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 넘은 세 여자가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여행이랄 것도 없다.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내어 자연 속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니까. 그러나 연휴에 가족을 다 떼어놓고 훌훌 집을 나선다는 것은 젊어서는 꿈도 못 꾼 일이다. 환갑이 지나니 이제 모두 무서울 게 없나 보다. 그래서 이 나이에는 부인이 곰국 끓이면 남편은 벌벌 떤다고 하지 않던가. 
 
호스트는 여고 교장 선생님인 친구다. 선생답게 세밀한 계획서까지 뽑아왔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된 적이 있었던가. 여행도 마찬가지다. 늘 예상하지 않은 일이 뒤통수를 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여행이든 인생이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돌발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이번에는 그 치밀한 계획 틈새로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사람과 맞닥뜨리게 될까? 은근히 기대되었다.
 
이번 목적지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오크 밸리다. 그 안에 산책로, 수영장, 사우나가 다 있다니 요것조것 이용해보고 밤에 수다나 떨 참이었다. 헌데 교육자 친구의 계획서에는 뜬금없이 미술관 관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에 개관한 ‘뮤지움 산(SAN)’이 그 안에 있었다. 내심 산으로 둘러싸여 그런 이름을 지었나 했더니 산을 Space Art Nature의 약자란다. 
 
 
큰 기대 없이 찾아간 미술관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여객선 같았다. 산중에 여객선이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왠지 건물의 생김새가 낯익었다. 저런 건물이 어디 있었더라? 아! 그렇지, 기억을 뒤지니 제주도에서 본 적이 있는 방주교회다! 
 
한여름 뙤약볕 속에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호텔에 박혀 있다가 우연히 관광 지도에서 발견한 방주교회를 찾아 나섰다. 목장의 말들도 더위에 지쳐 허덕이는 풀밭을 지나자 코카서스 산 중턱에 걸린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교회가 눈앞에 나타났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방주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이것이 예기치 않은 만남인가? 마치 옛 애인과 마주친 듯 반가웠다.
 
안도는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까지 받은 현대 미니멀리즘 건축의 대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가가 된 사연이다. 프로 복서를 거쳐 트럭 운전사였던 그는 어느 날 은행에서 잡지를 보던 중 당시 프랑스 유명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기사를 보게 된다. 그때 그의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건축가가 되는 거야!’ 
 
그날부터 안도는 르코르뷔지에의 책으로 독학하고 마침내 그를 만나러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안도가 도착하기 불과 며칠 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비록 스승은 못 만났지만, 내친김에 안도는 4년간 세계의 유명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자기가 세울 건물의 기초를 닦는다. 그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들으니 KFC 창업주인 커넬 힐랜드 샌더스 할아버지도 생각났다. 그도 페인트공, 타이어 영업, 주유소를 거쳐 치킨집을 차리지 않았던가.
 
 
용기 있게 인생역전으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행운아들을 떠올리며 정교한 미술관 내부를 돌다 보니 여러 가지 재미있는 공간으로 있었다. 원형 창으로 하늘이 들어오고 사각 온실도 나왔다. 그 중간에 삼각 코트로 이뤄진 사색의 공간도 있었다. 갑자기 바닥이 한쪽은 낮고 맞은편은 슬쩍 조금 높았다. 알고 보니 지형을 그대로 살린 설계란다. 자연을 살리고 빛을 다독거린 건물은 마치 미로와도 같았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미술관은 우리의 건축형태와 닮았다. 건물로 들어설 때 꼭 물을 건너는 것은 우리나라 궁궐의 금천교를 닮았다. 물론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상징도 같다. 삼각형은 경복궁 근정전 앞 드무(방화용 큰 솥)의 세 다리가 연상되었다. 사각형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은 창덕궁 아름다운 연못 애련지다. 동양의 천지인 사상의 표현이다.
 
미술관 창으로 내다보이는 물가는 산과 나무가 그대로 비치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언덕으로 둘러싸여 먼발치에서는 미술관이 보이지 않았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안이나 밖이나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미술관을 나오려 마음먹었을 때는 미로 같은 내부 때문에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어느새 3시간 30분이나 흘렀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줄도 몰랐다. 지루함도 잊은 채 인공물 속에 갇혀 어느새 그만 우리도 자연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우리의 계획은 이미 틀어지고 말았다.
 
1970-01-01 09:00 2016-06-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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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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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수현 2016-06-16 00:1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원주에 그런 곳이 있었군요! 가끔 원주는 가는 곳인데..역시 멋진 미령님~~!!!

    1. 박미령 2016-06-16 15:23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보다 더 좋은 곳에 많이 다니시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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