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풀잎 /추영탑

 

 

 

이슬 한 방울에 허리가 휘는 풀잎을 보았네

부러지지 않으려는 찰나의 힘으로

구부리다가 구부려졌다가 다시

비감의 저항으로 몸을 세우는 풀잎을 보네

 

 

 

무력한 내 손가락에 힘을 보태 우주를

들어올리는 저 조그만 것의 힘은 얼마나 센가

 

 

 

날마다 넓고 깊고 높은 허공을 머리에 이고

먹구름의 그림자에 깔려 모다깃매로 두드리는

장대비를 다 받아내도록 질긴 허리를 가진

풀잎을 경배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님께 달려가

훈민정음 속을 드나들기도 하는 것인데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촛불은

아직도 불타고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무게를 다 짊어질 수 있는

풀잎의 춤에 빠지는 것이다

 

 

 

흔들리는 일과를 놓치면 죽는 가파른 생

형이상학으로 몸을 가누다가 결국엔 형이하학으로

자신을 연출하는 풀잎의 춤에 나는,

깜빡 열광하는 바람이 되었다가

풀잎에서 뛰어내리는 한 방울 이슬이 되는 것이다

 

 

 

 

 

 

 

 

 

달빛 /추영탑

 

 

 

하늘 한 복판에 박힌 듯 굴러가는 달을 보네

쏟아지는 천곽의 조각들에 살며시 감싸인

허공이 차디차게 저를 식힐 때

 

 

 

겨우 실꾸리 하나와 빈 항아리 한 개의

길이와 부피의 빛으로

만들어 놓은 그림자 속

몇 겹인가의 허물을 벗어 던지는 어둠의 목격자들

 

 

 

혼자 굴러가는 속이 꽉 찬 염력의 굴렁쇠

칼이 되어 허공을 베고, 강물을 베

몇 겁(劫)을 베이고도 상처 없는 세월

 

 

 

어디쯤 굴러가다 툭 떨어질 것인지

빈 벤치를 오래된 제 방석인양

차지하고 있다가 풀잎들이 일어서 듯

빛의 소란으로 저 세상의 침묵을 깨우네

 

 

 

 

 

 

 

 

 

1970-01-01 09:00 2019-01-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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