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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의 삶과 진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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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4) – 산책(2)
컬럼 | 2008/04/29 19:17
2008/04/29 19:17 2008/04/29 19:17





산책(2)


동작대교<->반포대교 사이의 한강시민공원에는 다른 한강공원에 비해 특이한 점은 없지만 여름에 88도로 축대에 ‘구중궁궐의 꽃’이라는 능소화가 정말 흐드러지게 핀다는 것과 서래섬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래섬은 봄에는 유채꽃, 여름, 가을에는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어 데이트 족들의 사랑을 받는 코스이다. 겨울에는 사방팔방으로 훤히 보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섬 안에 난 오솔길 이외에는 사방이 전혀 안 보여 연인들만의 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서래섬 입구에 물오리들의 쉼터가 있는데 풍부한 먹이로 물오리뿐만 아니라 온갖 새들의 휴식처이다. 물오리들도 추운 새벽에는 선잠을 깨우며 머리를 움츠리고 있다.


서래섬 둑에서 보이는 반포대교는 시간이 멈춘 듯 하다.


둑길 옆 가로등은 일렬종대로 나그네를 맞이하고


멀리 해가 서래섬 나뭇가지나 신반포 재개발 공사장에 걸려 있고


더 멀리 관악산과 남산이 보인다.


아침 일직 청둥오리 식구들은 나 같이 산책을 떠나는데 곧 푸짐하고 싱싱한 아침식사를 시작할 참이다.


서래섬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반포대교 쪽으로 트랙이 나 있는데 난 600에서 400을 지나 200까지 400미터를 전력질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두툼한 옷 때문에 내 눈에 스치는 광경은 슬로우 모션이다.


반포대교 남쪽에 해가 떠 닿으면


운동장은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반포대교를 터치하고 돌아오는 길은 아주 탁 트인 고속도로이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 한강 인도교, 중지도, 철교, 여의도가 보인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온 듯 하다. 이미 치열한 하루는 시작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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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3) – 아빠마음
컬럼 | 2008/04/25 09:06
2008/04/25 09:06 2008/04/25 09:06



 

아빠마음


한 30년 전쯤 내 가족 중에 한 분이 ‘조선일보’에 고정칼럼을 기고하신 적이 있는데 칼럼 제목 중 하나가 ‘아빠마음’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에 대한 얘기로 아침에 유치원에 갈 때 아파트 당신 집에서 유치원 차가 오는 길까지 딸 혼자 보내기로 했는데 매일매일 마음 졸이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사고로 어린이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갈등하게 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미래의 아빠가 되는 나에게 퍽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다. 이번에 군대에 간 내 아들에 대한 얘기다.


내 아들은 아주 어릴 적에는 꽤 소심하고 여자 같은 아이였다. 난 그런 아들의 모습이 몹시 맘에 안 들었다. 위로 누나는 오히려 시원시원하고 활달한데 아들은 너무 허약해 보여 마음속으로 불만이 많았다.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가서도 물에는 안 들어가고 물가에서 혼자 모래장난이나 하는 여리디 여린 아이였다.

한번은 승원이 어릴 적 동해안으로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었는데 남들은 물속에 들어가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데도 아들은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홀로 놀고 있었다. 보다못해 내가 강제로 승원이를 안고 아주 깊은 바닷물에 던졌고 파랗게 질린 아들은 매우 슬피 울며 사단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들은 나보다는 엄마를 찾게 되고 같은 남자로서 서로를 그냥 담담하게 혹은 무관심하게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나에게는 마음 속에 두고두고 커다란 짐으로 남았다.

그렇게 나약했던 아들은 그 후로 무럭무럭 자라 나보다 훨씬 크고 씩씩한 청년이 되었다. 초등학생 승원이와 중학생 이상 승원이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덩치도 나보다 크고 미남(?)에 운동이란 운동은 도맡아서 하고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는 활발한 성격으로 변했다.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리더십도 꽤 있는 편인 것 같다. 그런 아들을 보며 마음속으론 대견했으나 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2년 전쯤부터 그러니까 아들이 대학생이 된 후에 가끔 목욕탕이나 찜질 방에 같이 가거나 술도 함께 먹고 그러면서 서로의 이해 폭을 넓혀 나갔고 마치 친구 같은 사이로 발전했다.

하루는 찜질 방에서 4-5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내가 먼저 예전에 있었던 동해안 사건을 진정으로 사과했다. 사과했다기 보다 내 마음속의 부담감을 털어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내 말을 듣던 아들은 아주 무심한 반응을 보였는데 무의식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별 신경을 안 썼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올해 들어 입영날짜도 결정되고 겨울 방학 때는 가족끼리 같이 해외여행도 갔다 오고 했다. 새 학기 등록은 했지만 아들은 친구들 만나기에 여념이 없어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입영날짜가 가까워 오면서 조금씩 초조해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통해 아들이 조금 편히 근무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지상정이라고 이해하고 그냥 넘기면 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승원이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고 크게 화를 냈다.

군대에 간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군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아마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이 들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의 태도나 자세가 몹시 못마땅했다. 대한민국 남성이면 모두 다 군대를 가는데 뭐 그리 큰 일이라고 벌써부터 편할 요령만 생각하느냐 뭐 그런 논리였다. 마치 어릴 적 동해안 사건하고 꼭 같은 반응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같이 걱정해 주는 ‘친구’에서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아빠로 다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 한 켠에는 나도 참을 수 없는 이기심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마치 해산 날을 앞두고 있는 아내를 보며 태어날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남편의 심정으로 ‘그래 조금 편한 곳에 배치되면 좋겠다. 아니 전방이라도 서부 지역이었으면. 이왕 전방이면 최전방 GOP부대가 전방 전투부대보다는 고생을 덜 할 텐데. 아니 그래도 최전방에는 항상 안전 사고가 걱정되니 훈련을 많이 받아도 전투 사단이 오히려 나은 게 아닌가?’ 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으나 일체 내색은 안하고 오히려 무덤덤하게 아들을 대했다.

입영 날, 마침 미국에서 오신 장인 장모님을 비롯, 엄마, 아내 등 가족들과 승원이 여친을 비롯한 친구 등 대부대가 환송을 갔는데 들어가는 승원이는 매우 당당하고 의연했다. 아빠의 불만표출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며칠 후, 전방 전투사단으로 훈련이 가장 ‘빡 세기로’ 소문 난 부대로 배치되었다는 문자를 군에서 받았고 이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놈의 ‘이왕이면’이 최악(?)인 것 같았다.

이번 주가 훈련 첫 주로 오늘 ‘사이트’에서 육군 훈련병인 승원이 사진을 보았고 이내 ‘위문편지’메일을 보냈다. 사진에서 그 녀석은 아주 밝게 웃고 있었다.

4월 23일 오늘이 아들의 만 21번째 생일 날이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오늘의 ‘아빠생각’도 세월 속에 묻혀지고 언젠가 승원이도 ‘아빠생각’을 쓸 날이 오겠지. ‘승원아, 생일 축하한다.’ 

<후기> 오늘 아침 일찍 승원이 여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생일 전날이라고 특별히 1분간 전화통화를 했는데 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문자로 보냈더니 어떻게 가족에게 전화를 먼저 안 하고 여친에게 먼저 했냐고 섭섭하다는 투의 문자가 왔다. 아마 전화가 안되서 그랬을 거다라고 위로문자를 보냈는데 오후에 이번에는 전화가 왔다. 옷가지가 담긴 소포와 편지를 받고 울먹이면서.

확실히 세상은 ‘아빠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깊고 세심한 ‘엄마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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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경헌 2008/04/27 19:53
안녕하세요.아주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 잘 있다 올거예요. 훈련중인 지금 상황에는 아들을 위해 기도밖에 없을것 같네요.두아들이 군대 갔을때 생각이 나네요.군인들만 보아두 눈물이 나던 그때가,,,
 염기훈 2008/04/29 10:02
경헌님, 오랜만입니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고요. 자주 놀러 오세요.
  2008/04/29 16:16
저의 경우입니다만... 어느날, 엄마가 딸 애의 생각을 전한답시고...뭔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거기엔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불만 내지는 요구사항이 섞여 있게 마련이지요. 딸 애한테 확인하면 ' 엄마는...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 는 식이지요. 자식의 말이건 부인의 말이건 친구이건...남의 말을 들을 때 우리가 꼭 생각해야할 일이 아닌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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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2) – 산책(1)
컬럼 | 2008/04/16 13:08
2008/04/16 13:08 2008/04/16 13:08
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 – 산책(1)





산책(1)


겨우내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뎌진 난 신년 다짐으로 구정연휴(2월 6일)부터 아침에 산책을 시작했다. 원래는 아침 운동을 하려 했으나 남들처럼 마라톤이나 사이클, 속보를 하지 않고 그냥 걷기만을 하니 산책이란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아침산책은 평일에는 5Km 이상, 휴일에는 10Km 이상을 걷기로 하고 우선 코스를 몇 가지 선택했다.

평일코스로는 대충 3코스인데 제1코스는 집에서 나와 동작대교를 지나 한강변을 따라 반포대교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반포한강공원)이고 제2코스는 동작대교에서 한강대교까지 왕복하는 코스이고 제3코스는 집에서 이수교로 나와 반포아파트 단지 옆에 조성된 소위‘워킹코스’를 따라 강남터미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이다.

휴일 코스로는 메인이 동작대교를 거쳐 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까지 갔다 오는 코스이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형코스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어느 토요일에는 집에서 회사가 있는 강남파이낸스센터 빌딩까지 왕복하기도 했다.

아침 산책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 지난 다음부터 무척 피로했다. 왜냐하면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 6시부터 한 두 시간 산책을 하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2월 달이라 너무 춥고 겹겹이 옷을 껴입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운동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몸을 혹사시키는 결과가 되었고 음식섭취도 더 하게 되어 근육과 지방이 쌓여 몸무게만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틀에 한 번 그리고 아침보다는 저녁 운동이 좋다는 주변 주치의(?)들의 충고를 받아 저녁과 아침을 번갈아 하며 일주일에 3-4번 쯤 산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벌써 계절이 바꿔 날씨도 따뜻해지고 봄꽃이 만발하는 곳을 산책하게 되어 기분도 전보다는 아주 좋다.


한 가지 여기서 집고 넘어 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난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래된 디카 하나가 내 유일한 散策一友인데 사실 이놈은 우리 가족이 되는 순간에 ‘미운 오리새끼’였다. 왜냐하면 디카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꽤 비싼 가격을 주고 디카 한 대를 구입했는데 구입한지 이틀 만에 분실했다. 그래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똑같이 비싼 돈을 주고 같은 기종은 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한 반값에 성능이 조금 떨어진 디카를 다시 샀는데 문밖을 바로 나간 먼저 놈이 원망스러워 새로 들어 온 이 디카는 까닭도 모르고 찬 밥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이 ‘미운 오리새끼’가 지금은 산책시 내 유일한 벗이 되었다. 물론 안경을 안 쓰면 화면이 잘 안 보여 정확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고 안경을 쓰면 추운 날씨에 성애가 생겨 찍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지금은 제법 손에 익어 친한 친구가 되었다. 화질이나 부가 서비스는 떨어지지만 자주 밧데리 충전도 해 주고 하루에 한 번씩은 잡아 이리저리 같이 놀고 있으니 성능이 크게 향상된 최신식 보다 나에게는 이제 막 내 손때가 타기 시작한 이 놈이 더 친근해져 가고 있다.


다음은 산책 초기의 기록이다.

우선은 평일 제1코스인 동작대교 <-> 반포대교 코스.

집에 나와 맨 먼저 날 맞아 주는 조명은 S주유소이다.


다음에 이수교 사거리가 나오고,


난 강변 쪽으로 건너가기 위해 건너가는 길에 서서 몸을 대충 푼다.


이수교에서 워킹코스를 걸으면 동작역이 나오고,


한강공원 쪽으로 내려가면 푯말이 나온다.


푯말 주변의 다리 난간에는 각가지 영역표시(?)가 나오고,


강변에 다다라 반포대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이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신반포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의 크래인들이 보이고,


강변 따라 걷다보면 ‘마린클럽’이 나온다.


원래 조그마한 ‘보트클럽’이 있었는데 작년에 건물이 들어서더니 초대형 보트와 작은 보트들이 정박돼 있고 최근에는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6월 쯤 아주 멋진 보트클럽이 생겨날 듯 하다. 언젠가 우리도 이 보트를 타고 한강을 따라 서해안에 갈 때가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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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1) – 할머니와 아들
컬럼 | 2008/04/08 09:59
2008/04/08 09:59 2008/04/08 09:59
염기훈의 주저리 주저리(1) – 할머니와 아들





할머니와 아들


오늘(4월 4일)은 참 맑고 화창한 봄날이다.

바람이 조금 부는 것 빼곤 곧 여름이 올 것 같은 날씨다. 우리 아파트는 해마다 이만 때쯤이면 ‘벚꽃축제’를 한다. 벌써 청사초롱이 걸렸고 수 백 그루의 벚꽃나무도 이미 꽃망울을 맺고 있다. 이런 화창한 날이면 아마 내일쯤 밤새워 꽃이 확 펴 있을 것 같다. 특히 밤이면 청사초롱 불빛 조명을 받은 벚꽃들의 현란함이 장관이다. 확실히 벚꽃은 다른 봄 꽃들처럼 ‘순간의 미학’이다. (다음날 개화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 할머님 스물 일곱 번째 기일이고 작년 4월 9일에 선산으로 귀향하신   후 처음 맞는 기일이다. 해마다 기일에는 성당에서 연미사를 올리고 저녁에는 가족들이 모여 간단히 추모예배를 보곤 했다. (우리 가족들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믹스되어 있다.) 작년에 내 블로그 (http://blog.yourstage-kr.com/khyum00) 에 글 ’26년만의 귀향-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를 3회에 걸쳐 올리면서 이미 말했듯 할머님과 선산은 참 인연이 깊은 곳이고 자손 중 내가 할머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라 당신에 대한 생각이 누구보다도 절절하고 깊다.


그런데 이제 열흘 후면 군대에 갈 내 아들 ‘승원’이 증조 할머님을 성묘하겠다고 해 오늘 기일을 맞아 엄마와 와이프와 아들이 성묘를 하러 고향인 논산에 내려갔다. 사실 기일에는 성묘를 안 했는데 이번에는 예외가 됐다. 그리고 기일마다 꼭 성묘를 했다 해도 제일 사랑을 많이 받은 내가 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큰집과 우리 집을 통틀어 아들이 승원이 하나밖에 없지만 재작년에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님을 비롯하여 가족 중 어느 분도 남아선호사상이 없는 집이라 내 아들은 별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랐다. 아버님이 상당히 보수적인 지역 출신이신데도 말이다. 특히 이제 연세가 꽤 많으신 엄마도 사고방식은 우리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신 분이라 언제나 남녀평등이다. (솔직히 여성 우위다.) 그런데 위로 사촌 누나 둘과 친 누나 하나가 있는 막내 ‘승원’은 가족 중 제일 어린데도 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약간 ‘범생’에 약간 ‘행동파’다.


같은 남자라서 그런가 나도 큰 딸(난 꼬마라고 부른다)하고 나누는 수다보다 아들과 서로 나누는 대화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설령 기회가 와도 언제나 단답형 대화다. 그래도 언제나 속으론 참 대견하단 생각이 든다. 군 입대하기 전에 각종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석하고 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사는 승원이가 만 하루 시간을 내어 할머님을 뵈러 갈 생각을 하다니.


사실 승원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할머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아들에겐 증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나를 매개로 할머니와 승원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한 가족의 역사라 생각한다. 모두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아주 작게는 100년이 조금 넘는 시간 안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 맺어져 있고 또한 앞으로도 그 인연과 사랑의 끈은 계속 될 것이다.


노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사시면서 학같이 고우셨던 할머님과 내 아들 승원이가 이 화창한 날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당이라는 100년 된 우리 가문 선산에서 서로 만난 것이다. 물론 하나님도 잘 인도하시겠지만 승원이의 군대생활을 오늘 선산에서 만난 7대조 조상님들이 축원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특히 할머님께서 제일 많이 기뻐하실 게다. 나에게 쏟으신 애정과 사랑같이.


참 맑은 봄날 하루가 간다.
각자가 오늘도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역사를 기술하고 기억하면서.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계시죠? 많이 보고 싶어요.’

<사진>승원이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오른 쪽이 아버님 묘소이고 왼쪽이 할머님 묘소이다.
 할머님께서는 돌아 가신 후에 할아버님을 다시 만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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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의 자전적 영화이야기(20)- 오래된 정원
자전적 영화 이야기 | 2008/04/01 12:38
2008/04/01 12:38 2008/04/01 12:38

난 임상수 감독을 잘 모른다. 고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 등 좀 특이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이상하게 근래에 ‘시대’물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점점 퇴보하여 간다는 느낌을 주는 감독이다. 어느 때는 내가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과 헷갈리기까지 했다. 홍감독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예정이다. (왜 이리 나중에 할 얘기가 많은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이야기를 시작할 때 왜 ‘오래된 정원’을 상기 세 영화에 포함시켰는가? 마치 삼총사에 달타냥이 낀 것 같은 형상인데 한참 시간이 지난 요즈음 ‘오래된 정원’에 선뜻 손이 안가는 것은 별로 감흥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내가 굳이 왜 ‘오래된…’을 넣은 것은 아마 무슨 이유가 있겠다 싶어 며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벌써 일년이 지난 일을 치매 초기(?)증상인 내가 지금 그때 생각을 상기하는 일은 고역이다. 그런데도 난 며칠 글을 쓸 준비를 하며 생각의 끈의 끄트머리를 잡으려고 노력했고 사고의 모자이크를 한 조각씩 꿰 맞추어 보았다.  의식까지도. 그리고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애초에 난 순수하고 애틋한 (다소 바보 같은) 사랑 얘기를 하고자 했다. 특히 주변의 환경이나 타의에 의해 애달파 지는 그런 (운명적인)사랑 말이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을 보면서 갑자기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생각 났고 그리고 영화에 많이 실망했고 바로 한 달 반 후 ‘오래된 정원’을 보면서 희미하게 어떤 연관성을 생각했다. 그저 조금 실망스럽다는 그런 연관성 말이다. 영화에 대한 실망감뿐만 아니라 후회 뭐 그런 거였다. 특히 내 경험과 연관된 아쉬움이랄까 그리움 그런 것 말이다. 그래 ‘자전적’이 되었다.


시대적으로 ‘그 해 여름’은 60년대 말로 내 젊은 날 보다는 조금 앞서고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초로 내 시기보다 조금 늦다. 그리고 전자는 ‘시대’와 전혀 상관이 없는 주인공들이 ‘시대’에 영향을 받아 비극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주인공 중 한 사람(현우, 지진희 분)이 ‘시대’의 주인공이다. 또한 전자는 농촌봉사란 시공에서 얘기가 펼쳐지고 후자는 도피처(갈뫼, 오래된 정원)란 시공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나머지 설정은 비슷하지만 주제는 약간 다르다. 그런데 난 그 중간쯤 된다.


우선 난 운동권이 아니었다. (사실 70년대 운동권하고 80년대 운동권의 양상은 매우 다르지만) 다만 내가 회장을 맡은 서클의 전임회장 중 한 분(지금은 교원단체장으로 있는 분이다. 최근 만났는데 본인이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매우 미안해 했다.)이 소위 ‘민청학년’ 사건으로 감옥에 있었고 74년 말 이른바 ‘동아 일보 백지 광고 사건’이 났을 때 동아 일보에 내 서클 명의로 그 형 이름을 거론하는 광고를 냈는데 그것이 당국에 체크되어 회장인 내가 고초(?)를 겪은 적이 있다. 내가 도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아침 내 집에 찾아와 울 엄마한테 문안인사(?)를 드렸다. 매일매일. 내 서클은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내 모친은 아침마다 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맘 고생을 심하게 하셨다. 결국 난 타협의 산물로 ROTC를 지원하게 된다. 그것도 뒤늦게.


정말 ‘시대’하고는 무관한 서클이었는데 그들의 눈으로는 발갛게 보였나 보다. 데모하면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과였던 그 당시로선 주동을 선 적은 없지만 참여는 꼬박꼬박 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주동 아닌 주동이 된 적은 있었다. 1학년 초에 데모를 한다기에 처음 구경(?)을 갔었는데 너무 데모적(?)이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 지금은 바보지만 그 당시에는 비교적 순수했다. 그런 내 눈으로 본 데모에 실망했던 것이다.


그 당시 데모는 우선 몇 날 몇 시에 교내 모처에 모이자는 방이 순식간에 붙는다. 그럼 그 시간에 그 장소로 나가면 주체 측에서 몇 사람이 나와 정부를 성토하고 점점 학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소위 선동이다). 그런 다음 곧장 대열을 짜서 교문 쪽으로 향하고 교문밖에 있던 경찰들이 최루탄 등으로 진압하고 이렇게 몇 번 학교 밖 진출을 시도하다가 데모대도 지치고 해질 무렵이 되면 다음을 기약하고 해산한다. 그런 후 주모자들은 각자 흩어져 도망가다가 학교 밖에 있는 경찰에 잡혀 경찰서 유치장으로 가고. 뭐 그런 식이다. 그래도 70년대는 80년대와는 달리 정복을 입은 경찰이 학교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물론 많은 잠바부대가 교내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 날, 난 주모자가 아니면서 소위 성토대회를 하는데 손을 들어 연설을 요청했다. 사전에 각본대로 연설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난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아무나 단상에 올라가 발언을 하면 되는 줄 알고 손을 든 것이다. 주체 측 사회를 보는 사람이 순간 당황했지만 혼자 손을 든 나를 지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단상에 나가 학생운동의 역사적인 의의부터 우리의 나아갈 바 등등 내 깐에는 사자후를 토해 내었다.


 듣는 학생들이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얼굴이 쌍시옷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주변에 있던 잠바부대까지 넋 놓고 날 바라봤으니까. 데모 끝나고 미리 정보를 입수한 경찰들은 주모자들은 다 잡아가고 난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고 다음날 영문을 모르는 과 친구들은 내가 잡혀간 줄 알고 모여들었고. 그런 해프닝이 딱 한 번 있었다.


사실 난 시위 주동자가 될 맘은 꿈에도 없었다. 내 형님 때문에 부모님이 무척 고생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같은 고생을 시켜 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뜨거운 것은 항상 있었고. 모친께 문안인사 드리는 ‘정보과’들은 ‘그런 내 속내를 읽고 있구나. 그래 예방차원이구나.’ 란 생각까지 했었다.



많이 옆 길로 샜다. 원위치하고. 그런데 내 ‘사랑’이 바로 같은 클럽의 동기생이면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러하듯 ‘사랑’이 아니었고 그냥 친밀한 사이로 영화도 같이 보고 연극도 같이 보고 농촌봉사 끝나고 한 달간 여행도 같이 다니고(물론 단체로) 그런 평범한(?) 사이였는데 점점 난 혼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그 해…’의 정인 스타일이 아니고 ‘오래된...’의 한윤희(염정아 분) 스타일이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윤희 역할을 염정아가 잘 소화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소설을 안 읽어 봐도 조금 당차고 씩씩한 그런 캐릭터임이 틀림없고 그녀가 그랬다. 조금 중성적인 이미지이고 그러면서도 상당히 모성애가 있는 아줌마 스타일이었다. ‘사랑’을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아트 오브 러빙’을 읽는 아이였고, 연극 발표회 날 배우들의 목을 위해 날계란을 준비해 주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조금 굴절된 행동으로 나왔고 처음 서클에서 만나 만남이 끊긴(난 헤어졌다고 표현하기가 싫다) 6년 동안 정식인 적은 딱 일년 남짓 이었지만, 의식은 수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녀가 다가서면 난 어느새 도망갔고, 내가 다가서면 어느새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때의 내 행동은 ‘그 해..’의 석영이었고 의식은 ‘오래된…’의 현우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위의 4편에 나오는 모든 신파의 주인공들은 비록 그것이 비극이든 해피엔딩이든 2세도 있고 그런데 난 그 긴 세월 동안 손 한 번 잡아보질 못했다는 점이다. 회장이란 공식적인 직위를 난 스스로 포기했다.  그 반대급부로 난 연극을 시작했지만. ‘속사랑’을 위해...


이 영화이야기를 시작할 때쯤 즉 영화를 본 다음, 그러저러한 복잡한 심사가 나에게 있었고 문득 ‘젊은 날’이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사랑’을 테마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시대’와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들이 나왔고 그런 젊은 날을 보낸 나에겐 모든 영화가 조금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고 또 어떤 ‘그리움’이 넘쳐났다.


영화적으로만 보면 ‘오래된 정원’은 결코 그 전에 나왔던 ‘박하사탕’이나 ‘꽃잎’ 보다 시대를 얘기하는 것으론 못했고 ‘그 해 여름’보다 ‘사랑’도 뒤진 느낌이다.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행에서도 실패하여 상영한 지 한 주 만에 스크린이 없어지고 유일하게 ‘단성사’에서 반쪽만 상영되었다.


노력은 많이 했는데 갈뫼 세트를 전주 은석골에 만들었고 시위장면을 전북대에서 찍었고(시위장면은 다른 어느 영화보다 압권이다) 촬영장소만 100 여 곳이었고 겨울에 여름 신을 찍으려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임감독은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라고 강변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 영화였다. 허나 감독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음으로써 ‘오래된’이 칙칙하게나마 색갈이 되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힘겨웠기에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이라고 얘기하지만 나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란 강한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의문부호 때문에 모호하고 꼭꼭 숨기고 어정쩡하고 티끌을 용납 하지 않았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떠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혜도 준하도 상민도 태수도 앨리도 노아도 청마도 정운도 석영도 정인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래 아직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오직 목 마른 내가 주님의 한없는 ‘사랑’ 부터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까지 생각하며 속앓이를 하는지 모른다. 추억까지 되새김질을 하면서. 








염기훈(kh.yum@yourstage-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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