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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문우 아들 결혼식장에서 노 작가(老 作家)와 합석했다. 이상하게 낮부터 헛헛했다며 술병과 안주부터 챙기셨다. 세미나를 다니면서 같은 버스를 탄 적은 있어도 식사 자리는 처음이라 술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곁에 앉은 손님들도 뜻밖이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술이 남녀 공용 음료가 돼버렸지만, 워낙 음주를 즐길 줄 몰라서인지 마주앉아 주고받는 이도 없이도 잘 드시는 게 신기했다. 노 작가는 취기가 오를수록 ‘헛헛하다’고만 하셨다. 헛헛하다는 뜻은 먹은 것이 없어서 무언가 먹고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사용하지만, 잔뜩 먹었는데도 채워지지 아니한 허전한 느낌일 때도 쓴다. 이 단어는 어떤 경우에 활용해도 서글프고 쓸쓸한 형용사다.

 

풍광 뛰어난 강가에서 여든을 넘긴 부부가 서로의 일을 존중하면서 산다고 하셨다. 평소에는 성격도 활발하여 불러낼 친구도 많고 주위에는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용돈 주는 자손이 여럿이라 누구든 만나면 당신이 돈을 쓸 건데 상대방을 배려하다 보니 만나자고 할 적당한 동무가 없더라고 하셨다. 무작정 만나 달라고 하지 않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주시는 그 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픔을 머금은 그분의 눈가에서 진눈깨비가 한바탕 퍼붓고 지난 간 들녘 같은 안쓰러움을 보았다. 내 황혼에도 그런 바람이 불어 닥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고심했다.

 

이와 비슷한 하소연은 눈 오는 날 강촌에 같이 갔다 온 문우로부터 또 들었다.  구곡폭포를 가기 위해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그때 문우는 심각한 목소리로 여행을 다니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며 나를 쳐다봤다. 사업도 해서 인맥도 풍부하건만 왜 하루나 이틀 마음 열어놓을 사람은 드문 걸까. 차라리 혼자 다니라고 했더니 그건 외롭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돌봐줄 손자도 없고 시간과 돈도 있어서 나 같으면 신 나는 일이거늘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해 봤다. 이 문우가 외로워하고 사회에서 사귄 친구와 학교 선후배가 많음에도 마음 주고받을 사람이 적은 이유를. 상대방 문제보다도 자신이 그만큼 관계에 소홀해서가 아닐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오라고 하면 기꺼이 만나 줄 벗은 몇이나 될까 세어 보면서 반성했다. 여럿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계산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반대로 그 사람이 나를 부르면 만사 제치고 따라 나설지를 자문해 보았더니, 뜻밖에 적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양보다 내가 그를 덜 좋아해서 생긴 차이다. 서로에게 같은 비중으로 존재 가치가 된다는 건 쉽지 않지만, 내 편견이니 고쳐야 한다.

 

당고모를 보니까 고령인 분이 누군가를 부를 때는 적막에서 벗어나고 싶은 초조함이 밀려올 때였다. ‘질부가 보고 싶어.’ 하기에 금방 돌아가시는 듯하여 서둘러 갔더니, 그냥 외로워서 불렀다고 하셨다. 시어머니와는 사촌 시누이올케 사이인데 커다란 아파트에서 종일 밤에나 들어오는 가족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나를 떠올리셨던가 보다.

 

우리 집에도 다녀가시곤 해서 먼 거리라는 걸 아시면서도 부르신 건 왕래하던 집에 다니기가 힘들어서였다. 그 뒤로는 노인이 ‘한 번 다녀가’ 이 소리만 들어도 그 부탁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서 찾아뵙도록 한다. 외면하면 당사자는 서운하지만, 들어주지 못한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해서이다.

 

자신의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한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가슴에 심어둔 벗이 잘 있는지 안부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날은 점점 저물고 있다. 노후가 막차마저 오지 않는 간이역 같다면 얼마나 헛헛하고 외롭겠는가.

 

 

 
1970-01-01 09:00 2014-02-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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