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일종의 중독 현상이라면 그 중독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중독이란 몸에 좋지 않음에도 짜릿한 쾌감 때문에 끊지 못하는 약물이나 행위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주변을 파멸로 이끌어감에도 멈추지 못하는 불륜적인 사랑은 중독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그 길만이 구원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모든 삶의 규칙을 파괴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중독인가.

 

영화 <팬텀 스레드>는 오로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위한 영화다. 그는 이미 아카데미를 세 번 수상했고 이 영화로 네 번째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나의 왼발><링컨>으로 인상 깊었는데 난데없이 이 영화가 그의 은퇴작이란 기사를 보고 초조하게 상영관을 찾았다. 아카데미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를 복합상영관에서 찾을 수 없었다. 겨우 대한극장에 딱 한 회만 상영하는 걸 찾아냈다.

 

1950년대 영국과 주변 나라 왕실의 드레스를 만들어 사교계에 유명한 의상실 우드콕의 디자이너 레이놀즈(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틀에 박힌 나날들에 지쳐간다. 기분전환으로 간 시골 레스토랑에서 시골 처녀 알마(빅키 크리엡스)를 만난다. 둘은 첫눈에 호감을 느껴 함께 의상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곧 다른 모델들처럼 그의 드레스를 걸친 한낱 마네킹 역할로 내몰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디자인을 배웠고 거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늘 어머니의 유령이 주위를 배회하고 오직 누나 시릴(레슬리 맨빌)에만이 의지한다. 그가 사랑을 느꼈던 여인들은 결국 그 두꺼운 장벽을 깨지 못하고 마네킹 역할에 머물다 버려지고 레이놀즈의 어두움도 점차 깊어간다.

 

그러나 알마는 달랐다. 자신의 삶이 저주받았다고 느끼는 레이놀즈를 강박의 세계에서 구해내기로 결심한다. 억압적인 상류 사회에 물들지 않은 알마는 천성적이지만 의도된 도발을 시작한다. 이쯤 되면 포스터에 내걸린 내 사랑이 너를 구원할 거야.”라는 문구가 누구의 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갈등이 극에 달해 집에서 내쫓기기 직전 알마는 야무진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들에서 독버섯을 따와 그의 찻잔에 탄다. 레이놀즈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알마는 그의 곁을 지키며 자신만이 그를 지켜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은 그를 삶의 질곡에서 헤어 나오게 하며 드디어 그녀에게 청혼한다. 고통과 쾌감은 동전의 양면인지 모른다. 복어를 다루는 일식 요리사들이 복어 알의 독을 조금 맛보며 고통의 쾌락을 맛본다더니 독버섯은 그녀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유령처럼 그를 에워싼 두꺼운 과거 삶의 관성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둘의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을 무렵 그녀는 다시 독버섯의 충격요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과 다른 것은 몰래 타지 않고 노골적으로, 그것도 그가 싫어하는 버터를 듬뿍 넣어 구운 독버섯요리를 내놓는다. 레이놀즈도 비로소 과거의 짜릿했던 고통의 본질을 알아차린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버섯을 먹는다. 그것이 자신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구원임을 알기에.

 

다시 고통에 빠진 그에게 알마는 속삭인다. “난 당신이 바닥에 쓰러졌으면 좋겠어요. 무방비하게, 연약하게, 오직 나의 도움을 원하도록. 그리곤 다시 강해졌으면 해요. 죽진 않을 거예요. 당신은 휴식이 필요해요.” 때론 죽는 것이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고한 내면의 죽음으로 진정한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라면. 마지막 엔딩처럼 레이놀즈는 과거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완성한다.

 

팬텀 스레드는 매우 중의적이다. 레이놀즈를 감싼 엄마의 유령의 실이며 놀라운 재봉 솜씨가 되기도 하고 결국엔 둘을 연결하는 마법 같은 유령의 바느질이 되었다. 다니엘에게 밀리지 않는 빅키 크리엡스의 연기도 탄탄하다

1970-01-01 09:00 2018-05-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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