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 속에서도 봄밤 나들이는 설렌다. 고교 시절부터 수없이 오르던 남산은 눈에 익은 고향처럼 언제나 푸근하다. 오랜만에 남산 나들이를 한 이유는 남산예술센터에서 흥미로운 연극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센터의 역사를 극화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제목도 <남산 도큐멘타>이다.
 
이 연극은 드라마센터의 역사와 함께 남산의 내력도 보여주는데 그래서인지 연극을 보기 전 <유령산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프로그램이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본 연극을 공연하기 전 덤으로 얹어주는 단막극인가 했는데 오산이었다. 배우가 유령으로 분장하여 등장하는 연극의 한 부분으로 신선한 애피타이저같이 감칠 맛 나는 기획이다.
 
배우가 가이드가 되어 남산예술센터 주변을 산책하며 지금은 없어진 중앙정보부, 주자파출소, 통감관저 터, 최종길 사건 현장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장소에 가서 설명을 듣고 유령 역할을 하는 배우들의 증언을 들으니 퍽 실감 나고 재미있었다. 유령이라고는 하는데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유령산책 도중에 미세 먼지 설명도 곁들였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가 분홍색일 경우 미세먼지 농도가 45㎍/㎥ 이상이고, 파란색일 때는 45㎍/㎥로 제주도의 공기와 같단다. 연극 공연 중 이런 설명 듣기는 난생처음으로 엉뚱하고 신기했다. 산책의 마지막 장소는 무대로, 산책에 참가한 20여 명의 관객은 무대 내장까지 낱낱이 구경한 후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극의 도입은 말이 쉬는 형상인 남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배경 막 아랫부분을 남산 모습으로 잘라내어 드라마센터를 부각시키는 재치가 돋보인다. 첫 장면은 개관 작품이었던 햄릿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햄릿의 명대사를 상기시켜 극장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지려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드라마센터는 1962년 동랑 유치진 선생이 미국 록펠러 재단의 도움으로 건립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무대로 배우와 관객 사이에 공간을 생략해 배우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초현대식 설계로 연극계에 화제가 되었다. 그 덕에 현재의 대학로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연극의 메카로 군림했다. 당시 화제작은 대부분 드라마센터 차지였다.
 
<남산 도큐멘타>의 구성은 이러한 드라마센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유치진이 김종필과 만나 <예그린예술단>의 연습 장소로 제공한 일, 가난했던 시절 극장을 살리기 위해 외도와도 같았던 미8군 재즈 공연, 당시로는 혁신적인 배우 선발 오디션 장면과 극단과는 관계없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중앙정보부의 고문 장면 등이 이어졌다.
 
 
미8군 쇼에서는 재즈에 생활 동작을 응용하여 낚시 춤, 국기 춤, 달러 춤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신 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오디션과 고문 장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은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센터의 주요 역할이 연극이었으니 지금까지 공연된 연극 중 가장 의미 있는 연극의 몇 장면을 표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드라마센터 50여 년의 역사를 1시간 30분 동안 한 자리에 담다 보니 마치 넓은 조각보를 보는 듯이 다채롭기는 했으나 산만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여기에 당시 이 극장에서 벌어졌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연결하여 임팩트를 살린 집약된 구성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겹겹이 드리워진 조명기구까지 속속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제목도 독일 나치 정권 때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미술 전시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따온 의미 있는 이름인 듯한데 이에 대한 설명을 브로슈어에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얼핏 보아서는 다큐멘터리의 일본식 발음으로 오인하기 쉬운 점은 아쉬웠다.
 
오랜 시간 취재와 인터뷰 등으로 시간과 아이디어를 집약한 <남산 도큐멘타> 연극 팀의 노고와 새로운 시도에 찬사를 보낸다. 오늘의 이 모습도 한 50여 년 후 또 다른 <남산 도큐멘타>의 한 장면으로 등장할 것을 기대해 본다.
 
1970-01-01 09:00 2014-03-23 10:41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황수현 2014-03-24 12:4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드라마센터가 지니고 있는 역사..그 내면의 아픔까지 읽었던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1. 박미령 2014-03-24 20:17 # 수정/삭제 퍼머링크

      드라마센터 주변에 가면 전 마음이 늘 훈훈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