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임상수 감독을 잘 모른다. 고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 등 좀 특이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이상하게 근래에 ‘시대’물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점점 퇴보하여 간다는 느낌을 주는 감독이다. 어느 때는 내가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과 헷갈리기까지 했다. 홍감독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예정이다. (왜 이리 나중에 할 얘기가 많은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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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이야기를 시작할 때 왜 ‘오래된 정원’을 상기 세 영화에 포함시켰는가? 마치 삼총사에 달타냥이 낀 것 같은 형상인데 한참 시간이 지난 요즈음 ‘오래된 정원’에 선뜻 손이 안가는 것은 별로 감흥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내가 굳이 왜 ‘오래된…’을 넣은 것은 아마 무슨 이유가 있겠다 싶어 며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벌써 일년이 지난 일을 치매 초기(?)증상인 내가 지금 그때 생각을 상기하는 일은 고역이다. 그런데도 난 며칠 글을 쓸 준비를 하며 생각의 끈의 끄트머리를 잡으려고 노력했고 사고의 모자이크를 한 조각씩 꿰 맞추어 보았다. 의식까지도. 그리고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애초에 난 순수하고 애틋한 (다소 바보 같은) 사랑 얘기를 하고자 했다. 특히 주변의 환경이나 타의에 의해 애달파 지는 그런 (운명적인)사랑 말이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을 보면서 갑자기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생각 났고 그리고 영화에 많이 실망했고 바로 한 달 반 후 ‘오래된 정원’을 보면서 희미하게 어떤 연관성을 생각했다. 그저 조금 실망스럽다는 그런 연관성 말이다. 영화에 대한 실망감뿐만 아니라 후회 뭐 그런 거였다. 특히 내 경험과 연관된 아쉬움이랄까 그리움 그런 것 말이다. 그래 ‘자전적’이 되었다.
시대적으로 ‘그 해 여름’은 60년대 말로 내 젊은 날 보다는 조금 앞서고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초로 내 시기보다 조금 늦다. 그리고 전자는 ‘시대’와 전혀 상관이 없는 주인공들이 ‘시대’에 영향을 받아 비극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주인공 중 한 사람(현우, 지진희 분)이 ‘시대’의 주인공이다. 또한 전자는 농촌봉사란 시공에서 얘기가 펼쳐지고 후자는 도피처(갈뫼, 오래된 정원)란 시공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나머지 설정은 비슷하지만 주제는 약간 다르다. 그런데 난 그 중간쯤 된다.
우선 난 운동권이 아니었다. (사실 70년대 운동권하고 80년대 운동권의 양상은 매우 다르지만) 다만 내가 회장을 맡은 서클의 전임회장 중 한 분(지금은 교원단체장으로 있는 분이다. 최근 만났는데 본인이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매우 미안해 했다.)이 소위 ‘민청학년’ 사건으로 감옥에 있었고 74년 말 이른바 ‘동아 일보 백지 광고 사건’이 났을 때 동아 일보에 내 서클 명의로 그 형 이름을 거론하는 광고를 냈는데 그것이 당국에 체크되어 회장인 내가 고초(?)를 겪은 적이 있다. 내가 도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아침 내 집에 찾아와 울 엄마한테 문안인사(?)를 드렸다. 매일매일. 내 서클은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내 모친은 아침마다 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맘 고생을 심하게 하셨다. 결국 난 타협의 산물로 ROTC를 지원하게 된다. 그것도 뒤늦게.
정말 ‘시대’하고는 무관한 서클이었는데 그들의 눈으로는 발갛게 보였나 보다. 데모하면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과였던 그 당시로선 주동을 선 적은 없지만 참여는 꼬박꼬박 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주동 아닌 주동이 된 적은 있었다. 1학년 초에 데모를 한다기에 처음 구경(?)을 갔었는데 너무 데모적(?)이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 지금은 바보지만 그 당시에는 비교적 순수했다. 그런 내 눈으로 본 데모에 실망했던 것이다.
그 당시 데모는 우선 몇 날 몇 시에 교내 모처에 모이자는 방이 순식간에 붙는다. 그럼 그 시간에 그 장소로 나가면 주체 측에서 몇 사람이 나와 정부를 성토하고 점점 학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소위 선동이다). 그런 다음 곧장 대열을 짜서 교문 쪽으로 향하고 교문밖에 있던 경찰들이 최루탄 등으로 진압하고 이렇게 몇 번 학교 밖 진출을 시도하다가 데모대도 지치고 해질 무렵이 되면 다음을 기약하고 해산한다. 그런 후 주모자들은 각자 흩어져 도망가다가 학교 밖에 있는 경찰에 잡혀 경찰서 유치장으로 가고. 뭐 그런 식이다. 그래도 70년대는 80년대와는 달리 정복을 입은 경찰이 학교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물론 많은 잠바부대가 교내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 날, 난 주모자가 아니면서 소위 성토대회를 하는데 손을 들어 연설을 요청했다. 사전에 각본대로 연설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난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아무나 단상에 올라가 발언을 하면 되는 줄 알고 손을 든 것이다. 주체 측 사회를 보는 사람이 순간 당황했지만 혼자 손을 든 나를 지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단상에 나가 학생운동의 역사적인 의의부터 우리의 나아갈 바 등등 내 깐에는 사자후를 토해 내었다.
듣는 학생들이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얼굴이 쌍시옷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주변에 있던 잠바부대까지 넋 놓고 날 바라봤으니까. 데모 끝나고 미리 정보를 입수한 경찰들은 주모자들은 다 잡아가고 난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고 다음날 영문을 모르는 과 친구들은 내가 잡혀간 줄 알고 모여들었고. 그런 해프닝이 딱 한 번 있었다.
사실 난 시위 주동자가 될 맘은 꿈에도 없었다. 내 형님 때문에 부모님이 무척 고생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같은 고생을 시켜 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뜨거운 것은 항상 있었고. 모친께 문안인사 드리는 ‘정보과’들은 ‘그런 내 속내를 읽고 있구나. 그래 예방차원이구나.’ 란 생각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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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옆 길로 샜다. 원위치하고. 그런데 내 ‘사랑’이 바로 같은 클럽의 동기생이면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러하듯 ‘사랑’이 아니었고 그냥 친밀한 사이로 영화도 같이 보고 연극도 같이 보고 농촌봉사 끝나고 한 달간 여행도 같이 다니고(물론 단체로) 그런 평범한(?) 사이였는데 점점 난 혼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그 해…’의 정인 스타일이 아니고 ‘오래된...’의 한윤희(염정아 분) 스타일이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윤희 역할을 염정아가 잘 소화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소설을 안 읽어 봐도 조금 당차고 씩씩한 그런 캐릭터임이 틀림없고 그녀가 그랬다. 조금 중성적인 이미지이고 그러면서도 상당히 모성애가 있는 아줌마 스타일이었다. ‘사랑’을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아트 오브 러빙’을 읽는 아이였고, 연극 발표회 날 배우들의 목을 위해 날계란을 준비해 주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조금 굴절된 행동으로 나왔고 처음 서클에서 만나 만남이 끊긴(난 헤어졌다고 표현하기가 싫다) 6년 동안 정식인 적은 딱 일년 남짓 이었지만, 의식은 수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녀가 다가서면 난 어느새 도망갔고, 내가 다가서면 어느새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때의 내 행동은 ‘그 해..’의 석영이었고 의식은 ‘오래된…’의 현우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위의 4편에 나오는 모든 신파의 주인공들은 비록 그것이 비극이든 해피엔딩이든 2세도 있고 그런데 난 그 긴 세월 동안 손 한 번 잡아보질 못했다는 점이다. 회장이란 공식적인 직위를 난 스스로 포기했다. 그 반대급부로 난 연극을 시작했지만. ‘속사랑’을 위해...
이 영화이야기를 시작할 때쯤 즉 영화를 본 다음, 그러저러한 복잡한 심사가 나에게 있었고 문득 ‘젊은 날’이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사랑’을 테마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시대’와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들이 나왔고 그런 젊은 날을 보낸 나에겐 모든 영화가 조금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고 또 어떤 ‘그리움’이 넘쳐났다.
영화적으로만 보면 ‘오래된 정원’은 결코 그 전에 나왔던 ‘박하사탕’이나 ‘꽃잎’ 보다 시대를 얘기하는 것으론 못했고 ‘그 해 여름’보다 ‘사랑’도 뒤진 느낌이다.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행에서도 실패하여 상영한 지 한 주 만에 스크린이 없어지고 유일하게 ‘단성사’에서 반쪽만 상영되었다.
노력은 많이 했는데 갈뫼 세트를 전주 은석골에 만들었고 시위장면을 전북대에서 찍었고(시위장면은 다른 어느 영화보다 압권이다) 촬영장소만 100 여 곳이었고 겨울에 여름 신을 찍으려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임감독은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라고 강변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 영화였다. 허나 감독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음으로써 ‘오래된’이 칙칙하게나마 색갈이 되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힘겨웠기에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이라고 얘기하지만 나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란 강한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의문부호 때문에 모호하고 꼭꼭 숨기고 어정쩡하고 티끌을 용납 하지 않았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떠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혜도 준하도 상민도 태수도 앨리도 노아도 청마도 정운도 석영도 정인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래 아직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오직 목 마른 내가 주님의 한없는 ‘사랑’ 부터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까지 생각하며 속앓이를 하는지 모른다. 추억까지 되새김질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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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kh.yum@yourstage-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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