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가을이면 억새, 단풍, 국화로 시작하여 지역마다 볼거리, 먹을거리 축제도 많다. 나는 장거리는 자신이 없어 집에서 가까운 소요산 단풍 구경 두 번 다녀온 게 전부다. 산이나 바다를 혼자서도 잘 찾아다니다가 아쉽고 허탈하지만, 올해는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시간이 여유로워 책도 읽고 살림에 고수는 못 되어도 추워지기 전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겨울에 먹을 밑반찬을 마련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아들 도움으로 옥상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정작 꿈구던 것은 투명한 유리 집이지만 그건 무리라서 포기하고 쉽고 부담스럽지 않은 비닐을 택했다. 바닥에는 비가와도 흘러내려 가도록 벽돌을 촘촘히 놓고 널빤지를 깔았다. 널빤지 위는 야외용 돗자리로 덮었다. 투명한 비닐 한 겹이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눈 오는 날 국화차 한 잔 들고 그 안에서 마시면 또 하나의 추억이 생길 것 같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친구한테 했더니 ‘소확행’을 즐기는 여인이라고 부러워한다. 

 

[무말랭이]

 

차를 끓이면 구수하다기에 비닐하우스에 가지 몇 개와 무말랭이 거리를 널었다. 자세히 보면 햇살이 하나하나 수분을 핥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만 지나도 꾸둑꾸둑한 게 증거다. 그래서 무는 마르면서 거짓말처럼 줄어들어 빽빽하게 넌 틈이 조금씩 넓어진다. 낮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져서 애호박과 고추 부각, 데친 고춧잎을 말리려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늦가을 햇볕을 서둘러 저장해야 한다.

 

[고추부각]

 

살아가는 일도 그렇지만 전업주부가 하는 일이란 식탁에 무얼 올릴까 고심하는 연속인 듯하다. 까놓은 마늘, 볶아놓은 참깨, 고춧가루를 등 쉽게 사는 길이 있지만, 굳이 거부하는 이유를 찾자면 이런 거다. 그 물건의 출처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의심스러워서이고,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믿을 수 있는 양념이나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이다. 그런데 앞뒤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음식점에서는 국산이냐, 조미료를 안 넣었느냐, 유기농이냐 따지면서 자기들이 먹는 양념에는 관대하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짐작하면서도 눈감아준다.

 

 [태양초]

 

김치를 사 먹는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요즘 시장에 가면 김장철이라 부산하다. 마늘과 생강, 젓갈은 준비했으니 고춧가루 차례다. 온 가족이 땀 흘리면서 말린 태양초를 싣고 방앗간으로 갔다. 사람들은 폭염을 피해 다닐 때 이 고추는 옥상 바닥에서 그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물기 한 방울 없도록 속을 비웠다. 몸소 수고한 결과물이라 비가 올까 봐 노심초사했던 고생도 다 잊고 신바람만 난다. 여름에 한가하던 방앗간에도 고추를 빻으러 온 사람으로 북적였다. 피대 돌아가는 소리도 시끄럽게 들리지 않고 재채기하는 소리도 사람 사는 곳처럼 정겹게만 들린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차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내려주는 햇볕을 무덤덤하게 흘려버리기에는 아깝다. 생선이든 과일이든 건조시키면 영양가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파트에 살아서 못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은데, 그건 경험이 없거나 실패할까 봐 시도하려는 용기가 부족해서이다. 나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만큼 익숙해졌다. 반찬 한 가지라도 손수 마련했다가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날, 빙판으로 시장에 가기 싫은 날 깨보숭이 한 접시 튀겨 식탁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1970-01-01 09:00 2018-11-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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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8 21:3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나루님, 그야말로 알등 주부신 거 아시죠?
    요즘 나루님 같은 분 드물어요.
    많이 배워야겠어요.
    저는 이제사 살림의 재미를 느꼈어요.
    감말랭이도 하고, 이제 고구마 말랭이도 하려고요.
    김장도 끝냈어요.

    1. 나루 2018-11-26 09:51 # 수정/삭제 퍼머링크

      에이, 그냥 하던 거니까 할 뿐이랍니다. 감말랭이 참 맛있지요. 그런 것으로 군것질하면서 겨울 잘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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