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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친구가 이사를 한다고 해서 짐정리를 도와주고 왔다. 그 집에서 십년을 넘게 살았다더니 쓰지 않는 세간들이 구석구석에서 무더기로 나왔다. 그 중에는 물건을 사면 덤으로 따라오는 그릇도 상당했다. 그동안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 온 물건들이라고 하기에, 그러면 앞으로도 쓸 기회가 없을 테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밖에 내놓으라고 유도했다.
 
우리는 ‘이것 버릴까 말까’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꽤 되는 양의 살림도구를 포기하기로 하고 내놓았다가 다시 집어넣기도 했다. 친구는 유행이 지나기는 했어도 새 그릇과 옷을 버려야 한다는 게 아까웠는지 진작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 인심이라도 썼더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받았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계절과 딱 맞는 옷이 없을 때는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짜증도 나지만, 평소 옷장이나 그릇장을 보면 줄지 않는 게 옷이고 그릇이다. 그건 욕심과는 다르다. 손님을 많이 치를 일이 있을까봐서이고, 유행에 밀리기는 했어도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서이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살아와서인지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일 중 하나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해지면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게 되는지, 시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자 당신 동생을 불러 괜찮은 옷으로 골라주셨다. ‘거지도 선볼 날 있다’며 준비한 옷들인데 그 언젠가를 위해서 두는 막연함 대신 현명한 판단을 하셨다. 그걸 보면서 나는 쌓아두었던 책을 허물기 시작했다. 나중에 넓은 집으로 가면 서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읽었거나 읽지 않을 책을 빨리빨리 처분했더니 홀가분함이 찾아왔다.

  문우 중 한 사람은 배달되는 책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읽으려고 봉투도 뜯지 않은 채 쌓아놓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시간이 나면은 서울 변두리에 땅이 있어서 그곳에 집을 지은 다음을 말하는 것이다. 내 경험을 말해주었다. 지금 묵혀두는 책은 나중에도 읽지 않게 되더라고. 더구나 나이 든 사람에게는 쌓아둔 옷을 입을 만큼, 밀려둔 책을 읽을 만큼 나중이란 시간은 미지수라서 믿을 게 못 되지 않은가. 또 읽을 책은 그때그때 얼마든지 있다.
 
나도 회원들이 책을 냈다고 보내주는 것 말고도 월간지가 두 권씩 배달된다. 바쁜 일이 불거져 미루다 보면 어느새 다음 달 책이 도착한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하루 이틀 사이에 읽어버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중처럼 불확실한 게 없어서이다.
[글/사진/na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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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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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10:05 2012-11-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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