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영탑(秋影塔) /추영탑

 

 

 

나 실핏줄 벋은 이곳이 내 땅인지

남의 땅인지 몰라서

뉘엿거리는 가을볕에 허름한 허리를 맡린다

 

 

 

가을 그림자는 탑을 쌓는지 허무는지 몰라

가을비 내리는 날을 피해 돌 하나 더 괴는데

한 철이 걸리는 것이다

 

 

 

구름 한 덩어리 돌 되어서

탑 위에 앉았다 스스로를 허물어 떠난다

 

 

 

가을은 언제나 사라지기만 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다시 돌아오기만 하는데,

탑은 가을빛에 잔뿌리로 서서 아직은 무너지지 않아

 

 

 

그림자로 쌓은 탑은 언제나 그림자 밖에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찾느라 가을을 놓친다

술 한 잔 생각에 탑 안에 차린 소반에 앉아

술잔을 밀쳐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데

 

 

 

곤궁하게 쫄아든 가을빛을 마시며

보석이 많이 숨겨져 있다는 어느 유명한 탑 옆에서

탑 같은 탑이기를 흉내 내는 나는 秋影塔,

 

영원히 바뀌지 않을 어느 한 계절을 사랑하며

 

 

발등에 내려앉는 내 그림자에 한 줄 글을 바치고

남이 불러주지 않는 나를 데리고

가을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1-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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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간이역 /추영탑

 

 

 

 

주검은 죽음에 올라타 어디로 가는지,

 

 

객사(客死)라며 안방의 윗목에 관을 베고 누워야 할

주검이 마당 귀퉁이나 깔고 누워  차일 너머로 듣던

상여소리, 다시 생각하면 그 역시 호사였으니

 

이제는 사방이 막힌 냉동실에서 쓸쓸하게

몸과 마음을 함께 얼리며 밤을 지새야 하는

​한 사람만의 전용 간이역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닐 영혼들마저  얼어붙어 있는

누군가의 객사가 3차원에 자리를 편다

 

​줄줄이 도열해 있는 화환들 사이로 은은하게 퍼지는

향냄새와 국밥냄새가 조문객들의 실존을 일깨워 주면

더러는 고인의 생전을 추모하고

애증을 삭이며 속으로 울기도 할 때

 

배웅하는 이 없는 간이역에서

​죽음과 주검이 서로의 이별을 꽉 부둥켜안고

손에 쥔 차표를 만지작거리며 막차를 기다리는데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만 잠시 머무는

아주 특별한 이 간이역엔 상여소리가 없다 ,

 

 

 

 

 

 

 

 

 

 

1970-01-01 09:00 2018-11-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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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앞에 방랑(放浪)을 접고 /추영탑

 

 

 

 

한 세상에 한 세월이 살고 있어

국화는 피는가?

앞에서 웃고 뒤로 운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의 착각이겠으나

 

 

 

한 울음에 두 슬픔이 겹쳐지는 날,

우리는 울음대신 웃음을 주고받는다

 

 

 

낯선 거리에 바람으로 흘러가 만난

외로운 시선 하나 붙들고 돌아오고 싶은

방랑벽(放浪癖)에 향을 껌처럼 붙여주며

한 철만 곁에 있어달라는 가을빛 저 시린 눈

나는 네 앞에서 나그네를 접는다

 

 

 

이슬 밀어내는 꽃잎마다 국화라 써 놓는 가을

전깃줄에 앉아 엿보는 참새 두 마리

사람과 꽃이 피우는 정분을 숨기자니

초가지붕 말랭이에 한 떨기 부끄럼 괸다

 

 

 

 

 

 

 

 

 

 

 

 

1970-01-01 09:00 2018-11-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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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 속에 울리는 고문(叩)門 /추영탑

 

 

 

글 한 줄에 붓방아만 찧다가

나슨해진 빈손에 빈잔을 받고 보니

가벼워서 참 좋은 날

 

 

 

천외(天外) 불심이야 내 어찌 따르랴마는

 

 

 

잔 밖으로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보다는

빗소리에 쫓겨 허둥대다가

빈잔을 다시 비우고 눈물을 채우자니

이미 말라버린 붓의 눈

 

 

 

물 없는 우물가에 빈잔을 두고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

눈물 대신 빗물에 흠뻑 젖어 울던 마음

하나가

 

 

 

기억에서 망각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면

빈잔 속 사랑의 기척인 양 나를 따라오는

고문(叩門) 한 소절

 

 

 

 

 

 

 

 

 

1970-01-01 09:00 2018-11-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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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향(菊香)으로 묻어 오소서 /추영탑

 

 

 

시향에 취흥을 첨삭하다가

삼계의 그리움만 버무린 국향이 거기 있어

잘 고은 부끄럼인 듯

눈과 마음 모두 촘촘 국화 속에 머무네

 

 

 

잊혀진 친구 두엇 그리워지는 날

그들 또한 저 향기에서 빗겨 서지 못할 터

밀어두었던 안부는 국화 향으로나 묻자는데

 

 

 

담벼락에 기대선 가을 낭자 같은 꽃이여,

등 뒤 머뭇거리는 바람 잡아두었다가

담 너머 내 기척 느꼈거든

그 바람 월장 할 때 꼭 쥔 손 놓지 말고

옷섶에 묻은 향인 양 숨어 오소서

 

 

 

 

 

 

 

 

 

 
1970-01-01 09:00 2018-11-1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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