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20 : Next »
 

삼라만상이 수필의 재료가 될 수는 있지만 자기만의 새로운 발견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문학은 자기만이 발견한 것을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형상화해야 한다고 배웠다. 마땅히 형상화에는 인식(認識)이 담겨 있어야 하고 발견에는 애정이 포함되어 있어야 남과 달리 보인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나는 일상사를 나열해놓았다면 누가 흥미를 갖겠는가. 어떤 내용일까 설렘을 갖고 책장을 넘겼는데, 서두부터 끌림을 주지 못했다면 중간에 빛나는 내용이 있다 한들 기회를 잃게 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잡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작가의 사상과 철학이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시대는 책 말고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읽을거리가 지천이라 독자에게 인내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몇 줄 읽어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책장을 덮게 되더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공감한다. 연말이라 그런지 일주일 사이에 시집과 수필집을 네 권 받았다. 두 권은 이미 현관 밖으로 밀려났다. 수필은 가볍게 써도 된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쌓아놓은 지식과 경험은 부족한데 자만심이 과한 데서 나온 결과라고 본다.

 

글 쓰는 것을 글짓기라고 한다. 글이 살 집을 짓는 행위를 말함이다. 그렇다면 글도 생명이 있다고 가정하고 쾌적하게 살 집을 지어 주어야 한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는 어려서 본 집짓기다. 2대 독자였던 증조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만나 야속하게도 할아버지 한 분만 두셨다. 그런데 할아버지 대부터 자손이 늘기 시작하여 아버지 형제는 칠 남매다. 옛날 방은 크지도 않았으니 삼 칸 방이 좁았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본래 있던 기역자집에 붙여 방 세 칸짜리 바깥채를 지으셨다. 내가 처음으로 본 광경이라 잊히지 않는다.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 동네 장정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지금처럼 지하를 파는 것도 아니고 방 세 개와 부엌 두 개 앉히는 거라 설계도 간단했다고 본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커다란 바위를 굴려왔다. 동아줄로 너더댓 명이 들 수 있도록 여러 갈래로 묶었다. 동시에 들었다 놨다 하면서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힘이 들만도 한데 청년들은 대지와 한몸이 되어 저물도록 쾅쾅 흙바닥을 내리쳤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우리 집이 생긴다는 게 신이 나면서 어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게 집짓기 기초인 땅 다짐을 하는 달구질이었는데, 그 울림과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만큼 소중하여 준비 또한 철저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로 쓸 재목을 비 맞지 않는 곳에 쟁여두었다. 흙벽돌도 손수 찍어 말려놓았다. 집 한 채를 세우기 위해서 들어가는 물건 준비는 한두 달로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이건 외적 조건이지만 내적 조건 역시 건물주의 바람과 체험한 안목으로 꾸며져야 벽에 금이 가거나 기울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은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부실하여 11월만 되어도 몹시 추었다. 서둘러 지붕을 덮어야 한다. 추수가 끝난 뒤 비 맞지 않도록 엮어둔 이엉을 짊어지고 지붕으로 올라가면 그 위에 있던 사람이 받아 솜이불을 펴듯 한다. 용마루 부분부터 곯은 데가 없도록 덮고 마무리는 나뭇가지로 만든 빗자루로 가지런히 쓸어내렸다. 처마로 들쑥날쑥 내려온 짚은 낫으로 단발머리 할 때 앞머리처럼 반듯하게 잘라냈다.

 

방문은 모두 창호지를 발랐다. 사람의 손이 자주 닿는 부분에는 코스모스나 국화꽃잎을 따다 넣고 한 겹씩 덧발랐다. 이름도 예쁘게 그걸 어른들은 ‘문꼬리꽃’이라고 했다. 방바닥은 한지를 여러 겹 바르고 메주콩을 불려 날것인 채로 맷돌에 갈아 자루에 넣어 문지른다. 그걸 콩댐이라고 하는데, 조금 더 노랗게 하려면 치자를 끓여 그 물을 섞었다. 창호지를 바른 문살로 들어오는 햇살에 방바닥은 은은한 빛을 냈다. 그러니까 방바닥, 문을 바르는 것 하나하나 소홀함이 없었다.

 

글을 쓰다가 글맥을 놓치는 날은 내가 살았던 집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떠올린다. 놀랍게도 달구질부터 기억해내다 보면 어렴풋이 내 글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가 보였다. 대들보만한 단어를 써야 할 자리에 서까래 같은 단어가 끼어 있기도 했고, 들창을 내야 할 곳에 커다란 문을 내어 균형이 깨졌다는 게 보였다.

 

밥이나 옷, 집만 짓는다고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짓는다고 하는 이유를 알았다. 짓는 과정은 하나같이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밥도 옷도 그렇다. 무슨 밥을 지을 건가 거기에 맞는 잡곡을 준비하고 어떤 옷을 지을 건가에 따라 옷감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짓는 종류는 다양하나 공통점은 시간이 걸린다. 문장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아야 한다. 눈 감고도 그려지는 경험 한 꼭지를 움켜쥐고 싱싱하게 키워나가면 시대를 넘나들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작가가 기진할수록 글은 기운을 차리기 때문이다. [글/사진/나루]

1970-01-01 09:00 2015-12-17 05:27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수정 2015-12-17 09:1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오늘도 집짓기에 여념이 없겠지요. 눈 감고도 그려지는 경험 한 꼭지를 움켜쥐고 싱싱하게 키워나가기 또한 얼마나 힘겨운 일일까 생각해 봅니다.

    1. 나루 2016-01-09 11:59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일상이 돼버려서 힘들다고 생각 안 하기로 했습니다. 고마워요.

댓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 20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