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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24살, 철없는 나이에 나름 올바른 판단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며 결혼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고 한심한 나이인가! 그때 알긴 대체 뭘 얼마나 알았단 말인가? 지금도 이렇게 어리석은데…….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여러 사람이 이야기할 때 둘만 웃는다든가, 같은 말을 동시에 한다든가 해서 꽤 잘 맞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살자 맞지 않는 점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부부 싸움은 ‘미제 버터’ 사건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빵에 발라먹으려고 바둑판 모양 미제 버터를 한 판 샀다. 그때는-1978년-우리나라 버터가 신통치 않았다.

 남편은 그 버터를 보는 순간 얼굴색이 싹 변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했더니

“미령 씨가 이렇게 사치스러운 여자인 줄 몰랐어요.”
세상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내가 뭐 혼자 입을 명품 옷을 샀나? 핸드백을 샀나? 같이 맛있게 먹으려고 샀고 우리나라 버터가 맛이 있으면 내가 왜 굳이 미제 버터를 샀겠는가?’

 그때부터 나는 부어터져서 말을 안 했다. 어려서부터 고집이 센 편이라 화가 나면 말을 안 하고 그 화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하나님 믿고 변화되어 화도 잘 안 내고 고집도 거의 다 꺾였다.
 
 냉전 체제로 돌입한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한 일주일은 족히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잘못했어. 우리 이 버터 빵에 발라 맛있게 먹자.” 하는 거다.

 이 무슨 맥 빠지는 사태인가! 그 후로도 남편은 싸우기만 하면 금세 백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잘못했어! 미안해! 고마워!’ 를 잘할 줄 몰랐다. 그런 마음이 들어도 그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기 어려웠고 공연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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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몇 번 남편이 사과해올 때는 승리감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거듭되자 차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것이 자명할 때마저
“내가 잘못했어!”하니 견딜 수가 없다.

 점점 나는 애써 “미안해!, 잘못했어!, 고마워!” 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주 잘한다. 내가 이 말을 잘할 수 있게 가르쳐준 남편에게 참 고맙다.                                                                 [글/ 사진 : 채하]
                                                   

2012-09-16 22:00 2012-09-16 21:45

Comments List

  1. 황수현 2012-09-16 22:4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정말 잘 어울리는 한쌍의 짝궁이신가 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두분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1. 박미령 2012-09-16 23:10 # 수정/삭제 퍼머링크

      과찬의 말씀입니다. 고맙습니다.

  2. 후리지아 2012-09-17 00:2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ㅎㅎㅎ환상의 커플이십니다.
    미령님 남편은 참 지혜로우십니다. 여자한테 이겨봐야 쪼잔하단 소리나 듣지요. 그래서 남편들이 여자한테 져주는것이지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또 세계평화를 위해서~~~.^^

    1. 박미령 2012-09-17 11:21 # 수정/삭제 퍼머링크

      그래서 겉으로만 제가 잡고 속으로 잡혔습니다. 고맙습니다.

  3. 가리온 / 이재원 2012-09-17 01:5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남편이 대단하시군요. 일찌기 부인에 대한 유연성과 중요한 핵심을
    이해하고 사셨으니 지금 그렇게 두사람의 생각이 같아지고---

    1. 박미령 2012-09-17 11:21 # 수정/삭제 퍼머링크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4. 청학 2012-09-17 09:0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자신의 잘못을 금방 알아 채리는 사람이 진국이지요

    1. 박미령 2012-09-17 11:22 # 수정/삭제 퍼머링크

      겉으로만 일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5. king7405 2012-09-17 09:3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아시는 분입니다. 주렁, 주렁 호박, 박,수세미가 탐스럽습니다. 피곤할텐데 벌써 글 올리셨군요, 도보 클럽 글은 잠시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박미령 2012-09-17 11:24 # 수정/삭제 퍼머링크

      글이 별로 없는 것같아 무턱대고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6. 어진수니 2012-09-17 11:2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간단한 글이지만 두분 사이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날만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한 30년 싸우며 살던 어느날 남편이 내게 말하더군요
    "너도 나한테 잘 못 했단 말좀 해봐라 우째 잘못은 맨날 나 혼자만 했노?"

    아직도 나는 잘 못했단 말이 목구명을 넘어오지 않습니다.
    얼어죽을 자존심 남편에게 빳빳이 세우는 나는 아직도 미령하나마
    박미령님에게 도전을 받고 죽을 각오라 한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물론 잘못했다고 말만 안했지 행동으로는 보여주긴 했지요
    반찬에 신경을 쓴다던지...아니면...으흐흐

    1. 박미령 2012-09-17 11:46 # 수정/삭제 퍼머링크

      지혜로우신 어진수니님의 겸손한 말씀이지요. 실천이 더 중요하지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7. 추영탑秋影塔 2012-09-17 11:3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우리집하고는 정 반대네요. 우리도 냉전 시대를 몇 번 거쳤는데
    화해의 눈길은 언제나 아내 쪽에서 왔습니다. 제 속으로 일 주일, 열흘, 한 달, 하면서 계획을 세워보지만 웃고 나오는 쪽에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교훈만 얻고 끝납니다. 따지고 보면 지는 건
    언제나 이 쪽인 셈이지요. ㅎㅎㅎ

    1. 박미령 2012-09-17 11:4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겸손하신 추영탑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8. 나그네 2012-09-17 16:1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티격 태격하는 사랑싸움은 필요할때도 있습니다.
    비온후 땅이 더 굳어지듯이!

    1. 박미령 2012-09-17 23:22 # 수정/삭제 퍼머링크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이광수 2012-09-17 18:2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제목이 좋은 말씀 뿐입니다.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1. 박미령 2012-09-17 23:23 # 수정/삭제 퍼머링크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10. 초록바다 2012-09-17 21:0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바깥 선생님이 참 지혜로우셨네요.
    철들자 황혼이란 말이 있지요.
    삶의 연륜이 쌓이면 철이 드나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

    1. 박미령 2012-09-17 23:2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1. 최수원 2012-09-18 07:2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신혼 때의 미령님 모습이 예전에 저의 모습 같아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다른점은 나는 남편에게서 잘못했다는 말을 안들었다는 것.
    말 하지 않아도 알지 않냐는 표정 뿐... ^;^(어이상실하여 픽 할뿐.. ㅋㅋㅋ)

    1. 박미령 2012-09-18 16:47 # 수정/삭제 퍼머링크

      더 속이 깊은 분일 거예요. 우리 모두 너무 어렸어요. 고맙습니다.

  12. Petrus(베드로) 2012-09-18 20:0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환상의 조합... 멋져요. 배워서 실습해 보아야겠습니다.
    한데, 시비를 어찌 걸지?

    1. 박미령 2012-09-19 02:23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이미 환상의 부부이신 것 다 압니다. 감사합니다.

  13. 나의 복숭 2012-09-20 15:2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역시 고운 인성을 가진분은 틀린다고 생각하네요
    댓글보니 글 올리신지 한참 되셨는데
    저만 늦게와 뒷북 쳐서 죄송합니다.
    블로그 순위에 안올라오면 찾기가 좀 힘들어서요.
    제가 어리버리해서 그러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1. 박미령 2012-09-20 22:27 # 수정/삭제 퍼머링크

      별 말씀을요 늦게라도 찾아주시는 복숭님! 고맙습니다. 과분한 격려의 말씀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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