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털이풀꽃]
[염치없는 부탁]
막내아들이 수학능력고사를 보는 날이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아들이 혼잣말처럼 온몸이 떨린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조마조마한데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춥다고 함은 입시 때만 되면 영하로 내려가는 기온 탓만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잔뜩 껴입은 어미의 속도 춥고 진정이 안 되는데 저라고 어떻게 안정이 될 것이며, 고3 내내 독서실에서 보낸 결과가 단 몇 시간에 판가름 나는데 숙면인들 제대로 했겠는가.
슬쩍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새벽에 일어나 면도한 구레나룻 자리에 소름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는 그거라도 녹여주고 싶어서 목도리를 풀었으나 끝내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는다.
쳐다보지 말 것을. 키만 컸지 볼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수험생의 어미로서 해준 게 없었다. 절대로 먹지 않을 거라고 강조한 아들의 말만 듣고 보약 한 제 먹이지 못한 걸 수험장으로 가면서 후회했다.
시험장소인 모 중학교 정문 앞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선생님과 후배들이 그룹을 지어 나와 있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여러 종류의 뜨거운 음료와 과일을 권했고 은박지로 싸서 만든 대형 포크와 ‘모두 합격’이란 단어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정말 그 커다란 포크로 정답만을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위안이 되었다.
아들도 뜨거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다소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운동장까지 따라 들어가 아이의 언 손을 잡으며,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라고 힘주어 안심시켰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제발 당황하지 말고 지금보다 월등히 잘해주길 바랐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동시에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은 교문 밖으로 나갔고 문은 닫혔다. 갑자기 기온이 더 내려간 것처럼 발이 시렸다. 아이는 시험지를 받고 얼마나 떨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내 발 시림은 문제가 아니었다.
교문의 창살을 붙들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 나도 끼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염주를 돌리면서 발원을 하거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급한 마음에 그들이 믿고 있는 절대자라는 분을 찾고 싶었지만 교회도 절도 다니지 않으면서 몸이 단다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다 오늘 같은 날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찾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텐데, 내가 염치 불구하고 애타게 찾는다고 해도 나와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게 아닌가.
나는 나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할 분이 누구일까 골똘히 고민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대자대비한 분이라고 해도 혈연관계만큼은 효험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아들과 나의 소원을 들어줄 사람은 단 한 사람, 시어머니밖에 없었다. 살아계실 때 잘 모시지 못한 것이 걸리고 염치없지만 그건 다음 문제이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을 낳고 5년 후에 이 아이를 낳아서 그랬던지 많이 예뻐하셨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는 날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놀았고, 업고 나가면 사람들이 당신을 닮았다고 한다며 은근히 좋아하셨다.
더구나 이번 부탁은 처음이면서 나를 보아 들어달라는 게 아니고 그냥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이 손자가 장성하면 당신의 산소를 지금보다도 잘 돌보도록 할 것이고, 제사도 정성껏 모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생전에 이 아이를 사랑하셨듯이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이 시험 볼 장소라고 가르쳐 준 3층 교실을 바라보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할머니께서 네 곁에 계시니 아는 것과 배운 것을 잘 기억해서 실수 없기를 바란다. 너는 할 수 있다’라고.
시험이 한 시간쯤 끝나갈 즈음 햇살은 많이 퍼져 등이 따스워졌다. 내 염치없는 부탁이 잘 전해진 것처럼.
[글/사진/naroo]
***
이 글은 몇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제 염치없는 부탁이 전해졌던지 아들은 합격을 했고
저는 이 글로 제1회 ‘프론티어문학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글이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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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됐다 다됐다 하시는 어머님께서 생존해 계시니 행복하신 나루님입니다. 저는 보고 싶어도 너무 먼 데 계시어...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무슨 날이나 되어야 하루 이틀 자고 오는 게 고작이랍니다.
무지개님,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에미에 그 딸인가봐요.
고맙기도 하시지...
어머니 만한 딸이 어디 있겠어요.
달력에 적어놓지도않고
더군다나 음력 행사를 챙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적어놓고도 미처 챙기지못하기도 하는데...
어머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달력에 적어놓고 빠뜨리셨대요.
왜 우리도 잔뜩 적어놓고 깜빡하는 날 있잖아요.
우리는 벌써 그러면 안 되는건데.
지금은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니까 잘 견디실 거예요.
어머니는 어머니이지요.
제 뜻 이해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