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아주 멀리 간 줄 알았는데 동두천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입니다. 요즘 예보 없이 돌아다니는 국지성 폭우입니다. 작은 화분을 의지간으로 옮겨주어야겠습니다. 엎드렸다 일어섰다는 하는 일을 반복할 때는 우비가 제격입니다. 비닐이라서 입으면 무척 더워 입을 기회가 없기에 현관 밖 벽에 걸어놓고 비설거지 할 때는 종종 사용합니다.

 

그새 작은 화분에는 빗물이 넘치고 있네요. 화초의 발가락이 물에 잠기면 사람처럼 퉁퉁 붇는 것 같아 따라내고 처마 밑으로 옮겼습니다. 비를 노박이로 맞는 큰 꽃에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보기에는 차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오해는 하지 않을 겁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우비를 입으면 빨리 벗기가 싫습니다. 서울 살 때도 옥상에서 이런 행동을 했지만, 비닐우산을 쓰고 빗속에 쪼그리고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우비 위로 떨어지는 간지러운 감각, 자식이나 남편이 소녀 같다고 흉보더라도 이건 꼭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아파트에서는 좀 곤란하겠네요. 그런 모양새로 공원에 앉아 있으면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까짓 것이 아니랍니다. 소나기가 오는 날은 커다란 고무 함지를 물받이 홈통 아래에 놓으면 금세 넘칩니다. 이 한 가지만 풍부해도 마음은 부자가 됩니다. 산골에 사는 친구가 밤낮없이 흘러가는 계곡물이 아깝다고 주방과 연결하여 펑펑 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대문 밖에 있는 텃밭에 펑펑 퍼다 줄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식물에는 수돗물보다 빗물이 유익하다고 하잖아요.

 

장독대 청소하기도 수월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시원하다고 하는 속삭임이 들린답니다. 소금과 된장 고추장, 간장이 담겨 있는 건 더 깨끗하게 닦아줍니다. 짜고 맵고 냄새나는 걸 묵묵히 품고 있으니 고마워서입니다.

 

항아리 색깔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만약에 이걸 만드는 분이 예술적으로 한다고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독을 지었다면 나는 거기에 된장이나 간장을 담지 않았을 겁니다. 항아리 색은 우리나라의 전통이며 자존심입니다. 그 어느 빛깔로도 대체할 수 없는 든든하고 멋진 색깔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항아리와 어울리지 않는 식물이 없습니다. 나는 분꽃과 고추를 심은 걸 곁에 두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된장이나 고추장에서 혹시라도 향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또 한 집안의 기본 반찬이 되어주는 게 고마워서 무엇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사람, 동물, 자연을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때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잔디나 돌이 깔린 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사한 나무도 없습니다. 협소한 마당에 흔한 화초 몇 가지가 현관에 친 발 사이로 보이니 평화롭습니다. 단독의 장점 중 하나는 어지간한 소음은 이웃에서도 눈감아줍니다. 아파트에 사는 선배가 있는데 부부 싸움할 때는 이웃에 들릴까 봐 창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식탁 의자를 무심코 끌었더니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쫓아올라왔답니다. 모처럼 손자가 와도 무섭게 생긴 그 젊은 남자가 달려올까 봐 살살 뛰라고 주의를 시킨답니다.

 

이렇게 조심조심하면서 살아도 열이면 아홉은 아파트를 선호합니다. 마구 뛰어다녀도 되고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이어질 때는 사방팔방 문을 열어놓고 마루에 누우면 자연 바람으로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에어컨 바람에 비할까요. 절구통에 볶은 깨를 찧어도 신나게 도마질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독에서나 누리는 자유입니다.

 

1970-01-01 09:00 2016-08-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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