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대는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를 자세하게 천천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거울인 줄 알았다. 당황스럽게도 거울만이 낯선 나를 반영하는 게 아니었다. 속살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 진물 덕지덕지 붙은 고목을 보면서 무심하지 않다. 아픔을 이렇게 이기고 살았노라 가슴팍에 움푹 파인 흉터가 어쩌면 내 모습일 수 있겠다 싶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잔병치레로 수술실에서 잠깐 죽었다가 살아나온 때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제법 접히는 기록이다. 큰 소리로 열도 못 세고 아니 다섯도 못 세고 기억이 없어지는 깔끔한 죽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지금에 이르러서다.
    
염라대왕이 늦춰주는 특별상을 받았거나 아니면 하늘나라 가까이 입성하는 길을 못 찾은 게 분명하다. 60 가까이 될 즈음에 벼슬 딴 것처럼 환갑 진갑 지났다고 은근슬쩍 자랑함에 덩달아 환갑을 빨리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거저먹는 자동기계 셈법을 거슬리는 요술 방망이 든 것도 아니면서 나이를 올려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들통나면 반올림했노라고 했다. 별걸 다 부러워했다.
    
전철 개찰구에 신호음이 자기네 귀에 공짜한다거나 통과로 들렸다는 65세 경로 우대증 받아 들고 공짜 표 사용 후기를 신나게 말할 때도 슬쩍 부러웠다. 도도한 미소까지 품어내며 경로 혜택 안 받고 나이 안 먹으면 좋겠는데 가계에 얼마나 보탬이 되겠느냐고 겉말을 하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65세는 청춘이니 노인의 나이를 올리자는 세간의 말이 떠돌 때 안 돼하며 욕심 보따리를 꿰차고도 아닌 척 차츰 비겁해지고 약해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욕심에 나이가 있다면, 천수 만수를 누렸겠다. 실제 나이는 생체나이를 훨씬 앞질렀고 여물지 않은 정신 나이는 늘 부끄러운 수준이다. 타고난 재주 중에 엄청 큰 재주 덩어리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따박따박 나이만 먹힌다. 일흔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 고개를 어서 빨리 넘기고 싶었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장수에 대한 욕망이었나? 정신없이 속아서 살고 있다.
    
습관적으로 차를 놓치면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에 2분 간격이지만, 별 바쁜 일이 아님에도 전광판에 도착 글을 읽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간다. 마음은 철없는 청춘인데 웃자란 나이가 놀라게 한다. 저 늙은이 뭐가 저리도 바쁘기에 뛰어다니나 할까 봐 빈자리에 앉아 눈을 감아 버린다. 진정으로 이제부터는 공짜로 주는 나이는 먹고 싶지 않다. 충분히 무지개 색칠을 했고 스펙트럼의 발산도 그만하고 싶다. 속없이 들뜬 기대와 설렘이 언제 있었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 고품격 비애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인생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 되게 말하며, 두 구멍으로는 배설하는데 막힘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나이 70에 그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공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하여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 했다는 것이다. 논어에서 70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더라도 절대 법도를 넘지 않았다.’ 하여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한다. 이를 줄여 나이 70은 종심(從心)이라고 부른다는 고사다.
    
60세는 천지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한다 하여 이순(耳順)’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평균 나이가 길어져 인생은 칠십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옛날 70은 드물다는 말로 고희(옛 고 드물 희)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 시(曲江詩)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봄옷을 잡혀(朝回日日典春衣)
날마다 강가에서 한껏 취해 돌아오네(每日江頭盡醉歸)
외상술값이야 가는 곳마다 깔렸지만(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더라(人生七十古來稀)
    
퇴직하자마자 머리 염색하지 않아 갑자기 백발노인으로 둔갑한 그가 70이 넘어지니 앉은 자리에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이래저래 잘 못 해도 용서되는 나이 먹었으니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하라고 으름장 아닌 경고부터 하고 시작한다. 90이나 되어야 종심이지 70은 애교요. 백세시대에 70은 장년기에 속하고 맞지 않는다고 하면 옛말이니 들어두라며 머쓱해 한다. 약간 상기된 말투로 나는 너보다 빨리 경험했잖아 했지만, 누구 하나 긍정도 부정도 않고 귓등으로 듣는 노인의 고까운 쓴소리를 즐기고 있다. 대책 없이 나이만 먹어 무단히 자력이 닳고 있으나 이순(耳順)과 종심(從心) 사이가 가장 좋다고 뭣 하러 미숙하고 고달픈 청춘으로 되돌아가겠느냐면서 아직 한창 일을 하고 있다.
    
레츠 고 운동 따라 하기 동영상 한 편이 카톡으로 들어온다. 종소릴 죽이지 않아 소리가 새벽 다섯 시에 날로 울렸다. 남편 하늘로 일찍 보내고 홀 늙은이 우울증약 먹고 호전되어가는 친구가 보냈다. 잠 없다고 깨어 방안에서 혼자 체조하다가 보낸 것 같다. 골골대는 모양새가 딱했던 나를 염려 차원에서 생각하고 보냈다. 요즘 부쩍 종아리 쥐가 아니라 발가락과 발등에 쥐가 나서 잠을 깨는 일이 있다고 응석도 섞어 고맙다고 했다. 나이 먹으면 속 시끄러움 없이 평화가 있을 줄 알고 먹은 60, 65, 70 값을 한다. 훑고 지나가는 세월인지라 세상 이치로 보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어 후반기 인생 흐르는 하루하루 살아있으니 보이는 것들을 예뻐할 수밖에 없고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도록 웃음 한 번 웃고 간다.
1970-01-01 09:00 2017-07-24 05:41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 166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