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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를 쓰는 이유]

 

쓸거리가 없는 날도 일기장을 편다. 하루를 무탈하게 살았다는 확인도장을 남겨두는 약속 같아서 거르면 되레 이상하다. 반성하고 계획하고 감사한 마음을 적고 나면 뻐근했던 목도, 무지근했던 어깨도 가벼워진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그날의 짐을 일기장에 내려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중단했던 일기를 결혼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으니 사십 년이다. 꼭꼭 눌러 쓰는 게 습관이 되어 유성 펜을 마다하고 볼펜으로 썼다. 내 지난날을 새겨 넣은 점자책처럼 글씨가 만들어낸 흔적이 오톨도톨하다. 시집살이할 때는 어떤 억지를 퍼부어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상대가 돼주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서 있는 남편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가뭄에 콩 나듯 영화 표와 연극 표가 붙어 있어서 특별한 외출이었음을 보여준다. 누구와 갔는지, 재미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행복에 젖기도 한다. 부질없는 상상을 적어도 묵묵히 받아주니 이보다 믿을 만한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일기 쓰기를 권한다. 지금은 먼 길 떠나신 정채봉 동화작가에게 문학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강조한 게 일기 쓰기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무슨 글이든 대학 노트로 두 바닥씩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일기가 글 쓰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게 되었고, 자신을 기록하는 것 말고도 사고력과 표현력을 키워준다는 걸 경험했다. 곧, 일기 쓰기는 문학과 멀어지지 않게 하는 고리이며 창작으로 가는 원동력과 밑거름이 된다. 일기는 문학의 시작이며 주춧돌이다. 내가 중단하지 않는 이유다. 
[글/사진/naroo]

 

 

2013-02-06 08:40 2013-02-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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