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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화면의 커다란 기차 바퀴가 극적인 장면마다 숙명처럼 거침없이 다가온다. 멈출 수 없는 시대적 가치관의 바퀴 속에 스러진 여인, <안나 카레니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 불행이 있다.”라는 톨스토이 원작의 첫 문장은 곱씹을수록 그 맛이 오묘하다.
여기서 행복한 가정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겉모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는 혹 억압되어 가려진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은 개인적 성향 탓일까?
불행은 행복보다 세상에 더 발가벗겨진 것은 아닐까?
불행한 가정에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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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류사회, 화창한 봄 향기 같은 안나(키이라 나이틀리 扮)는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고 화려한 생활을 한다. 모범적인 남편 카레닌(주드 로 扮)과 사랑스러운 아들도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바람 핀 오빠 오블론스키(매튜 맥퍼딘 扮)와 올케 돌리(켈리 맥도날드 扮)의 관계를 중재하러 모스크바로 떠난다. 삶이 그렇듯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여행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애런 존슨 扮)을 만나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린 그녀가 치른 대가(代價)는 상류사회의 손가락질과 사랑하는 아들과의 애끊는 이별이다. 결국,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것 같던 사랑도 그 열기가 식어 안나는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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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여기서 세 연인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들은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과 돌리, 돌리의 여동생 키티와 레빈, 그리고 안나와 브론스키다. 갓 구운 빵을 탐하듯 집 밖의 여자를 늘 가까이하는 오블론스키를 눈감아주며 겉으로는 행복하게 사는 돌리. 우여곡절 끝에 맺어져 맑은 영혼을 키워가는 레빈 내외. 순간적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과연 어느 부부가 가장 행복할까? 누가 가장 바람직한 연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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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자신을 모델로 레빈을 그렸다. 살아갈수록 키티의 헌신적인 모습과 레빈의 숭고한 사랑으로 충만한 키티 부부의 삶은 누가 보아도 향기롭다. 하지만 이 이상적인 부부도 결혼하기 전에 아픔이 있었다. 한때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키티를 바라보며 좌절의 쓴잔을 마신 레빈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또한, 브론스키를 안나에게 빼앗긴 아픔에 처절한 시간을 보낸 키티의 지난날도 있지 않은가! 과연 숭고한 사랑에는 얼마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일까? 나머지 두 쌍도 각각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상황이 되어보기 전에는 어찌 비난의 말을 퍼붓거나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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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 사랑을 표현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춤이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타고 흐르는 그들의 춤은 손동작이 특이했다. 우리나라 당초무늬나 로코코 식 화려한 문양을 그리듯 두 남녀가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손동작은 그 안에 사랑의 안타까움이 담겨 관객의 마음까지 절이게 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독일 표현주의의 극적인 요소를 도입해 과장된 연기와 연극 무대, 그림 속을 넘나드는 기법으로 긴장감을 더했다. 짧은 시간 압축적인 표현과 극적인 장면 효과도 탁월하다. 다만 닫힌 공간이 주는 답답함도 없지는 않았다.

 안나 역을 한 키이라 나이틀리는 잘은 모르지만 내 소견으로는 역대 이 역을 맡은 여배우 중의 으뜸이었다. 물론 그레타 가르보 (1925년)는 신비스럽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고 당당하고 새침한 매력의 비비언 리(1948년)도 좋았다. 소피 마르소(1997년)도 도발적인 청순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작품의 키이라 나이틀리는 약간 각진 얼굴의 현대적인 선이 시대적 가치관에 반항하는 당당함으로 돋보였고 늘 촉촉한 눈망울에 많은 말이 담겨 있어 더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브론스키에게는 별로 끌리지 않았지만 주드 로의 이성적이고 흐트러짐 없는 연기는 이전의 뭇 여성의 마음을 빼앗은 미소와는 다른 절제된 기품이 있었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은 율동적인 베드신으로 에로틱한 느낌 없이 아름다운 춤과 같이 그려 마음에 와 닿았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내 귀에 남는 안나의 대사가 있다.
 “나는 먹을 것이 주어진 배고픈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춥고 헐벗을지언정 불행하지는 않아요.”
 "아들을 위해 죽을 순 있어도 아들을 위해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여러 번 곱씹어 보아야겠다.
 
 현재 이 시대의 잣대로 가늠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불행한가?
나의 가치관에 비추어 나는 얼마만큼 행복하고 또 불행한가? 마음속에 많은 질문과 생각을 남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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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기 동지 김진옥님, 기윤덕님 함께 해서 참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진은 공식 사이트의 것입니다.


2013-04-17 23:43 2013-04-1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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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수현 2013-04-20 17:1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번 여행중 비행기에서 보았던 안나카레리나~
    그 여행보다 더 멋진 여행을 채하님의 블로그에서 하였습니다.
    깊이를 지닌 문화예술의 심미안..!!! 감탄스럽습니다.

    1. 박미령 2013-04-21 00:4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정말 알찬 여행을 하셨습니다. 과찬으로 크게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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