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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맞이]

 


 
이틀 동안 솜이불을 꿰맸다.

  솜싸개를 바꾸느라 오랜만에 돌돌돌 손재봉틀도 돌렸다.

  봄맞이를 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소를 하듯이,

  겨울맞이를 하기 위한 나의 10월 행사이다.

  무엇을 하면서 잠시 아름다운 추억으로 돌아가는 건 좋다.

  아름다운 추억이 배어 있는 일을 한다는 건 행복하다.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솜이불에 대해서 많이 잊혀 졌을 테지만,

  그제는 내 이불을, 어제는 아들의 이불을 꿰맸다.

  내가 35년 전 결혼할 때 해온 목화솜이불이다.

  어머니와 둘이 이 이불을 만들면서 나는 설렘 속에 어머니의

  서운함을 헤아리지 못했다. 철이 없었다.

[글/사진/naroo]

2011-10-21 19:22 2008-11-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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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게 좋아졌다]

[글/사진/naroo]

아들은 내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어느새

인터넷을 켜고 적당한 시간을 적어 컴퓨터 앞에 붙여놓는다.

현관을 나설 때는 몇 번째 칸에 타면 바로 출구가 있다고 알려준다.

때론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주어도

나는 안다고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아들에게 기대는 게 편해졌기 때문이다.

 

부탁하지 않아도 해결해주는 건

내 분신이어서만이 아니라

제 눈에는 내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지난날 내가 아들을 걱정스러워했던 것처럼.

 

2013-02-05 18:36 2008-11-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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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바다 2008-11-17 14:1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새 보금자리 마련하신 것 축하드려요.
    님은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빛나는 별이 될것이라고 믿습니다.
    불로그에 들어서니 신선한 느낌이 드네요.
    오늘 함께 했던 시간들 즐거웠어요.

    1. 나루(東星) 2008-11-17 15:30 # 수정/삭제 퍼머링크

      고마워요.
      저도 함께한 시간 즐거웠어요.
      초록바다님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여기에 풀어놓아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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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도 체한다는데]


슬픔도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체한다는데

힘들다고 대강대강 삼켜버린 내 젊은 세월은

까닭 없이 푸대접 받은 내 사랑은 오죽 하겠나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이 초월한 지금인데

많이 따듯해진 지금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명치가 먹먹한 것은

어쩔 수없이 삼켜버린 그 젊은 세월 때문이겠지

번거롭다고

부질없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해버린

그 젊은 사랑 덩어리 때문이겠지

가장 대우해줘야 할 사랑과 세월을

급히 먹어 체한 데는 약도 없다는데

내 가슴에서 이토록 좋다고 사랑 뛰노니

이렇게 좋다고 마음 늙지 않으니

이대로 품고 살 수밖에 없다

 

 

[글/사진/naroo]

2013-01-16 08:40 2008-11-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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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집]

 

   

발아래부터 물이 드는 시월.  
낙엽을 헤치며 고향 산엘 다녀왔다.
 

북망산에도 가을이 찾아와
아버지도 고운 옷으로 갈아입으셨다.

봄에는 할미꽃이 팔순의 어머니처럼 피어
아버지를 덜 외롭게 하더니
오늘은 단풍 몇 장이 혼유석 위에서
아버지와 바둑을 두고 있다.

불같은 아버지 성격도 많이 자연스러워지셨겠지.
내가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는 것처럼.

아는 척 하시지 않는 아버지 무릎에
술 한 잔 올리고 돌아오는데
산까치 한 마리 마저 날아간다.

 

[글/사진/naroo]

2009-10-23 01:09 2008-11-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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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rus(베드로) 2011-05-22 14:0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니 이럴 수가... 뒤늦은 댓글 미안합니다.

    1. 나루 2011-05-23 16:08 # 수정/삭제 퍼머링크

      별발씀을요. 그때는 저도 그랬을 거예요.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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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웃더라



이렇게 제멋대로 생긴 놈도 꽃이라고
제 철을 찾아 피었다.
혼자는 쑥스러운지
둘이 다정하게 웃었다.
못난 사람 둘보다 정답다.

다 자라지 못한 꽃잎들 무서리 맞을까
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벌도 오지 않는 그들과
한참 눈맞췄더니
저들이 보기에는 내가 안돼 보였던지
날 보고 웃더라.

[글/사진/naroo]

2012-10-11 09:46 2008-11-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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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오염된 세상이라고 해도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지난주에는 충청도로 기차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로 들판은 노란 페인트를 들어부은 듯 노랬습니다. 나는 가을 벼 잎이 그렇게 고운 줄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에서야 농부들의 땀은 도시인의 땀과 다르고 영글면서 노란색으로 고개 숙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년이 분명했습니다.

  가을은 여행하기도 독서를 하기도 좋은 계절입니다. 장거리 기차여행을 하면서 얇은 책이나 그동안 스크랩해놓은 신문을 들고 나선다면 더없이 멋있는 여행이 되겠지요. 가끔 창밖의 가을풍경으로 활자와 눈 맞추면 스트레스에 빠진 그대라고 할지라도 자연에 물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백이전〉을 좋아하여 1억 1만 3,000번이나 읽어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라 이름 지었고, 천 번 이상 읽지 않은 것은 독서록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독서광 ‘김득신’을 떠올려 보자고요. <후한기>라는 진서를 발견하고 사려했으나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팔지 않겠다고 하여 결국 자기의 아내를 주기로 하고 그 책을 손에 넣었다는 주대소를 생각해 보자고요.

  주대소의 애첩은 이런 시를 벽에 써놓고 떠났다지요.
  "본의 아니게 이 집을 떠나가지만, 그 옛날 애첩을 말과 바꿨다는 얘기보다는 낫겠지. 언젠가 재회하더라도 후회 마시기를. 무심한 봄바람 길가 나뭇가지를 불어대네"이런 분을 옆에 앉히고 떠나는 여행은 돌아와서도 한동안 넉넉해질 것 같은데요.

  오늘은 오래 전에 만들어놓았던 독서록을 찾아봐야겠어요. 누가 아나요? 그 공책 갈피에 어느 가을날 꽂아놓은 단풍 한 장 있을지. 단풍보다 고운 글귀 한 줄 있을지.

[글/사진/naroo]

2012-07-23 20:00 2008-10-2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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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삽화/naroo>

이사가는 날
 

안주할 곳이 없는 나는 그네였지
투덜거리는 짐짝 곁에 나도 짐짝처럼 실려 가면서
언젠가 보아 둔 남향집 한 채 지어 보았지

작은 꽃밭이 내다보이는 곳에 방을 세 개쯤 앉힐 수 있으면 되겠지
볕 바른 자리에 연탄 광이 있고 그 위에는 장독대를 꾸미면 좋겠지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고 그네가 있으면 더더욱 신나겠지

신문 사절이란 종이가 붙어 있는 녹슨 대문 앞에 서면

눈시울이 타관처럼 시려왔지

불 꺼진 방바닥에 추운 세간들 풀어 놓으면

이 빠진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언 웃음이 갚지 못할 부채로 쏟아졌지


그래도 데리고 오지 않은 햇살은 먼저 와

반지하 방에 그네줄처럼 걸려 있었지
*** 

아주 오래 전에 써놓았던 글이다.

툭하면 이사를 다니던 때다.

다행히 아이들은 장성했고 이사 다니는 일은 끝났지만

아직도 나무대문이 달리고 대문입구에 꽃무늬 타일이 박힌

남향집이 그립다.


 

2013-02-11 21:12 2008-10-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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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신호]


 


그대는 나에게 문자를 보낼 때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 않지요.
늘 품고 사는 그리움을
무슨 방법으로 그 양을 전하겠어요.

그리움이란 말이지요.
말로 전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면요.
몸 안의 장기처럼 돼버리거든요.

그대는 가끔 가슴이 먹먹한 적 없었나요?
가끔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시름맞은 적 없었나요?

그리움이란 말이지요.
그렇게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신호를 보내지요.
혹시라도 내가 다른 곳에서 그댈 찾을까봐
거기에 잘 있다는 걸 그런 식으로 알려주지요.  [글/사진/naroo]

2013-03-16 23:15 2008-10-2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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