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후가 일 년 내내 푹푹 찌며 비가 온다든가 평생 폭설 속에서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라면 얼마나 속상하고 지루했을까. 상상으로도 살맛이 안 난다. 사계절이 뚜렷하게 있다는 그 한 가지로도 감사한 게 너무나 많아서이다. 대표적인 예로 봄여름에는 꽃과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전국에 명산과 바다 구경할 곳이 얼마나 많은가. 채소와 과일도 비닐하우스 덕에 계절의 경계가 사라졌다. 가정 경제가 뒷받침해준다면 살기 편한 세상이다.

 

여기는 시골이라 큰 마트에 가도 김장이 끝나면 모든 식자재가 도시처럼 풍성하지 않다. 인구도 적고 소비가 덜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해낸 게 햇볕과 냉장고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시간 여유와 환경 조건이 맞아 이미 실천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옥상에서 햇볕을 최대한 이용하여 밑반찬 거리를 준비하고 아욱과 호박잎을 흔할 때 사서 냉동한다.

 

[살짝 데친 아욱]

 

[찌려고 손질해놓은 호박잎]

 

아욱과 호박잎은 줄기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아욱은 데치고 호박잎은 푹 무르지 않게 찐다. 냉동할 때도 꼭 짜지 말고 물을 조금 넣어야 녹아도 금방 삶은 것 같다. 한 번 끓일 양을 나누어 담고 이름표를 붙여놓으면 찾을 때 이건가, 저건가뒤적이지 않고 편하다. 멸치와 무, 다시마를 우려낸 물에 바특하게 받은 뜨물을 섞고 된장을 푸는데 여기에 감자를 썰어 섞어도 구수하다.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넣어도 괜찮다.

 

또 한 가지는 찬바람 날 무렵에는 호박고지도 만들지만, 추운 날 호박 한 개 사러 나가기 귀찮을 때를 대비하여 칼국수용으로는 굵게 채로 썰고 찌개용으로는 약간 크게 썬다. 찌개에 넣을 우렁이나 조갯살도 얼린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구멍가게로 달려가 두부나 한 모 사다 바글바글 끓이면 고기반찬이 없어도 덜 미안하고 칭찬받는다. 식성에 따라 청양고추를 쓰면 칼칼하다.

 

지난주에도 우리 집이 친정 같다는 후배가 지나가다 들렀다며 연락도 없이 왔기에 시장에 갈 시간도 없고 급히 우렁이 된장에 얼렸던 애호박과 두부 몇 조각 얹어 뚝배기 채 내놨더니 바닥을 드러냈다. 반찬이라야 김장 때 한 겉절이와 무말랭이, 간장에 삭힌 고추와 깻잎, 동치미가 전부인데 맛있다고 해서 우쭐했다. 후배 말이 춥고 운동하기도 싫어서 주로 집 안에 있어서인지 12월 들어 살이 쪘다고 한다. 내 추측으로는 활동량이 줄어들기도 했고 여름처럼 채소보다는 고기를 자주 먹어서가 아닐까 한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시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한다. 그게 뭐 색다를까 할지 몰라도 영하의 날씨에 문득 된장 아욱국이나 호박잎 국이 생각나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식구들한테는 고급스러운 요리를 만들어주지 못해 늘 미안했는데 이런 거라도 해준다는 게 뿌듯하여 소개했다.

 

 

1970-01-01 09:00 2018-12-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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