잔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의 된 듯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가족과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 그 아름다운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왁자지껄 시끄럽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방식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삶의 가치가 정해지는 시대이다. 너도 나도 경쟁의 시대에 휩쓸리는 디지털 시대에서 추억 같은 아날로그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도 마음을 정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새들은 새들끼리 모여 산다. 사람도 그렇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만난다. 도시 쥐와 시골 쥐가 다르듯 주변의 환경에 따라 사는 것도 다르다. 아버지 강억배님의 가르침대로 삼남매 역시 그대로 산다. 재력도, 권력도, 능력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는 따뜻한 가족애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혼 족이 유행하는 이즈음이다. 나 홀로 족이 늘면서 타인에 대해 관심도 배려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도로변에 누군가 쓰러져 있어도 못 본 채 무심히 지나간다. 아니 가족끼리도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게 세상인심이라지만 왠지 모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이 빈곤한 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연극을 보면서 한바탕 허기를 채운 느낌이다. 먼 추억으로의 환생에서 반가운 이를 만난 것만큼이나 마음이 편안하다.

1970-01-01 09:00 2018-02-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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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일 하는 일 없이 집에 있는 날이면 동네 시장을 한 바퀴 돌기를 좋아 한다. 가끔은 터무니없이 싼 것을 만나면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라도 구매를 해두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곤 한다.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싱싱한 채소거나 계절을 앞당길만한 게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그 앞에 걸음을 멈춘다. 아니 벌써를 외치며....

   식구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장을 본다. 그렇게 산 재료들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여자로서의 더한 기쁨을 맛본다. 내 정성과 사랑을 담아 만든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놓고 보면 나 자신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넉넉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특별히 음식을 맛있게 한다거나 구미가 당길 만큼 치장을 해 놓는 건 아니다. 그저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영양과 입맛을 고려해 정갈하게 만들려고 애쓸 뿐.

  내 철칙은 이렇다. 조미료는 반드시 내손으로 만든 천연조미료만을 쓴다는 것과  자연식을 위주로 하다 보니 우리 집 식탁에는 채소류의 음식이 주를 이룬다식구들 역시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좋다. 대체로 내가 해주는 음식을 맛나게 먹어주는 것으로 만족감을 준다. 음식의 맛이 주부의 손끝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어쩌면 오랜 동안 인에 박힌 내 손맛에 길들여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시장 보는 일도 조심스럽다. 건강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자주 먹는 과일이나 채소류들 대부분이 수입품이 많아서다. 뿐이랴, 우리 농수산물에서도 농약성분이나 방부제를 남발한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백화점이나 유기농 식품점에 가보면 걱정이 필요 없는 무공해식품을 팔고 있지만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으로 보면 턱도 없이 비싼 가격이라 구매하기가 어쩐지 망설여진다.

그러니 어쩌랴, 싱싱한 것을 골라 깨끗이 씻어 먹을 수밖에.

  해도 해도 표시 없고 빛이 없는 게 집안일을 하는 주부들의 노동이다. 소소하고 작은 음식 하나에도 식구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담긴 엄마의 마음이란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식탁이 빙 둘러앉아 내가 해준 음식을 먹어가며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풍경을 보면 뭔가 꽉 찬 듯 가슴 뿌듯한 행복감이 넘친다.

- 배추물김치 담그는 법 -

*준비물 : 고갱이배추10~15, 굵은소금, 마늘, , 생강 약간, 붉은 생 고추10

양파 반개, 파란청양고추3~5, 풀물, 매실원액(2국자)

배추는 작고 노란 고갱이가 좋다. 사 온 배추를 반으로 잘라 소금에 살짝 절인다.

냄비에 물을 절반 쯤 부어 끊인다. 물이 끊으면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멀겋게 풀물을 끊여 식힌다.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어 물이 빠지도록 건져놓는다.

풀물이 식으면 믹서에 풀물을 조금 붓고 생 고추, 마늘, 생강을 갈아 놓는다.

양념이 섞어 갈은 풀물을 나머지와 섞고 양파, ,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과 매실원액으로 식성에 따라 간을 한다.

물기 빠진 배추를 통에 담고 5번의 풀물을 켜켜이 붓는다.

1970-01-01 09:00 2018-01-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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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박원명화

   시작부터 죽음이다. 시나리오 구성치고는 기막힌 발상이다. 서론-본론-결론이나 기---결 같은 전형적인 방법론을 활용함에 있어 첫 장면부터 충격적 전달방식을 내세워 관객의 심리를 자극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잘못 이해된 운명 앞에 몸부림치는 한 사나이의 절규가 생의 애착만큼이나 짙게 사무친다. 가슴 떨리는 두려움,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 가족 사랑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영화 속 이야기에 뒤섞여 스쳐간다.

죄를 짓고 잠 못 이루고 뒤척이듯 가슴 떨리는 두려움이 출렁댄다. 긴장의 끈이 오히려 은근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어둡고, 무겁고, 생경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생을 마감하면 가야만하는 사후세계, 그것은 너무도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단어가 포함된 무엇이 있음이다. 이 영화 또한 지옥의 참혹한 맛을 전해준다.

신과 함께는 동명의 웹툰에서도 이미 명성을 떨친 작품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천만 넘은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감독(김용화)이하 신과 함께의 모든 출연진들이 하나로 뭉친 열정의 산물인 듯싶다. 작품을 각색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전하는 일화를 들어보면 대작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용화 감독은 좀 더 디테일한 지옥장면을 시각화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참고했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은 서양의 그리스도교적 시각으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형식으로 쓴 우화적 작품이다. 그것을 한국토속신앙과 불교로 접목시켜 지옥을 묘사했다는 것은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냄새가 스며들지 않고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감독이하 연출자 모든 분들의 땀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의 시작은 희생정신에 빛나는 소방관 김자홍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귀인이기에 지옥을 무사통과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자홍은 재판과정마다에서 이런저런 시련을 겪는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7개 지옥을 무사히 통과하면 환생할 수 있다는 것. 저승차사 3명 또한 망자 49명을 환생시키면 자신들도 환생할 수 있으므로 죽은 김자홍의 변론을 해주며 7개의 지옥을 동행한다.

영화의 재미를 실어주기 위해 지옥의 재판관 2명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죄를 인정하게 만드는 검사 같은 역할임에도 지옥의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매력을 풍기며 관객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뿐이랴, 지옥마다의 염라대왕의 설정은 분장을 통해 특유의 위엄과 괴괴함을 동반한다. 영화는 기이한 SF물 같기도 하고 신파 판타지 같기도 하다. 저승이라는 무한의 공간과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둔만큼 신비한 영상을 만드는데 주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재판을 받기 위해 한 개의 지옥으로 들어설 때마다 죄에 상응하는 형벌의 장면과 기괴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저승의 험난한 여정을 어찌나 실감나게 표현 했는지 나 또한 그 심판대위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린다.

원귀의 등장은 스토리를 잇는 과정으로 의인 김자홍이 지옥을 통과하는 데 있어 뜻밖의 복병이 된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동생이다. 친형제처럼 아끼던 사병의 오발탄으로 죽음을 맞는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상급자의 계략으로 숨을 거두기도 전에 생매장 당한다. 그 억울함을 씻지도 못한 채 탈영병으로 신고가 된다. 억울함을 씻지도 못한 동생은 원귀가 되어 이승을 맴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자홍의 숨겨진 삶의 풍경들을 만난다. 가족사의 얽힌 비밀의 사연들이 펼쳐지면서 TV드라마를 볼 때처럼 신파적 감성을 자극시킨다.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두 아들의 삶은 가난이란 멍에까지 짊어진 채 살아간다. 가련하고 불쌍한 정서를 불러들인다. 그동안 수많이 보아오던 이야기다. 가족 간의 사연을 집중해 쉽게 감성을 불러들여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좋으나 글로벌 시대를 감안해보면 한국적 정서를 너무 어필한 것은 아닌지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일곱 개의 지옥은 그야말로 거대한 스케일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다른 개성과 다양하게 구성된 특수효과는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며 흥밋거리다. 아이티의 발전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옛날에는 외국영화를 즐겨 봤는데 요즘은 한국 영화를 즐겨본다. 이제 한국영화도 세계로 뻗어갈 만큼 내용도 충실하고 영상 면에서도 아이티 강국답게 첨단의 기술을 걷고 있음이다. 물론 신과 함께를 보면서도 철저하게 느낀 것은 한국영화가 이렇게 발전되었나 싶은 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원작의 형태에 맞게 등장인물을 짜 맞춘 듯 한 것이 오히려 스토리에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력은 그 모든 것을 커버해줄 만큼 안정적이며 역할마다의 진짜주인공들 같다. 이 영화가 대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연기자들의 능숙한 힘인지도 모른다.

태어난 모든 생명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다. 평생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좋겠지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인 듯싶다. 살아생전 삶의 방식이 다르듯 죽음의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 죄가 되는 일, 남을 울게 하는 일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안다면 감히 하늘아래 어찌 죄짓고 살 수 있으랴.

요즘 들어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차마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정말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어렵겠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일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을 잘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가 모범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적인 정서를 풀어내어 무난하게 스토리를 이어 간 것 같다. 감성의 맛을 진하게 우려낸 느낌이랄까, 살면서 죄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도 전한다. 가족이 다 함께 감상 할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잘 된 영화라는 데 칭찬을 해주고 싶다.

 

1970-01-01 09:00 2018-01-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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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복덕방

길위에서 행복 찾기

 

 

                                                                                                           박원명화

    행운의 여신덕에 타임머신을 탔다.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장날에 구경하던 그 유랑극단을 다시 만났다. 의상도 대사도 분위기도 먼 옛날에 와 있는 느낌이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의 삶이 그랬듯 무대는 비좁고 객석은 초라하다. 가끔은 내 현실을 망각할 때가 있다. 때론 그 망각이 참인 듯 절실하게 다가 올 때가 있다. 그 착각은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잊고 현실에 대응하게 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배우도 관객도 그 시절로 돌아와 있는 것처럼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듯 진지하다.

   생활비라도 벌까 싶어 복덕방에서 소일하는 세 남자의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들은 거기에 모여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안초시는 이웃집에서 버린 쌀뜨물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주린 배고픔을 채운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면 무용을 하는 딸 경화의 존재지만 가슴 안에 불어오는 빈터는 채워지지 않는다. 서 참의는 한 때 잘나가던 과거시절을 떠올리며 지나온 상처를 더듬으며 허전한 아픔을 달랜다. 약방에 감초처럼 끼어 있는 박희완의 우정은 눈물겨운 서정으로 확대된다.

    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잡아 놀리는 것으로 하루의 지루함을 달랜다.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화를 내다가도 금방 회석된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척 웃고 즐거우면서도 저마다의 가슴에는 가난과 배고픔에 절인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굶주린 만큼 사람들은 어딘가의 탄탄한 줄에 매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그 줄은 위험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앞 다투어 곡예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칫 속을 수도 있다는 안전함을 잊을 채, 보물을 찾아가듯 실낱같은 희망을 찾고 싶어 한다. 달려들면 달려드는 대로 불빛 찾아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상처의 연속이란 걸 모를 리 없다. 갖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은 얻으려고 할수록 꿈은 언제나 먼 곳에 있음이다.

   능력도 힘도 없으면서 그들 세 사람 역시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애틋하기만 하다. 비록 나이를 먹고 늙어 기력이 쇠잔해졌다 하더라도 타오르는 욕망은 불씨로 남아있다. 어느 날 박희완 영감을 통해 연변 땅 개발 정보를 입수하게 된 안 초시는 그 기회를 이용해 한 몫을 잡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딸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권한다. 마침내 땅을 사들이지만 얼마 안가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딸의 비난에 당면한 안초시는 자신의 욕심을 탓하며 절망의 늪에 빠진 채 자살하기에 이른다.

   친구의 죽음 앞에 서참의와 박희완은 참회의 눈물을 흐르며 슬픔에 빠진다. 아버지의 자살소식을 듣고 달려온 딸은 슬픔보다는 자신이 가야하는 미래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친구의 딸, 안경화의 위선을 보며 서참의의 가슴은 무너진다. 서참의는 친구의 애석한 죽음과 안경화의 간절한 애원을 외면하지 못하고 깊고 깊은 연민에 젖는다. 사망보험을 든 것을 알게 된 서참의는 그의 딸 안경화를 불러 묻어주는 대신 아버지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줄 것을 당부한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들의 의례적인 인사와 아버지의 죽음도 잃은 채 자신의 영달만을 향해 날갯짓을 해대는 딸을 보며 서참의와 박희완은 분통을 터트리며 서러움을 토한다.

   연극이 막을 내렸는데도 차마 일어설 수가 없다. 시대를 넘어 온 이야기인데도 자못 현실적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민다. 턱없이 경쟁이 안 되는 데도 친구들 잘 사는 것을 부러워하며 오기를 부리던. 능력도 힘도 안 되면서 참새가 죽어서도 짹 한다고, 무조건 나를 채찍질 하던 젊은 날의 시간들이 떠올린다.

   사람들은 왜 돈을 소유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불속을 뛰어들려 하는 것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돈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인생이래도 바라고 소망하는 만큼 삶이 황홀하거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인생 한방으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지 않는 것처럼 길 위에서의 행복은 결코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닌 성싶다.

   연극 복덕방은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의 원작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발표된 이 작품은 소외된 서민들의 궁핍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그 시절의 시대적 비판도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그 풍경이 그대로 떠오른다. 소설의 이런저런 삶을 닮고 싶어 하는 것도 어쩌면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타고난 본능을 버리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1970-01-01 09:00 2017-12-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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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 레전드 부담스런 미생-

 

   얽히고설킨 일상의 복잡한 감정들이 고여 있는데도 배슬배슬 웃음이 나온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즐거움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 실로 오랜만에 편한 마음 그대로 웃어 본다. 익숙해진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잠시나마 화사한 여행을 즐기듯 누군가의 인생 속에 들어가 함께 웃으며 행복한 선물을 나눈다.

    산다는 건 누구나 힘겹고 고통스럽다. 현실의 삶은 절대적 돈을 필요로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직장생활은 인생을 송두리째 저당 잡히고서야 살 아 남을 수 있는 곳이 된다. 저마다 주어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은 경주하듯 달린다. 물질만능 시대에서 돈으로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으므로 내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내 감정보다는 상사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고 내 권리보다는 감내해야 하는 의무의 무게가 더 무거워 헉헉거릴지라도 참고 견디는 인내를 배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내동댕이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같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을 벌기위한 목적이 내 인생을 송두리 채 저당 잡힐 만큼 더 소중한 것이런가. 입사할 때의 포부는 누구나 여름의 잎새처럼 푸른 기운으로 넘친다. 하지만 꿈과 희망,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한 현실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일쑤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길이 자꾸만 열린다. 직함만으로도 중력권이 느껴져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들과, 감당 할 수 없는 질량의 업무들은 그 어떤 삶의 명제보다도 수행하기 어렵고 힘든 일로 넘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뿐이랴 정신적 양식까지 고갈 시킨다. 이마는 훤해지고, 몸무게는 늘어가고, 급기야 성인병이 만연하기에 이른다. 혼자서 등불 없는 깜깜한 진창길을 걷자니 마음까지 황폐해진다. 그렇게 황금 같은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되고, 한해를 넘기다 마침내 정년이란 골인지점에 이른다. 마침내 석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면서 뒤늦은 후회의 늪 속에서 허무한 잠속으로 빠져든다.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웃음을 쏟아내게 하는 웃찾사의 비결은 무엇일까. 세월이 흐르는 소리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한 때 직장 생활을 했던 내 소리를 듣는 것 같아 공감대를 불러온다. 내가 지낸 온 소리이고 내가 겪은 체험의 소리이다. 면접을 볼 때의 긴장감, 신입사원 시절의 낯선 일상, 더러는 세찬 폭포가 떨어지기도 하다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기도 하고, 간간히 돌에 부딪쳐 회오리치던 물결들이 새삼스레 가슴으로 파고든다. 조금은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직장인이면 누구나 겪었을 생생한 애환을 한편의 개그 콩트로 엮은 것도 기상천외한 발상이지만 에피소드를 추려 긁어주듯 들려주는 즐거운 메들리송은 천연덕스러운 연기력 없이는 절대 표현 할 수 없는 개그맨들만의 입담인 듯싶다.

   이렇듯 직장인들의 일상을 수채화 같은 투명한 물감으로 적나라하게 풀어낸 것만 봐도 연출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 오락가락 무대를 장악한 듯 휘젓고 다닐 때마다 객석은 웃음바다를 이룬다. 말마다 쫀득거리는 발상은 기발하다. 한마디 한마디 대사가 쏟아질 때마다 관객은 배꼽이 빠질세라 아랫배를 움켜잡는다. 웃어도 웃어도 마르지 않을 샘물 같은 맑은 기분을 선물 받는 느낌이다. 어찌나 많이 웃었던지 눈물까지 절로 나온다. 웃음에 헤픈 여자처럼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온 몸을 흔들어가면서 웃는다.

   ‘웃찾사는 다양한 웃음코드를 골고루 충족시켜주는 SBS 국민코미디 프로그램이다. 비록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이지만 무대를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음이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던 개그맨 김형곤씨가 즐겨 인용하던 심리학자 윌리엄제임스의 말이 떠오른다. 객석에 앉아 있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 같다.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다시 채워진 즐거움이랄까, 숨이 턱에 차도록 실컷 웃다보니 지친 몸에도 기운이 생기고 오랜 지병처럼 아프던 어깨까지도 완전히 치유된 느낌이다.

1970-01-01 09:00 2017-09-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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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떠나지 않을 것처럼 억겁의 더위를 채워나가며 날마다 뜨거움을 쏟아내던 햇살의 횡포도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런 끔찍한 더위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피워대던 꽃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듯 사라져가고 푸른색이 넘실대던 들판도 누런빛을 드리우며 가을을 맞는다. 한세대가 떠나면 다음세대가 오듯이 계절도 그렇게 가고 온다.

    태어난 모든 생명은 언젠가 떠나가기 마련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들도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가듯 사람도 짐승도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이름이든, 가죽이든, 씨앗이든. 그렇게 자신만의 모습을 피우며 살아가다 어느 날 홀로이 떠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니런가.

   좌구산 명산 구름다리를 걸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나 또한 생명으로서의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인가를. 충청북도 증평 율리에 있는 좌구산은 거북이처럼 생겼다하여 앉을 좌() 거북구()를 써서 좌구산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앞서가는 토끼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앞만 보고 가야 한다는 뜻으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의미를 전한다.

   율리에는 조선시대 독서왕 백곡 김득신의 묘소가 있다. 그는 천재가 아닌 쉬지 않는 노력가이다. 10살 때 겨우 글을 깨쳐 20살에야 글 한편을 써서 올릴 만큼 둔재에 가까운 사람이다. 치열한 노력과 끈질긴 열정으로 59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당대에 인정받는 독자적인 시() 세계를 이룬 문학인이다. 그런 김득신에게는 전설 같은 많은 일화들이 있다. 백이전(伯夷傳)113,000번이나 읽고,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무려 36권이나 된다고 하니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작금의 우리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자연이 주는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산길을 따라 오르막이 거듭되는 가운데서도 눈앞의 장쾌함이 계속된다. 시야를 앞도 하는 산에는 푸른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푸르름으로 빼곡하다.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들어선다. 경사를 이룬 산둔 덕까지 좁은 길을 헤치고 차는 거침없이 앞을 향해 고고행진이다.

   목적지에 도착, 차에서 내려 언덕을 오른다. 정오의 태양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린다. 산바람이 산들산들 부는데도 내 몸을 점령한 태양의 열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 목덜미에서부터 스멀스멀 땀이 솟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보니 위풍당당한 좌구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을 이어주는 출렁다리의 구간은 130m이다. 높이는 40m로 좌구산 계곡을 가로 질러 스릴감이 온 몸으로 전해온다.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절반을 걸어왔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본다. 허공에 떠 있는 설렘을 맛보며 산 아래 펼쳐진 전원의 파노라마를 만끽한다. 평화로운 들판과 한적한 마을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증평의 율리에는 자연휴양림한옥관을 비롯해 올 가을 가봐야 할 자전거 여행길 100선에 오른 MTB 자전거 코스로 '율리휴양로'가 있고, 좌구산 휴양 랜드, 삼기저수지, 천문대, 하강레포츠시설, 사계절 썰매장 등 좌구산을 중심으로 명품 관광명소가 탄생될 듯싶다.

    한옥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힐링의 갈증을 다 채운 것 같다. 신선한 공기, 새벽안개, 찬란한 햇살, 새들의 지저귐, 바람 냄새, 풀냄새, 나무냄새, 꽃냄새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었기보다는 자연의 조화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랄까, 달달한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숲속 나무들 사이로 바람과 햇살이 지나가고 그 아래 땅으로 축축한 가을의 생기가 흐른다.

   꿈같던 시간들이 쏴아아 지나가는 게 너무도 아쉽다. 계절이 주는 온전한 절정의 기쁨을 느낄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연을 찾아 나서리라. 홀로서라도 가리라. 밥을 못 먹으면 못 먹는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떠나가리라. 팔도강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듯하다. 충북 증평의 율리의 추억은 지금도 내 가슴에 감미로운 향기로 피어난다

1970-01-01 09:00 2017-09-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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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당신만이

삶의 거울을 보다 

 

                                                                                                        박원명화

 

   사랑은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 느끼던 마음은 어디가고 살수록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로 변해 서로가 소 닭 보듯 심드렁해진다. 한때는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사랑, 그러나 세월 따라 모든 게 변해가듯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그 어찌 알았으랴.

   선남선녀가 만나 부부가 되기까지, 저마다 사연을 들어보면 모진 고통을 이기고 역경의 신화처럼 사는 이도 있고, 가슴 뭉클한 한 권의 소설책속 주인공처럼 연을 맺어 사는 이도 있고, 우연한 인연으로 그렁저렁 부부가 되어 사는 이도 있다. 어떻게 만났든지 부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노라면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가깝다 못해 흉허물조차 없다. 그래서일까, 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일쑤다. 가까울수록 도리를 지켜야 하는데 예의범절을 잘 지키지 못하고 사는 게 부부 사이가 아닌가 싶다.

     20년 이상을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란 까닭에 타고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나 자신부터도 바꿔볼 생각도 않는다. 그러면서 남편의 허물에 대한 불만과 생활이 주는 불편함에 마음속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기를 잘한다. 남편이라고 그러는 내가 마냥 좋기만 할까, 그 역시 걸핏하면 내 언행을 문제 삼아 여자가 살갑지 못하게스리....’라며 못마땅하다는 투로 나무란다. 매일 얼굴 맞대고, 자고, 먹고, 오랜 습관에 길들여지듯 익숙한 풍경들을 보다보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산은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다정다감하게 살진 않았어도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맞을 것 같지 않은 동상이몽의 부부지만 그럭저럭 40년 가까이 살아온 것만 봐도 인생의 동반자임을 확인한 셈이다. 비록 그가 내게 건넨 사랑의 언약은 속절없이 무너지긴 했어도 현실의 장벽을 뚫어가며 가장으로서의 성실함을 보여준 올 곧은 심성은 고맙기 그지없다.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이 남자랑 평생을 살아가나 싶어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란다.

  당신만이 사랑입니다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상도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다. 스펙터클한 내용은 없어도 때로 웃음도 주고, 감동도 흐르고, 눈물샘도 자극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같기도 하고 흔히 듣고 보던 풍경 같기도 하다. 4명의 출연진 모두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하는지 이웃 같은 친숙한 공감대를 불러온다.  

  무대는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부부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언쟁으로 발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 년에 제사를 8번 치러야 하는 아내의 고단한 삶을 이해해 주시는커녕 콩나물 값 50원을 깍은 아내를 질책 하는 남편,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매사 생활, , 자식 등 지극히 평범한 것 조차 생각이 엇갈린다. 결혼 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는 남편의 공약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매일을 물속에 손을 담가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다며 여자의 입담은 거칠어간다. 그럴수록 그 남자 역시 되 세게 받아친다. 급기야 이혼을 선언하는 아내,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은 맘대로 하라며 큰소리를 치지만 내심 고개를 숙인 남자가 된다.

   흐르는 강물처럼 봉식과 필례의 끈끈한 사랑은 아름답고 눈물겹게 흘러간다. 아들선호사상을 떨치지 못하는 남편,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아내가 세 번째 임신하게 되면서 부부의 정은 더 없이 따뜻해진다. 삶은 늘 제 멋대로 흘러가듯 이들이 바라던 아들이 아닌 셋째 딸을 출산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삶은 시치미 뚝 떼고 흘러간다. 나름 삶의 의미를 찾아가면서도 매사 티격태격, 언쟁을 불사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내 일상의 모습이 그대로 무대위에 올려 놓은 것 같아 가슴이 찡하다. 서로에 대해 평가절하를 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아내를 걱정하고 남편의 건강을 염려한다. 물위를 걷는 사람들처럼 위태로이 중년을 넘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된 두 사람, 병든 아내를 돌보며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밉든 곱든 역시 부부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킨다.

   이혼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즈음이다. 살다보면 힘들어 눈물짓는 날도 많지만 하늘을 날 듯 기분 좋은 날도 있다. 부부가 함께 있으되 이쪽저쪽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다보면 싸우게 마련이다. 소통의 단계를 넘어 소통할 의사가 없을지라도 함께있음이 감사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가정을 지키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게 부부인지도 모른다. 인생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반자의 모습에서 젊은이들은 미래를 만나고, 나 같이 중년을 넘은 이들에겐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현실을 상기시켜 준다.

  어쩌면 무대 안에 우리 가족이 다 들어가기엔 버거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은 일인 다역을 소화해 내고 있지만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언제까지 우리 두 부부가 함께 살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머리는 허연 두 늙은이 주위로 에워싼 새로운 가족이 늘어갈 터가 아닌가. 두 사람 중 누구를 더 많이 닮았을지 궁금하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1970-01-01 09:00 2017-09-0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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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극적인 하룻밤

 

   

  제목만 들어도 뭔가 심쿵하다. 뿐이랴, 19금 로맨스 연극이라니, 터무니없는 노파심인지는 몰라도 공연히 민망한 생각부터 든다. 유혹이 파편이 될 무대라 할지라도 뭔지 모를 신바람이 가슴에서 일어난다.

   젊은 커플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매표소에서부터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곳까지 길게 줄이 서 있다. 기꺼이 인파속 틈에 끼어 본다. 나도 관객이 된다는 기쁨이 오히려 신선하고 감미롭게 느껴진다. 단 한자리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빼곡한 관객들에서 이 연극의 인기를 실감한다.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살아 있는 목숨보다도 소중하다.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훨씬 더 슬프다M.D.라이크도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사 사랑 없다면 인생은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다. 그만큼 사랑에는 목숨을 거쳐야 하는 애환이 담겨있다. 사랑하므로 행복했고 사랑하므로 불행한 모습에서 그 사람이 거쳐 온 삶의 노정이 어떠했던가를 대신한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신랑에게 배신당한 여자와 연상의 신부에게 배신당한 남자다. 남자는 쿨한 척 잊었다고 하지만 내면에 깔린 심리적인 감정을 흔들릴 때마다 입담을 통해 분풀이 하듯 거친 욕설이 난무한다. 욕을 하고 있는데도 밉게 보이다거나 상스럽지가 않다. 무대장악력이라고나 할까. 능청스런 대사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뛰어난 연기력은 관객의 눈을 무대 위로 끌어 들인다.

여자는 내성적이다. 내재된 슬픔 마음 안에 자신을 숨기려 하지만 순간순간의 감정은 통제 불가능이다. 엉뚱한 분노를 폭발하며 몸을 던지듯 태우려한다. 처음만난 남자에게 무턱대고 들이댄다. 느닷없는 여자의 공세에 남자는 당황한다. 어찌 보면 우울할 것 같은 스토리인데도 배우들의 대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빵 터진다.

   사랑 없이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룻밤의 정사에서 깨닫는다. 남성이 에로틱하다면 여성은 로맨틱하다. 그래서 남자의 사랑은 진실이 없고 흑심(黑心)만 있다고 한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사랑; 그 자체를 더 사랑하고 연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못 잊어 한다. 함께 걷던 길, 함께 나누던 이야기, 함께 자주 가는 식당 까지도 가슴 속 앨범에 저장하여 간직한다. 그 눈부신 기억들을 음미하며 되새김질해가면서 저 혼자 환상에 젖기도 하고 슬픔에 복받쳐 울기도 한다.

   사랑은 성공적이기보다는 비극적 운명이거나 미완성의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극적인 하룻밤은 한마당 잔치로 끝을 내고 두 남녀는 미련도 후회도 없이 이별을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듯 그들 역시 서로를 끌어당기며 그리움을 커가는 걸 느낀다. 무심한 눈길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왠지 가슴이 아프다. 지나간 기억에 대한 환상의 늪에서 마음은 갈기갈기 슬픔의 눈물을 흘리다가 다시 애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온다. 유치한 감상이나 사치스런 환상쯤으로 치부하기엔 서로에 대한 존재가 몹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1년 후, 그들은 재회를 하게 되고, 마음 안에 사랑의 꽃이 피어 있음을 확인한다.

   단 두 남녀의 배우만으로 공연하는 연극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다.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통에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연출가와 배우들의 짜 맞춘 것 같은 멋진 공연을 보고 나니 뭔가 즐거운 선물을 받은 흐뭇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우선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 내 것을 주려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하듯 사랑을 주고 싶다면 사랑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황홀한 그 사랑의 꿈을 위해서.

 

 

1970-01-01 09:00 2017-08-1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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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음이 나른하게 쏟아져 내리는 일요일 오후, 내게는 조금쯤 게을러도 좋은 그런 날이다. 그러나 식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감자를 넣고 끊인 수제미를 막 점심으로 먹은 뒤라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어제 밤 쓴 글을 퇴고나 볼까 싶어 컴퓨터를 켜고 들여다본다. 글을 따라 여행하듯 떠나는 즐거움을 누리며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는다. 이렇듯 배부름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편안한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주부에게 있어 휴일은 괴로운 날인 듯싶다. 일주일의 한 번 맞는 일요일, 식구들은 이때다 싶은지 저마다의 자유를 맘껏 즐긴다. 이불위에서 뒹굴뒹굴 거리거나, 컴퓨터 켜놓고 게임에 몰두하거나, 종일 TV켜놓아 집안을 소리 공해로 가득 채운다. 제멋대로 지내는 것을 뭐라 할 것은 없지만 문제는 나를 귀찮게 하는데 있다. 늦게 일어나 상치우고 난 뒤 밥 달라고 하고, 시도 대도 없이 엄마를 불러 뭔가를 찾고, 방바닥에 이불을 널브러진 채 밟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제 각기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내게도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늦게 일어난 아들이 나갈 채비를 하는지 목욕탕에서 방으로 오락가락 거울 앞에 서있다. 밥이라도 먹고 내보내야 할 것 같아, 귀찮지만 주섬주섬 밥을 차린다. 잠시도 허락지 않는 주부의 일손, 식구들의 건강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들은 약속시간이 늦었다며 식탁도 돌아보지 않고 휭하니 나가버린다.

   허탈한 심정을 다래며 상을 치우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지만 글을 다시 볼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대신 문우가 보내준 책을 펼쳐든다. 책 읽는 시간만큼은 결코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 조용한 나만의 세상으로 빠져 들고 싶다. 몇 줄이나 읽었을까, 이번엔 TV를 보고 있던 남편의 입맛 다실 것을 달라는 소리가 문틈을 뚫고 들려온다. 이럴 땐 정말이지 들리는 귀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을 것을 찾는 남편을 위해 냉장고 문을 열고 찬장을 뒤적여본다. 남편 또한 쉬는 날이니 제왕적 대접을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내내 고생한 남편을 위해 뭔가를 해준 것이야 당연한 아내의 의무라지만 가사에 매달려 사는 아내에게도 절대적 휴식은 필요한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마다 식구들 중 제일 먼저 일어나야 한다. 밥 지어 놓고, 방마다 식구들 깨우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빨래하랴, 집안 청소하랴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몸이 바쁘다.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 해놓고 볼일을 보는 날도 있고, 김치도 담가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 식구들의 몸 건강을 살려야 한다. 해도 해도 표시도 없는 가사 일에 매달려 있다 보면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주부의 일손은 바쁘기만 하다. 어디 가사일 뿐이랴, 집안의 모든 대소사며,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모두가 주부의 몫이라 하니 정말이지 이 땅에서 여자로 사는 일은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모두가 그렇듯 주부도 휴일엔 쉬고 싶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싶다. 일 년에 한 번, 직장인들에게 휴가가 주어지고 정년이란 게 주어지듯, 주부들에게도 온전한 자신만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자유와 정년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노동법이 꼭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의 젊은이들이야 아내를 제 맘대로 부려 먹다가는 간이 부은 남자로 전락될 일이지만 나보다 남편과 아이들 우선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이려니 체념하며 몸에 밴대로 산다.

   주부가 하는 일도 성과제로 계산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신개념의 주부가 탄생되어 저마다의 타고난 능력이 분출될 것 같다.

 

1970-01-01 09:00 2017-07-3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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