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대학 교정]

 

고희를 넘긴 문우 다섯 명이 만났다. 30년 전 시와 수필을 배우면서 인연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소식 모르고 지내는 코흘리개 친구보다 친근한 사이다. 한때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동인지를 열두 권이나 냈는데 자식을 따라 혹은 자신의 생활 터전이 지방으로 떠나 출간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애경사나 나들이하기 적당한 곳이 있으면 회원 중 누구라도 단체 알림방에 날짜와 시간을 올리면 절충하여 얼굴을 본다. 날짜를 정해놓는 것보다 오히려 편안하다.

 

그날은 강남과 강북 중간쯤인 청량리 근처 회기역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점심을 먹고 조경이 아름다운 K 대학으로 들어가 둘레길처럼 데크로 꾸며놓은 단풍 길을 옛이야기 하면서 걸었다. 그때 문우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시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위내시경을 하다가 나쁜 낌새가 있다고 하여 조직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양성이었다.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일주일 이상 불안했다가 안도했는데, 치매 검사에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오진이기를 바라며 다른 병원에서 다시 테스트했는데 같게 나왔다며 약을 먹든지 조금 더 두고 보자고 하더란다.

 

그와 나는 통화를 자주한다. 대화 중간에 그게 뭐더라.’ ‘왜 있잖아.’ 이런 식으로 멈추었어도 나중에 생각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나이 탓이겠거니 했지 그게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아 내색은 안 했어도 충격이 컸다.

 

치매는 사회적 질병이며 암보다 무섭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가족과 가정을 혼란에 빠뜨린다. 해마다 급증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완치는 어려워도 부작용이 적은 약도 출시되었고 예방으로는 평소 습관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하여 나는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친구나 선배가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라 불안해서이다.

 

[우리 집 꽃밭]

 

문우를 위로했다. 우선 내가 키우는 꽃 이름을 30여 개를 카톡으로 알려주고 시장을 오갈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으면 나아질 거라고. 또 한 가지는 흔들리더라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부탁했다. 사물에 몰두하면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낯선 꽃에도 애정과 호기심이 생겨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으로 찾을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또 하나 주문은 일기나 메모하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침부터 있었던 과정을 살펴봐야 하기에 반복하는 방법으로는 아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순서를 단순하게 이어가는 게 아니라 그 장소가 어디였으며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분위기와 풍경은 얼마나 멋있었는지. 그때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실수했다면 사과는 했는지. 사소하지만 구체적으로 연상하면 뇌에서 장기적인 기억과 공간개념, 감정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해마는 더 인상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메모장]

 

서정주 시인이 노년에 기억력 감퇴를 줄이기 위해 아침마다 세계의 산 이름을 무려 18백여 개나 외웠다고 한다. 그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내가 추측하건대 그분도 그 산과 연관된 산맥이나 폭포, 그곳에 사는 동물과 식물 등을 연상하면서 외우지 않았을까 한다.

 

노인이 되면 대부분 무기력함과 귀찮아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구순을 앞두고도 정신이 총명한 내 친정어머니의 생활은 늘 몸을 움직였다. 아직도 칠 남매 자식과 사위 며느리까지 생일을 잊지 않고 미역국은 먹었느냐고 전화하신다. 거기에 어머니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취미가 있는데 올 생신에는 기특한 손녀가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하여 신이 나셨다. 비록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파도 마당가에 피는 풀이나 꽃을 수시로 담으신다. 텃밭에는 당신한테 필요한 작물을 심어 자식들한테 나눠주는 기쁨도 누린다. 젊은이가 볼 때는 그 연세에 낙이 없을 것 같은데도 어떤 게 행복인지 아는 분이다.

 

사람의 뇌에는 1백억 개의 뉴런(neuron-신경 단위)이 있다고 한다. 기억을 떠올릴 때는 수백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연결되어 대뇌에 자극을 준다고 한다. 우리도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지난날 찍은 사진과 일기장을 뒤적이면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자꾸 흔들어 깨우는 수밖에 없다. 친구야. 나쁜 변화가 있어도 실망하지 말고 힘내자

1970-01-01 09:00 2018-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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