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에 관한 한 ‘믿보메’(믿고 보는 메릴 스트립)인 나는 이번에도 그녀를 보고 서슴없이 골랐다. ‘이번에는 어떤 변신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영화관을 들어가기 전부터 설렜다. 그녀가 나온 영화는 대부분 수준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애틋한 중년 여인 연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감상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플로렌스>다. 요즘 워낙 실화가 영화보다 극적이어선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인기다. 하긴 할리우드도 소재가 고갈되어 황당한 영화가 난무하니 리얼리티가 있고 과장이 덜 된 실화가 오히려 더 공감이 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상황이 몹시 과장되어 픽션 같이 느껴졌지만, 바로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의 실화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으로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만류로 꿈을 접는다. 그러나 그의 꿈을 가로막던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시자 플로렌스(메릴 스트립)는 성악의 길로 접어들어 열정적으로 연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음치다. 그래도 그녀는 꿋꿋이 성악가의 길을 간다.
 
 
기어이 1944년 카네기홀에서 독창회까지 연다. 여기에는 남편이자 매니저인 베이필드(휴 그랜트)의 헌신적인 외조가 한몫한다. 첫 남편 탓으로 매독에 걸려 머리카락이 한 올 없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시를 읊기도 하고 그녀의 독창회 관중을 돈을 주고 끌어모은다. 플로렌스 앞에 벌어질 모든 어려움을 한 몸으로 막아내는 셈이다.
 
아마도 그중 제일 큰 공적은 전담 피아니스트 맥문(사이몬 헬버그)을 플로렌스 옆에 끝까지 잡아둔 일이다. 하지만 음치가 카네기홀에 서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을 다 해결한 베이필드도 끝내 막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신문에 난 플로렌스의 악평이다. 결국, 이 기사를 보고 그녀는 병이 나 한 달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처음에는 돈 받는 재미로 독창회에 참석하고 속으로는 플로렌스를 조롱하던 가짜 관중들도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에 그들의 마음은 어느새 격려로 변한다. 누가 음치이면서도 그녀만큼 성악에 평생을 바칠 수 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의 레코드도 유명 성악가를 능가할 정도로 팔렸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의 마음도 조롱에서 격려로 바뀐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이 황당한 실화를 가슴 찡한 코미디로 버무려 내고 있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서 아기자기한 감동을 이끌어 내려면 배우들의 연기가 필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확실히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더 뛰어난 웃음은 반주자 맥문(사이몬 헬버그)에게서 나온다. 그녀의 노래에 맞춤 연주를 하며 짓는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한참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영화의 장르가 애매하다. 성장 영화인지, 코미디인지, 아니면 멜로인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인간 승리라고 하기엔 그녀의 노래 솜씨가 너무 형편없고 또 지나치게 부자이다. 그래서 슬며시 떠오르는 게 풍자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성악 버전이 아닌가! 물론 정치영화는 아니겠지만, 그녀의 막대한 부를 권력으로 치환하면 신기하게 들어맞아 혼자 웃었다.
 
마지막까지 궁금한 것은 실제로 그녀가 자신이 음치인 줄을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대개 주변의 음치들은 모두 자신이 음치임을 자각하고 사는데 과연 모를 수가 있었을까? 마지막 대사가 아리송하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했다고는 하겠지만, 내가 노래를 안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소질이 없어도 계속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갸우뚱하며 극장 문을 나섰다.
 
 * 사진은 영화 사이트의 것입니다.
 
 
1970-01-01 09:00 2016-10-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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