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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는 나그네
컬럼 | 2009/08/20 11:46
2009/08/20 11:46 2009/08/20 11:46

길가는 나그네

나는 가끔 아직 그리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지난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아니 인생이란 거창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고 그저 지난 반평생을 돌아보면서 사회에 나와 만 15년은 현대에 있었고, 그 후 15년은 계속 회사를 옮겨 다닌 내 이력서가 무려 10줄이 넘는 아주 고약한 삶을 살고 있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래 주변 친구들 중 이력서의 경력난이 한 줄인 친구들이 제일 부럽다. 아직도 한 줄로 계속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내 독서습관하고도 비슷하다. 내 독서습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독에, 잡독 스타일이다.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그 대상이나 주제도 다양하다. 요샌 그래도 가끔 KTX를 타면서 역 구내의 작은 책방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한 권씩 사서 읽지만, 예전에는 대형서점에 가서 몇 권을 한꺼번에 사서 동시에 읽는 습관이 있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항상 몇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읽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미리 정해놓고 책을 선택하거나 어떤 지식을 얻고자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역사서, 인문서적, 종교서적, 대화록, 수필집, 자연과학서적 등등. 어릴 때 열독했던 소설이나 시집은 비교적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잡히면 읽고 있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이 선택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책 한 권 입장에서 보면 다 읽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어떤 책은 일 년을 시달린 놈도 있다. 비교적 어려운 책이 걸리는 경우 몇 페이지 읽다가 며칠 후 다시 읽으면서 지난번 읽은 페이지를 다시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한숨을 쉬면서 읽는다. 정말로 어떤 목적의식이나 의도가 전혀 없고 다 읽은 다음에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따라서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은 너덜너덜하지만 항상 새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기쁨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래 행복하다.

내 지난 반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적성과 뜻과는 전혀 다르게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고 있다. 물론 비슷한 종류들이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다양하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것이지만 한마디로 방랑자의 삶 그 자체다. 홍보, 광고, 방송, 시니어 컨설팅, 투자자문, 대학교 등등 어느 한 곳에 느긋하게 머문 곳이 없다. 참 한심하다. 정말로 이력서의 회사가 한 줄이면서 지금도 국내 최고의 광고회사 사장으로 있는 선배 한 분은 내 직장이 바뀔 때마다 연락하면 말을 잃고 한심하단 듯 바라보기도 한다. 결국 그러한 내 행태는 인생의 낙오자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고, 변신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참을성 없는 내 성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욕심이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그래 변신에서 용기를 얻고 희열을 맛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릇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라면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뚜렷한 여행가나 탐험가의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냥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의 삶을 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난 전형적인 후자의 삶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어떤 것에 정통한 전문가 또는 달인,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위한다면 어떤 일이 주워져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도 있다. 마치 정처 없는 방랑자는 문전걸식도 잘하는 것과 같다.

누구도 삶의 가치를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평가하지 못하겠지만, 비교적 양심적으로 조금 먹고 불편부당하게 세상을 관조하면서 사는 모습도 조금은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자족하며 사는 삶의 한 조각이라 생각한다. 마치 내가 어려운 과학서적 하나를 장기간에 걸쳐 읽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나 혼자 만족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그래 난 행복하다. 또 다른 변신을 꿈꾸면서. 물론 남들은 100%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길가는 나그네에겐 아무도 길을 묻지 않는 것일까?




피앤브로(주) 염기훈 사장(khyum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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