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는 추석 앞두고 꼭 해야 하는 연례행사다. 우리와 큰집, 작은집 가족이 서로 무난한 날 잡기가 간단하지 않다. 거기에 날씨까지 적당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정한 날은 토요일이라 가는 길이 막혀 계획에서 조금 늦어졌으나 약간의 구름과 맑은 날씨여서 무리 없이 끝냈다.

 

올해도 아랫동서는 여러 명이 먹을 김밥을 쌌고 과일과 술과 포, 음료수와 생수를 준비해왔다. 예전에 내가 준비하는 걸 봐두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 심성이 예쁜 동서다. 금전적인 면을 떠나서 전날부터 준비하였다가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인데,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장정이 다섯 명이나 있어도 정작 힘들고 까다로운 일은 시동생이 다했다. 올해부터는 부족해도 애들에게 물려주기로 했고, 장조카와 내 아들이 시범을 보이려고 했으나 바라보던 시동생이 예초기(刈草機)를 차지를 하고 말았다. 내 남편과는 달리 시동생은 기계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요령도 뛰어나다. 나는 그래도 애들을 시키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다고 한다.

 

시할머니 봉분 아래에는 어느 분이 돌아가셨는지 새로운 묘가 생겼고, 시어머니 봉분 주위에는 작년에 없던 아카시아나무가 우거졌다. 낫으로 치고 갈퀴로 긁어내리니 앞이 훤해 내 속이 다 시원했다. 합장한 시숙과 큰동서는 잘 계시는지. 달 밝은 밤이면 혼유석(魂遊石)에 나와서 자식들 위해 기도하며 옛이야기 하시는지. 물휴지로 혼유석을 닦는데 두 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나보다 열 살 위라 아직도 충분히 사실 나이인데, 그 못된 암을 이기지 못하시고 말았다.

 

더워도 바람에서는 가을 냄새가 났다. 한낮의 열기도 푹푹 찌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하는 남자들의 옷은 흠뻑 젖었다. 매장문화가 우리 대에서 멈춘다고 해도 조상을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은 숭고하다. 사진으로밖에 뵌 적이 없는 시댁 조상들. 뵌 적은 있으나 정 들기 전에 떠나신 분들. 동서끼리 오래도록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큰동서. 나는 그분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 듯했다. ‘혈육의 화합’ 아닐까 한다.

 

나도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걱정하시지 말라’고 술 한 잔 올리면서 약속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어렵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것이 무너지면 다른 것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나중에 돌아오는 건 후회일 게 확실해서이다. 이웃과 잘 지냄도 국가 간의 화합도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970-01-01 09:00 2013-09-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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