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문자가 왔다. 평소 좋아하는 ‘김훈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는 친구의 카톡이다. 기꺼이 가고 싶은 곳을 갈 때는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인가! 어느새 몸은 현장에 도착해 있다. 작가와의 만남은 성북구청 아트홀에서 작은 음악회와 함께 열렸다.
 
기타와 현악기가 어우러진 4인조 악단 ‘로맨틱 앙상블’이 함께 자리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간발의 차이로’가 홀 안을 흐르며 오늘의 주인공 김훈과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를 대신해 평론가가 질문하는 대담 형식이다.
 
김훈의 트레이드마크인 날카로운 눈빛, 그의 작품마다 책 표지에서 독자 마음을 꿰뚫듯 쳐다보던 그 눈빛으로 우리와 마주했다. 그의 강의는 작년 양화진 문화원 ‘목요강좌’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문체만큼이나 쫄깃쫄깃한 그의 말은 형형한 눈빛과 함께 마음에 꽂혔다.
 
봄꽃이 만개하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그의 문장이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박힌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라는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다.
 
누구든 글을 쓸 때는 첫 문장을 고민한다. 작가처럼 이렇게 유려하고 딱 떨어지는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이것을 읽고 어찌 그 책을 다 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적절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끌어내기까지 작가는 몇 날 몇 밤을 고뇌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하다.
 
청년 시절 그가 존경했던 사람은 이순신과 우륵이었다. 두 사람은 얼핏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가야의 고령이 철제 무기와 악기를 동시에 만드는 곳이듯 전쟁과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적 운명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의 노래>를 쓸 때 우륵에 대한 자료는 삼국사기에 단 다섯 줄 뿐이었다 한다. 답답한 그는 황병기 교수를 찾아갔으나 가야금의 대가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답은 고작 ‘하늘의 별’이었다. 할 수 없이 고령 하늘의 별을 한없이 바라보며 글을 완성했다.
 
실물을 꼭 보고 글을 시작하는 그는 칼을 보고 검법을 익힌 후 비로소 <칼의 노래>도 썼다 한다. 칼을 한 번 헛치면 내가 죽을 처지에 놓이는 냉엄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문체를 만들기도 했다. <칼의 노래>를 읽으며 느꼈던 긴박하고 삼엄한 분위기는 문체에서 힘입은 바 크다.
 
김훈은 ‘살아내는 것은 운명이다.’라고 강조한다. 그 의미는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헛된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절망을 꿰뚫고 나가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이순신은 바로 이러한 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가 작가가 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돈암동 근처에서 보낸 청년 시절, 그는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밥 못 먹는 세대에 태어나 그것을 극복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글과 말 속에는 그가 꿰뚫고 나가는 절망의 하루하루가 녹아 있다.
 
“우리 세대는 밥 못 먹는 세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는 데만 힘쓰다 보니 약육강식의 부작용이 남았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밥 못 먹는 세상을 물려받듯 모두의 운명이다. 다음 세대에게 미안한 것은 ‘약육강식’의 고리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라는 고백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안다.
 
그는 궁극적으로 ‘악과 폭력에 의해 인간의 아름다운 존엄이 짓밟히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휴머니스트다. 그의 말은 간결하고 솔직해서 오히려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 “완벽함은 더할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시종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그와의 대담이 끝나자 해금으로 연주되는 <섬 집 아이>가 잔잔히 흘렀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악기가 해금이라며 소년 같은 표정으로 음악에 빠져 있었고, 청중은 그가 던진 삶의 과제가 생각할수록 무겁게 느껴져 쉽사리 음악에 빠져들 수 없었다.
 
1970-01-01 09:00 2014-03-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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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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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영희 2014-03-30 06:3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김훈씨를 만났군요, 행복했겠네요,
    나는 모든 소설의 첫 문장 외우기를 좋아해요.

    1. 박미령 2014-04-02 11:20 # 수정/삭제 퍼머링크

      좋은 습관을 가지셨네요. 저도 시도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 초록바다 2014-03-30 09:3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미령님은 어떠한 예술작품을 접해도 탁월한 필력으로
    심도 깊은 감상과 평을 하셔서 빠져 들게 합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1. 박미령 2014-04-02 11:21 # 수정/삭제 퍼머링크

      과찬의 말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황수현 2014-04-04 08:3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김훈님의 시같은 글을 좋아합니다.
    열심히 이분의 책을 찾아서 읽었던 시간이 있어요..

    1. 박미령 2014-04-05 01:4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도 그 치열한 표현을 좋아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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