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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이 다가올수록 아버지 얼굴은 점점 어두워진다. 함북 길주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명절 때 남들처럼 들뜰 수가 없다. 찾아갈 곳도 없다. 그저 부모님 보고 싶은 마음만 보름달만 해 질 뿐이다.
 생사를 알 수 없어 제사도 제대로 지낼 수 없는 아버지가 명절이면 가족을 모두 데리고 찾는 곳이 있었다. 임진각이다.
 철없는 우리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들뜨지만 어쩌다 아버지와 마주치면 그 눈이 평소보다 깊이 패어있음을 어느 때부터인가 느낄 수 있었다.

 임진각에 가면 여기저기서 이북 사투리가 들린다.
“고조,(그저) 살아계신 게라두 알믄 올매나(얼마나) 조캈시어(좋을까요.)!”
“내래 기때 고집 피워서라도 아바이랑 가티(같이) 내려오는 거인디. ”
“거 애미나이가 열꽃이 펴서 오마니래 다시 올라갔디 뭐 내?”

“우린 기때 오마니래 자빠져(넘어져) 다리를 다치시니끼니 성님이 난짝 업고 올라가는 판에 아바이랑 생이별했어야!”

“테레비래 나가 찾아보디 그랜?”
“혹시나 해서 가 봤디. 근데 눈이 딘무르게(짓무르게) 봐도 옶어야!”

 아버지는 늘 그리운 말이라 그 말 조각을 따라 귀가 저절로 옮겨간다. 별 내용도 없는 말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하는 표정이다.
이북 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으셔서 하염없이 그쪽을 쳐다보신다. 우리 5남매는 그것도 아랑곳없이 이리저리 뛰놀기 바쁘다.
어머니는 그림 같이 아버지 곁을 지키지만,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시집와서도 외할머니와 걸어서 20분 거리에 살고 계시고 수시로 오가시니 무엇이 답답했겠는가!
 그럴 때 부부이지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는 그저 일어서시며 “가자.” 하신다.
우리는 실컷 뛰어놀았고 그때는 별로 볼거리도 없어 미련 없이 돌아서지만,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끊어진 경의선 철도와 철조망 가까이 가 보신다.
그리고 철조망을 마치 사람을 만지듯 한 번 쓸어보고 돌아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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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는 길에 계절과 관계없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함흥냉면 집이다. 시집오니 시부모님 고향이 평안도여서 시집 식구들과는 평양냉면 집만 찾는다.
 “이북에선 눈 오는 날도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이불 쓰고 냉면을 먹었어. 퍽 맛있었지. 비슷하긴 해도 이 맛이 아니야.”
 오랜 전통을 가진 단골집에서도 매번 하시는 아버지 말씀.
또 명태식해를 드시면서
 “미령아, 이북 명태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네? 통일되면 같이 가 먹어보자!”

 이제 아버지, 어머니가 다 하늘나라에 가시고 나니 그때 아버지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명절이 되어 다들 들뜬 기분이지만, 나는 두 분을 뵐 수가 없어 하염없이 하늘만 본다.
                                                                                               [글/사진 : 채하]

2012-10-06 20:22 2012-10-06 20:22

Comments List

  1. 가리온 / 이재원 2012-10-06 21:2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고향을 떠나 찾아가 보지도 않고 왕래도 뜸한 요즈음
    가볼 수 없는 고향의 그리움을 다시 한번 느껴 봅니다.
    냉면 에찬론자로 먹거리 얘기에도 관심이 갑니다.

    1. 박미령 2012-10-06 23:2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시댁, 친정 모두 이북 분들이라 자식으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고맙습니다.

  2. 배꽃 2012-10-06 22:3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고향이 그리워서 명절이면 임진각에 가시던 아버님과
    명절이면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는 채하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1. 박미령 2012-10-06 23:29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3. 후리지아 2012-10-06 23:5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귀에 익숙한 이북사투리네요, 시집오니 시어른들의 이북사투리가 얼마나 강하시던지 남쪽에 살았던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었지요.
    "넙댕이 차숙어만"을 못알아 들어서 생겼던 해프닝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습니다. 실향민이라면 누구든 그리운 고향을 어찌 잊으시겠습니까.

    1. 박미령 2012-10-07 15:5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아! 시댁이 이북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그 말은 모르는 말인데요. 그 이야기를 블러그에 써주시면 어떨까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4. 초록바다 2012-10-07 06:5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미령님의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젖어오네요.
    저도 시댁이 함흥이라서
    시어른들은 미령님 아버님처럼 고향을 그리셨지요.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1. 박미령 2012-10-07 15:53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늘 외로우셨던 아버님을 그때는 위로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5. 이효일 2012-10-07 07:1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분단의 비극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어 슬퍼집니다.
    혈육을 그져 그리워만 해야 하니 그 고통이 어떠할 지 가깝게 느껴집니다.
    명절은 즐거운 날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슬픈 날이기도 하여 동병상린을 느낍니다.

    1. 박미령 2012-10-07 15:21 # 수정/삭제 퍼머링크

      네 그런 아버님이 전 그립습니다. 선생님께서 찾아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6. 수내맘 2012-10-07 07:4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분단의 아픔이 있는분들은 모두가 느끼는 명절이지요.다행이 친정아버지는 이남과 가까운 개성분이시라 모두 일찍 내려오셔서 함께 할수 있었지요.

    1. 박미령 2012-10-07 15:22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그러시군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7. 김용정 2012-10-07 08:4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찡해옵니다.
    모두다 한, 두가지의 아픔은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1. 박미령 2012-10-07 15:2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살아계실 때 헤아리지 못 한 것이 한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8. 황수현 2012-10-07 10:1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80년대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면서 종일 마음아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 같은 민족인데 이제는 그리운 사람들을 편히 만나고 지낼수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1. 박미령 2012-10-07 15:2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이제 그 세대도 다 끝나가는 듯 합니다. 일본 여행 즐거우셨지요? 고맙습니다.

  9. 장현덕 2012-10-07 11:2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세계에서 이제 우리나라만이 분단된 나라로 남아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많이 연단하셨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광복 후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국가가 되었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축복하셨기에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부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조용히 통일의 그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면 틀림없이 그 날은 오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통일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 독일의 통일에서 우리가 봤듯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채하님의 아버지께서는 통일을 못 보시고 가셨지만 자식은 보지 않겠어요. 그것도 소원성취입니다.

    1. 박미령 2012-10-07 15:28 # 수정/삭제 퍼머링크

      다시 한번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는 상상도 못할 가장 좋은 방법으로 풀어주시겠지요. 고맙습니다.

  10. 장명신 2012-10-07 15:5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고향을 떠나오신 분들의 명절, 젊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 분들의 애절한 심정을 알 것도 같습니다. 이수미의 두고온 고향이라는 노래가 왜 그렇게 좋은지도요.

    1. 박미령 2012-10-07 16:0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수상 축하드립니다. 그렇지요. 부모님이 모두 하늘나라에 가시니 고향을 잃은 기분입니다. 고맙습니다.

  11. 추영탑秋影塔 2012-10-08 14:2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통일 되는 것을 못 보시고 돌아가셨으니...
    아마 명절때면 저 세상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고향이 물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아무리 비싸도 반드시 구하고야 말 텐데... 안타까운 것이
    분단된 조국의 실향민들입니다. 그 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날은 언제쯤 찾아올까요?

    1. 박미령 2012-10-08 23:1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아버지는 생전에 통일을 보실 수 있으리라 기대하신 것 같아요.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라도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나의 복숭 2012-10-08 18:06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가슴이 아리네요.
    아버님이 살아 계셔서 그 맛있으시단 명태 식혜를
    따님과 맛있게 드셨어야 했는데...
    비록 미령님 아버지께서는 고향땅을 다시 못 밟으셨지만
    미령님과 미령님 따님들은 고향에 꼭 가셨으면~ 빌어봅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글 잘 읽었습니다.

    1. 박미령 2012-10-08 23:19 # 수정/삭제 퍼머링크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13. 나그네 2012-10-09 13:1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산의 아픔을 후세가 적었군요
    그런데 채하님은 탁월한 감각과 발군의 필치로 감동의 글을 남기셨는데 이번 시니어 파트너 수상자에서 제외되었는지 의아 합니다.
    양보 하신겁니까?

    1. 박미령 2012-10-09 20:07 # 수정/삭제 퍼머링크

      별 말씀을요. 제가 매번 조금씩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4. 박용환 2012-10-09 16:1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데메사니가 욕심많은 돼지들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이별하고 가슴에 한이 맺히게 되니..
    그나저나 채하님 글을 읽으니, 저도 명태식혜와 어복쟁반이 급 먹고싶습니다.

    1. 박미령 2012-10-09 20:11 # 수정/삭제 퍼머링크

      아하! 이북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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