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안치고 컴퓨터를 켜는 게 하루 시작이다. 그날도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데 소리가 거슬렸다. 부팅이 안 될 때 내는 기계음이다. 전에도 그러면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기에 불길한 조짐이 들었다. 잘 알지는 못해도 본체를 열었다. 내장된 팬 세 개는 이상 없다는 듯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만 떴을 뿐 다음으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몇 해 전부터 쓴 글 중 퇴고한 글과 미발표 글이 D 드라이브에 상당량 들어있는데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믿었다가 가슴 치는 일을 당했건만 또 정신 차리지 않은 결과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들이 해결해주었기에 어깨너머로 본 대로 전원을 끄고 면봉으로 팬과 메모리 판에 먼지를 닦았다. 마찬가지다.

 

한 번만 살아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제발 옮겨 갈 시간만이라도 달라고 바랐건만 변화가 소용없다. 날이 갈수록 마음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쪽으로 기울었다. 궁여지책으로 유어스테이지 게시판에 사정을 간단히 적어 올렸다. 경험하신 선생님들의 고견이 올라왔기에 그대로 해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떠나기로 작성한 듯했다.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 볼 방법도 없었지만 한낮 기계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퇴고하다 만 글과 올해 찍은 사진만 해도 수백 장이 넘는데 그걸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기가 막혔다. 복원 전문가도 못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도 그렇지만 기계도 큰 사고가 아니면 갑자기 멈추지 않는다. 간간이 골 부리고 내 신경을 건드렸을 때 알아차리고 문서와 사진을 백업해 두었어야 하는데 미룬 게 화근이었다. 외장 하드에 옮기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미적거렸는지 내 안이함이 너무 싫었다.

 

친구한테 답답함을 호소했더니 사진은 내년에 다시 찍으면 되고 글은 새로운 마음으로 쓰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같은 장소에 간다고 해도 똑같이 나올 리 없다. 몇 달씩 공깃돌처럼 매일 가지고 놀던 습작이 아까워 첫날은 가출하여 안 들어오는 자식 기다리듯 설마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영영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잠이 달아났다.

 

며칠이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내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수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적어볼까 했는데 절반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날의 감정이나 정황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했으나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 같았다. 북북 찢어버렸다. 공책을 찢기는 처음이다. 속이 후련했다. 나를 떠난 글에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조금 남아 있는 기억조차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일기를 공책에 쓰다가 그것도 귀찮아 컴퓨터에 쓴 게 십여 년이 넘었다. 그 안에는 글감도 상당이 있는데 이젠 물 건너갔다. 다행이라면 중요한 것만 짤막하게 적은 메모장과 탁상용 달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할까 한다. 이미 벌어진 일에는 미련을 빨리 버리는 성격이라 내 곁을 떠난 것에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수소문하여 서울에 복원하는 사무실을 찾아 아들이 맡겼다. 반신반의하면서 며칠을 기다렸건만 데이터 복구가 어렵다는 문자를 보냈고 하드를 그쪽에서 버려도 되겠냐고 묻는데 아들은 어미의 속상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했는지 다른 데 가도 99%는 살릴 수 없다는 데도 보내라고 했단다. 다음 날 절대로 던지지 마세요.’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택배가 왔다. 뽁뽁이로 수십 겹을 쌌다. 살리지 못한다면서 마지막까지 함부로 다루지 않고 성의를 보여준 그들이 고마웠다.

 

그걸 받고 나는 아들한테 그랬다. ‘나는 왠지 언젠가는 이 글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모르지요. 기술이 발달하면.’ 헛된 기대가 될지언정 지금은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1970-01-01 09:00 2018-12-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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