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 임신 8개월 되던 어느 날 나는 조산의 위험이 있어서 급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안정을 취해서 출산 날짜를 미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일과 살림과 아이들 돌보기를 하며 병원에 수시로 들르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금요일 퇴근 후 남편이 4살, 7살 된 두 딸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 두 딸은 엄마 없는 집에서 생겼던 일을 조잘조잘 이르듯이 마구 쏟아놓았다. 아빠가 머리 손질을 해 주었는데 삐뚤어서 예쁘지 않았고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반찬도 맛이 없었다며 엄마 없는 불만 내용을 열심히 나열했다.
 다음날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되어 그날은 두 딸이 병원에 남아 보호자가 되기로 하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갔다.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라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보는데 번번이 두 딸이 “시작”하더니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가 소변을 다 보면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는 것이었다. " 왜 엄마 소변 볼 때 노래를 부르니? " 하고 물어보니 딸이 귓속말로 "엄마 소변보는 소리가 옆에 사람들한테 들리면 엄마가 창피할까 봐 노래를 부르기로 둘이 약속했어요. "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고 대견했다.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된 같은 병실 환자와 보호자가 하나같이 놀라워하며 한바탕 웃었다. “엄마가 소변 소리를 남에게 들려주면 왜 창피하니?” 하고 옆 침대의 환자 보호자가 딸들한테 짓궂게 물어봤다. "그것도 모르세요? 남자는 괜찮은데 여자는 남자한테 소변보는 소리도 들려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창피할까 봐 우리 둘이 노래를 하는 거예요. " 야무진 큰딸이 얘기하니 작은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의 말에 동조한다는 눈빛이었다. 4살, 7살 된 눈으로 볼 때 누워있는 엄마를 창피하지 않게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년이 흘러 그 딸들이 이제 20대 중, 후반이 되었고 세상을 빨리 보고 싶어 했던 셋째는 어제 대한의 아들로 건강하게 입대를 했다. "남자라면 다 가는 곳이니 엄마 절대 울지 마요" 하며 꼭 안아주던 막내를 생각하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오줌소리를 덮어준 어린 딸의 지혜가 불쑥 생각난다.
그때의 두 딸 모습은 오줌소리만 들리면 짠하고 요술쟁이처럼 나타나 언제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1970-01-01 09:00 2014-10-2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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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차드 2014-10-23 05:1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글을 읽으니 가족의 소중함과 애틋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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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아트벨리'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서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거나 화려한 시설을 뽐내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소박함 속에 웅장함이 보이고, 자연미 속에 인공미가 숨어 있다.
이곳을 천천히 뜯어보면 우선 태동부터가 남다르다. 포천시 신북면 산자락에 자리한 이곳이 과거 문을 닫은 시골 채석장이었다고 하면 대부분이 깜짝 놀란다.
'포천아트밸리'는 모두가 ‘안 된다’고 고개 저을 때 ‘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탄생했다. 희뿌연 먼지만 날리던 폐채석장은 자연 속 아름다운 ‘힐링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놀라운 변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녀간 사람만 2009년 10월 개장 이후 지금까지 100만 명을 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주는 안락한 휴식은 이곳의 참 매력이라 할 수 있지만,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을 체험의 장, 치유의 장, 공생의 장, 만남의 장으로 나눠 소소한 변화를 통해 지루함을 떨치게 한다.
또 전시장과 공연장, 편의시설 등 본격적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특히 공연장에서는 1년 사시사철 다양한 공연이 펼쳐져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최근 이곳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했다. 밤하늘을 수없이 수놓은 별들을 코앞에서 보듯 선명히 관찰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4D 입체영상을 통해 대우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6대의 최첨단 천체망원경으로 우주 속 아름다운 별자리들도 볼 수 있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포천아트밸리는' 이처럼 최근 새로운 관광패러다임으로 떠오른 ‘녹색 관광’의 표본으로,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관광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경인일보  9월  일  (시민기자 김영란)
1970-01-01 09:00 2014-10-1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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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사이 주말이면 등산로 입구마다 인파로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 아웃도어 산업이 급성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등산은 가족이나 동향, 동문 중심으로 친목 도모가 목적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산악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레포츠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산악동호회는 40.50세대의 참여가 활발해져 지고 있다. 최근에는 50.60세대들이 가세하는 추세이다. 40.50세대의 등산 활동은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망가져 가는 정신과 육체를 자연에서 치유하려는 힐링의 성향이 강하다. 50.60세대는 등산 모임을 통해 건강정보를 공유하고 노후의 삶을 보다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20.30세대는 산악스포츠에 중점을 두고 산악테크닉, 장비, 관련 스포츠 정보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등산 문화가 세대별로 차이를 보이며 독특하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상 등산문화가 발전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등산 인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등산이 인기를 얻으면서 관련 정보도 다양해지고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의학적, 심리적, 문화적 등 다양한 시각에서 등산을 전문적으로 연구, 해석하는 경향도 등산문화 변화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등산 인구가 늘고 등산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이면에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등산 안전사고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잘못된 산행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등산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전예방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악동호회 중에는 사고예방을 위해 음주를 없애는 동호회도 늘고 있다.
 아웃도어 산업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상업적 목적을 위해 등산 붐을 조성하는 경향도 건전한 등산문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등장했다. 업체들과의 과열경쟁으로 무분별한 상품 협찬이나 판촉 등으로 등산문화를 흐리고 있다.
 우리나라 등산문화는 현재 산악동호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로 성장하고 있지만, 동호회에 치중된 다소 획일적이고 단순한 면이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건강한 신체, 올곧은 정신을 다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등산문화 정착이 중요하다.
 
2014년 9월 2일 경인일보 32면(시민기자 김영란)
 
1970-01-01 09:00 2014-10-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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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벌건 장작불에 달구어진 가마솥

끓여주고 조려주던 열정적인 품

 

지푸라기 등겨 부둥켜안아

명품 소죽으로 탄생 시킨 품

 

식성 좋던 소 외출 나가고

뜨거웠던 가마솥 땔감 떨어져 가니

 

화력 좋은 불 피우려 부채질하다

매운 연기에 품 그리워 눈물이 나누나.

 

    

1970-01-01 09:00 2014-10-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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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생전 아버지는 어느 자식 집에 다니러 오셔도 고기반찬은 반가워하지 않으시고 술 한잔 대접은 반드시 해 드려야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젊어서 한 시 쓰기 좋아하시고 한문에 소질이 있으셔서 일 년씩 집 떠나 서울에 올라가 족보를 쓰기도 하셨다. 풍류도 알고 지식도 떨어지지 않는 멋을 아는 분이셨다.
 내 나이 마흔 살이 될 즈음부터 아버지는 나와 한잔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시골에 가면 아버지와 시골 장터 대폿집에 들러 대포 한잔 마신다. 막걸리 한 사발에 천원인데 안주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다양하게(김치 등 나물 반찬) 공짜로 주셨다. 대포 두 잔씩 마시는 동안 나는 지나가던 수많은 어른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아버지가 지나가던 친구분들께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 딸이여, 예쁘지? 허허허 하며 자랑을 하셨기 때문이다. 언니, 오빠, 동생, 오 남매가 아버지 닮아 술을 잘 마셨지만 유독 아버지는 나와 여기저기 다니며 술을 마셨다.
 내가 사는 의정부에 오시면 아버지와 손잡고 의정부 재래시장 지하에 있는 대폿집을 찾는다. 한껏 멋을 부린 아줌마들이 이리와 앉으라고 손짓하면 힐끔힐끔 살펴보며 아버지가 마음에 드는 아줌마 앞에 앉으신다. 엄마 시골에 계실 때, 살짝 아버지의 기분을 살려 드렸다. 돼지껍질 등, 구수한 안주와 한잔 하는 동안 나는 아줌마와 아버지 두 분 대화에 구경꾼이 되기도 했다.
 73세 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날벼락같이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수술하기 위해 개복했을 때는 대장, 직장, 방광까지 퍼져서 손을 못 대고 포기를 해야 했다. 하루 이틀 좋다는 민간요법이며 여러 약을 드시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3개월을 장담했고 아버지는 집에서 편히 계시고 싶다고 하셔서 집으로 모셨다. 엄마가 지치실까 봐 5남매가 교대로 내려가 간호를 해 드렸다. 속수무책이라는 단어를 그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정성으로도,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약은 통증을 달래야 하기에 독해지고 점점 통통한 살은 온데간데없이 말라만 가고 계셨다.
 가족들은 안타까움에 아버지 몰래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9개월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친한 친구 한 분이 오셨다. 아버지는 소주를 가져와서 두 잔을 따르라고 하시더니 친구와 건배하시고는 소주잔에 혀를 잠깐 대시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술은 좋은 벗이지만 건강해야 마실 수 있는 거란다. 친구와 오랜만에 건배하고 술을 입에 대니 너무 행복하구나.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암 투병을 힘들게 하시다가 좋아하는 가족과 술과 친구를 두고 8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직도 괴산 오일장 터와 의정부 제일시장에 가면 막걸리 한잔 하고 가~하며 지나가는 친구들한테 손짓할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추석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아무 말 없으셨지만 느낄 수가 있었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술 한잔 따라드리고 아버지의 이불이 되어주는 흙과 잔디에도 뿌렸다. 아버지 산소를 뒤로하고 돌아오며 하늘나라에서는 아픔이 없으시길, 마음으로 빌어본다.
 
1970-01-01 09:00 2014-10-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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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명신 2014-10-15 13:5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버지와 함께 술 드셨던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다니 부럽네요.

    1. 김영란 2014-10-15 18:03 # 수정/삭제 퍼머링크

      그때 그 장소에 가면 아버지의 막걸리 마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한편 추억을 남기고 떠나셔서 한번씩 느낄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2. 오차드 2014-10-15 15:0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술을 즐겨 드셨던 아버지에대한 회상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킵니다.

    1. 김영란 2014-10-15 18:0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연세와 맞지않게 개방적 이셔서 술 친구로 했던 지난 추억이 다시금 되살아납니다.

  3. 배꽃 2014-10-15 23:1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저는 참 부럽답니다.

    1. 김영란 2014-10-16 13:5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술도 좋아하셨지만, 꽃도 좋아하셔서 산소에 예쁜 꽃 피는 나무도 여러 그루 심어 드렸어요. 추억이 곧 저금인 것 같아요. 언제든 꺼내어 볼 수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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