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에 젖어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마치 탐스럽던 잎사귀들을 모진 바람에 이리저리 뜯기고 알몸으로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보인다. 새 달력이 들어와 헌 달력 밑에 두툼하게 걸어 봐도 마음이 썩 풍요롭지 않다. 
 
새 밀레니엄을 외친 게 엊그제인데 벌써 16년이 흘러 17년째를 맞이한다. 당시 4학년이던 내가 어느덧 6학년으로 진급했지만 감개무량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처럼 이 나이가 되면 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한 달이나 일 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도대체 올 일 년의 시간이 어느 구멍으로 다 새나갔단 말인가.
 
시간이 무자비하게 흘러 나이 먹는 속도가 빨라지니 언젠가부터 슬며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이란다. 아무튼,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설명을 빌면 어린 시절의 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새로운 자극이라 그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느라 뇌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인식하는 반면, 늙은 뇌는 대부분의 사물이 감각에 익숙하다 보니 뇌를 자극할 일이 없어 뇌가 시간을 빠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의 세대 차이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빠른 시간의 흐름이 과학적으로 보면 늙어가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뇌가 사물에 익숙해져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사물을 접하려 노력하고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려 한다면 시간이 느리게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세대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최근 여자와 남자 사이에도 시간의 흐름에 차이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과 나는 무슨 일을 준비하거나 어디를 함께 가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시간관념이 달라 늘 작은 갈등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남편의 성질이 급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들어보니 다른 남편들도 대부분이 그렇다지 않은가.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이제야 옛날 부모님과 함께 고궁에라도 나들이할라치면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한참 멀리 걸어가신 후 뒤돌아보며 서서 우리를 기다리던 비밀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화장하는 긴(?) 시간을 참아주는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물건을 빨리 고르고 있다. 빠르게 흐르는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나름 고육지책이다.
 
1970-01-01 09:00 2017-01-29 12:35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나 자신이 일흔 살 되고 보니/ 옛날부터 드문 나이라던 시구가 맞는 말임을 알겠구나// 자리에서 담소 나누는 이들은 모조리 새 얼굴/ 꿈속에서 단란하게 모인 이들만이 옛 벗일세// 요동의 학처럼 고향 찾아와 슬퍼할 것까지는 없어도/ 빠른 말처럼 달리도록 누가 세월을 재촉하나?// 남아 있는 몇 사람도 이제는 모이기 힘들어/ 새벽 별 드문드문 반짝이듯 흩어져 사누나//
 
<밤마다 꿈에서 죽은 벗을 본다>는 제목의 이 시는 경현(警玄) 김효건(金孝建, 1584~1666))이 70세 넘어 쓴 작품인데 안대회 교수의 번역으로 옮겨 보았다. 그는 83세, 아내는 93세, 아들은 94세를 산 장수 가족이다. 지금도 드문데 당시로는 초장수다. 이 시에 드리운 쓸쓸한 분위기를 보면 장수가 그리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시의 요체는 오래 살다 보니 주변에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어 외롭고 점점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짧던 시절에 혼자 장수한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백세시대인 지금은 어떨까? 같이 늙어가는 노인네들이 얼마간 있으니 덜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김효건의 시대에는 다수이던 가족이 지금은 줄었으니 피장파장이다. 게다가 경제력 없는 외로움은 더욱 힘들고 처량하다.
 
‘외로움’이 뭐 그리 좋은 것도 아닌데 요즘은 어느새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는지 너도나도 혼자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고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하고 대중매체에서는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예능 프로가 판치고 있다. 17세기 시인이 토로했던 외로움이 지금은 대중들이 소비하는 ‘정서 상품’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외로움에도 차이가 있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젊은이들의 ‘자발적 외로움’이 있다면, 늙어서 어쩔 수 없이 홀로 남겨진 ‘비자발적 외로움’도 있다. 같은 외로움이라도 비자발적 외로움이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나이를 먹어가며 걱정스럽기만 하다. 어찌 되었든 이 시대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된 듯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홀로 있음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홀로 있는 상태가 ‘외로움’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개념으로 보면 외로움(loneliness)은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고, 고독(solitude)은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란다. 소로가 외딴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3년을 산 것은 ‘고독’이었다.
 
현대인이 혼자 사는 것을 즐기면서도 ‘외로움’을 과거보다 더 못 견디는 것은 삶이 너무 분주해 진실로 ‘고독’해 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고독은 자신을 돌아보고, 주체적인 생각의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기나긴 노년이 될지도 모르니 그 외로움에 대비하기 위해 시니어 대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라도 고독을 연습해 놓는 것이 필요하겠다. 자신의 내면을 확장하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면 장수가 축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1970-01-01 09:00 2017-01-28 11:5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쟤는 잠들면 업어 가도 몰라. 여자애가 그래서 되겠니‧‧‧‧‧‧. 쯧쯧.” 어려서 외할머니에게서 늘 듣던 말씀이다. 그 뜻도 모르는 채 잠드는 것이 부도덕한 일로 여겨져 ‘너무 깊이 잠들면 안 되는 거구나. 어떻게 하면 잠귀가 밝을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늙으니 그 좋던 시절은 가고 오히려 잠이 안 올 때가 잦다. 물론 지금도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긴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업어 가도 좋으니 푹 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며 양을 수없이 세도 효과는 없고 시계 소리는 갈수록 더 크게 들렸다. ‘묵음 시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요즘은 좋아하는 커피도 오후에는 겁이 나서 못 마신다. 조심해도 잠 안 오는 날은 여전히 있었다.
 
궁리 끝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불면증을 없애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우선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한 컵씩 먹어 보았다. 약간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그 방법은 필자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빼도 시원치 않은 살이 찌는 것이었다. 바로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음은 머리맡에 양파 반쪽을 놓고 잠을 청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 양파 냄새에 전 코가 공연히 몸에서 양파 냄새가 나는 듯했다. 향수는 뿌리지 못할망정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찾아보니 술을 약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아하! 그럼 이왕이면 몸에 좋다는 적포도주를 마셔봐야겠다. 이건 일거양득이네! 바로 이거였어.’ 했다. 이것은 효과가 꽤 있었다. 하지만 술의 양이 처음에는 1/3 잔, 1/2 잔, 1잔. 이런 식으로 점점 늘어가니 원하지 않은 술고래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술고래는 한 집에 한 명으로 족하지 않은가.
 
다음은 우연히 요즘 유행하는 일인 방송 팟방에서 명들은 어느 명상전문가 여박사의 불면증 해소법이다. “양쪽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를 1,000번 하면 잠이 와요.” 필자는 ‘아니 천 번을 어떻게 해. 앓느니 죽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딱이는 시계 소리 들으며 3시까지 있다 보니 슬그머니 두 발가락을 맞대고 부딪치기 시작했다. 1,000 번이 되기 전 언제 잤는지 모르게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이 방법을 쓴다.
 
또 한 가지는 이것도 지나가다 방송에서 들은 것 같은데 ‘검지와 중지 사이 손바닥 부분을 양손 모두 지압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가 필자가 잠이 안 올 때 하는 방법이다.
 
코를 기관차 지나가는 소리처럼 고는 남편과 사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그녀가 친정에 자던 날 친정 식구는 모두 날밤을 새웠다. 물론 모두 각자의 방에서 잤지만, 기관차는 밤새 쉴 새 없이 달렸다. 그 친구는 베개만 대면 잠을 자서 남편 바로 옆에서 30년 동안 자도 그가 코 고는 줄은 전혀 몰랐단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평생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그 친구가 부럽다.
1970-01-01 09:00 2017-01-27 09:28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어릴 적 설 풍경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네 떡 방앗간의 정경이다. 설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불린 쌀을 커다란 양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방앗간으로 향한다. 방앗간 앞은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이다. 사람 대신 각종 커다란 그릇들이 줄을 섰다. 김이 물씬물씬 나는 시루와 기계에서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가래떡으로 주변은 활기가 넘친다. 어린 눈에 수증기로 가득 찬 방앗간은 신비한 요술 집 같았다.
 
우리 차례가 되어 기계 앞에 서면 가슴이 뛰었다.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가슴을 조이다 보면 드디어 우리 떡이 힘차게 밀려 나오며 차가운 물에 샤워하고 차곡차곡 쌓인다. 아이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챈 주인아저씨는 씩 웃으며 칼로 한마다 썩 베어 앞으로 내민다. 아! 그때 먹었던 가래떡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차가운 날씨에 밖에 내놓아 일부러 굳힌 가래떡은 설날 떡국의 주재료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변주로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한다. 그중에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가래떡구이’다. 식구들과 곤로에 둘러앉아 마치 원시인들이 벽화를 그리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둥글리며 구우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겉은 얇게 탄 종잇장 같은 막이 생기며 속은 말랑말랑히게 익는다.
 
지금도 시장통을 지나면 습관처럼 떡집 앞을 기웃거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꿀떡이나 남편이 좋아하는 약식을 사면서 기어이 가래떡을 집어 든다. 다들 무슨 맛으로 가래떡을 사느냐고 한마디씩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소울 푸드(Soul Food)’인 셈이다. 요즘이야 난로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굳기 전에 참기름 떨군 간장에 찍어 먹으며 홀로 추억에 잠긴다.
 
음식 문화로 치면 설날 떡국은 매우 특이한 전통이다. 최근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황교익 음식 평론가에 의하면 오늘날 여러 가지 격식이 붙어 있는 거창한 차례상은 사실 현대에 와서 조작된 허구이지 진정한 전통이 아니란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운운하며 대단한 지식이나 되는 양 떠들지만, 과거엔 없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말이다. 오로지 떡국 하나만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전통이라는 것이다.
 
원래 인류의 식사는 청동기 시대부터 온 마을 식구(食口)가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가족 단위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나 정착된 문화이지 그 전까지 평민들은 마을 공동으로 취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밥보다는 떡이 주식으로 알맞았고 오늘날 설음식으로 떡국이 흔적처럼 남아 있는 연유이다.
 
비슷한 전통이 동아시아 각국에도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쌀로 만든 경단을 국물에 넣어 먹는 ‘탕위앤’이 있고, 일본에는 된장이나 가쓰오부시로 맛을 낸 국물에 찹쌀떡을 넣은 ‘오조오니’가 있다. 사실 떡은 그 형태상 그냥 먹는 음식이지 국물에 넣어 먹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러나 먹다 남는 떡이 굳어지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음식이 태어나게 된 것이 아닐까. 동아시아에 남아 있는 설날 떡국 문화는 이런 전통을 기억하는 집단 무의식인 것이다.
 
조선조 서울 풍속을 적은 <경도잡지(京都雜志)>(1800)에는 떡국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멥쌀로 떡을 만들어 치고 비벼 한 가닥으로 만든 다음 굳기를 기다려 가로 자르는데 그 모양이 돈과 같다. 그것을 끓이다가 꿩고기, 후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다.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그릇 수에 비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오랜 전통임이 틀림없다. 훗날 꿩고기가 없으면 닭고기를 넣기도 하면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오늘날 새로 생겨난 가슴 아픈 문화 현상의 하나는 이름하여 ‘혼밥, 혼술’ 문화이다. 가족이 해체된 지는 이미 오래고, 늙어 혼자되고, 시집 장가 안 가 혼자 살다 보니 마지못해 생긴 현상일 것이다. 애초 인간은 음식을 혼자 먹는 전통이 없는 까닭이다. 이번 설에는 부디 흩어진 식구(食口)들이 모두 모여 떡국 한 그릇이라도 나누어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풍진 세상 또 한 해를 견뎌낼 힘을 얻지 않겠는가.

1970-01-01 09:00 2017-01-26 09:5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확정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새해를 맞으며 부쩍 드는 의문이다. 하도 어수선한 지난 연말을 헤쳐 나오다 보니 세상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 뉴질랜드 사는 친구가 교포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이라며 ‘뉴질랜드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젊은 시절 우리는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며 살았다. 적당히 대학을 졸업해도 누구나 어디든 취직이 되었으며 열심히 저축하고 살면 집 한 채 정도는 장만했다. 경제는 계속 좋아지는 것으로 알았고 주머니는 언제나 두둑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녀들의 세상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비슷한 과정으로 내몰기 위해 열심히 학원 보내며 대학입시에 매달렸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세상이 우리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주위에 하나둘 망하는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고 수입은 점점 줄어든다. 자녀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했건만, 도무지 취업이 안 된다. 빨리 시집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잘 살기를 바랐건만, 껌 딱지처럼 집에 붙어 있다. 우리가 꿈꾸었던 미래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아하! 세상이 바뀌었구나! 깨닫는 순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자녀들 잘 키워놓으면 적당히 기대 살리라던 기대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젠 저성장 사회가 되었으니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뒷북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때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말에도 웃으며 내심 우리의 성장을 대견해 했지만, 어느덧 ‘재미도 없는 지옥’으로 바뀌고 말았다.
 
삶이 뒤죽박죽된 것도 문제지만, 열심히 살면 미래에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마저 산산이 조각난 것이 더 심각하다. 말하자면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어려움을 견뎠는데 미래의 행복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는 젊은 세대에 더 심각하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이미 덜 벌고 덜 쓰고 덜 일 해도 행복하다는 도인 같은 ‘사토리(달관) 세대가 등장했다지 않는가.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그의 책 <트렌드 코리아>에서 2017년 트렌드로 ‘YOLO'를 꼽았다. 'YOLO'는 요즘 유행하는 구호로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의 머리글자다. 그는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라며 “욜로족은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모하더라도 도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란다.
 
트렌드라고 해서 꼭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내심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연세대 서은국 교수도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빈도’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힐 순 없다.
 
<빨강 머리 앤>에서 앤이 말한다. “세상이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네요.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펼쳐지네요.” 미래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자. 새해 벽두에 오바마처럼 말해 보자면, ‘YOLO my friend!'.
1970-01-01 09:00 2017-01-25 20:09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우리 사회에서 돈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다. 사회라는 몸을 지탱하는 것이 경제이고 돈은 이러한 경제의 혈관을 도는 혈액이라고 배웠는데 몸속의 혈액이 서서히 빠져나간다면 빈혈로 창백해져 언젠간 죽게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상상을 해 보니 이걸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드라큘라에 버금가는 스릴 넘치는 호러 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해 봤지만, 점차 현금이 지갑 속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발달하는 IT 기술 때문인데 극단적으로 동네 시장에 갈 때를 제외하면 지폐나 동전을 쓸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런 현실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솥단지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가도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돈은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를 확립한 일등공신이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대로 인류가 물물교환 시대를 거쳐 가치를 담보하는 금과 은의 시대를 만들고, 나아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폐의 시대가 열림으로써 자본주의가 활짝 개화했다. 이런 자본주의의 꽃인 화폐가 마치 중생대 공룡처럼 지구 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돈과 함께 살아오면서 만만치 않은 사연과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 젊은 날 누런 월급봉투 속에 들어 있던 칼같이 빳빳한 지폐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침을 발라 한 장 한 장 세면서 우리는 미래의 꿈을 키웠다. 친정에서 돌아오는 어느 저녁나절 동구까지 따라 나오신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던 축축한 만 원짜리 지폐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런 지폐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한 시대와 문명이 저물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을 자녀의 계좌로 송금하며,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도 자동이체로 처리할 것이다. 이미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계좌 이체 번호가 나돌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아마도 돼지 저금통에 ‘딸그락’ 하고 떨어지는 행복한 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단지 하나의 문명이 가고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데 따른 쓸쓸한 세기말적 감상이라면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차 한 잔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아직 IT와 친해지기 어려운 우리 세대에게 화폐의 몰락은 곧 삶의 혼란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으로 척척 결제하는 세대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우선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만들기로 했고 그 후 차례로 고액권부터 줄여 가기로 방침을 세웠단다. 돈의 제작비용을 아끼고 투명한 사회로 만들어 가려면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 돈에 대한 따뜻한 향수를 차가운 IT기기로 바꾸기 어려운 세대에게 이런 상황은 분명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SF 공포영화로 다가올 듯하다
1970-01-01 09:00 2017-01-25 00:27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새해가 되니 한 살을 강제로 먹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삼킨듯해 못내 찜찜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약 먹기 싫어하는 나를 안고 가루약을 숟갈에 손가락으로 개어 입을 벌리고 강제로 입 안에 넣어 주시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작년 연말에 보았던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 나오는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알약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익숙한 것들이 좋아진다. 자주 가는 음식점에 또 가게 되고, 푸근한 옛 친구가 그립고, 옷도 늘 입던 옷이 좋다. 아니 좋다기보다는 ‘편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저 편한 옛 습관에 기대는 게 머리를 쉬게 하는 길이니까. 그래서 늙으면 최백호가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 같은 노래나 들으며 도라지 위스키 한 잔 앞에 놓고 청승을 떨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 문제다. ‘익숙하다’는 것은 ‘익었다’는 뜻이고 익으면 ‘굳게’ 되는 것이고 굳으면 곧 ‘죽음’이 아닌가. 마치 강에서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오직 죽은 물고기이듯이 ‘익숙함’에의 안주는 죽음에 다가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왠지 새로운 것에 잘 적응을 못 한다. 스마트폰 쓰는 법을 배우고도 곧 잊어버리는 것은 ‘익숙하지’ 못해서일까?
 
지난달 모 신문에 실린 서울대학교 연구부총장인 신희영 박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신 박사는 의사로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장과 통일의학센터 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북한의 어린이 의료 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버리는 바람에 의료협력 사업이 몇 년째 중단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충격의 이유는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 때문이었다. 남과 북은 문화나 언어만 이질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질병도 그렇게 되었단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 시대로 진입했는데 북은 아직 세균 시대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갑자기 통일이 되었을 때 북쪽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엄청나게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잉카문명이 천연두로 어이없게 멸망했듯이.
 
놀라운 것은 그뿐만 아니다. 북한 어린이들은 100%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는데 그 덕(?)인지 아토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이 없단다.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은 늘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대비하고 있는데 적이 없어 심심해지면 자신의 몸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균에 노출될까 봐 애지중지 청결하게 관리하는 젊은 엄마들이 새겨들어야 할 정보다.
 
익숙한 것만 쫓다가는 우리 생각도 자가면역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신 박사처럼 색다른 관점과 시각이 우리 머리에 창의적인 자극을 주고, 기생충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새해는 세월의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죽은 물고기가 아니라 신선한 물줄기를 쫓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싱싱한 한 마리 잉어가 되고 싶다. 모든 익숙함이여 안녕.
1970-01-01 09:00 2017-01-24 11:24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때를 평화라고 부른다면, 전쟁은 인간의 운명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예기치 못한 곳으로 끌고 가곤 한다. 그래서 전쟁은 숱한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운명적 비극의 발원지가 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일상에 불과한 사랑도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온통 만화 같은 줄거리에 황당 액션이 난무하는 할리우드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모처럼 고전적 감성이 흘러넘치는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얼라이드>다. 저메키스는 <포레스트 검프>를 연출한 거장으로 그의 또 다른 히트작인 <백 투 더 퓨처> 같은 SF 영화에서도 특수 효과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인간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매우 ‘인간적’인 감독이다.
 
영화 <얼라이드>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긴박감 넘치는 스파이 액션에 운명적 사랑을 얹은 작품이다. 장르적으로 구분하면 스릴러 멜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긴박해야 할 스파이 액션은 헐겁고 전쟁 장면도 그리 리얼하지 않다. 오로지 사랑에 초점을 맞춘 흐름이 과연 저메키스답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멜로의 거성 브래드 피트와 깜찍한 요정 마리옹 꼬띠아르라니.
 
 
1942년 모로코 카사블랑카, 영국의 정보국 장교 맥스 바탄(브래드 피트)과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비밀요원 마리안 부세주르(마리옹 꼬띠아르)는 독일 대사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작전을 수행하면서 맥스는 치명적 매력의 마리안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임무를 마친 두 사람은 런던에 돌아와 결혼해 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날 맥스는 상부로부터 마리안을 독일 스파이로 의심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마리안이 스파이라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72시간 내에 아내의 무고함을 밝히지 못하면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여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아내의 결백을 밝히기 위한 맥스의 투쟁이 시작된다.
 
이 영화의 독특함은 여느 전쟁 속에 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처럼 애국심이냐 사랑이냐로 고심하거나, 서로 사랑을 의심하는 흐름과 다르다는 점이다. 지고지순하다고 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절대적이다. 결국, 아내가 원래 레지스탕스 출신의 마리안이 아니라는 단서가 드러났음에도 맥스는 아내와 함께 나라를 떠나려고 시도할 정도이다.
 
 
전쟁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 진다해도 그 안에서 꽃은 피고, 새가 울고,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사방이 위험해도 사랑은 나누어야 하고 새 생명은 탄생해야 한다. 병원이 폭격당하는 와중에 딸이 태어나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하마터면 이 영화가 반전영화로 보일 정도였다. 텔레토비처럼 생긴 딸은 두 사람의 사랑을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핵심 연결고리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흑백영화의 고전 <카사블랑카>가 떠올랐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랑이 그렇고, 사랑을 연기한 두 배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매력이 영화의 핵심인 점이 그렇다. 영화 앞부분 연회장은 <카사블랑카>의 바와 닮았고 마지막 비행장 장면은 감독의 의도적인 오마주로 보인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카사블랑카> 못지않다.
 
이 영화는 역시 두 배우에게 신세진 바 크다. 댄디한 얼굴의 브래드 피트가 이젠 나이가 들어 중후해진 모습으로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마리옹 꼬띠아르도 요염과 모성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을 잘 소화했다. 두 사람의 케미가 모처럼 눈물을 자아낸다. 제목 Allied는 ‘동맹한’이라는 뜻인데 가운데 lie(거짓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재미있다.
 
* 사진은 사이트의 것입니다.
 
1970-01-01 09:00 2017-01-21 22:24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요즘 TV만 틀면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드라마는 아닌데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교양프로가 아닌데 교양 프로그램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더 잘 알게 해준다. 예능 프로가 아닌데 예능보다 더 실소를 자아낸다. 바로 국회 청문회 이야기다. 모든 채널이 똑같은 중계를 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차츰 빠져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미국 딸네 집에 다녀온 친구가 미국에서도 이번 사건이 최고의 화제란다. 친구는 오히려 우리가 모르는 소문까지도 은밀하게 들려주었다. 한참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속이 허전하다. 과연 나라를 넘나들며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말들 속에 진실은 무엇인가? 장마철 흙탕물처럼 소용돌이치는 언어의 홍수 속에 사실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누구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믿는다는 뜻일 게다. 말하자면 말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말의 맥락이 달라지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취급된다. 많은 이가 암보다도 치매를 무서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니 어찌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그러니 온몸의 어떤 장기보다 말이 중요한 셈이다.
 
인류는 말을 통해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고 말을 통해 역사를 남겼다. 오늘날 인간이 지구 상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말을 가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설파한 것도 이런 말의 힘을 강조한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 삶의 뼈대인 말의 진실성이 훼손될 때 우리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어떤 어려움보다 바로 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의 유력 신문이 얼마 전 우리나라를 거짓이 난무하는 나라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당시 그 기사를 본 한국인들이 열 받고 흥분했지만, 기사가 근거로 제시한 일본과 우리나라의 무고(誣告) 건수가 열 배도 넘게 차이가 나니 반박할 길이 없었다.
 
우리 사회가 왜 유독 말의 신뢰지수가 낮은 것인지 필자는 잘 모른다. 어쩌면 말로 하는 거짓에 사람들이 관대하기 때문은 아닐까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청문회를 보면서 느끼는 점도 대부분 말의 엄정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말의 엄정함이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주장과 주안점을 확인하고 분명한 결론을 내야 하는데 모두 자기주장만 하고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거짓이 처벌받지 않으면 진실은 거짓에 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진실 없는 말의 허망함을 가장 잘 알았던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리어왕은 간이라도 빼줄 듯한 두 딸의 말에 속아 정직한 막내딸을 내쫓지만,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분노를 못 이겨 황야에서 죽음을 맞는다. 결국, 말에 대한 판단의 문제인데 진실 없는 거짓된 말을 어떻게 걸러내야 하는지 지금부터라도 연구해 볼 참이다.
1970-01-01 09:00 2017-01-18 20:5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생활이 간소화되고 편리해지면서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지금은 보기 드문 세시 음식에 관한 추억이다. 그중 새해 첫날이 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물론 설날 하면 떡국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떡국에 떡만 있으면 왠지 좀 섭섭해 흔히 곁들인 것이 만두다.
 
필자가 어렸을 때 만두 빚기는 일종의 정겨운 가족 행사였다. 함경도 태생이신 아버지는 특히 만두를 좋아하셨다. 우리 집의 만두는 김장 때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만두를 위해 김장 김치도 한 10포기 정도 더 담그셨다. 요즘으로 치면 2인 가족 정도의 김장이 만두를 위해 희생된 셈이다.
 
만두 빚는 날은 온 가족이 동원된다. 어린 우리는 만두피 형을 뜨는 일을 담당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밀대로 넓고 얇게 늘인 밀가루 반죽에 동그란 주전자 뚜껑을 힘주어 누르기만 하면 된다. 우리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고 몰래 반죽을 떼어내 동물 모양을 만들며 놀던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조금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른들 틈에 끼어 실제 만두를 빚기도 했다. 원래 외할머니는 서울식 작고 날렵한 만두를 빚으셨지만, 아버지를 위해 이북식 주먹 만두로 바꾸셨다. 우리 집 만두소의 특징은 김치만두이지만, 고기를 듬뿍 넣고 표고버섯도 잘게 썰어 한데 섞는다.
 
만두를 찌면 모양을 보고 서로 자신이 빚은 것을 찾아내기 바빴고 예쁜 만두가 나오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야릇한 모양에 폭소가 절로 터졌다. 그러니까 우리 집 만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들의 정이 담긴 보따리인 셈이다.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만들던 기억은 이제 우리의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요즘은 김장도 조금 하고 소가족이라 만두 만드는 일도 시들해졌다. 밖에 나가 먹어보면 대개 맛이 비슷하다. 가족만의 전통이 사라져가며 우리 문화도 서서히 천박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즐겁지만, 서운한 설날 아침이다.
 
 
 
 
 
1970-01-01 09:00 2017-01-18 20:4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4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