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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6 [소설-대당협전기] by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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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협전기

 

[제1화] 인씨촌(印氏村)의 참사(慘事) I

  서장(序章)

   유신(維新) 8년 무력(武曆: 달마조사가 소림사에 온 서기 527년을 원년으로 하는 무림의 역법) 1444년. 말복이 한참 지나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8월 하순의 어느 날. 해동(海東)의 수이(首爾: 서울) 마뫼[南山] 또는 목멱(木覓)이라 부르는 산자락에 위치한 인씨촌(印氏村). 촌장 인투로(印投勞, intro)의 아들 인수린(印秀麟, insulin)은 이른 조반을 먹고는 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상을 치우는 어머니의 등이 오늘 따라 더욱 굽은 듯 보여서 가슴이 찡했다.     ‘어머니도 저렇게 힘들어 하시니…… 빨리 다녀와야겠구나.’   제법 먼 길을 가야 했지만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저 품에 있는 전낭(錢囊)을 확인하고 허리띠만 단단히 졸라매면 될 뿐.     방을 나서자 툇마루에 힘없이 걸터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읍내에 다녀오겠습니다.”   “콜록-! 수, 수린아, 네가 고, 고생이 많구나. 우리 때문에…… 콜록-!”   “그런 말씀 마시고 들어가 쉬셔요.”   “으, 읍내에 가거든…… 콜록-! 삼촌도 마, 만나보도록 해라.”   “물론이지요. 바람이 차니 얼른 들어가세요.”    “아, 알았다. 콜록-!”   올해 열네 살이지만 남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열여덟 살이라도 해도 족히 믿을 건장한 체격의 인수린은 인사를 하곤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체격이 커도 자식은 한없이 작고 여리게만 보이는지, 아버지는 병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서도 그의 모습이 멀리 한 점이 될 때까지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름 전부터인가? 인씨촌의 주민들은 묘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병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거나 또는 무섭게 물을 마셔대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측소(厠所: 화장실)를 들락거리는 정도였다. 그밖에 특별한 증상은 없었지만 모두가 무기력하고 금세 피곤해져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문제였다.   인씨촌에 사는 열네 명 가운데 인수린만 멀쩡했고 나머지는 모두 이런 지경이었으니, 생업(生業)인 도장을 새길 수도 없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인수린은 읍내 의원에 들러 약도 짓고, 저잣거리에 점포를 두고 인장업(印章業)을 하는 삼촌 인투내(印投內, internet)도 만나고 올 예정이었다. 읍까지는 오십여 리(里: 10리는 4km)나 되니 잰걸음으로 다녀온다고 해도 밤늦게나 돌아올 수 있을 것이기에 서둘러야 했다.


인씨촌참사(印氏村慘事) 

   인수린이 산굽이를 돌아 모습을 감추고 한 식경(食頃: 30분) 정도 지났을까?    계곡으로부터 방갓을 쓴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흑견의(黑絹衣)를 입은 한 명의 여인과 네 명의 사내였다. 흑견의의 여인은 남여(藍轝: 두 사람이 메는 가마)에 타고 있었는데, 가마꾼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청의를 입은 앞쪽의 사내는 꼬챙이처럼 깡말랐고, 황의의 뒤쪽 사내는 몸무게가 족히 이백 근(斤: 1근은 600g)은 나갈 정도로 비대했다. 그리고 남여 왼쪽의 도(刀)를 찬 사내는 핏빛처럼 붉은 옷을 입었으며, 오른쪽의 인물은 티끌 한 점 없는 백의를 걸치고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어느 쪽이지?”   여인의 물음에 붉은 옷의 사내가 손을 들어 마을 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저쪽입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방갓에 드리운 면사(面紗)가 날리며 얼굴이 슬쩍 드러났다. 백옥 같은 피부에 호수처럼 그윽한 눈, 오뚝한 콧날 그리고 하얀 치아와 붉은 입술…… 단순호치(丹脣皓齒)의 빼어난 용모였다. 하지만 무척 차가운 인상이었다. 눈초리가 살짝 올라가 오만한 느낌을 주는데다가 입가에는 비웃음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요염해 보이기도 하는 야릇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때문이었다.      여인이 갑자기 가마를 박차고 허공을 날았다. 한 마리 제비처럼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신법(身法)이었다. 그러자 사내들도 저마다 경신공부(輕身功夫)를 발휘하여 몸을 날렸다. 모두가 내력이 출중한 고수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한 달음에 오 장(丈: 1장은 어른의 키 정도)이 넘는 거리를 날았다. 일다경(一茶頃: 15분)이 조금 못되어 그들은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수비쌍귀(瘦肥雙鬼)는 마을 뒤쪽의 집부터 뒤져서 이리로 잡아 와.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돼.”   여인의 명령에 청의의 홀쭉이와 황의의 뚱뚱이는 각기 몸을 날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이곳 저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리도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여인은 유람이라도 나온 듯 느긋한 발걸음으로 바로 앞에 있는 집으로 향했고, 그녀보다 한 발 앞서 달려간 혈의(血衣)의 사내가 한 집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누구……?”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반쯤 넋이 나간 듯 표정의 중년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뒤로 중년여인과 딸로 보이는 처녀가 보였다. 세 사람은 모두 누워 있다가 일어난 모양인데,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나와라!”   터럭만큼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차가운 음성이었다. 만약 거스르기라도 하면 목숨이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고, 그의 아내와 딸도 덩달아 움직였다. 모두가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발을 옮기기도 힘겨울 정도였기에 반쯤은 기다시피 하여 마당으로 내려섰다.     다른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반항을 한 사람은 사내들의 억센 손아귀에 잡혀 끌려 나와 마을 중앙의 공터에 내동댕이쳐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당뇨 Tip!! 당뇨란 소변에 당이 섞여 나오므로 붙여진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제2화] 인씨촌참사(印氏村慘事) Ⅱ

   어느덧 마을 공터에는 열세 명의 사람들이 모여 엉거주춤 서 있었고, 깡마른 사내와 비대한 사내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 녀석도 빠뜨리지 않고 끌고 나왔겠지?”   “물론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다짜고짜 끌려 나온 것만 해도 참기 힘든 일인데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여인과 사내들의 태도에 부아가 치민 한 청년이 나섰다.    “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뭣 때문에 우리를 이리 끌고 나온 거요?”    “저 녀석은 비교적 팔팔하군.”    흑의여인이 혼잣말처럼 한마디 던지며 눈짓을 하자, 백의의 사내는 부채를 흔들며 청년에게로 다가서더니 손을 뻗어 맥을 잡았다.    “맥이 느리고 특히 족태양방광경 쪽의 기류가 미약하고 불규칙합니다. 정명(睛明), 풍문(風門), 담유(擔兪), 지실(志室) 등의 혈이 막혔고……. 외관상으로는 피부가 거칠고 안색이 창백하며, 눈에 눈곱도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독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머지도 대개 비슷합니다.”   “독(毒)을 살포한 게 언제였지?”   “보름 전입니다.”   수상한 일행은 주민들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자기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말이 말 같지 않소? 대체 누군데 이런 행패를 부리는 거요?”   청년의 언성이 높아지자 비로소 여인은 고개를 돌렸다.    “나? 나는 당요(唐姚)라고 한다.”    “당요? 그, 그렇다면 사천당가(四川唐家)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당가의 귀하신 몸이 이런 구, 궁벽한 산골 마을까지……. 웨, 웬일로 찾아오셨소?”   청년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용독(用毒)과 암기로 사천의 패자(覇者)가 된 당문(唐門). 무림의 태두(泰斗)라는 소림과 무당도 한 발 양보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이름을 듣고 주눅이 들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내가 만든 독의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 알아보기 위해서지.”   “도, 독이라니? 그, 그럼 우리가 주, 중독되었단 말이오? 모, 모두가 매, 맥이 없고 나른한 게……?”   “맞아. 생각보다 조금 약하긴 하지만 그거야 양을 늘리면 될 테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   “무, 무슨 연유로 이런 패, 패악(悖惡)을 저지른 거요?”   청년의 음성이 높아졌고 주민들의 얼굴에도 분노의 빛이 서렸다.    “새로운 독을 시험해 본 거야. 너희들은 일종의 환태(丸太), 즉 마루타(まるた)인 셈이지. 참, 동영(東瀛: 일본) 말이니 못 알아듣겠군. 그러니까 통나무 같은 존재란 말이다. 약효를 실험하기 위한.”   “우, 우리를 실험용으로 삼았다고? 그,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오? 포, 포도아문에 이, 이 일을 알리면……?”   “그럴 순 없을걸. 너희들은 당장 죽을 테니까!”    여인의 말을 마치며 몸을 날렸다. 청년과의 거리가 오 장여는 떨어져 있었음에도 마치 공간을 단축하기라도 하듯 어느새 그에게 바짝 다가가 금나수(擒拿手)로 손을 낚아챘다.    “흐윽-! 이, 이게…….”   청년은 용을 쓰며 손목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결코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평범한 촌부(村夫)가 웅후한 내력을 지닌 무인의 손길을 벗어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때문이었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흑의여인과 청년을 둘러싸고 있던 주민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임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청년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입에 거품을 물며 눈을 허옇게 뒤집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급속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쭈그러들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보이지 않는 칼이 그의 살을 도려내듯 제법 튼실했던 팔뚝은 어느새 마른 장작처럼 앙상해졌고, 피부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졌다.    그와는 반대로 눈이 시리도록 희던 여인의 손은 점차 녹색으로 변하며 섬뜩한 빛을 발했다. 다시 한 번 면사가 흔들리며 여인의 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놀랍게도 여인의 눈동자 또한 녹광(綠光)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방금 지옥에서 뛰쳐나온 야차(夜叉)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끄르륵-!”   청년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여인은 손을 놓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는 마치 뼈에 가죽을 씌운 듯 목내이(木乃伊, mirra)처럼 흉한 모습으로 변한 채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반각(半刻: 1각은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공(大功)의 성취를 경하(敬賀)드립니다.”   네 명의 사내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이런……. 네놈들은 정녕 하늘이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촌장 인투로가 노성(怒聲)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혈의의 사내가 그를 제지하려 하자, 인투로는 세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일개 촌부가 내지른 주먹 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빨랐고 억센 힘이 담겨 있었다. 산골 무지렁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혈의의 사내는 뜻밖의 강한 공격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인투로의 주먹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어깨를 맞고 말았다.    퍽-!   제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대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자 자신감을 얻은 인투로는 계속 주먹을 내뻗으며 전진했다. 하지만 상대는 고수였다. 그것도 초일류급의.   “에잇-!”   사내는 인투로의 주먹을 가볍게 막아내곤 일갈(一喝)을 하며 역습을 해왔다. 엄청난 위력이 담긴 일권(一拳)이었다. 인투로는 급히 양손을 들어 주먹을 막았으나, 기력이 딸리는 탓에 서너 발자국이나 물러나고 말았다.    “여보!”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부인 모용혜(慕容蕙)가 사내를 향해 몸을 날리더니 매서운 발질을 시작했다. 옆구리를 노린 원앙퇴(鴛鴦腿)에 이어 호랑이가 꼬리를 치는 듯한 호미각(虎尾脚) 그리고 북파퇴법(北派腿法)의 정화라는 선풍퇴(旋風腿)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환공격이었다.    병을 앓고 있는 탓에 발질이 위력적이지 못했지만 사내를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고, 그 동안 몸을 추스른 인투로는 다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부부의 합공(合攻)에 놀란 사내는 두어 발자국 물러나다가 기합과 함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차앗-!”   눈부신 섬광이 인투로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고, 혈의의 사내 손에 들린 날카로운 도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도신(刀身)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허억-!”   인투로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의 두 눈이 있던 자리는 흡사 생선의 아가리처럼 벌어진 채 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제3화] 인씨촌참사(印氏村慘事) Ⅲ

   “아악-! 여봇-!”   모용혜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남편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내의 칼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그녀를 베고 지나갔다. 남편을 눈앞에 둔 채 쓰러진 모용혜의 흰 옷은 칼질을 한 사내의 옷보다 더욱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바보 같은! 무기를 쓰지 말라고 했잖아.”   흑의여인이 앙칼진 음성으로 혈의사내를 나무랐다.    “연놈이 함께 덤벼드는 통에…….”   여인은 변명을 하는 혈의사내를 한 차례 흘겨보고는 미약하지만 숨이 붙어 있는 촌장 인투로의 손을 거머쥐었다. 극악한 사공(邪功) 흡당대나이법(吸糖大那移法)으로 체내의 당은 물론 원정(元精)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곧 당요의 손과 눈이 녹색으로 물들었고, 인투로의 몸은 급속하게 생기를 잃어갔다.    “끄으윽-!”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인투로의 고개가 꺾어지는 순간, 한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하다가 목내이처럼 변한 촌장의 모습을 보곤 자기도 모르게 취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려는 손오공의 발버둥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황의의 사내가 비대한 몸집과는 달리 사뿐히 허공을 날더니 그녀를 뛰어넘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어딜, 감히!”   비대한 황의인(黃衣人)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여인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는 여인을 질질 끌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사람임에야.    여인은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의 손을 부여잡고는 사력을 다해 깨물었다.    “큭-! 이것이-!”   생각지도 못한 저항에 화가 치민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여인의 뺨을 때렸다.   “어흑-!”   여인의 비명이 잦아들기도 전에 사내의 손은 그녀의 명문(命門)을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상대의 신장(腎臟)을 파괴하여 절명(絶命)에 이르도록 한다는 쇄신수(碎腎手)였다. 여인은 입에서 한 줄기 핏물을 뿜어내며 쓰러졌다.    그녀의 고개가 꺾어지는 순간, 다시 두 명의 사내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전에 약속을 한 듯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생에 대한 집착인지, 여태까지 서 있기조차 힘들어하던 모습에 비하면 정녕 놀라운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깡마른 청의인(靑衣人)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양쪽으로 뿌렸다.    슈슉-!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단검 두 자루는 도망치는 사내들의 뒷목에 정확히 박혔다.    “와아-!”   친지들이 눈앞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다만 겁에 질려 주저앉은 노파와 어린 아이 둘만 남아 있었다.    혈의의 사내는 도망치는 이들의 뒤를 쫓아가며 들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으악-!”   “아아악-!”    모두가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여인의 당부도 소용이 없었다.    “젠장! 할 수 없군. 음양선사(陰陽扇士), 나머지 놈들을 제압해.”   여인이 목내이처럼 변한 인투로의 손을 놓으며 말했고, 백의인(白衣人)이 부채를 휘둘러 나머지 남아 있는 두 소년의 혈을 눌렀다.    흑의녀는 눈을 멀뚱하게 뜬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두 소년의 팔을 하나씩 양손으로 잡더니 다시 공력을 운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들은 마치 백 살도 넘은 노인처럼 주름투성이의 얼굴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   “이제 남아 있는 놈은 없겠지?”   “모든 집을 다 뒤져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멍청한-! 네가 무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처음 계획이 틀어졌잖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이 제법 날카로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쨌거나 독의 효력과 대법의 성취도를 알았으니…….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빨리 이곳을 뜨자.”   “존명(尊命)!”   불과 반 시진(時辰: 1시진은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동안에 인씨촌의 모든 식솔들은 몰살하고 말았다.

   저녁 무렵이 되었어도 평소와는 달리 밥 짓는 연기는 피어 오르지 않고 산새들의 구슬픈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제4화] 임사전언(臨死傳言)

   이튿날 아침. 제법 따가운 햇살에 신무(晨雾)가 가시고 산이 본연의 푸른 모습을 드러낸 사시 말(巳時末: 오전 11시 무렵), 멀리 인씨촌이 보이는 산굽이에 십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기예요! 빨리요.”   인수린의 다급한 외침에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걸음을 서둘렀다. 청색의 관복(官服)을 입은 포쾌(捕快)들이 앞서 달렸고, 그들의 뒤를 머리가 반백(半白)이 된 두 사람의 따르고 있었다.  

   어제 밤늦게 마을로 돌아온 인수린을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의 차디찬 주검을 안고 오열(嗚咽)하던 인수린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밤길을 달려 읍내의 포도아문(捕盜衙門)으로 가서 사실을 알렸고, 새벽부터 소집된 포쾌들과 함께 마을로 온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부리부리한 눈에 턱수염을 짙게 길러 장비(張飛)를 연상케 하는 한 포두(捕頭)가 명령을 내렸다.    “현장을 보존해야 하니 순검포승(巡檢捕繩, police line)부터 치도록! 그리고 일부는 마을을 돌아봐. 혹시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포쾌들이 날래게 움직이며 마을 입구에 순검포승을 쳤고, 포두를 따라온 두 노인은 흰색 구조(口罩: 마스크)와 수투(手套: 장갑)를 착용하고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포쾌들이 돌아와 보고를 했다.    “가구는 모두 일곱 호(戶)이고, 인원은 총 열세 명입니다. 전원 사망, 생존자는 없습니다.”   포쾌의 보고를 들은 포두가 시체를 살펴보는 노인에게 물었다.    “사인(死因)은 뭡니까?”      “칼에 베인 이가 넷, 단검 같은 암기를 맞은 이가 셋,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에 당한 이가 셋… 모두가 일류급 솜씨야.”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인이 뭣 때문에 이런 깊은 산골의 마을을 공격했을까요?”   “낸들 아나? 그거야 자네가 밝힐 일이지.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 이쪽의 세 명은 도무지 사인을 알 수가 없어. 특별한 외상도 없고 독에 중독된 것도 아니고… 혹시?”   “혹시라뇨? 짐작하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어쩌면 급작스레 생기가 빠져나간다는 신종 후루(朽漏: Flu.)일지도 모르겠군.”    검시의는 고개를 돌려 함께 시체를 살피던 벽목(碧目: 푸른 눈, 즉 서양인) 노인에게 물었다.    “지대야(池大爺)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의 공손한 태도에 놀란 것은 포두였다.    포두와 함께 온 검시의 장준혁(張俊赫)은 젊은 시절 경사(京師: 수도) 포도아문 소속의 시애수아이(屍埃受衙吏, CSI), 시체[屍]와 티끌[埃]을 거두는[受] 아문[衙]의 관리[吏] 가운데도 손꼽히는 실력자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은퇴 후 낙향하여 백거탑(白巨塔)이라는 의원을 차린 그를 현령(縣令)이 간곡히 부탁하여 포도아문의 자문역으로 모신 것인데, 그만큼 콧대 높은 인물이 대야라는 존칭으로 상대를 부르며 의견을 물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랄 일이었다.    벽목의 지 노인은 거의 넋이 나가 있는 인수린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분명 어제 아침 네가 마을을 나설 때는 모두가 괜찮았다고 했지?”   “네. 기력은 없으셨지만 금방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어요. 고모님도 사촌동생들도 모두요.”   인수린은 울먹이면서도 비교적 또박또박 대답했다. 열네 살 어린 아이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모습이었다.      “증세는 소갈(消渴: 당뇨의 옛말)과 비슷하긴 한데, 아이에게 확인했듯 분명 아침에는 심하지 않았다고 하니… 소갈이 이렇게 급속히 진행될 리는 없고…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구려.”

   “잠깐! 이게 뭐지? 이리들 좀 와보게.”   검시의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치자 포두와 포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이 둘러싼 시체는 바로 촌장 인투로의 것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쓴 듯했다. 힘이 다한 듯 글씨는 크기도 각기 달랐고 삐뚤빼뚤했지만 다행히도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당(唐)•녀(女)•조(兆)라고 쓴 것 같군.”   “당의 여자, 조짐? 무슨 뜻일까요?”   포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이들은 한눈에도 사인(死因)을 알 수 있지만… 저 세 사람은 도무지 모르겠군. 무슨 돌림병이 돈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해. 일단 몇 가지 표본을 채취해 가서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당분간 이 마을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장 검시의가 마른 장작처럼 변한 시체의 머리카락과 피부 그리고 티끌 등을 채취하는 동안 지 노인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는 듯했다.     “대략 된 것 같으이. 일단 여길 떠나도록 하세. 그런데 이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여긴 위험할 수 있거든.”   장 검시의의 물음에 포쾌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일단 포도아문으로 데려 가도록 하지요. 좀 더 알아볼 것이 있으니까요. 밤이 늦으면 번초들이 쉬는 방에서 재우면 될 테고요. 다행히 읍내에 숙부가 있다니 내일쯤 그리로 보내면 되겠지요.”   장 검시의에게 답한 포쾌가 인수린을 보며 말했다.     “네 마음을 대충 짐작하겠지만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함께 가자꾸나.”

   인수린은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야 이곳에 남아 부모와 친지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사리를 분별할 줄은 알고 있는 때문이었다.     어느덧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일행은 슬픔을 참으려 이를 악다물고 있는 인수린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결국 인씨촌의 참사는 미제(未濟)로 종결되었지만, 이 사건이 강호에 몰아칠 혈풍(血風)의 서곡(序曲)이었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당사자인 인수린조차도.  

  당뇨 Tip!!  췌장은 인슐린을 생산할 뿐 아니라 혈당의 상승을 측정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혈당의 변화를 분석하여 필요한 양의 인슐린을 분비하는 펌프 역할을 한다.

  [제5화] 금정육합기(金鼎六合氣)

   이튿날 아침, 포도아문에 있는 인수린을 찾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검시의와 함께 왔던 지 노인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를 알아본 포쾌가 인사를 했다.    “별일 아니네. 그저 저 아이와 조금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서…….”   “막 아침을 먹였습니다. 지금 뒤채 툇마루에 있을 겁니다.”   하루 사이였지만 인수린은 몰라볼 만큼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가족과 친지를 잃은 충격에 거의 이틀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 노인은 인수린을 마주하고 안색을 살펴본 뒤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겪었음에도 참으로 의연하게 잘 대처했다. 무척 용감한 아이로구나. 내가 몇 가지 물어 보려 하는데 괜찮겠느냐?”   “예.”   “마을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지?”   “보름 가까이 되었을 거예요. 백부님의 생신이어서 잔치를 벌였거든요. 그런데 다음날부터 속이 좋지 않거나 물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생겼어요. 사흘이 지나서부터는 거의가 그랬고요.”   “너는 아무렇지도 않았느냐?”   “저만 괜찮았어요. 그래서 제가 읍내 의원에게로 간 것이죠.”     지 노인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다시 인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손 좀 줘보련.”   맥을 짚어 본 지 노인이 깜짝 놀라 말했다.    “이럴 수가!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과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이 무척이나 발달했구나. 유독 혼자만 멀쩡했다니 필시 연관이 있을 터.” 

   노인은 뜻 모를 혼잣말을 하더니 다시 인수린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숙부가 있다지만 부모 모두를 잃은 네가 홀로 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니 내공심법을 한 가지 전해 주마.”   “내공심법이요?”   “호흡을 조절하여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법이다. 운기토납(運氣吐納)이라고도 하지.”   “호흡이라면 숨 쉬는 건데… 그것도 배워야 하나요?”   “허허-! 그냥 숨 쉬는 게 아니란다. 천하에 둘도 없는 금정육합기(金鼎六合氣)이라는 기공법이지. 목화토금수의 오기(五氣)를 황금으로 만든 솥에서 끓여 태극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오래도록 연마하여 대성한다면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해져서 결코 잔병치레도 하지 않게 되고 추위나 더위도 이겨낼 수 있지.”

   “어떻게 하는 건데요?”   “헌데 글을 아느냐?”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천자문과 소학(小學)은 오래 전에 뗐고 지금은 논어를 배우고 있지요.”   “다행이구나. 그럼 훨씬 수월할 것이니. 우선 구결을 전해 주마.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겨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은 작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고치연진(叩齒嚥津), 금장설경(金獎舌耕), 욕면명고(浴面鳴叩), 시견탁천(施肩托天)… 마신금정(摩腎金鼎), 적우경지(赤牛耕地), 현빈일규(玄牝一竅), 백규개통(百竅皆通)… 창룡입해(蒼龍入海), 건곤상화(乾坤相和), 태극자현(太極自現).” 

   노인은 인수린이 구결을 다 암송했는지 확인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인은 인수린으로 하여금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게 하더니 자세를 바로잡아 주며 설명을 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아라. 다음에는 단전(丹田) 그러니까 배꼽 아래 부분을 보아라.”   “옷 때문에 보이지 않아요.”   “껄껄-! 겉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뱃속을 어떻게 보아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뱃속에 큰 솥이 있다고 생각을 해.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네 몸으로 뜨거운 기운이 들어올 것인 즉 놀라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지금부터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돼.”   노인의 손이 허리 위쪽 명문(命門)에 닿는가 싶더니 한 줄기 따뜻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랄 것 없다. 네 기운을 끌어내기 위해 내가 조금 돕는 것이다.”    처음 겪는 기묘한 현상에 인수린은 움찔했지만 곧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랫배에 뭔가 가득 찬 듯한 느낌이 들지? 그 기운을 이용해서 네 몸속에 잠자고 있는 원기(元氣)를 끌어내는 거야. 구결을 떠올리며 네 마음으로 기를 움직여 보아라.”   정신을 집중하자 단전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마치 작은 물고기가 연못을 헤엄치듯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 이제 그만 눈을 떠도 된다. 어떠했느냐?”   인수린이 느낀 바를 말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록 지금은 올챙이 한 마리가 움직이듯 미약하겠지만 계속 단련하면 미꾸라지의 움직임이 더욱 커질 것이요. 보다 발전하면 한 마리 뱀이 요동치는 듯하고 절정에 이르면 용이 꿈틀대는 것 같을 것이다.”

   “단련은 어떻게 하나요?”   “단전은 금정(金鼎)이니 곧 금으로 만든 솥이요, 호흡은 풀무질이라 할 수 있다. 풀무질로 솥을 달궈서 기운을 계속 단련하는 것이다.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자면 스승의 일깨움이 있어야 하지만, 오늘 배운 것만으로도 네가 살아가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단련하도록 해라.”  

 당뇨 Tip!! 인슐린은 포도당을 에너지로 만들도록 세포로 보내는 열쇠 역할을 한다.

  [제6화] 금정육합기(金鼎六合氣) II

   다시 포도아문에서 하루를 보낸 인수린은 이튿날 아침 지 노인과 포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저잣거리의 숙부 인투내(印投內)를 찾았다.    이미 포쾌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숙부는 인수린을 만나자 가게 문을 닫고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장에서 건량 등 몇 가지 물품을 산 다음 자신이 기거하는 뒷골목의 허름한 집으로 갔다. 마흔 가까운 나이였지만 인투내는 혼인을 하지 않은 홀몸이었기에 살림은 단출했다.     “형님을 비롯해 우리 일가 모두가 무림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에게까지 흉수의 손길이 미칠 수도 있으니 빨리 이곳을 뜨는 것이 낫겠구나.”    인투내는 몸을 일으키더니 벽의 한 부분을 주먹으로 쳤다.    쉬익-!   놀랍게도 아무 것도 없던 벽에 사방 한 자[尺: 30.3cm]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벽을 파내고 회전식 문을 만들어 안쪽 공간에 귀중품을 보관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 안에서 꺼낸 물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동안 번 돈을 모아둔 전낭(錢囊)이었고, 다른 하나는 낡은 서책이었다. 책과 전낭을 품에 갈무리한 인투내는 옷가지와 도장 파는 도구가 담긴 목함(木函) 등 간단한 행장을 꾸리고는 인수린과 함께 집을 나섰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노숙을 하며 닷새를 보낸 두 사람은 이윽고 어진미르[龍仁]에 도착했다. 인투내의 다리가 불편하여 빨리 걷지 못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추적자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이리저리 길을 돌아 조심스럽게 이동했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이만하면 상당히 멀리 온 것 같구나.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오늘은 객잔에 머물며 음식다운 음식도 먹고 피로를 풀자꾸나.”   저녁은 만두와 국수였지만 지난 닷새간 먹은 건량(乾糧)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인투내는 죽엽청까지 한 병 곁들였다.    이 층의 작은 객방(客房)에 여장을 풀고 나자 인투내는 조카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엄숙한 표정에 인수린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몸을 바로 했다.    “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이야 비록 저잣거리에서 상인들의 인장이나 파주고 있지만, 우리 인가(印家)는 임금의 어새(御璽)를 만들던 집안이다. 하지만 일개 장인(匠人)일 뿐이니 권력다툼에 휘말릴 까닭도 없고… 일가 중에 강호의 시비에 휘말린 사람도 없으니 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더구나. 그렇지만 혹시 남아 있는 네게까지 위험이 닥칠지도 몰라 형님과 형수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우리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이곳까지 온 것이다. 참, 형님이 남긴 글씨가 분명 당(唐)․녀(女)․조(兆)라 했더냐?”   “그렇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걸요.”   “무림과 연관된 ‘당’이라면 사천당문(四川唐門)을 꼽을 수 있는데… 당문이 우리에게 원한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 형님이 남긴 글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여하튼 그 부분은 시간을 두고 조사해 보도록 하고 우선 네가 할 일이 있다.”     “숙부님, 무슨 일이옵니까?”   인투내는 품에 갈무리했던 서책을 꺼내 인수린에게 건넸다.    “우리 일가는 장인(匠人)일 뿐 무가(武家)는 아니다. 하지만 전해 오는 가전무공(家傳武功)이 있다. 어새를 만드셨던 네 고조부께서 친분이 깊은 무장의 인장을 새겨 준 일이 있는데, 그 분이 인장의 각법(刻法)과 칼 쓰는 법이 비슷한 면이 있다면서 오랜 연구 끝에 독특한 무공을 창안하여 선물했다. 그것이 바로 인인팔세(印刃八勢)다.    솔직히 나도 제대로 수련을 하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지만, 형수 그러니까 네 어머니 말로는 능히 강호일절(江湖一絶)로 무당(武當)이나 화산(華山)의 검에 버금갈 것이라 하셨다.”   “이 책을 제게 주심은……?”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더냐? 나는 이미 나이도 들었고, 몸도 불편하니 무술을 익히기는 힘들다. 그러니 가족의 원수를 갚은 일은 네 몫…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익히도록 해라.”   “하오나 저는 칼 쥐는 법도 모르는데…….”   “그 점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일단은 근처의 무관이라도 다니면서 기초를 닦도록 해라. 나는 흉수의 정체를 조사하는 한편 네게 알맞은 스승을 찾아볼 터이니.”   “알겠습니다. 숙부님.”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숙부와 조카는 두 손을 굳게 잡았고, 먹구름 속에 숨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교교한 빛을 뿌렸다.  

 무협지  

 강호(江湖)란 속세와는 다소 구별되는 특정 분야의 인물들이 활동하는 가상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정계, 학자들의 학계 등 모두가 나름의 강호인 것이다. 무인들이 활동하는 강호를 다른 말로 무림(武林)이라 하는데, 다소 좁은 듯하지만 보다 동적인 느낌을 주며, 수풀 림(林)을 쓴 것은 유학자들의 모임을 유림(儒林)이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종친회를 다른 말로 화수회(花樹會)라 하는 것 역시 씨족 전체를 숲으로 보고 일가를 구성요소인 나무로 보기 때문이다

[제7화] 기당회(基糖會)

   당요(唐姚)가 네 명의 수신호위(守身護衛)와 막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시비(侍婢)가 쪼르르 달려와 알렸다.    “아가씨, 가주(家主)께서 부르십니다.”      “알았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   “제삼약전(第三藥殿)에 계십니다.”   “알았으니 곧 가 뵌다고 여쭈어라.”   당요는 옷장에서 홍의를 꺼냈다. 그녀의 하얀 피부를 돋보이도록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당요는 동경(銅鏡)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제삼약전으로 갔다.  

  당가에는 세 곳의 약전이 있다. 제일약전은 일반 독(毒)을, 제이약전은 병에 대한 치료제를 그리고 제삼약전은 무공 증진이나 보신(補身)을 위한 영약(靈藥)과 당문의 비전(秘傳_인 칠대극독(七大劇毒)을 보관․개발하는 곳이었다.      별전(別殿)이라고도 불리는 제삼약전은 다른 약전보다 더욱 엄중하게 관리되었기에 가주 당과용(唐過用)의 허락을 받은 측근 몇몇만이 출입 가능한 곳이었다.    사천의 패자(覇者)에서 무림의 거대 세력으로 우뚝 선 당문이지만, 가문의 존망에 달린 문제가 아니면 사용을 금한다는 칠대극독을 만들어낸 이후로 독보다는 영약 연구에 치중하고 있었다.    칠대극독보다 강한 독을 만들어내기 힘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인의 성향이 강한 현 가주 당과용(唐過用)은 금력(金力)을 통해 무림에서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영약을 개발하여 상상도 못할 거액으로 팔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근자에는 제삼별전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오! 왔느냐?”   마흔 중반이 넘었지만 십 년은 젊어 보이며, 무인이라기보다는 마음씨 좋은 상인처럼 생긴 호남형의 사내가 그녀를 맞았다. 당문의 현(現) 가주 당과용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 곳곳에는 수많은 암기와 독이 숨겨져 있으며, 특히 여덟 자루의 단검으로 펼치는 비도술(飛刀術)은 바람보다도 빠르다고 해서 비도추풍(飛刀追風)이라는 별호를 얻도록 했으니, 겉모습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어인 일로 소녀를 부르셨습니까?”   “요아야, 네가 부탁한 영약이 완성되었구나. 그 뭣이냐? 설탕(雪糖)을 재료로 한… 헌데 과연 네 말대로 효과가 있는 것이냐?”   “지금은 그저 감미(甘味)만 낼 뿐이지요. 다른 약재를 섞어야 합니다. 비주(非州, Africa)의 가가분(可可粉, cocoa) 같은 것을 섞으면 확 달라지지요.”   “새로운 영약을 만들어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했지? 그 이야기 좀 자세히 들어보자꾸나.”   “먼저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별전에서 제조한 영약의 판매가 어떻습니까?”   “그렇잖아도 요즘 들어서는 판매가 부진하여 걱정이다. 아주 가까운 이들 외엔 찾질 않으니…….”   당과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는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게 무엇이냐?”   “첫째는 상표(商標)지요. 우리 당문은 독의 종가(宗家)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만들어도 ‘당(唐)’이라는 표지(标识)가 붙어 있으면 왠지 꺼림칙하게 느끼지요. 혹시 독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두 번째는?”   “가격이 너무 높으니 상당한 부자이거나 소수의 무림명숙(武林名宿) 외에는 구매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허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특정소수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해야 합니다. 값이 싸면서도 효과가 높은 약을 만들어 널리 보급하는 겁니다.”   “박리다매(薄利多賣)를 하잔 말인데… 과연 가능할까?”    “무인이라면 누구나 무공이나 내력(內力)을 증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따라서 영약이라면 눈에 불을 켜지요. 하지만 영약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구경조차 하기가 힘들고, 설사 누군가 판다고 해도 값이 비싸니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요. 이런 이들을 상대로 가격이 저렴한 약을 파는 겁니다. 그만큼 수요가 늘어날 터이니 수지를 맞출 수 있습니다.”   “한 명에게 천 냥을 받는 것이나 천 명에게 한 냥씩 받는 것은 같다는 말이로구나. 그에 대한 해결책은 있느냐?”   “표지의 문제는 ‘당(唐)’을 ‘당(糖)’으로 바꾸면 됩니다. 새로운 인식을 주는 것이지요. 게다가 영약의 원료인 당밀(糖蜜)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딸의 말이 수긍이 간다는 듯 당과용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네 의견은 상업적으로 옳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대중적인 영약을 복용하고 너도나도 무공이 증진되어 고수가 된다면 당문의 입지 또한 흔들리지 않겠느냐?”   “그 점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 식솔들도 같은 약을 먹으면 되지요. 현 상태에서 똑같이 공력이 증진되더라도 차이는 여전할 테니까요. 게다가 같은 약이라도 재료 배합을 달리하면 효과가 달라지니 우리는 따로 특제를 만들어 복용하면 되고요.”   “배합을 달리한다? 명품과 작통(作通)의 차이를 두자는 거로구나.”   당과용은 의문이 풀렸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우리 당가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난을 듣지는 않을까?”   “그 점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당문이되 당문이 아닌 지부를 만드는 겁니다. 기당산업연맹(基糖産業聯盟, sugar based industry association)을 만드는 겁니다. 줄여서 기당회(基糖會)라고 하면 되겠죠.”   “당문의 위세는 유지하되 다르게 보이도록 한다? 껄껄껄-! 과연 내 딸이로구나.”   당과용은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로 당요를 바라보았다.

   당요와 당굉 남매를 처음으로 집에 데리고 왔을 때,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보내던 눈길이란……. 만약 그의 아버지 당당해(唐當海)가 당시 가주가 아니었다면 가문의 수치라며 쫓겨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벽목국(碧目國) 설화에 등장하는 신대려라(辛大麗羅, Cinderella)처럼 일가의 형제자매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모와 구박을 받았던가? 단지 태생이 천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아이가 이렇듯 훌륭히 성장하여 이젠 가문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과용의 상념은 그가 약관(弱冠)을 지난 얼마 후인 우남(雫南) 원년 무력 1421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당뇨 Tip!!인슐린이 부족하면 당분은 갈 곳을 찾지 못하여 혈액 속에 머물게 되는데, 이를 고혈당(高血糖)이라 한다.

[제8화] 비도추풍(飛刀追風)

 “합오(合唔)-!”목멱산(木覓山: 남산의 옛 이름) 자락에 장호성(長呼聲)이 울려 퍼졌다. 산 정상에서 조금 벗어난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서 약초를 캐던 당과용은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났음직한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어디 표행(鏢行)인가?” 표국(鏢局)이란 물품을 다른 지역으로 운반해 주는 업체로 상계로 진출한 무인들의 집단으로, 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표행이라 한다.  

 상인들은 한 지역에서는 흔한 물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져가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다. 하지만 과거에는 운송수단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물품을 노리는 무리, 즉 산에는 산적(山賊), 물에는 수적(水賊)이 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도적떼를 만나면 물품을 몽땅 빼앗기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관군(官軍)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자체적인 방어를 위해 보표(保鏢, bodyguard)나 호상단(護商團: 상단을 호위하는 무사)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관군이 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표나 호상단의 실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괜한 대항을 했다가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고수급 실력을 가진 무인을 고용하면 안전했지만, 그러자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했기에 이문이 많이 남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필요에 의해 등장한 것이 표국이다. 표국은 대개 무림 대파(大派)에 속가(俗家)로 입문하여 무공을 닦은 제자들이 상계로 진출한 반상반무(半商半武) 집단으로, 일반무사인 표사(鏢士), 표사들을 이끄는 표두(鏢頭) 그리고 대표인 국주(局主)로 이루어져 있다.  상인은 표국과 물품 운송계약을 맺는데, 일이 무난히 진행되면 소정의 운송비를 지불하지만, 만의 하나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표국이 물품대의 세 배를 물어 주는 것이 관례였으니, 보험(保險)까지 구비된 택배회사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표국 간에도 경쟁이 치열했으므로 비용도 비교적 적절했고, 한 번에 많은 물품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표국과 산적 즉 녹림(綠林)과의 관계는 기묘했다. 양쪽 다 명예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인 터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피를 부르는 충돌을 꺼렸다.  

 녹림의 입장에서도 힘없는 상인이 아니라 무력(武力)을 갖춘 집단과 상대하자면 자신들이 비록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표국은 무인 집단인 만큼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변변찮은 산적 무리를 토벌할 수도 있지만, 도적이 없으면 표국도 존재할 필요가 없으니… 둘의 관계는 공생공존(共生共存)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표국과 녹림 간에 묵계(黙契)가 생겼는데, 산을 지날 때면 표행(鏢行)의 대표가 통행료 조로 얼마의 사례를 하면 녹림도가 길을 비켜 주는 식이었다. 피를 보지 않으면서 서로의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묵계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녹림이 욕심을 내어 표사들을 살해하고 물품을 강탈하는 일이 생기면, 피해를 당한 표국은 통문(通文)을 돌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면 강호의 모든 표국은 물론 그와 연계된 문파까지 동원되어 흉수를 궤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표행을 하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을 지날 경우도 있다. 산에 녹림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또한 실력도 알지 못하므로 표사들은 ‘합오-!’라고 크게 외쳐 자신이 현재 표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계속 약초를 캐던 당과용의 귓가에 아까의 외침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수십 장 떨어진 곳이었지만 날카로운 청력(聽力)을 가진 그는 놓치질 않았다.   챙-! 챙강-!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간간이 비명이 들려 왔다. 싸움이 난 것이다.   “이곳의 쌍산(雙山: 녹림도의 수괴)은 욕심이 많은 놈인가 보군.”그는 약초 캐기를 멈추고 신형을 날렸다.   “으악-!”  “이런 제길-!” 당과용이 도착한 산중턱 공터에는 이미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댓 명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곳곳에서 비명과 욕설이 들려 왔다.  스무 명 남짓한 표사들이 표물(鏢物)을 실은 수레를 중심으로 원진(圓陣)을 형성하고 버티고 있지만, 그 중 서넛은 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고 산적들의 숫자는 훨씬 많았으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표두로 보이는 장한은 산적의 수괴인 듯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털보와 맞서고 있었다. 그는 무당 속가인 듯 검이 제법 날카로웠지만, 털보의 용력(勇力) 또한 만만치 않아 호각세(互角勢)를 이루고 있었다.   “멈춰라-!” 당과용은 한껏 내력을 돋워 고함을 질렀다. 공력이 실린 그의 음성에 모두가 칼을 거두고 한 발씩 물러나, 홀연히 나타난 사내에게 시선을 모았다.  “농사를 지어도 탐관오리들에게 빼앗기니 먹을 것이 없어 산으로 도망쳐 와서 도적이 된 것까지는 이해한다만… 물건만 빼앗으면 되었지 인명까지 해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인데 그런 공자님 말씀을 내뱉느냐?” 산적 두목인 털보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악을 썼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신법이나 기세가 대단해 보였지만, 수많은 부하들 앞에서 야코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호라, 네가 두목인 모양이구나. 지금이라도 물러가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단……?” 두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과용의 소매에서 은빛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쉬쉬쉭-! 타타타탁-! 두목이 손에 든 도끼의 자루에 네 자루의 단검이 박혀 있었다.  “으잉-!” 두목은 깜짝 놀랐다. ‘어마, 뜨거라!’하면서 도끼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하여 간신히 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도끼자루가 아니다. 이마? 심장? 어디든 말해라. 원하는 곳에 꽂아 주마.” 개인적으로 맞섰다면 당연히 줄행랑을 놓아야 했다. 순식간에 비도 네 자루를 날리는 솜씨라니, 그것도 도끼자루에 정확히 박히도록. 하지만 두목으로서의 체면이 있었다. 만약 여기서 등을 보인다면 앞으로 이 장사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었기에 그는 용기를 짜내어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했다.

당뇨 Tip!! 정상혈당은 80~120 mh/dl이지만, 고혈당이 진행되면서 200~300mh/dl 심지어는 1,000mh/dl 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제 9화] 비도추풍(飛刀追風) II

“이제 보니 한 수가 있는 놈이로구나. 하지만 아무리 네 솜씨가 빨라도 수십이 넘는 우리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을까?”두목의 물음에 당과용은 냉소를 지으며 답했다. “생긴 건 곰인데 머리 쓰는 것은 여우로구나. 물론 비도술로야 한 번에 수십 명을 상대할 수는 없지. 칼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멍청하게 머릿수만 믿고 덤비는 너희 같은 녀석들을 상대하는 방법이 있지.”당과용은 가까이 있는 다섯 명의 산적을 부르듯 가볍게 손짓을 했다. “크윽-!”“우욱-!”산적들은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양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분명 당과용과는 대여섯 걸음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손사래를 치는 듯한 극히 자연스런 동작이었지만 실은 팔목에 은밀하게 장착한 분사통(噴射筒)을 이용하여 소량의 독액(毒液)을 내뿜은 것이었다. “독-? 그, 그러면 다, 당신은 다, 당문의……?”산적 두목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한 방울 독액으로 수백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다는 공포의 대명사 당문의 사람이라니…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은 날이었다.  “깊은 산중에 사는 놈 치고 아주 무식하진 않구나. 더 이상 피를 보기 싫으면 썩 물러가라.”  

 털보는 분한 듯 당과용을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만 돌아간다.”두목의 명령에 산적들은 부상한 동료들을 업거나 부축하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털보 역시 등을 돌리려는데, 뒤에서 당과용의 음성이 들렸다. “잠깐! 내 단검은 돌려 줘야지. 그리고 이것 가져가라. 아까 쓰러진 네 부하들 해약이다.”흰색의 환약(丸藥) 다섯 알이 털보의 발치에 정확히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산 전체가 독으로 뒤덮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휴우-!”털보는 한숨을 내쉬며 도끼자루에 박힌 단검 넉 자루를 뽑아 내려놓고는 환약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수하들의 목숨을 건지도록 해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면서.산적들이 물러가자, 털보와 겨루던 표두가 당과용에게 다가와 공손히 읍(揖)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노합(老哈: 강호인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은 서초표국(瑞草鏢局)의 표두 유종성(柳宗成)이라고 합니다. 위기에서 구해 주신 당문의 귀인께 감사드립니다.” “사해(四海)는 동도(同徒)라 했거늘, 어려움에 처한 이를 구하는 것은 무인의 당연한 도리 아닙니까?”“당가의 협사인 줄은 알겠지만… 혹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존성대명이라니 과분하오이다. 저는 과용(過用)이라고 합니다.”“당문의 현 가주 당당해 대협의 영식이자 무림팔수(武林八秀) 가운데도 으뜸이라는?”“허허-!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붙여 준 작은 이름일 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무림팔수란 젊은 무인 가운데 빼어난 여덟 명을 일컫는 것으로, 대개 소림, 무당, 개방(丐幇) 등 구파일방(九派一幇) 출신과 남궁세가(南宮世家), 진주언가(晉州彦家), 하북팽가(河北彭家) 등 무림 명가의 자제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문은 무공보다는 독에 의존하는 바가 컸기에 팔수에 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당과용은 이를 부끄러이 여기고 절치부심(切齒腐心) 각고의 연마 끝에 독이 아닌 순순한 무공으로 당당하게 팔수에 든 인물이었다. 그가 특히 공을 들인 것은 비도술이었는데, 무재(武才)로 소문난 팔대조 이후 연성한 이가 없다는 당문 최후의 비기(秘技) 만천화우(滿天花雨)의 구현에 성공한 것이었다.  

 약관(弱冠: 20세)을 갓 넘은 나이였기에 아직 팔 성(成: 1성은 10%)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을 뿐이지만 무림팔수에 들었기에, 당문 전체가 흥분했고 나이가 들어 공력만 뒷받침된다면 능히 강호 십대고수의 한 사람으로 꼽힐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형제들도 자극을 받아 용독(用毒)과 함께 무공 증진을 위해 고련(苦練)을 했는데, 바로 당남용(唐濫用), 당오용(唐誤用), 당소용(唐所用), 당유용(唐有用)으로 후일 당문오웅(唐門五雄)이라 불리게 된 이들이었다. “강호의 후기지수(後期之秀)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분을 만났으니 유 모(柳某)는 실로 홍복(洪福)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학(末學)을 너무 추켜세우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한은 잊어도 은혜를 잊으면 대장부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산만 내려가면 바로 목적지이고 맡은 바 일도 마치게 되니 제가 구명지은(救命之恩)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좋은 집을 알고 있으니까요.”    

팁!! 당뇨는 제1형인 소아당뇨와 제2형인 노인성당뇨로 구분된다.

  [제10화] 홍루연정(紅樓戀情)

“하하하-!”“호호호-!”비취빛 휘장 아래, 붉은 촛불이 일렁이는 하밀루의 별실(別室).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여인들의 교소(巧笑)가 들려 나왔다. “여기 계신 당 소협을 잘 모셔야 한다. 위명(威名)도 쟁쟁한 무림팔수 가운데 한 분이시니까.”표두 유종성의 말에 함께 자리한 늙수그레한 표사 양석(梁錫)이 거들었다. “어찌 무림팔수뿐이겠소. 십 년 후면 강호 십대고수 반열(班列)에 들 것이오.”“정말 오늘 당소협의 비도술을 보고 안계(眼界)를 넓혔소이다. 바람보다 빠르던걸요.” “무슨 소릴! 비도가 바람도 멈추게 할 것 같았소이다. 앞으로 소협의 별호를 비도추풍(飛刀追風)이라 하면 어떨까요?” 

본래 별호란 강호의 동도가 붙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늦게 아는 경우도 있다.  “아, 아직 그런 거창한…….”당과용은 사양하려 했지만 기녀들의 탄성에 얘기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어머나! 이 분께서요? 인물도 이리 훤칠하신 분이 무공까지 뛰어나시다니…….”“소녀가 한 잔 올리겠나이다.”“천기(賤妓)가 노래를 한 곡 할까요?”기녀들은 저마다 아양을 떨며 당과용의 환심을 사려 했다.

목멱산 남쪽 넘어 자리한 큰배꽃담[梨泰院] 길가 하밀루(夏蜜樓)의 별원(別院). 상당히 고급스런 홍루(紅樓)로 강호 이류급 정도인 서초표국의 포두 유종성이 단골로 삼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호기를 부린 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당과용에 대한 인사와 함께 사천당문이라는 명문 세력과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맺고자 함이었다.  

 솔직한 이야기로 명문정파나 오대세가 등 무림에서 꼽힐 만한 세력들은 표국을 그리 높게 인정하지 않았다. 무당이나 종남(終南) 등 명문파의 속가 출신이 표국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예외겠으나, 그렇지 않은 표국은 한 수 아래로 보았다. 주로 녹림도를 상대하다 보니 절정의 무공도 필요가 없었고, 기본적인 단련은 하지만 피나는 고련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무공이 우선인 세계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정이 이러한 즉 유종성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칠 리 있겠는가. 까짓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문과 작은 인연의 끈이라도 만들어 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아마 국주도 기뻐하리라.  

 술이 몇 순배 돈 터, 유종성은 주석(酒席)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도록 주문을 했다.  “자, 너희들 가운데 누가 오늘 당 공자(唐 公子)를 모실 영광을 갖겠느냐?”“저요!”“소녀가 모시겠습니다.”기녀들은 서로 자기가 모시겠다면서 가벼운 몸싸움까지 벌였다. 명문가의 공자와 하룻밤을 보낸다면 적지 않은 화대(花代)를 받을 수 있을 것임은 물론 상대는 인물까지 훤칠하니 기녀로서는 최상의 손님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때 유 표두가 시중을 들고 있는 노기(老妓)에게 한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 신호를 알아챈 노기가 넌지시 당과용의 의중을 떠보고자 말을 꺼냈다.  “저희 하밀루에는 독특한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춤을 무척이나 잘 추지요. 한 번 보시렵니까?”“정말입니다. 나도 전에 한 번 보았는데 선녀가 따로 없더이다.”유종성이 맞장구를 치며 당과용을 부추겼다. 슬도 얼큰히 취한 만큼 이제 결정타를 날리려는 것이다.  “화사(花蛇: 꽃뱀)야!”노기의 부름에 문이 열리며, 한 기녀가 나타났다. 속이 비칠 듯한 붉은 갑사의(甲紗衣)와 대비되는 하얀 얼굴, 풍만한 가슴과 둔부 그리고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 뭇사내를 홀린다는 죽죽방방(竹竹旁旁)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화사라고 하옵니다. 공자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여인은 공손히 절을 한 뒤, 일어서서 악사(樂士)들 앞에 섰다. 띠리링-! 비파(琵琶)의 현에서 울려나오는 영롱한 음에 맞춰 여인은 서서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수단곤산옥(誰斷崑山玉) 재성직녀소(裁成織女梳)견우이별후(牽牛離別後) 만척벽공허(謾擲碧空虛)

누가 곤산의 옥돌 쪼개어 직녀의 얼레빗 만들었나?견우와 서러운 이별 뒤 푸른 하늘에 던졌더니 반달이 되었네.


 여인은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탁한 하수기(夏垂氣, husky)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며, 마치 음률과 몸으로 대화를 나누듯 곡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한 춤사위를 보였다.  

 애조(哀調) 띤 가락에 가녀린 몸은 흐느끼는 듯했고, 퉁겨진 비파 현(弦)처럼 전신이 미세하게 떨렸다. 빙그르르 몸을 한 바퀴 돌리자 치맛자락은 너울지며 객청을 덮는 듯했고, 마치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듯 몸을 한껏 낮추며 바닥에 앉음으로써 마무리를 했다.     

현란한 춤사위에 좌중은 넋을 잃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빈(主賓)인 당과용은 물론 이미 춤을 보았다는 유종성과 늙은 표사 심지어는 시중들던 기녀들까지 전부 넋을 잃은 것 같았다.짝짝짝-!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정말 멋진 노래와 춤이었소. 만약 소저의 무공이 그와 같다면 능히 강호 일류고수라 할 것이오. 그런데 방금 연주한 노래가 어떤 곡인지?”당과용의 물음에 화사는 하얀 치아를 보이며 조용한 음성으로 답했다.   “해동 명기(名技) 황진이(黃眞伊)의 반월(半月)이라는 시입니다.”“허어-! 정말 좋구나.”당과용이 감탄을 하자 화사가 일어서며 물었다. “한 곡 더 하리까?”“좋고말고!” “공자께서는 당가의 협객으로 비도술에 능하시다 들었습니다. 마침 소리비도(小李飛刀)라는 노래를 소녀가 알고 있사오니 ‘소당비도(小唐飛刀)’라고 생각하시고 들어 주십시오.”

띵-! 띠디딩-!애조를 띤 아까의 음률과는 달리 힘차면서도 비장한 곡이 연주되었고, 화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득일신호본령(難得一身好本領) 정관시종틈불과(情關始終闖不過)  틈불과유정밀의(闖不過柔情蜜意) 난휘도검무결과(亂揮刀劍無結果)  유수도도참부단(流水滔滔斬不斷) 정사백결충불파(情絲百結衝不破)  도봉냉열정미냉(刀鋒冷熱情未冷) 심저갱시난과(心底更是難過)      무정도영불지착(無情刀永不知錯) 이별심처초(離別心凄楚)          인생궤허실의(人生几許失意) 하필편편선중아(何必偏偏選中我)  휘도검단맹약(揮刀劍斷盟約) 상식주정성대착(相識注定成大錯)

일신에 빼어난 무공 익히기도 어렵지만, 애정의 관문은 시종 지나지 못하겠구나.그 관문 지나지 못한다 해도 정은 부드럽고 달콤하니 어지러이 칼을 휘둘러도 결과가 없도다.도도히 흐르는 물은 베도 잘리지 않고백 겹으로 꼬아진 애정의 실은 끊을 수 없네.칼끝은 차가워도 정은 뜨거워마음은 더더욱 괴롭구나.무정한 칼, 둘이 영원히 어긋남을 알지 못하니 헤어지는 마음 비참하고 괴롭기 그지없네. 인생은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하필 왜 나를 선택했단 말인가?칼 휘둘러 굳은 맹서 끊음은크게 어긋날 운명임을 서로 알고 있을진저.

 당뇨 Tip!! 임신성당뇨병은 일부 여성의 임신 기간에 발생하는 것으로, 출산 후에 포도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제11화] 홍루연정(紅樓戀情) II

춤사위 또한 조금 전과는 전혀 달랐고 다른 어떤 춤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나비처럼 표홀(飄忽)했고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다.특히 한 발을 든 채 무릎을 까닥거리며 몸을 수 차례 회전시키는 동작은 마치 중력(重力)의 적용을 받지 않는 듯 거침이 없고 부드러웠다. 당과용의 느낌은 퇴기의 귓속말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아이의 장기인 무중력무(無重力舞)입니다.”비파의 줄이 끊어질 듯 한껏 당겨지며 고음(高音)을 뿜어내자 춤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화사는 마치 공중부양(空中浮揚)을 하는 듯 일순(一瞬) 정지하는가 싶더니 한 마리 나비처럼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짝짝짝-!박수가 잦아들자 당과용이 입을 열었다. “빼어난 용모에 선녀의 춤사위요 게다가 문재(文才)도 갖췄으니 침어낙안(侵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가 따로 없구나. 정녕 가인(佳人)이로다.”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는다는 침어(侵魚), 기러기가 날기를 잊고 떨어진다는 낙안(落雁), 달이 시샘하여 빛이 흐려진다는 폐월(閉月),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만다는 수화(羞花). 이는 중국의 사대미인, 즉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한(漢) 나라의 왕소군(王昭君),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唐) 나라의 양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당과용은 이 모든 찬사를 화사라는 무기(舞妓)에게 보냈으니… 두 사람이 합방(合房)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날 밤, 사내는 구름이 되어 누리에 드리우고, 여인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었다.   무공은 낮아도 노회(老獪)하기 그지없는 유종성의 계략대로 일이 진행된 것이었다.

화문부부(花紋夫婦)“가가(哥哥)! 손님이 오셨습니다.” 화사의 음성에 책을 보고 있던 당과용이 고개를 들었다. “손님?” “당가에서 오셨다고…….”“집에서? 대체 누가……?”“모셔올까요?”고개를 갸웃거리던 당과용이 일어섰다. “아냐, 내가 나가 보지.”그를 찾은 손님이란 다름 아닌 동생 당남용(唐濫用)과 숙부 당당모(唐當模)였다. “숙부님! 남용아! 어떻게 여길?”“이토록 오래 동안 연락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네 실력이야 안다만, 강호는 하도 흉흉한 곳이라…….”“죄송합니다.”당과용이 말끝을 흐리는 숙부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곤 얼굴을 돌려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느냐?” “형님도 참! 만리향(萬里香)을 잊었소?”만리향이란 향이 만 리를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정작 만리향을 묻힌 당사자나 일반인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추적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당가 특유의 기물(奇物)이다. 때문에 당문의 식구들은 원행(遠行)을 할 때는 소재 파악을 위해 반드시 만리향을 묻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당과용이 화사와 함께 보낸 날이 어느덧 달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치마폭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형님 아니 가주께서 찾으신다. 어서 떠날 채비를 하거라,”숙부의 말에 당과용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사를 두고 어찌 떠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부친이자 가주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짐을 챙기겠다는 구실로 잠시 화사를 만난 당과용은 사정을 알렸다. “급한 일이 생겨 가봐야겠소. 이해하구려.”“가가! 반드시 돌아오실 거지요? 꼭 소녀를 찾아주실 거지요?”“염려마시오. 내 어찌 당신을 잊겠소?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당신을 찾아오리다.” “가가! 흑흑-!”화사의 눈물을 뒤로 하고 하밀루를 나온 당과용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며 조용히 동생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날 찾으시는 까닭을 아느냐?”“형님은 좋겠소.”당남용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좋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형님 혼인시킨다고 찾아오라 하신 거요.”“혼인?”뜻밖의 얘기였다. 혼인이라니! 더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나누던 화사는 어쩌란 말인가?당과용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차기 가주직을 승계할 몸이니 무엇보다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 모용가의 여식과 혼례를 올리기로 하였으니 그리 알아라. 이는 아비로서는 물론   가주로서 내리는 명이다.”지엄한 아버지의 말에 당과용은 입도 벙끗 할 수 없었다.


한 달 후, 당과용의 혼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가와 모용세가라는 무림 명가의 결합인 만큼 수많은 무림 명숙들이 참여했다. 구파일방에서는 장문인은 아니더라도 장로들이 참가했으며, 오대세가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방파의 원로들이 내방하여 축하를 했다. “감축드립니다. 신랑은 훤칠한 장부요 신부는 화용월태(花容月態)이니…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로군요.”“무림의 중추인 양가(兩家)가 이렇듯 굳건히 맺어졌으니 가히 경사가 아닐 수 없소이다.”이처럼 강호의 눈과 귀는 온통 당과용과 모용란의 혼인에 쏠려, 주루와 다관(茶館)에서 혹은 거리에서는 시샘어린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제길! 어떤 놈은 모든 것을 가졌는데… 나는 이 모양이니. 어휴! 내 팔자야.”“나도 저런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수 있다면 다음날 죽어도 한이 없겠다.”하지만 항간에 오가는 말과는 달리 당사자인 당과용과 모용란의 신혼은 꿀처럼 달콤한 것이 아니라 슬픔[悲]과 몰락[墮]으로 들어가는[門] 비타문(悲墮門, bitter moon)이 되고 말았다.  

“아악-!”혼례를 올린 지 닷새만에 신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두 사람은 별거를 하게 되었다. 이유인 즉, 당과용이 신부 모용란에게 화류병(花柳病: 성병)을 옮긴 때문이었다. 화사와 보낸 황음(荒淫)의 시기에 옮은 것인데, 당과용은 어린 시절부터 독을 취급했기에 자기도 모르게 내성(耐性)이 생겨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순결한 몸인데다가 여성인 모용란에게는 즉각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부끄러웠고 명문가의 엄한 교육을 받았기에 차마 발설하지는 못하고 남편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으로 무언(無言)의 항변을 했다. 이유를 모르는 당과용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투정으로 알고 며칠이 지나면 풀릴 것이라 여겼지만, 모용란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화가 치밀어 같은 방식으로 맞서니 두 사람 사이에 패인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휘감기기는커녕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계집!’‘화류병이나 옮기는 지저분한 자식!’서로에 대한 생각이 이랬으니, 두 사람이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각방을 쓰는 사이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나마 서로의 체면이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칼부림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뇨 Tip!!체질적으로 췌장이 매우 약하거나 스스로 췌장을 파괴시키는 항체를 생산하여 인슐린 생산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제1형 당뇨병(소아당뇨, 수척형당뇨)이라고 한다.

  [제12화] 화문부부(花紋夫婦) II

이런저런 이유로 당과용이 집을 벗어나 꿈에도 그리던 화사가 있는 이태원의 하밀루를 찾은 것은 거의 두 해가 지나서였다. 화문부부(花紋夫婦), 즉 무늬만 부부인 채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당과용의 화사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차기 가주로서 익혀야 할 사항이 많았고 또한 엄한 가법(家法)과 주위의 눈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밀루는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화사의 무중력무의 인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었다. “화매(花妹)! 나요.” 반가운 마음에 화사의 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간 당과용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사의 품에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아기는……?”“가가의 아이랍니다.”“내 아이……?”“가가가 떠나시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태기(胎氣)가 있음을 알았지요. 하지만 소녀의 능력으로는 가가께 연락을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가가께서 영영 돌아오시지 않는다 해도 혼자 키울 생각으로 아이를 낳았지요.”화사는 강보(襁褓)를 열어 아이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아직 어려서 윤곽이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얼굴과 닮은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아이의 이름도 짓지 못했습니다. 가가께서 지어 주셔요.”잠시 생각하던 당과용이 입을 열었다. “당신을 닮아 예쁘게 클 것이니 요(姚)라 하면 어떻겠소?”“당요(唐姚)! 좋은 이름이네요.”딸 때문이 아니더라도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던 당과용은 다시금 열흘 가까이를 화사와 지내게 되었다.

꿈결 같은 시간이 흐르고… 당과용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신의 핏줄이라도 인정받지 못한 딸을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부친의 꾸중도 무서웠지만, 자칫 처가인 모용세가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당과용은 사람을 시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화사를 하밀루에서 데리고 나와 하남(河南)에 아담한 집을 구입하여 기거하도록 했다. 또한 두 모녀가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하도록 충분한 전답(田畓)도 마련해 주었다.


혈맹서약(血盟誓約)

오늘도 당요는 누런 벼이삭이 물결치는 넓은 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는 벼이삭민도 못한 신세이니… 눈에 보이는 모든 전답이 집안의 소유라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논두렁에 걸터앉아 멍하니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벌판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긴 것은 육 년 전 그러니까 그녀가 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엄마! 왜 우린 아빠랑 같이 살지 않나요?”딸의 갑작스런 물음에 어린 아들 굉(宏)에게 밥을 먹이던 화사는 손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빠는 바빠서 자주 들리지 못하신단다. 그런데 너 무슨 얘기 들었니?” “애들이 저더러 첩의 자식이라고 해요.”   화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하긴 당과용이 집에 머무는 것은 한 해에 고작 한 달 정도였으니, 첩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도 당연했다. 자신 또한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숨은 여자일 뿐이고, 또한 당과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도 비록 당씨 성을 가지긴 했지만, 혈육으로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미묘한 상황을 여덟 살 난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준단 말인가? 그러나 화사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당요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요의 한(恨)은 슬픔을 넘어 점차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노을이 드넓은 벌판을 붉게 물들였건만 당요는 일어날 줄 모르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상이 싫으냐? 모든 것이 미우냐?”그녀에게 들려온 음성. 더없이 공허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울림이 있었다. 당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복수할 힘을 갖고 싶으냐?”당요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석로(石老)라고 한다. 비밀결사 자유석공(自由石工, Freemason)의 단원이지. 우리 자유석공은 세계 방방곡곡에 로지(路止, lodge)라는 지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수십만에 이른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국가 간의 전쟁을 일으키는 등 온갖 대사(大事)에 관여하지.” “자․유․석․공……?”

자유석공, 즉 프리메이슨(Freemason)이란 오늘날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중세 석공들의 조직인 길드(guild)가 발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다의 왕으로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솔로몬 때부터 태동되었다고 한다. 고대 각국의 왕들은 저마다 화려한 궁전이나 성전(聖殿)을 짓기 위해 뛰어난 기술을 지닌 석공들을 필요로 했기에, 서로 협약을 맺고 석공들에게는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 출발점이었다는 것이다.이들은 건축기술 외에도 한 지역의 특산품을 다른 곳에 가져가 비싸게 파는 소규모 무역상 역할을 했으며,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정치 및 경제, 종교 등에 관여하는 일종의 비밀결사로 발전했다.프리메이슨은 18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유럽 각국과 미국에까지 퍼졌고 세계 시민주의와 세계 단일정부를 지향하고 종교적인 자유를 부르짖어 가톨릭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혁명, 제2차 세계대전, 아시아의 금융 위기 등 세계의 모든 중요한 정치․경제적 사건의 배후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말이 있으며, 사회지도층에 넓게 포진해 있는 인맥을 이용하여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다는 음모론도 심심찮게 야기되고 있다.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마르크 샤갈, 코넌 도일, 클라크 게이블 등 예술인과 조지 워싱턴,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해리 트루먼,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등 미국 대통령과 자동차왕 헨리 포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그리고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 등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프리메이슨의 회원이었다고 한다.  

 당뇨 Tip!! 인슐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사의 양을 조절하고, 운동을 통해 표준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제13화] 혈맹서약(血盟誓約) II

“네가 자유석공 단원이 되는 피의 맹서를 한다면, 세상을 오시(傲視)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물론… 조건이 있겠지요?”“후후후! 총명한 아이로구나.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하지만 네가 할 일이란 아주 쉬운 것이다. 그저 우리에게 협조만 하면 되니까.”“좋아요! 맹세를 하겠어요.”“이제 뒤를 돌아보아라.”몸을 돌린 당요의 눈에 허름한 마의(麻衣)로 몸을 감싼 계피학발(鷄皮鶴髮)의 추레한 노인을 들어왔다. 마치 이곳저곳을 떠돌며 비럭질을 하는 걸인처럼 보였지만 두 눈에서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 이 문서에 네 수결(手決: sign)을 해라.”노인은 그녀에게 한 장의 양피지와 붉은 액체가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당요는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그릇에 담갔다. 피로 짐작되는 끈적거리는 액체에 손을 담그자 마치 벌레가 스멀거리는 듯 불쾌한 기분이었지만 꾹 참아냈다.  그녀가 그릇에서 손을 꺼낸 뒤 손바닥을 펴서 양피지에 대고 세차게 누르자, 붉은 색의 앙증맞은 손바닥이 새겨졌다. 노인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양피지를 품에 갈무리하고는 백색의 환약을 내밀었다. “이로써 너는 혈맹의 일원이 되었다. 자, 이 약을 복용하거라. 네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당요는 주저하지 않고 약을 삼켰다. 입안에 그윽한 향기가 감돌더니 식도를 타고 내려간 약은 순식간에 녹아 온몸으로 퍼졌다. 그러자 단전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급격하게 중단전으로 올라오더니 곧바로 상단전까지 올라갔다. 일순 머릿속이 하얘지는가 싶더니 청량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수백 개의 폭죽을 동시에 터뜨린 듯 신체 구석구석의 맥(脈)에 강한 자극이 전해져 왔다. 온몸의 세맥(細脈)이 열린 것이다.     “이제 너는 본맹의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신체로 탈바꿈했다. 약기운이 완전히 네 것이 되고 나면 비전(秘傳)의 심법을 전수해 주마.” “제가 먹은 것이 무슨 약인가요?”“후리단(厚利丹, freedom)이라는 본문의 비약(秘藥)이다. 기력을 증강시켜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효과가 있다.”휘잉-!갑자기 몰아친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나부끼며 당요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낙엽이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을 때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핏빛으로 물든 그녀의 오른손은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영약삼종투(靈藥三種套)

청의무복(靑衣武服)을 입은 가녀린 체구의 여인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슈슈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영활하게 움직였다. 무려 여덟 번의 칼질을 한 뒤 허공에서 몸은 두 차례나 회전한 다음 가볍게 착지를 했다. 눈부시게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은 여전했지만 풍만한 가슴과 세요(細腰)가 한껏 성숙미를 풍기고 있는 여인. 다름 아닌 당요였다. “껄껄-! 수라도법(修羅刀法)이 칠 성(七成: 성은 10%)에 이르렀구나.”석로가 걸쭉한 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소녀의 재질이 부족하여 아직 미숙하옵니다.”“아니다. 네 나이에 그만한 성취를 이루다니…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구나. 이제 채기법(採氣法)을 익혀도 되겠어.”“채기법이라 하심은……?”“타인의 기운을 가져다가 사용하므로 흡정대법(吸精大法)이라고도 하는데, 네가 익힐 비술은 규화보전(閨花寶典)에서 비롯된 건곤대나이법(乾坤大那移法)이다. 기를 역행(逆行)시켜 생명의 정수(精髓)를 취하는 것이다.”“동생 굉(宏)이도 함께 익히겠지요?”“아니다. 건곤대나이법은 여자만이 익힐 수 있다. 남자는 거세(去勢)를 해야 한다.  고환(睾丸)을 제거해야 정(精)의 유입으로 인한 주화입마(走火入魔)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굉이는……?”독사처럼 표독한 심성을 가졌지만 동생 굉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당요의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났다. “염려마라. 그 아이에게 적합한 외문기공(外門氣功)이 있으니까.”“철포삼(鐵袍衫, iron shirt)이나 금종조(金鐘罩, golden bell weir) 같은 호신기공(護身氣功)을 이르시는 겁니까?”“그 따위 하급기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승무공으로 거북이[龜]와 비슷하게[似而] 몸을 단단히 만들어 보호하는[保] 사이보구(似而保龜, cyborg) 신공이라 한다. 도검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는 기공법이지.”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석로는 두 사람에게 전음입밀법(傳音入密法)으로 각각의 구결(口訣)을 일러 준 뒤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이 행공하는 모습을 살펴보고는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벌써 너와 만난 지도 삼 년이 흘렀구나. 여태까지 힘든 훈련을 잘 견뎌 주었다. 이제 네가 당가로 떳떳하게 들어설 날도 머지않았으니… 우리 계획은 한 발 더 성취에 다가선 셈이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수련을 부단히 하여라.”

석로의 말은 이듬해에 실현되었다. 당요는 십칠 세가 되던 유신(維新) 3년 무력  1439년에 적손(嫡孫)으로 인정받아 당당하게 당가에 들어섰다.   그동안 당가는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당당해가 아들 당과용으로 하여금 가주직을 승계하도록 했으며, 또한 혼인 직후부터 별거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모용란과의 사이에서 소생(所生)이 없자 결국 당요와 당굉을 혈육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화사는 정실(正室)이 아니므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기존의 거처에서 그대로 살도록 했다.     물론 파문은 작지 않았다. 당요와 당굉이 당가에 오던 날, 당과용의 동생 당남용(唐濫用)과 당오용(唐誤用)을 비롯한 직계들은 두 아이에게 탐탁찮은 눈길을 보냈으며, 가모(家母)인 모용란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아예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당요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고, 당굉의 손을 꼭 쥐며 복수를 다짐했다.    ‘두고 봐. 곧 모두가 내 앞에 모두 무릎을 꿇게 될 테니까.’어쨌거나 명실(名實) 공히 당가의 여식으로 인정받게 된 당요는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실은 석로의 사주(使嗾)에 의한 것이었지만-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한적한 마을을 골라 은밀히 당독(糖毒)을 살포하여 효과를 검증하고, 건곤대나이법을 한층 발전시켜 자신의 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당(糖)과 원정(元精)을 취할 수 있는 흡당대나이법의 위력을 시험했다. 일시에 모든 주민이 고혼(孤魂)이 된 인씨촌 역시 이 같은 악행(惡行)의 결과였던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실험으로 당독의 효과와 스스로의 무공에 확신을 갖게 된 당요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보를 재촉했다. 영약을 빙자한 만성독으로 당가의 식솔은 물론 강호인의 대부분을 중독시켜 무림을 일통하고 나아가 일반인에게까지 마수를 뻗혀 상권(商權)마저 장악하려는 엄청난 계획이었다.  


당뇨 Tip!! 규칙적인 자가혈당검사는 자신의 당뇨병의 상태를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제14화] 영약삼종투(靈藥三種套) II

“아버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회상에서 깨어난 당과용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다. 그저 옛 일이 생각나서… 그런데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대중적인 영약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그래, 어떤 약을 만들려 하느냐?”“심기(心氣)를 맑게 하는 가락수(可樂水, cola), 뼈를 정강(精剛)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초골력(超骨力, chocolate) 그리고 음기와 양기가 상합(相合)하는 빙기림(氷氣林, ice-cream)입니다.”“허어! 이름만 들어도 무공이 쑥쑥 증진되는 것 같구나. 헌데 강호 무림인만 해도 수 만에 이를 터… 과연 그 엄청난 양을 무리 없이 공급할 수 있겠느냐?”“염려마세요.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와도 이미 이야기를 끝냈으니 재료의 확보와 운반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빙기림을 만들자면 극음(極陰)의 무공을 십성 연마한 이가 필요하기에 북해 한빙궁(寒氷宮)에 사람을 보냈습니다.”“빈틈없이 처리했구나.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물어보자꾸나. 영약을 대량생산했다고 해도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터. 판로(販路)는 생각해 보았느냐?” 당요는 고혹적인 자태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강호에는 수많은 다관(茶館)이 있습니다. 무림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니 적당한 판매처가 될 것입니다. 초골력은 차에 곁들이면 되고, 가락수나 빙기림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것을 찾는 손님에겐 안성맞춤이겠지요. 거기에 가배(咖啡, coffee)도 곁들이면 더욱 좋겠지요.” “가배는 또 무엇이냐?”“일시적으로 정신력을 향상시키는 가배함(咖啡咸, caffeine) 성분이 함유된 차입니다.”“과연, 과연-! 완벽하구나.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당랑권 입문(螳螂拳 入門)

당요의 음모가 착착 진행되고 있을 즈음, 인수린은 어진 미르의 당랑무관(螳螂武館)에 다니고 있었다. 워낙 궁벽한 곳이어서 무관이라곤 달랑 하나뿐이었으니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물론 인투내도 어느 정도 식견은 있기에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었다. “사람은 경사(京師: 수도)로 보내고, 말은 탐라(耽羅)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넓은 곳에 가야 제대로 된 인재로 클 수 있다는 것이지. 이런 궁벽한 곳에서 네가 대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니 그저 기초나 닦으면 된다.”

당랑무관의 관주인 왕발(王發)은 외지인이었으나 마을의 청년 몇을 혼내 준 일로 무관을 차리게 된 인물이었다. 사건은 다름 아닌 그의 이름 때문에 일어났다. 부모는 돈을 많이 벌라고 그에게 발(發)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성과 함께 부르면 왕팔(王八)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왕팔 또는 왕팔단(王八蛋)은 기둥서방이나 뚜쟁이를 칭하는 말이라고도 하고, 또는 망팔단(忘八端)-인간의 근본이 되는 팔단(八端)인 효․제․충․신․례․의․염․치(孝․悌․忠․信․禮․义․廉․恥)를 잊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무척 심한 욕인 것은 틀립없다. 왕발이 마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불량기가 있는 청년이 무심코 이름을 불렀다가 시비가 벌어졌는데, 그는 순식간에 장본인과 친구 다섯 명을 때려눕혔다. “정말 대단합니다. 능히 강호에서 고수로 행세하실 수도 있는데… 어찌 이런 궁벽한 시골에까지 오셨는지요?”그렇지 않아도 젊은 녀석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촌장이 왕발을 추켜세웠다.  “앞에서 찔러 오는 칼은 피할 수 있지만, 뒤에서 쏘는 화살은 피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소. 강호인의 삶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죠. 실력이 아닌 온갖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세계와는 제가 맞지 않는 것 같더군요.” 왕발의 빼어난 말솜씨에 넘어간 촌장은 계속 그를 부추겼다. “왕 권사(王拳師)! 우리 마을에 무관을 차려 젊은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시고 자위대(自衛隊)를 맡아 주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런 연유로 무관을 차린 왕발의 실제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구공(口功)으로는 능히 일류고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당랑권은 사마귀의 움직임을 본뜬 권법으로 상형권(象形拳)에 속한다. 산동성 출신으로 나와 종씨인 왕랑(王郞)을 창시자로 꼽는데, 각종 무술을 섭렵하고 당랑권을 만든 후에는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당랑권은 고급기법인 붕보(崩步)와 팔주(八肘)에 이르면 신선도 비켜간다고 하며, 난절(攔截)과 적요(摘要)에 이르면 귀신도 피하지 못한다는 무적의 권법이다.”청산유수와도 같은 언변에 마을의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시키는 수련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무술의 기본은 체력이다. 체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권법을 펼칠 수 있는 법. 이제부터 비보주산(飛步走山)을 실시한다.”명칭은 그럴 듯했지만 비보주산이란 산길을 빠르게 달리는 것이었다.  거친 산길을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리는 훈련은 고되었지만 왕발에게는 더 없이 편리한 수단이기도 했다. 술 생각이 날 때면 훈련을 시킨다는 명목 하에 산 너머 주막에서 술을 사오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면 어김없이 취권(醉拳)을 가르쳐 준다면서 관원 몇몇의 눈 주위를 시퍼렇게 만들곤 했다. 비보주산 다음의 훈련은 철우경지(鐵牛耕地)였다. 쇠로 만든 소가 땅을 간다는 철우경지는 다름 아닌 엎드려 팔굽혀펴기였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위력적인 권은 주먹이 아닌 허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허리의 힘을 키우는 데는 철우경지가 최고다. 각자 백 회씩 실시-!”철우경지 백 회를 하기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법 근력이 있다고 자랑하던 청년들도 오십 회를 넘기고 나면 자신의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여실히 깨닫곤 했으니까.  하지만 비보주산이나 철우경지도 그 다음 훈련인 마보(馬步)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기마세(騎馬勢)라고도 하는 마보(馬步)는 말을 탄 듯한 자세로 무릎을 반쯤 구부린 채 서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마보를 수련하도록 하는 이유도 있었다.  “권삼각칠(拳三脚七), 권법을 사용할 때 손은 삼 할, 발은 칠 할이라는 얘기다. 주먹질 세 번 할 때 발차기를 일곱 번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신법(身法) 즉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강한 주먹은 굳건한 자세를 갖춰야 하니 무엇보다 다리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마보(馬步) 한 시진 실시-!”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뭐 그리 힘들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웬만한 사람은 반 각도 견디기 힘든 것이 마보였다.  

당뇨 Tip!!당뇨의 3대 증세는 다뇨(多尿), 다음(多飮), 다식(多食)이다.

[제15화] 당랑권 입문(螳螂拳 入門) II

매일 한다는 훈련이 이 세 가지였으니, 하늘을 날고 땅을 가르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무공을 배워 강호의 영웅이 되기를 꿈꾸던 젊은 청춘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혀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든 마보 수련을 마치고 나면 다시 궁보(弓步)나 허보(虛步) 등의 자세 잡기만을 시켰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수련이 단조롭고 힘들기만 하니 무관 다니기를 포기하는 이가 점점 늘어났지만, 무던한 성격의 인수린은 잘도 버텨냈고, 결과적으로는 후일 상승무공을 익히는 데 필요한 기틀을 다지게 된 셈이었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났다. 관원이라곤 이제 서너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매일 나오는 것은 인수린뿐이었다. 인수린은 집을 나서면 먼저 산으로 올라갔다. 비보주산을 하기 위함이었다. 산을 한 바퀴 달린 다음, 무관에 가서는 스스로 철우경지를 한 다음 마보를 취했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무관의 삼대수련법(三大修鍊法)을 충실히 행하는 것이었다.이제는 모든 것이 숙달되어 처음에는 한 시진이 넘게 걸리던 비보주산도 반 시진 정도로 단축되었고, 철우경지는 이백 회를 거뜬히 하게 되었으며, 마보도 한 시진을 넘게 서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날도 마보를 서고 있는데, 외출했던 왕발이 돌아왔다. 역시 거나하게 취한 채였다. “인수린이라 했지? 열심이로구나. 이제 기초는 어느 정도 닦인 것 같으니 기본적인 수법을 가르쳐 주마.”“정말이십니까?”“그러다마다. 기본 초식이지만 꽤 유용한 것이다. 보통 권법은 주먹이나 장(掌)을 많이 쓰지만 당랑권은 조금 다르다. 주먹이 아닌 주(肘) 그러니까 팔꿈치를 사용하는 법이다. 잘 보거라.”왕발은 사대(沙袋, sandbag)를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는 기묘한 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재빠르게 양쪽 팔꿈치를 번갈아 위로 쳐올렸다. 퍽-! 퍼퍽-!사대가 요동을 쳤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턱이 부서졌을 만큼 위력적인 타격이었다.  “보았지? 열심히 해!”그 후로 왕발은 보름마다 한두 가지 수법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늘 그렇듯 술에 취해 있었다. 또 다시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인수린은 상대의 손을 잡아 제압하는 금나수(擒拿手)와 원앙퇴(鴛鴦腿), 소퇴(掃腿) 등 기본적인 수법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비보주산과 철우경지 그리고 마보 수련은 빼놓지 않았다.

마보 수련을 마친 인수린이 소퇴를 연습하는 중에, 외출했던 왕발이 돌아왔다. “이젠 모두가 나가고 너만 남았구나. 참… 우직하게도 열심히 하는구나. 좋다, 오늘부터는 무기술을 가르쳐 주마. 먼저 육합단도(六合單刀)를 배워라. 저기 벽에 걸린 칼을 자져 와라.”비로소 무기를 쥐게 된 인수린은 가슴이 벅찼다. 비록 날을 세우지 않은 가도(假刀)였지만, 손안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촉은 맨손을 휘두를 때와는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했다. “무기란 손발의 연장이다. 곧 몸과 무기가 따로 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를 네 몸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초식을 펼쳐야 한다.” 시작은 그럴 듯했다. 하지만 제 버릇 누굴 주겠는가? 왕발이 가르쳐 준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태산압정(泰山壓頂)과 횡소천군(橫掃千軍) 단 두 초(招)였다. 태산을 짓누르고, 천 명의 병사를 쓸어버린다는 거창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리치고 칼을 수평으로 휘두르는 수법일 뿐이었다. ‘저 녀석은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지나치게 단순한 거야?’그럼에도 인수린은 우직하게도 두 초식을 싫증내지 않고 열심히 수련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무관에 나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같은 초식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인수린을 보고 왕발마저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수린에게는 누구도 모를 비밀이 있었다. 파지법이 익숙해지고 단순한 초식이 몸에 익자. 그는 남몰래 가전무공 인인팔세(印刃八勢)를 수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인팔세는 서예의 기초인 영자(永字)를 쓰는 여덟 가지 기법과 궤를 같이 하는 도법이었다. 기울어진 점을 찍듯 가볍고 날카로운 측(側), 가로획을 긋듯 서서히 움직이다가 급하게 돌리는 늑(勒), 세로획을 긋듯 곧은 중에도 굽은 형세를 취하는데 마치 활을 힘껏 당기는 듯한 힘을 사용하는 노(努), 갈고리를 쓸 때 마치 공이 튀듯 도약력을 이용하는 적(趯), 치침으로 채찍을 치는 듯하는 책(策), 삐침으로 머리를 빗듯 쓸어내리는 약(掠), 오른쪽에서 짧게 삐친 획으로 마치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와 같다고 하는 탁(啄), 파임이라 하는 오른쪽으로 삐치는 획으로 마지막에는 세 번의 탄력을 가하되 파도가 일렁이듯 끝까지 압력을 잃지 말아야 하는 책(磔) 등 여덟 가지 초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구결 역시 여덟 글자로 인인인인인인인인(因隣引燐靭寅絪印)인데, 무기를 뽑아들고[因], 가까이 다가가서[隣], 당겼다가[引], 번쩍이듯 후려치고[燐], 탄력[靭]을 얻어 호랑이처럼 맹렬하게 공격하며[寅], 천지의 기운을 끌어 쓰고[絪], 도장을 찍듯 흔적을 남기는[印] 운용의 묘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인수린은 포도아문에서 만난 지 노인이 전해준 금정육합기의 수련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꾸준히 수련한 덕택에 단전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뇨 Tip!! 당뇨가 진행하여 체내에서 인슐린이 생산되지 않으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제16화] 삼무극독(三無極毒)

“한빙궁(寒氷宮)의 인물들이 도착했습니다. 이제 빙기림도 무난히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누가 왔더냐?”석로가 당요에게 물었다. “나빙수(羅氷粹) 소궁주와 배태랑(裵太郞) 장로입니다.”“나빙수라면… 현(現) 궁주 나팔륜(羅八倫, Napoleon)의 딸 아니냐?”“예, 맞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합니다.” “묘하다니?”“소궁주와 배 장로의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합니다.”“궁내에 암투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합니다. 수익 배분 문제도 그렇고요.”“한빙궁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정말이었던 모양이구나. 두 사람의 동태를 잘 살피도록!”“헌데 그들이 빙기림점의 단독 운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네 생각은 어떠냐?”“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다관과는 별도로 빙기림 전문점을 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차와 차가운 빙기림을 한 곳에서 판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그럴 수도 있겠구나.”“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평민들은 몰라도 무림인들에게도 당독(糖毒)이 효과가 있을까요? 운기요상법(運氣療傷法)으로 치료한다든가 하면……?”당요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석로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당독에 중독되면 체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항상성(恒常性), 즉 호매오수타시수(好梅午壽妥時數, homeostasis)가 깨진다.”“호매오수타시수라뇨? 처음 듣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예를 들어 인체에 필요한 당의 정상수치를 일백이라고 할 때, 중독이 되면 일백오십 정도까지 올라가지. 그러면 인체는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호매오수타시스가 발동하여 수치를 끌어내리려 한다. 하지만 관성(慣性)의 법칙이 작용하여 일백이 아니라 칠팔십까지 끌어내린다. 갑자기 올라간 폭만큼 가변적(可變的)이 되는 게지. 그러면 인체는 당의 부족함을 느끼고 평소보다 더욱 많은 당을 섭취하게 되니 혈당수치는 백팔십까지 올라간다. 체내의 당량이 많아지니 호매오수타시수는 더 큰 힘으로 당을 끌어내리게 되고…  그 결과 당은 표준인 일백구간을 과도하게 지나쳐 오십까지 내려가서, 마치 진자(振子)처럼 그 폭(幅)이 점점 커지게 된다. 이른바 진자효과(振子效果, pendulum effect)를 유발하여 인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럴진대 무림인이라도 결코 벗어날 수는 없지. 당은 독이라 할 수 없는 독이니까.”“하지만 고수들은 공력도 높은 만큼 당독의 효과도 상당히 늦게 나타나지 않겠습니까?”“그 문제도 다 생각해 두었다. 이것이면 해결될 것이다.”석로가 품에서 호리병을 꺼내 당요에게 건네며 덧붙였다. “수태로이두(首泰露以頭, steroid)라는 약이다. 무색(無色)․무취(無臭)․무미(無味)여서 다른 재료에 섞어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뿐더러 효과는 수십 배 높아진다. 하지만 처음에는 오히려 공력이 증진되고 더욱 몸이 좋아지는 듯한 착각을 유발하지.”석로가 건네는 호리병을 받아 뚜껑을 연 순간, 당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 온 때문이었다. 그랬다. 수태로이두는 석로가 당요에게 처음 복용하도록 한 후리단과 같은 것이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무색투명했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여자 특유의 직감이 후리단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다만 지금 건넨 것은 액체이고 당요에게 건넨 것은 환약(丸藥)으로 형태만 달랐을 뿐이었다.     비밀단체 자유석공은 혈맹의 서약을 한 단원마저도 암암리에 중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당요는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부르르 떨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라곤 하나도 없군.’


석로와 헤어진 당요는 한빙궁의 인물들을 만났다.배태랑 장로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몸집으로 앞니가 튀어나와 마치 쥐와 같은 음험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나빙수는 눈처럼 맑은 피부에 다소 슬퍼 보이는 눈망울을 가진 미녀였다. 빼어난 미인인 당요조차 가벼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소궁주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별도의 점포를 내도록 하지요. 헌데 명칭을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아무래도 한빙궁을 내세우기보다는 배 장로님을 앞세우는 게 좋을 듯하다고 생각합니다.”“무슨 소리를! 소궁주가 주역인데…….”두 사람이 실제 마음과는 달리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요가 의견을 냈다.“배 장로님과 소궁주의 성을 따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것인만큼 배라별(裵羅別)이라고 하면 어떨까요?”“배라별빙기림? 좋군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외에 따로 부탁하실 일은 없나요?”“만년한옥(萬年寒玉)을 보관할 깊은 지하실이 필요해요. 열기가 있으면 제 효능을 발휘하기 힘들거든요.”“알겠습니다. 조치하도록 하지요.”

그날 저녁, 당요는 제삼약전에 들러 영약 제조 상황을 점검한 다음 밀실에서 동생 당굉과 수신호위(守身護衛)인 탈명귀도(奪明鬼刀), 음양선사(陰陽扇士), 쇄신독수(碎腎毒手), 상문비검(喪門飛劍)을 만났다. “선사(扇士)! 한빙궁을 다녀오면서 뭐 따로 들은 얘기가 있더냐?” “아무래도 한빙궁이 많이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궁주는 딸을 보내 얻은 수익금으로 재기(再起)하려는 듯합니다.” “알았다. 앞으로 나빙수의 행동에 특히 신경을 쓰도록. 그리고 굉아! 너는 수비쌍귀(瘦肥雙鬼)와 함께 할 일이 있다.”“무슨 일이오?”“자칫하면 우리는 영영 자유석공의 손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재주는 우리가 넘고 이득은 그들이 챙긴단 말이야. 그러니 나름의 대비가 필요하다.”모두가 충격을 받을까봐 차마 수태로이두의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자유석공의 손아귀를 벗어나고자 그녀는 당굉에게 모종의 임무를 부여했다. 배신에 배신, 역(逆)의 역이 물고 물리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당뇨 Tip!!  인슐린 주사의 종류는 초속효성, 지속성, 혼합형 등이 있으며, 증세에 따라 적절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제17화] 강호제일미(江湖第一味) 

“어엇! 저게 뭐야?”“커다란 인형인데… ‘강호제일미(江湖第一味)’라고 쓰여 있군. 정말 희한하게 움직이는걸. 신기하니 어서 가보세!”

길을 지나던 세 사내가 달려간 곳은 새로 개점한 다관(茶館) 앞이었다. 사내들의 눈길을 끈 것은 행사피우(行使皮偶, event doll)로 얇은 가죽을 이어 만든 인형인데, 주저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인형의 뒤쪽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이 열심히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풀무로 바람을 넣으면 공기가 가득해진 인형이 일어서고 팔을 흔들며 춤을 추는 듯하다가 바람이 빠지면 주저앉는 것이었다.  

“다관 선전용인가 본데… 참, 묘하게도 만들었군.” “수타다관(手打茶館)이라! 손으로 맛을 내었다니 정말 궁금하군. 수타면(手打麵)처럼 맛있을까?”“정말 손님이 네. 운집(雲集)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게야. 허어-! 아가씨들도 예쁘군.”

말처럼 다관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서나 눈에 띄는 커다란 인형 근처에는 은은히 속살이 비치는 나삼(羅衫)을 입은 아가씨들이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호객(呼客)을 하고 있으니… 이런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사람이 어디 있으랴.“오늘 개점한 수타다관! 강호제일미(江湖第一美)들이 강호제일미(江湖第一味)를 권합니다! 많이 이용해 주세요.”여인들은 군무(群舞)를 추며 합창하듯 소리치고 있었다. “도우미(導祐美), 사람들을 이끌어[導] 돕는[祐] 미녀[美]들이 정말 예쁜데.”“대체 어떤 다관이기에 개점행사를 이렇듯 거창하게 하나?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 보세.”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여인이 쪼르르 달려와 교태를 부리며 맞았다. "손님! 어서 오셔요.” “참으로 어여쁜 낭자로군.”:“낭자라는 고리타분한 호칭 대신 래지라고 불러 주세요.”“래지(來之)? 왔다[來] 갔다[之] 하는 아가씨란 말이로군. 그럼 저기 있는 여인은?”사내가 문가에서 손님을 맞는 중연의 미부(美婦)를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媽] 역할을 맡으니[擔] 마담(媽擔, madame)이라고 하지요."“그럼 그 옆에 있는 어린 아가씨는?”“쟨 신입이에요. 배울[學] 게 많으니 고생스런[苦] 노비[婢] 신세지요. 학고비(學苦婢, はこび)라 불러요. 그런데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래지가 내민 채단(菜单, menu)에는 난생 처음 보는 다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호인용/ 영약다과(靈藥茶菓) 근골강화(筋骨强化) 초골력(超骨力, chocolate): 시가(時價)내공증진(內功增進) 가락수(可樂水, cola): 시가(時價) 음양상조(陰陽相照) 빙기림(冰淇淋, ice-cream): 시가(時價)


일반인용/ 가배(咖啡, coffee)래규라가배(來規羅咖啡), 아매리가노(亞梅理家露), 냉가배(冷咖啡), 가후치노(佳厚致露), 가배라태(咖啡羅太), 애수후래소(愛壽厚來沼), 가라멸막기아도(佳羅滅幕基亞道) 등등

“강호인용은 시가라고 되어 있는데… 무슨 말인가?”채단을 살펴본 사내가 물었다. “재료를 비주(非洲, Africa)나 파사(巴西, Brasil), 니박이(尼泊尔, Nepal) 같은 외국에서 들여오는 터라 가격 변동이 심하니 그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비싸긴 하지만 무공 증진에 도움이 되므로 주로 이 층을 이용하는 강호인들이 많이 찾지요.”“밖에서 보니 오 층까지 있던데… 어떻게 다르지?”“말씀드렸다시피 일 층은 일반인, 이 층은 강호인들이 많이 찾고요. 삼 층은 귀빈실로 대문파의 장로급이나 무림 명숙들이 오십니다. 사 층과 오 층은 특별실이고요. 삼 층 이상은 찻값도 한 주전자에 백 문(文: 은(銀) 1냥은 1,000문으로 약 100만 원) 정도 한답니다.”  “끙-! 백 문-!”“이 사람아! 당연히 비싸겠지. 그런데 예쁜 래지 아가씨를 따로 만날 수는 없을까?”사내의 친구가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수작을 걸었다. “가능합니다만… 따로 표(票, ticket)를 구입하셔야 됩니다. 한 시진에 오십 문이지요.”“끙! 오십 문-!” “손님들께는 가배를 권하고 싶군요. 어떻습니까?”“그, 그렇게 하지.”사내의 구겨진 인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래지는 풍만한 둔부(臀部)를 흔들며 주방으로 갔다.

 당뇨 Tip!! 당뇨병 환자 중 15-20%가 족부 궤양이 발생하는데, 이들 중의 상당수가 절단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므로 발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제18화] 강호제일미(江湖第一味)

래지의 말처럼 이 층은 도검(刀劍)을 비롯하여 창(槍), 부(斧), 편(鞭) 등 각종 무기를 휴대한 강호인으로 붐비고 있었다. 비록 차 값은 비싸지만 뼈가 단단해지고 내력이 증진된다는 초골력과 빙기림을 판다니, 오직 본신(本身)의 실력만 믿고 살아가는 무인들에게는 구원이자 축복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했다.    한 층 위인 삼 층은 분위기는 완연히 달랐다. 당문 가주 당과용이 보낸 배첩(拜帖)을 받은 귀빈들만 있기 때문이었다. 도골선풍(道骨仙風), 학골송자(鶴骨松姿)라는 말이 어울림직한 허연 수염의 원로들이나 한눈에도 영준하고 빼어난 무공을 지녔음을 알 수 있는 무림 명가의 자제들이 모여 있었다. “대사(大師)! 이 차를 드시고 나면 성불(成佛)을 이루시겠습니다.”“껄껄-! 진인(眞人)이야말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실 텐데요.”소림의 장로 정일대사(正一大師)와 무당의 보현자(甫玄子)가 서로에게 차를 권하고 있었다. “정말 이 가락수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로군.”“초골력은 어떻고요? 이렇게 맛난 과자는 처음 먹어 봐요.”“무공 증진은 물론 미용에도 효과가 있다니 선매(宣妹)가 많이 먹어야겠군.”남궁지환(南宮志煥)과 팽무성(彭戊聖) 그리고 황보세가의 장녀 황보선(皇甫宣)이 어울리고 있었다. 모두가 무림팔수로 든든한 배경과 실력을 함께 갖춘 이들이었다.  

“바쁘신 가운데도 몸소 다관을 찾아주신 동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관을 운영하는 제 질녀(姪女)를 소개합니다.”당가의 장로이자 현 가주 당과용의 동생 당남용(唐濫用)이 읍(揖)을 해보였다. “요아(姚兒)!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려무나.”   당남용이 소개하자 당요는 한껏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당문의 여식 당요가 여러 어른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다관을 운영하면서 발희수타를 겸하고 있지요.”“발희수타가 뭐요?”“발희수타(拔稀手打, barista)란 손[手]으로 희귀한 맛을[稀] 뽑아[拔] 만드는[打]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미인인데다가 빼어난 솜씨까지 갖추었으니 정녕 신성(新星)이로고. 선재야(善哉也)!”무당 보현자의 칭찬을 들은 당요는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초라한 다관에 쟁쟁한 위명을 지닌 분들이 찾아주시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영광입니다. 개업 기념으로 오늘은 주문하신 채단은 반액으로 봉사해 드리겠습니다. 재충(再充, refill)도 가능하고요.”그녀의 색시(色示, sexy)한 모습과 나른하면서도 묘하게 퇴폐적인 음성에 좌중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가장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소림의 정일대사였다. “허허-! 빼어난 미인에 장사 수완까지 있으니 앞으로 당가는 무궁한 발전을 하겠구려. 이 또한 강호의 홍복(洪福)이요 큰 경사라 하겠소. 아미타불!”“그런데 사 층과 오 층에서는 무얼 파는 게요? 혹시 하수오(何首烏)나 설삼(雪蔘) 같은 영약 중의 영약을 파는 게요?”보현자의 물음에 당요는 야릇한 미소를 지며 답했다.    “다과는 물론이고 훨씬 특별한 것을 팔지요.”“특별한 것이라니?”“계절을 팝니다. 특히 봄을요.”홍일점인 황보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소리 없는 탄성을 지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봄을 판다는 것은 매춘(賣春)이라는 말 아닌가.  


며칠 후, 수타다관에 뒤이어 개점한 배라별빙기림점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당가의 초청으로 무림의 명망 있는 인사들이 초청되어 다양한 빙기림을 맛보고 탄성을 질렀다. “어찌 한여름에 얼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 놀라운 맛이란!”얼마 지나지 않아 기당회의 수타다관과 배라별빙기림점은 강호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 받으며 파죽지세로 상계 일각을 잠식했다. 난생 처음 느끼는 희한한 맛에 빼어난 미모를 지닌 도우미들의 봉사를 받을 수 있고, 표만 끊으면 은밀한 만남도 가질 수 있으니 어느 남자가 혹하지 않을까.“망했군 망했어. 손님들은 모두 수타다관으로 가니…….”“빙기림이라고 했나? 겨울도 아닌데 어떻게 차가운 얼음으로 만든 다과(茶菓)를 만들 수 있지?” “가락수나 가배는 또 어떻고? 마셔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네. 다관 문을 닫고 다른 장사를 해야 할까봐.”다관 주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즈음 당요는 그들에게 솔깃한 제의를 해왔다. 다달이 일정한 금액을 내면 수타다관이나 배라별빙기림점의 지점(支店)으로 인정하고 재료 제공은 물론 조리법까지 전수해 준다는 것이었다. “후란차이주(厚欄借而主, franchise), 두터운[厚] 난간[欄]을 빌려[借] 주인[主]이 된다니… 안 할 수도 없고…….”이렇게 강호의 다관 가운데 ‘수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하나둘씩 늘었고, 배라별빙기림점의 분점도 눈에 띄게 생겨났다. 그곳이 결국 당가의 분타(分舵)나 마찬가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었지만. 

당뇨 Tip!! 당뇨병은 다양하고 심각한 여러 가지의 합병증을 동반한다. 특히 전체 다리 절단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당뇨 족부질환은 무서운 합병증이라 하겠다.  

[제19화] 무림중독(武林中毒), 청운만리(靑雲萬里)

무림중독(武林中毒)

바스락-!순찰을 돌던 승려가 몸을 날려 주방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누구냐-?”횃불로 안을 비춰 본 승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방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니라 장로이자 그에게는 사조(師祖) 뻘 되는 원명대사(元明大師)였기 때문이었다. “사, 사조께서… 어, 어인 일로 이곳에……?”“아, 아니다. 무, 물을 좀 마시려고…….”“그러십니까? 제가 물을 떠오리까?”“되, 되었다.”원명대사는 왠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고, 홀로 남은 순찰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숭산(崇山) 소실봉(少室峰)에 있는 무림의 본산 소림사(少林寺)에서 어느 날 밤에 벌어진 작은 소동이었다.  “장문께서 무척 시장하셨나 봅니다.”장로 보민자(甫敏子)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네. 이상하게 자꾸 밥이 당겨.”무당의 장문 보진자(甫眞子)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사형(師兄)께서 얼마 전 바깥나들이를 하시며 체력을 무척이나 소진하신 모양입니다. 예쁜 처자라도 만나셨는지요?”평소에도 농을 잘하는 보우자(甫羽子)의 말에 보진자는 정색을 하며 답했다. 여전히 젓가락질을 하면서.“예끼-! 도인이 무슨 여자 생각을 하누?”“여자가 아니라면 식신(食神)을 만나셨나요? 벌써 네 그릇째인걸요.”무당산(武當山)에 있는 장상풍(張三豊)의 후예 무당파에서 점심 무렵 장문 사형제 간에 오간 대화였다.

“급한 일로 장문인을 뵈어야겠다.”“장문인께서는 지금 측간(廁間)에 가셨습니다.”“아니! 조금 아까도 측간에 가셨다고 하지 않았더냐?” 장로 영인걸(令仁杰)이 얼굴을 붉히자 시동(侍童)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속이 거북하신지 자꾸만 측간에 가십니다.”“아, 저기 오시는군.”멀리 장문 소중군(蘇中君)이 측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영인걸이 반색을 했다. 그런데 장문인은 그를 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듯싶더니 다시 발길을 돌려 또 측간으로 들어갔다. “허어! 그것 참-!” 화산(華山)에 자리한 화산파는 모든 업무를 측간 앞에서 보아야 할 지경이었다.

전 무림이 신음하고 있었다. 소림(少林)을 비롯하여 무당(武當), 아미(峨嵋), 곤륜(崑崙), 화산(華山), 공동(崆峒), 종남(終南), 청성(靑城), 점창(點倉) 등 구대문파는 물론 남해세가(南海世家), 남궁세가(南宮世家), 진주언가(晉州彦家), 하북팽가(河北彭家), 제갈세가(諸葛世家) 등 명망 높은 가문 그리고 제법 이름 있는 방파(幇派)의 수뇌부가 병 아닌 병인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 또는 무기력한 증세로 고생하고 있었다. 모두가 당(糖)에 중독된 것이다. 특히 무림명숙들은 수태로이두를 듬뿍 넣은 무림영약 삼종투(三種套)를 좋다고 먹어댔으니 당뇨는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몸이 약간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무공 수련이나 운기조섭(運氣調攝)을 하여 회복하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몸이 회복되는 듯하더니 갑자기 솟구치는 당욕(糖慾)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이번 한 번만!’하고 결심을 다져도 잠시뿐, 곧 당 섭취에 대한 욕구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이 섭취한 음식 가운데 의심이 가는 것은 기당회의 영약뿐이었기에 은밀히 초골력, 가락수, 빙기림 등의 성분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은 독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끈질긴 역학조사(疫學調査)로 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맛을 내는 성분으로 인해 그 같은 증세가 유발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상증세를 유발한 물질을 ‘감독(甘毒)’이라 명명했지만, 도저히 치료를 할 수 없었다.유신(維新) 11년 무력(武曆) 1447년. 바야흐로 명문정파는 무아노호(無牙老虎) 격이 되었고, 강호 무림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이 변하고 말았다.      

“이대로는 안 되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오.”소림 십팔나한(十八羅漢)의 수좌(首座) 오정대사(悟正大師)가 승려답지 않게 흥분하여 말했다. “맞소. 이대로 가다간 유구한 역사의 문파들과 비전의 무공이 소실될 것이오. 그에 따라 강호 또한 혼란스러워질 테고……. 강력한 구심점(求心點)이 필요한 때요.”화산의 자랑 매화검수(梅花劍秀)의 둘째 상일석(尙逸錫)이 맞장구를 쳤다. “구심점이란 하심은?”무당의 장로 보호자(甫湖子)의 물음에 답한 것은 그 자리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개방의 용두방주(龍頭幇主) 철각개(鐵脚丐) 방기륭(龐基隆)이었다. 철각개란 십육 년 전 강호대전에서 왼쪽 다리를 잃고 철로 만든 의족(義足)을 했기에 붙은 별호였다. “무인들이 힙을 모아 무림맹(武林盟)을 만들어 새로운 인재를 키워 무림의 안녕과 질서를 잡는 한편 감독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오.”각 파의 수뇌급 인물 가운데 중독되지 않은 이들이 모인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본 만큼, 익년(翌年) 초에 무림맹의 결성을 공포하면서 인재를 모집하기로 했고, 운영은 각 파의 장로급이 맡기로 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강호 무림을 일으킬 새로운 조직이 태동(胎動)한 것이었다.

청운만리(靑雲萬里)유신(維新) 12년 무력 1448년 원단(元旦)을 맞아 무림맹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림의 구심점인 무림맹의 결성도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그와 함께 공포된 인재 모집에 대한 소식은 강호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소정의 시험을 거쳐 무림맹을 이끌어 갈 정영(精英, elite)을 선발하는데, 스물네 살 미만의 남녀라면 누구라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영단이 되면 구대문파의 장로들로부터 자신의 체질과 성격에 맞는 상승무공을 배워 장차 무림을 이끌어갈 후기지수(後期之秀)가 될 터인 즉 어느 청년인 들 꿈을 꾸지 않을까. 강호를 동경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무림맹이 위치한 한뫼[一山]로 몰려들었다.

 당뇨 Tip!!

 금세기에 이르러 당뇨병 환자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현재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다.

 

 

2010-07-07 07:42 2010-07-06 14:00

Comments List

  1. 나루 2010-07-06 13:5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한편씩 다음회를 궁금해하면서 읽는 맛도 좋지만 감질나는 분들을 위해서 18회까지 모았습니다.
    올라오는대로 계속 이어 붙여 한권의 e-book 소설로 남기려고 합니다.

  2. 수정 2010-07-06 15:4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읽기 좋게 정리하셨군요.
    몇 편씩 읽을게요. 재미있겠습니다.

    1. 나루 2010-07-06 20:5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여기에서 읽고 댓글은 메인화면에 가서 쓰시면 고맙겠습니다.

  3. Petrus(베드로) 2010-07-06 19:0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naroo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 나루 2010-07-06 20:58 # 수정/삭제 퍼머링크

      별로 수고 안 했답니다.

  4. 고우리 2010-07-06 20:10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암튼 대단하세요

    1. 나루 2010-07-06 20:59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읽기 편하게 하려고 시도했는데, 몇 분이나 읽을지 모르겠네요.
      고우리님, 감사해요.

  5. 풍금소리 2010-07-07 01:5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덕분에 편하게 읽었습니다^^

    1. 나루 2010-07-07 07:5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읽으셨다니 저쪽 본문에 댓글도 쓰셨겠지요? 감사합니다.

  6. 청학 2010-07-07 08:4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하~ 나루님의 작품인가 여겨집니다.역시나!

    1. 나루 2010-07-07 10:3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제 소설이라고 생각하시고 재미있으니 읽어보시지요.

  7. 실비아 2010-07-31 07:2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짝사랑!
    유어스테이지를 아끼는 마음, 상사병 나시겠어요.^^

    1. 나루 2011-01-19 20:4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짝사랑까지도 아니고 상사병 날 나이는 더더욱 아니지요.

  8. 이필성 2011-01-19 19:3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역시 나루님의 필력은

    대당협전기의 인슈린보다 쎕니다.

    1. 나루 2011-01-19 20:49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인슈린보다 쎄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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