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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해변 언덕길은 문 탠 로드(moon tan road)다. 달맞이 길의 영어 이름이다. 달빛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이 길은 대보름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선남선녀가 보름달이 뜨는 날 이곳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전설 때문인가 보다. 그 길을 오른다.
 
 첫 길은 ‘달빛꽃잠길’이다. 달빛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길. 팔손이 풀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소설 ‘소나기’가 떠오르고 꼬마 때 시골에서 살았다면 비 오는 날 저 잎사귀를 쓰고 비를 피해 보았을까? 상상해본다.
 조금 오르다 보니 옆으로 숲길이 나온다. 흙길이 반가워 얼른 발을 옮긴다.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이 길은 솔향을 맡으며 코가 호사하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눈도 한없이 시원해지는 길이다. 이 오묘한 조화는 누구의 작품인가? 수려한 경관에 감탄할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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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송 숲 아래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나무들과 풀들의 놀이터다. 그 사이에 자주 만나는 나무가 있다. ‘사스레피나무’다. 낯선 이름이라 설명을 들여다보니 차나무과로 상록 활엽수다. 반짝이는 나뭇잎이 낯익다 했더니 졸업식이나 상가(喪家)의 화환 뒷 장식에서 많이 보았던 그 잎이다. 꽃은 계분 냄새가 나서 좀 꺼린다고 하지만 살균, 진정, 공기 청정의 효과가 있다니 좀 참아줘야겠다.
 윤기 나는 잎사귀 위에 걸터앉은 마른 솔잎이 누군가가 일부러 하나씩 걸어놓은 듯하다. 갑자기 옛날에 즐겨 듣던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멜로디가 떠오른다. 나무가 반기는 신호인가? 사스레피나무의 꽃말은 한가한 망상에 걸맞게도 ‘당신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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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달빛가온(온도를 더하다)길’.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마음을 정리하는 길이다. 솔 기둥 사이로 기찻길이 바다를 바라보며 이어진다. ‘동해남부선’이다. 부전역에서 동래, 해운대, 송정을 거쳐 포항까지 가는 열차는 이제 복선 전철이 생겨 사라질 운명이란다.
‘여행 상품으로 놓아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못내 아쉽다. 일부러 다가가 철길 건널목을 건너본다. 다시 돌아 건너며 기차 없는 철길의 자유를 맛본다. 선로 차단기가 그 모습을 눈여겨보더니 팔짱 끼고 웃는다. 정겨운 광경은 언덕 너머 해운대 마천루를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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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 오롯이 들어앉은 어촌 마을은 ‘청사포’다. 환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지키고 있다. 둘이라서 든든하고 더 보기 좋았다. 마을 앞에 턱 버티고 선 커다란 소나무는 ‘망부송’. 여느 어촌 같이 고기잡이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가 붙박이처럼 서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마저 어부 남편 기다리는 부인 위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소원을 풀어 주었다는 ‘청사포(靑蛇浦)’다. 지금은 모래 ‘사(沙)를 쓰지만 오래전에는 뱀 ‘사’ 자를 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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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포구는 마음을 헐겁게 만든다. 찌든 속내를 올올이 풀어 바닷물에 헹군다. 솔향기 품은 바닷바람이 드나들며 말려준다. 곱게 마른 가락가락 베틀에 걸어 외할머니 정성으로 마음결을 다시 짜본다. 뽀얀 마음 안고 뒷걸음질로 바라보는 눈길에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손을 흔들며 끝까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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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3 01:10 2013-02-2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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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광수 2013-02-23 23:00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변함없는 열정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1. 박미령 2013-02-24 01:40 # 수정/삭제 퍼머링크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 황수현 2013-02-25 10:3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름다운 글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함께하는 즐거운 동행입니다. 멋져요~~채하님^^*

    1. 박미령 2013-02-25 11:30 # 수정/삭제 퍼머링크

      자연이 큰 위안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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