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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초 나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운전을 배우자. 삶이란 결국 시간의 연속이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도 운전은 필수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 아닌가!’
그래서 남편에게 내 의견을 말하고 함께 배우자고 했더니,
“운전은 너무 위험하니 배우지 않는 것이 좋겠는데…….” 한다.

 할 수 없이 나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운전학원에 다닌 후 면허시험을 보았다. 첫 실기시험에서 보기 좋게 언덕에서 미끄러져 낙방했다. 그때는 자동 실기 시험이 없던 시기이다. 스틱을 수동으로 운전하는 시험이다.
그즈음 남편은 마음이 변했다.
 “아무래도 운전을 배워야 하겠어. 당신도 함께 배우자.”
 “글쎄, 당신 먼저 배워. 난 조금 있다가…….”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의아해했지만, 진실을 얘기하기에는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농후해 말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실기 시험에 합격한 나는 남편보다 한 달쯤 일찍 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그날 어찌나 기쁘던지 합격하자마자 친정에 전화했다.
 “아빠! 나 합격했어요! 운전면허!”
 그때까지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던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마치 장원급제라도 한 양 전화에다 대고 격양된 마음을 쏟아 부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그 상황을 오래 기억하시고 많은 사람에게 중개 방송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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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차를 구매해 내 면허증을 보여주자 우리 사이에는 잠깐 배신감의 쓴 기운이 스쳤다. 하지만 내 앙큼한 짓도 엄밀히 따지면 내 제안을 반대한 그의 책임도 조금은 있다.
 
 차를 보자 나는 마구 달리고 싶은 욕망이 용솟음쳤다. 그러나 내게는 운전대를 잡을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꿀 같은 아침잠을 포기하고 남편 출근 전에 운전 실습을 하기로 했다.
 그 또한 남편의 양해를 구하면 거부당할 것이 뻔해 새벽에 일어나 까치발로 차 열쇠를 살짝 꺼내 타고 나갔다.
새벽 4시 지그재그 운전으로 구로동까지 진땀을 흘리며 가면 검문소에서 방위병이 잡는다.
 ‘대체 이 아줌마의 정체가 뭘까?’ 하는 표정으로 유심히 들여다보다 면허증을 꼼꼼히 살핀 후 통과시킨다.
 그날은 반복된 검문으로 낯익은 청년이 ‘또 예요?’ 하는 표정으로 면허증도 보자는 말없이 통과다.
 그리고 차 꽁무니에 대고 하는 말,
 “조심하세요!”

 그 새벽에 어디를 갔겠는가? 갈 곳은 한 군데다. 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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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 없으신 아버지만 깨어 계셨고 모두 한밤중이다. 나는 방마다 다니며 동생들을 깨웠다.
 “야야! 청진동 해장국 먹으러 가자! 빨리 일어나!”
 거의 강시 모습으로 일어난 가족들은 차에 몸을 실었다. 괜히 신바람이 난 나는 청진동 코앞에서 우회전하다 복잡한 주차 공간의 간격을 잘못 겨냥해 그만 세워놓은 차를 박고 말았다.
 “쾅!” 소리가 나자 앞집 정육점 주인이 현행범을 잡았다는 듯이 험상궂은 얼굴에 화를 잔뜩 실은 걸음걸이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가족 모두 잠이 후딱 달아나고 나는 그 길로 종로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썼다. 그때는 교통사고가 나면 바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가족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신 아버지는 내게 ‘괜찮아!’라는 눈빛을 보내시며 나 대신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셨다.
그때 급히 나오느라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면허증을 챙겨 와야 했다.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남편은 눈길도 주지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이것이 나의 첫 운전사고이다.
                                             [글/사진 : 채하]

* 마지막 사진은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전시관(예전에 그들이 살던 집)  뜰에서 찍은 것인데 아마도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2012-09-11 20:37 2012-09-11 20:14

Comments List

  1. 황수현 2012-09-11 21:4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무어든 열심히 하시는 미령님모습이시군요.
    첫운전..누구에게나 씁쓸한 기억들이 있을겁니다.^^*

    1. 박미령 2012-09-11 21:57 # 수정/삭제 퍼머링크

      늘 좋게 봐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 후리지아 2012-09-12 10:5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보기와는 다르게 모험심도 있으시군요.ㅎㅎㅎ
    실수담을 실감나게 잘 쓰신 채하님! 재미있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 미워 할 거죠?

    1. 박미령 2012-09-12 17:35 # 수정/삭제 퍼머링크

      후리지아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장현덕 2012-09-12 11:2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면허를 따고 첫 사고는 예방주사 같은 거죠. 채하님도 그 후에는 사고를 내지 않으셨죠? 그 사고가 있었으니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두번째 합격한 것은 빨리 한겁니다.

    1. 박미령 2012-09-12 17:38 # 수정/삭제 퍼머링크

      그렇군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4. 추영탑秋影塔 2012-09-14 07:5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청진동 해장국집들 앞을 지나 학교에 다니던 생각이 나는 군요.
    숙명여고 옆에 중동고등학교가 제 모교이거든요. 그 때가 육십 년대 초... 열성파 미령님의 열의는 아무도 못 말려! ㅎㅎㅎ

    1. 박미령 2012-09-14 18:24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제가 봐도 웬 극성인지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5. 배꽃 2012-09-14 11:0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ㅎㅎㅎㅎ웃어서 죄송합니다~~
    용기있는 채하님이세요.
    전...운전면허 시험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

    1. 박미령 2012-09-14 18:2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아버지의 함경도 핏줄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6. 초록바다 2012-09-14 20:1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늘 아름답게 사시는 미령님이세요.^^*

    1. 박미령 2012-09-14 21:40 # 수정/삭제 퍼머링크

      늘 격려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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