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의 해이다. 이에 양국 대통령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한불 상호 교류의 해’로 정했다. 여러 분야에서 의미 있는 교류가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 행사 중 하나는 6월 11일부터 7월 2일까지 매우 토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프랑스 영화제 <사랑의 파리>다. 주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명화를 고른 것으로 당연히 무료다.
 
프랑스 영화는 잔잔하면서 삶을 곱씹는 주제가 많아 좋아하는 편이다. 우선 시간이 맞아 <파리의 연인들>을 보기로 했다. 타이틀만 보면 뻔한 사랑 이야기에 파리가 자랑하는 관광지를 배경으로 펼쳐질 것으로 상상이 된다. 실제로 가보면 속았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별거 아닌 센 강, 에펠탑을 얼마나 우려먹었던가! 그런데도 또 가고 싶게 만드는 프랑스의 명품전략은 정말 못 말린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았다. 그러나 영화는 뜻밖의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뒤통수를 때린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이지만, 혁명과 시위가 얼룩진 곳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도시. 영화에서는 화려한 파리의 풍경 속에 여러 인생의 겉과 속을 드러낸다. 주인공 제시카(세실 드 프랑스)가 그 삶 속을 헤집고 다니는 보헤미안이다.
 
 
제시카는 할머니 권유로 파리로 간다. 할머니는 젊은 날 못 이룬 꿈을 손녀가 이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할머니 말대로 파리에 간 제시카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가수를 꿈꾸는 극장 관리인, 유명배우가 되기를 열망하는 연극배우, 성공한 피아니스트(알베르 뒤퐁텔), 평생 모은 예술 작품을 모두 경매에 내놓은 부자 할아버지(클로드 브라소) 그리고 그의 아들 프레데딕(크리스토퍼 톰슨)이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본 삶의 속살은 그림자 같은 어두운 구석투성이다. 연극배우는 유명해지기 위해 앞만 보고 뛰느라 자신의 삶을 가꿀 생각은 아예 없다. 성공한 피아니스트는 정장만 입는 것이 답답기만 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전원생활이다. 이 부분이 다소 상투적이긴 해도 유한한 삶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음을 재확인시키는 데 기여한다.
 
여러 삶을 보여주지만, 감독 다니엘레 톰슨은 인생의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서야 덧없음을 깨닫는 인간의 모습을 부자 아버지를 통해 그림으로써 주제를 암시한다. 많은 미술품을 팔지만, 끝까지 경매에 내놓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임을 깨닫고 아들에게 전하는 ‘포옹’이라는 조각물을 통해 그 마음을 표현한다. 아들 프레데딕도 제시카를 가슴에 품으며 이제 외로운 삶을 털어내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여러 삶을 들여다보던 제시카는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결론을 내린다. “내가 찾는 것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멋진 오케스트라의 좌석이에요.” 이 영화의 원제가 <오케스트라의 좌석>임을 감안할 때 이 대사가 영화의 주제인 듯싶은데 평이한 듯 난해하다. 대체 그 좌석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안락한 삶이라면 유치하고 적당한 타협이라면 안이하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멈추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말했다. 물론 그 말도 요령부득인 것은 매한가지지만, 온전히 오케스트라를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는 비싸고 화려한 VIP 석도 아니요 그렇다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싸구려 뒷자리도 아닐 터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중용의 정신이 아닐까? 하며 적당히 타협했다. 오늘 건진 것은 그것이다.
 
아마도 <파리의 연인들>은 우리나라 영화 수입자가 관객을 낚으려 지은 제목일 것이다. 전에도 몇 편의 영화를 보며 원제와 생판 다른 한국식 제목에 어이없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목을 원제대로 번역하면 오히려 공감의 폭이 더 넓었을 텐데. 이것도 돈에 치우친 오케스트라의 한쪽 귀퉁이 자리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기막힌 아이러니의 제목이다.
 
* 사진은 공식 사이트의 것입니다.
 
1970-01-01 09:00 2016-06-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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