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루-우리는 저렇게 언 파도도 헤쳐나온 유어스테이지 리포터입니다]
 
2008년 10월 25일 밤이었습니다우연히 인터넷에 유어스테이지(yourstage)라는 생소한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시니어리더를 모집한다는 공고에 끌려 그날 밤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나루로 닉네임을 짓고 리더로 뽑힌 것도 아닌데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이곳에 발을 디딘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습니다그리움의 신호라는 짧은 글로 블로그를 만들었지요그동안 써온 수필과 주먹구구식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언제든지 나들이하기 편안하고 즐거움을 주었던 곳이었는데 문을 닫는다고 하니 허수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저만 그러지 않겠지만소중했던 낙(하나를 잃어버린 기분입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여러 생각과 섭섭함이 뒤엉켜 밀려옵니다얼굴을 아는 분보다 글로 가까워진 분이 많음에도 그동안 정이 들었고 많은 정보와 간접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고마움 또한 많았습니다한편으로는 찔리는 부분도 있습니다무의식중에라도 제가 등진 사람은 없었는지포용심이 부족하여 저를 외면하게 한 사람은 없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면 서운했던 지난날은 다 잊고 유어스테이지 안에서 좋았던 날만 떠올리면서 반가운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인연이 유어스테이지에서 생길지 누구도 몰랐듯이 앞으로도 언제 어느 자리에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이번 헤어짐은 잠시라고 생각하렵니다그동안 나루한테 귀한 사랑을 주신 선생님들이 너무 많아 여기에 성함을 다 열거할 수 없으나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리포터 선생님들어떤 분야에서 활동하시더라도 잘 계시다는 소식을 간간이 풍문으로라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지금까지 좋은 글과 사진을 올려주신 리포터 선생님들 고마웠습니다부족한 제 글과 사진에 희망의 댓글로 용기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추위에 건강하시고 원하는 모든 일 다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끝으로 긴 세월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주신 박은경 대표님김성호 차장님 그리고 직원 모두께도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시니어파트너즈의 무궁한 발전도 기원합니다.

 

나루(조동성올립니다.

1970-01-01 09:00 2018-1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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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운 2018-12-28 16:0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정이 많이 든 곳이라 한동안 서운하겠지만 다 잘될 거예요.

    1. 나루 2018-12-29 14:25 # 수정/삭제 퍼머링크

      다 잘돼야지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2. 안단테 2018-12-28 19:5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조동성선생님이 계시기에 더욱 빛나는 유어스테이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갑갑한 마음이긴하나 또 다른 만남을 위한 단계라고 편하게 마음 먹으렵니다. 감사합니다...ㅎ

    1. 나루 2018-12-29 14:2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유어스테이지를 빛나게 한 건 우리 리포터 모두의 애정어런 참여였지요. 그동안 저도 감사했어요.

  3. 어진수니 2018-12-28 23:0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믿어지질 않아서 어리둥절한채 ...

    또 이별이라니...
    어디서 이렇게 멋진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얼굴 한번 뵌적이 없는 분들에게 글로서 깊은 정을 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 허전하고 한동안 그리울 것 같습니다.

    1. 나루 2018-12-29 14:21 # 수정/삭제 퍼머링크

      워낙 정이 많은 분이라 더 충격이 컸을 거예요. 나이 들어 하는 이별은 정말 싫은데 이런 일이 생겼네요. 글 제목처럼 이게 헤어짐은 아닐 거로 믿습니다. 그동안 제게 베푼 사랑 고맙게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게요.

  4. shkimpd 2018-12-29 11:5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2019년 더 멋지게 태어나려는 움직임인가요? 이게 뭔 일인지 궁금하군요.

    1. 나루 2018-12-29 14:14 # 수정/삭제 퍼머링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마음 써주셔서 감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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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00 2018-12-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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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27 17:00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2018-12-27 18:31 # 수정/삭제 퍼머링크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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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안치고 컴퓨터를 켜는 게 하루 시작이다. 그날도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데 소리가 거슬렸다. 부팅이 안 될 때 내는 기계음이다. 전에도 그러면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기에 불길한 조짐이 들었다. 잘 알지는 못해도 본체를 열었다. 내장된 팬 세 개는 이상 없다는 듯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만 떴을 뿐 다음으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몇 해 전부터 쓴 글 중 퇴고한 글과 미발표 글이 D 드라이브에 상당량 들어있는데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믿었다가 가슴 치는 일을 당했건만 또 정신 차리지 않은 결과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들이 해결해주었기에 어깨너머로 본 대로 전원을 끄고 면봉으로 팬과 메모리 판에 먼지를 닦았다. 마찬가지다.

 

한 번만 살아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제발 옮겨 갈 시간만이라도 달라고 바랐건만 변화가 소용없다. 날이 갈수록 마음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쪽으로 기울었다. 궁여지책으로 유어스테이지 게시판에 사정을 간단히 적어 올렸다. 경험하신 선생님들의 고견이 올라왔기에 그대로 해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떠나기로 작성한 듯했다.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 볼 방법도 없었지만 한낮 기계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퇴고하다 만 글과 올해 찍은 사진만 해도 수백 장이 넘는데 그걸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기가 막혔다. 복원 전문가도 못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도 그렇지만 기계도 큰 사고가 아니면 갑자기 멈추지 않는다. 간간이 골 부리고 내 신경을 건드렸을 때 알아차리고 문서와 사진을 백업해 두었어야 하는데 미룬 게 화근이었다. 외장 하드에 옮기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미적거렸는지 내 안이함이 너무 싫었다.

 

친구한테 답답함을 호소했더니 사진은 내년에 다시 찍으면 되고 글은 새로운 마음으로 쓰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같은 장소에 간다고 해도 똑같이 나올 리 없다. 몇 달씩 공깃돌처럼 매일 가지고 놀던 습작이 아까워 첫날은 가출하여 안 들어오는 자식 기다리듯 설마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영영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잠이 달아났다.

 

며칠이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내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수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적어볼까 했는데 절반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날의 감정이나 정황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했으나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 같았다. 북북 찢어버렸다. 공책을 찢기는 처음이다. 속이 후련했다. 나를 떠난 글에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조금 남아 있는 기억조차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일기를 공책에 쓰다가 그것도 귀찮아 컴퓨터에 쓴 게 십여 년이 넘었다. 그 안에는 글감도 상당이 있는데 이젠 물 건너갔다. 다행이라면 중요한 것만 짤막하게 적은 메모장과 탁상용 달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할까 한다. 이미 벌어진 일에는 미련을 빨리 버리는 성격이라 내 곁을 떠난 것에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수소문하여 서울에 복원하는 사무실을 찾아 아들이 맡겼다. 반신반의하면서 며칠을 기다렸건만 데이터 복구가 어렵다는 문자를 보냈고 하드를 그쪽에서 버려도 되겠냐고 묻는데 아들은 어미의 속상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했는지 다른 데 가도 99%는 살릴 수 없다는 데도 보내라고 했단다. 다음 날 절대로 던지지 마세요.’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택배가 왔다. 뽁뽁이로 수십 겹을 쌌다. 살리지 못한다면서 마지막까지 함부로 다루지 않고 성의를 보여준 그들이 고마웠다.

 

그걸 받고 나는 아들한테 그랬다. ‘나는 왠지 언젠가는 이 글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모르지요. 기술이 발달하면.’ 헛된 기대가 될지언정 지금은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1970-01-01 09:00 2018-12-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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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와 여행 중에 한 장]

 

여자가 결혼하여 김장을 서른 번 담그면 할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마흔다섯 번을 담갔으니 할머니 축에 낀 지도 오래다. 그래도 강단이 있어서 김장철이 되어도 겁나지 않았는데 삼사 년 전부터는 배추 40여 포기를 혼자 하려니 엄두가 안 나 아들과 동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작은집은 같은 경기도라도 남쪽에 있고 나는 2년 전 서울에서 경기도 북부로 이사하여 전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린다. 명절과 제삿날에도 전날 와서 척척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보다 여섯 살 아래라고 해도 몸을 아끼지 않는다. 욕심이라도 있으면 덜 미안하겠는데 내가 맛보라고 된장, 고추장을 준다고 해도 힘들 게 만든 것 두고 드시라고 극구 사양한다. 몇 해 전부터는 청국장이나 고추장 된장은 되도록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그 말에 용기를 냈다면서 아파트에 사는데도 담가 먹는다.


올해도 장거리라 피곤할 텐데도 하루 미리 와서 배추를 절이고 속으로 쓸 채소를 다 썰어주었다. 올 때 배낭을 지고 오라고 했더니 수육 거리와 빵을 잔뜩 짊어지고 왔다. 나는 줄 게 없어서 김장하면서 한 겉절이와 생채, 내가 말려서 덖은 가지 차, 시골 사는 동생이 준 볶은 참깨를 반강제로 싸 보냈다. 무거워서 싫다는 말은 핑계기에 내 고집대로 했다.


남남이면서 시동생으로 인해 한 가족이 되었으나 점점 혈육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고 하니까 동서도 자기 동기간한테 하지 못한 말을 내게 한다면서 언니나 다름없다고 한다. 내가 시동생한테 남다른 애착이 있는 건 제대하고 몇 년을 나와 한집에서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신혼 방을 우리 집 근처에 얻어 신접살림을 차리게 했다. 가까워 이웃집 마실 다니듯 하면서 밥도 같이 자주 먹으면서 정이 더 들었다. 


그 집에서 첫아들을 낳던 해였다. 산바라지할 사람이 마땅하지 않기에 데리고 와서 산모 밥을 해줬다. 그때 나는 막내아들을 낳은 지 6개월밖에 안 되었기에 휴식이 필요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기(조카)를 데려오는 날 밖에서 본 얼굴은 샛노랬다. 첫아기라 황달이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고 한다. 서둘러 집 근처에 있는 K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올봄에는 내가 많이 아파서 은근히 걱정했단다. 큰형님도 돌아가시고 둘만 남아서 외로운데 자기 혼자 살아간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아서 불안했단다. 수술받던 날도 바쁜 동생들을 오라고 할 수 없어서 동서한테 부탁했다. 수술 시간이 이른 오전에 잡혔고 하필 비가 쏟아지는 길을 허겁지겁 달려왔다고 했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내 짜증과 요구를 말없이 받아주며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밤을 새웠다. 그뿐인가. 씻기는 시중까지 들어줄 때는 형님 같았다.


이런 글을 읽었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진정 현명하게 살아가는 일이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냐는. 동서를 두고 한 말 같아 오래도록 잊히지 않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이보다 훌륭한 실천은 없다고 본다.  


나는 어떤 인복을 타고났기에 이런 착한 사람과 인연이 되었을까. 급하고 까다로운 내 성격을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주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 그 너그러움이 나를 느긋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믿을 사람 없다는 이 세상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찾아줄 동서가 있기에 내 삶은 든든하고 한결 따스하다.

1970-01-01 09:00 2018-12-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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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후가 일 년 내내 푹푹 찌며 비가 온다든가 평생 폭설 속에서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라면 얼마나 속상하고 지루했을까. 상상으로도 살맛이 안 난다. 사계절이 뚜렷하게 있다는 그 한 가지로도 감사한 게 너무나 많아서이다. 대표적인 예로 봄여름에는 꽃과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전국에 명산과 바다 구경할 곳이 얼마나 많은가. 채소와 과일도 비닐하우스 덕에 계절의 경계가 사라졌다. 가정 경제가 뒷받침해준다면 살기 편한 세상이다.

 

여기는 시골이라 큰 마트에 가도 김장이 끝나면 모든 식자재가 도시처럼 풍성하지 않다. 인구도 적고 소비가 덜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해낸 게 햇볕과 냉장고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시간 여유와 환경 조건이 맞아 이미 실천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옥상에서 햇볕을 최대한 이용하여 밑반찬 거리를 준비하고 아욱과 호박잎을 흔할 때 사서 냉동한다.

 

[살짝 데친 아욱]

 

[찌려고 손질해놓은 호박잎]

 

아욱과 호박잎은 줄기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아욱은 데치고 호박잎은 푹 무르지 않게 찐다. 냉동할 때도 꼭 짜지 말고 물을 조금 넣어야 녹아도 금방 삶은 것 같다. 한 번 끓일 양을 나누어 담고 이름표를 붙여놓으면 찾을 때 이건가, 저건가뒤적이지 않고 편하다. 멸치와 무, 다시마를 우려낸 물에 바특하게 받은 뜨물을 섞고 된장을 푸는데 여기에 감자를 썰어 섞어도 구수하다.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넣어도 괜찮다.

 

또 한 가지는 찬바람 날 무렵에는 호박고지도 만들지만, 추운 날 호박 한 개 사러 나가기 귀찮을 때를 대비하여 칼국수용으로는 굵게 채로 썰고 찌개용으로는 약간 크게 썬다. 찌개에 넣을 우렁이나 조갯살도 얼린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구멍가게로 달려가 두부나 한 모 사다 바글바글 끓이면 고기반찬이 없어도 덜 미안하고 칭찬받는다. 식성에 따라 청양고추를 쓰면 칼칼하다.

 

지난주에도 우리 집이 친정 같다는 후배가 지나가다 들렀다며 연락도 없이 왔기에 시장에 갈 시간도 없고 급히 우렁이 된장에 얼렸던 애호박과 두부 몇 조각 얹어 뚝배기 채 내놨더니 바닥을 드러냈다. 반찬이라야 김장 때 한 겉절이와 무말랭이, 간장에 삭힌 고추와 깻잎, 동치미가 전부인데 맛있다고 해서 우쭐했다. 후배 말이 춥고 운동하기도 싫어서 주로 집 안에 있어서인지 12월 들어 살이 쪘다고 한다. 내 추측으로는 활동량이 줄어들기도 했고 여름처럼 채소보다는 고기를 자주 먹어서가 아닐까 한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시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한다. 그게 뭐 색다를까 할지 몰라도 영하의 날씨에 문득 된장 아욱국이나 호박잎 국이 생각나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식구들한테는 고급스러운 요리를 만들어주지 못해 늘 미안했는데 이런 거라도 해준다는 게 뿌듯하여 소개했다.

 

 

1970-01-01 09:00 2018-12-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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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대학 교정]

 

고희를 넘긴 문우 다섯 명이 만났다. 30년 전 시와 수필을 배우면서 인연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소식 모르고 지내는 코흘리개 친구보다 친근한 사이다. 한때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동인지를 열두 권이나 냈는데 자식을 따라 혹은 자신의 생활 터전이 지방으로 떠나 출간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애경사나 나들이하기 적당한 곳이 있으면 회원 중 누구라도 단체 알림방에 날짜와 시간을 올리면 절충하여 얼굴을 본다. 날짜를 정해놓는 것보다 오히려 편안하다.

 

그날은 강남과 강북 중간쯤인 청량리 근처 회기역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점심을 먹고 조경이 아름다운 K 대학으로 들어가 둘레길처럼 데크로 꾸며놓은 단풍 길을 옛이야기 하면서 걸었다. 그때 문우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시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위내시경을 하다가 나쁜 낌새가 있다고 하여 조직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양성이었다.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일주일 이상 불안했다가 안도했는데, 치매 검사에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오진이기를 바라며 다른 병원에서 다시 테스트했는데 같게 나왔다며 약을 먹든지 조금 더 두고 보자고 하더란다.

 

그와 나는 통화를 자주한다. 대화 중간에 그게 뭐더라.’ ‘왜 있잖아.’ 이런 식으로 멈추었어도 나중에 생각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나이 탓이겠거니 했지 그게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아 내색은 안 했어도 충격이 컸다.

 

치매는 사회적 질병이며 암보다 무섭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가족과 가정을 혼란에 빠뜨린다. 해마다 급증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완치는 어려워도 부작용이 적은 약도 출시되었고 예방으로는 평소 습관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하여 나는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친구나 선배가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라 불안해서이다.

 

[우리 집 꽃밭]

 

문우를 위로했다. 우선 내가 키우는 꽃 이름을 30여 개를 카톡으로 알려주고 시장을 오갈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으면 나아질 거라고. 또 한 가지는 흔들리더라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부탁했다. 사물에 몰두하면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낯선 꽃에도 애정과 호기심이 생겨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으로 찾을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또 하나 주문은 일기나 메모하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침부터 있었던 과정을 살펴봐야 하기에 반복하는 방법으로는 아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순서를 단순하게 이어가는 게 아니라 그 장소가 어디였으며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분위기와 풍경은 얼마나 멋있었는지. 그때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실수했다면 사과는 했는지. 사소하지만 구체적으로 연상하면 뇌에서 장기적인 기억과 공간개념, 감정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해마는 더 인상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메모장]

 

서정주 시인이 노년에 기억력 감퇴를 줄이기 위해 아침마다 세계의 산 이름을 무려 18백여 개나 외웠다고 한다. 그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내가 추측하건대 그분도 그 산과 연관된 산맥이나 폭포, 그곳에 사는 동물과 식물 등을 연상하면서 외우지 않았을까 한다.

 

노인이 되면 대부분 무기력함과 귀찮아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구순을 앞두고도 정신이 총명한 내 친정어머니의 생활은 늘 몸을 움직였다. 아직도 칠 남매 자식과 사위 며느리까지 생일을 잊지 않고 미역국은 먹었느냐고 전화하신다. 거기에 어머니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취미가 있는데 올 생신에는 기특한 손녀가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하여 신이 나셨다. 비록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파도 마당가에 피는 풀이나 꽃을 수시로 담으신다. 텃밭에는 당신한테 필요한 작물을 심어 자식들한테 나눠주는 기쁨도 누린다. 젊은이가 볼 때는 그 연세에 낙이 없을 것 같은데도 어떤 게 행복인지 아는 분이다.

 

사람의 뇌에는 1백억 개의 뉴런(neuron-신경 단위)이 있다고 한다. 기억을 떠올릴 때는 수백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연결되어 대뇌에 자극을 준다고 한다. 우리도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지난날 찍은 사진과 일기장을 뒤적이면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자꾸 흔들어 깨우는 수밖에 없다. 친구야. 나쁜 변화가 있어도 실망하지 말고 힘내자

1970-01-01 09:00 2018-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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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루] 
1970-01-01 09:00 2018-11-2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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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루] 
1970-01-01 09:00 2018-11-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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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22 14:2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정겨운 문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드나들었던 문.

    1. 나루 2018-11-24 13:51 # 수정/삭제 퍼머링크

      요즘 아이들은 그 정감을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추억이 많이 담긴 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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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00 2018-11-1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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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8 21:3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국화들이 나루님 말씀을 아주 잘 듣네요.
    저는 향기만 맡을게요.

    1. 나루 2018-11-19 18:23 # 수정/삭제 퍼머링크

      우리는 오늘 김장했는데 숲님은 어찌하기로 했는지요. 반가워요.

    2. 2018-11-22 14:22 # 수정/삭제 퍼머링크

      나루님, 김장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저는 김장을 빨리했어요.
      제 블로그에 올렸어요. ^*^

    3. 나루 2018-11-24 13:52 # 수정/삭제 퍼머링크

      혼자서 많이도 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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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가을이면 억새, 단풍, 국화로 시작하여 지역마다 볼거리, 먹을거리 축제도 많다. 나는 장거리는 자신이 없어 집에서 가까운 소요산 단풍 구경 두 번 다녀온 게 전부다. 산이나 바다를 혼자서도 잘 찾아다니다가 아쉽고 허탈하지만, 올해는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시간이 여유로워 책도 읽고 살림에 고수는 못 되어도 추워지기 전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겨울에 먹을 밑반찬을 마련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아들 도움으로 옥상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정작 꿈구던 것은 투명한 유리 집이지만 그건 무리라서 포기하고 쉽고 부담스럽지 않은 비닐을 택했다. 바닥에는 비가와도 흘러내려 가도록 벽돌을 촘촘히 놓고 널빤지를 깔았다. 널빤지 위는 야외용 돗자리로 덮었다. 투명한 비닐 한 겹이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눈 오는 날 국화차 한 잔 들고 그 안에서 마시면 또 하나의 추억이 생길 것 같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친구한테 했더니 ‘소확행’을 즐기는 여인이라고 부러워한다. 

 

[무말랭이]

 

차를 끓이면 구수하다기에 비닐하우스에 가지 몇 개와 무말랭이 거리를 널었다. 자세히 보면 햇살이 하나하나 수분을 핥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만 지나도 꾸둑꾸둑한 게 증거다. 그래서 무는 마르면서 거짓말처럼 줄어들어 빽빽하게 넌 틈이 조금씩 넓어진다. 낮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져서 애호박과 고추 부각, 데친 고춧잎을 말리려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늦가을 햇볕을 서둘러 저장해야 한다.

 

[고추부각]

 

살아가는 일도 그렇지만 전업주부가 하는 일이란 식탁에 무얼 올릴까 고심하는 연속인 듯하다. 까놓은 마늘, 볶아놓은 참깨, 고춧가루를 등 쉽게 사는 길이 있지만, 굳이 거부하는 이유를 찾자면 이런 거다. 그 물건의 출처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의심스러워서이고,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믿을 수 있는 양념이나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이다. 그런데 앞뒤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음식점에서는 국산이냐, 조미료를 안 넣었느냐, 유기농이냐 따지면서 자기들이 먹는 양념에는 관대하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짐작하면서도 눈감아준다.

 

 [태양초]

 

김치를 사 먹는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요즘 시장에 가면 김장철이라 부산하다. 마늘과 생강, 젓갈은 준비했으니 고춧가루 차례다. 온 가족이 땀 흘리면서 말린 태양초를 싣고 방앗간으로 갔다. 사람들은 폭염을 피해 다닐 때 이 고추는 옥상 바닥에서 그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물기 한 방울 없도록 속을 비웠다. 몸소 수고한 결과물이라 비가 올까 봐 노심초사했던 고생도 다 잊고 신바람만 난다. 여름에 한가하던 방앗간에도 고추를 빻으러 온 사람으로 북적였다. 피대 돌아가는 소리도 시끄럽게 들리지 않고 재채기하는 소리도 사람 사는 곳처럼 정겹게만 들린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차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내려주는 햇볕을 무덤덤하게 흘려버리기에는 아깝다. 생선이든 과일이든 건조시키면 영양가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파트에 살아서 못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은데, 그건 경험이 없거나 실패할까 봐 시도하려는 용기가 부족해서이다. 나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만큼 익숙해졌다. 반찬 한 가지라도 손수 마련했다가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날, 빙판으로 시장에 가기 싫은 날 깨보숭이 한 접시 튀겨 식탁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1970-01-01 09:00 2018-11-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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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8 21:3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나루님, 그야말로 알등 주부신 거 아시죠?
    요즘 나루님 같은 분 드물어요.
    많이 배워야겠어요.
    저는 이제사 살림의 재미를 느꼈어요.
    감말랭이도 하고, 이제 고구마 말랭이도 하려고요.
    김장도 끝냈어요.

    1. 나루 2018-11-26 09:51 # 수정/삭제 퍼머링크

      에이, 그냥 하던 거니까 할 뿐이랍니다. 감말랭이 참 맛있지요. 그런 것으로 군것질하면서 겨울 잘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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