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역사적 인물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쉽다.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대로 연출하는 것이니 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그럴 리가 없다 예컨대 ‘성웅’ 이순신을 그리면서 어찌 여성 관계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그와 여성과의 관계도 소상하다. 그래서 어렵다.
 
이준익의 역사물은 살아 있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살아 있다면 의당 그래야 할 행동들을 한다. 그런 연출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눙치며 해낸다. 영화 <박열>은 그런 의미에서 전작 <왕의 남자>, <황산벌>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첫 장면에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실화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입니다.”라는 문구는 사실인 동시에 이준익의 익살이다.
 
사실 박열이라는 사람은 이념으로 구축된 현대사의 감옥에 갇혔던 인물이다. 납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찬란한 작품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정지용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고분을 발굴하니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유물들이 쏟아지듯이 역사에 묻혔던 그를 꺼내보니 미이라가 아니라 용수철같이 튀어 오르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나쁜 남자’로 돌아왔다.
 
박열(이제훈)은 아나키스트로 일본에서 ‘불령사’를 조직해 활동했던 인물이다. 매우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들이 반은 애국심으로 반은 치기로 뭉쳐 다니는 그룹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래서 독립투사라는 거룩한 시각으로 보면 불편하겠지만, 그들 간에 치고받고 그룹 간에 다툼도 있는 것이 진실이 자연스럽다. 그러니 ‘고증에 충실’한 것이라는 첫 장면의 진술은 옳다.
 
아나키스트라는 것도 세기말에 태어나 제국주의 간의 전쟁을 겪으며 탄생한 전위적 사조이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젊은 시절의 반항적인 일탈이 본질이다. 불령사라는 이름도 그런 반항의식의 소산이다. 히피가 그렇고 힙합이 그렇듯이 아나키스트도 그 시절의 ‘삐딱이’들인 셈이다. 그런 박열이 같은 과의 여자 삐딱이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를 만나 제국 일본의 한복판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박열은 진짜 독립운동가가 되어간다. 폭탄 반입을 논의하고 황태자 폭살을 모의하던 도중 일본정부에 의해 조선인 학살의 명분에 걸맞은 ‘불령사’의 박열이 지목된다. 이 지점부터 <동주>와 <박열>은 길이 갈라진다. 박열은 굴복하는 대신 ‘삐딱이’ 정신을 발휘하여 그들과 대결한다.
 
‘대마불사’라는 기훈처럼, 박열과 후미코는 사형판결을 유도하고 ‘쟁취’한 사형판결은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그 과정에서 박열보다 한술 더 뜨는 삐딱이 후미코가 감형에 불복하다가 우쓰노미아 형무소로 이감되자마자 죽고 박열은 해방될 때까지 22년 2개월을 복역한다. 
 
비극적인 역사지만 영화는 내내 유쾌하다. 그것은 내일이 없는 삶에서 오늘을 즐기고 멋을 중시했던 아나키스트들의 낭만적 삶의 태도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준익의 낙관적인 역사관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역사를 관통하는 힘은 비극보다 희극에서 온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태도가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고작 20세 남짓에 불과한 젊은 청년들의 대담한 용기를 보며 오늘날 청년들을 생각한다. 이제훈과 최희서가 창조해낸 아름다운 청년들의 이미지가 영화관을 나서는 내내 머리에 맴돈다.
1970-01-01 09:00 2017-07-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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