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속 참치의 시간을 먹다 /추영탑

 

 

 

 

바다를 본적 있느냐고 차마 묻지 못한다

진화하였거나 퇴화하였거나, 생을 기록할

때는 선혈 빠져버린 늑골에 짠물만 밴다

 

 

 

사람의 밀물에 쓸려간 바다

등에 갈고리처럼 매달린 바다가 그물 당기던

구릿빛 근육을 기억한다

 

 

 

바코드에 매몰된 눈 없는 바다의 살

너와 같았으나 나와 같지 않은

하늘과 바다와 땅이 시간으로 압축되어

 

 

 

지느러미와 날개를 떼어낸 날짜들이

어지러운 회고록을 펼친다

다시는 출렁일 수 없으므로

불 없이도 물렁해질 수 있는 묘혈 속

 

 

 

떼로 모였으므로 때를 놓친 생은 염습되어

시간으로 묻혀있는데

 

 

 

죄 없이 단죄된 살점 하나가 나무젓가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허공을 기웃거린다

가장 깊은 곳에서 태어나 가장 얕은 곳을

건너는 참치의 시간

 

 

 

 

 

 

 

 

 

 

 

 
 
 
1970-01-01 09:00 2018-12-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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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놀이 /추영탑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 어느 산허리쯤

78살 먹은 소나무 한 그루 찾아 고무줄

한 쪽을 매고,

 

 

 

임진강 나루 지나 어느 여인이 두 손 모으고 누워있는

송악산에도

그 나이 먹은 노송은 있을 터

그 나무에 다른 쪽 끝을 매면 고무줄놀이 하기

정말 좋겠네

 

 

 

새들이야 날개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넘지 않는 날이 없겠으나

 

허공을 따라오는 죽음을 앞에 세우고

바람보다 빨리 뛰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었던

벽 하나가,

어느 날 젤리처럼 느슨해지더니

아예 고무줄이 되었는데

 

 

 

줄넘기놀이 하기 딱 좋은 248Km의 외줄을 따라

남남북녀(南男北女)의 허리춤에 매어달린 저- 줄

새처럼 줄을 넘나드는 발, 발, 발들 좀 보게

 

 

 

903.8㎢의 공간에서 고무줄놀이하며 듣는

고향의 봄,

고무줄놀이하기 딱 좋은 곳,

 

 

 

남녀노소가 다 함께 즐길 고무줄놀이 한 마당

줄 밖에서 줄 너머 “고향의 봄” 실어나르는

기적소리도 듣겠네

 

 

 

 

 

 

 

 

 

 

1970-01-01 09:00 2018-12-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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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별을 찾아 /추영탑

 

 

 

체온을 벗자마자 얼음이 되는 날에는

문장마다 소복한 눈꽃도 피어날 것이고

빗방울이 얼어붙는 일기예보에 시선도 머물 것인데

 

 

 

흑백의 풍경을 선호하였으므로 벗은 나무마다

흑단의 먹칠도 하여주며 밤이면 벗은 별들의 노숙이

서로의 온기로 만나 옆을 내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별 하나 데려다 품어주고 별 하나 사랑하다 죽을

별의 나라에서

사랑을 모의했으므로 사랑에 배신당해도 좋을 밤

 

 

 

가장 빛나는 별의 체위를 흉내내 더는 없을

격정으로 기력을 소진했으니

사랑이 너무 깊었다는 핑계로 너의 잠을 덮어주고

나는 너를 벗어나

또 다른 우화가 기다리는 어딘가로 날아가

새로운 유혹에 빠지고 싶은 것이다

 

 

 

체온을 벗자마자 얼음의 촉루가 되는 곳에서

방랑의 유전자를 가지고 다가오는 풍객,

떠돌이별을 기다리는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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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미워지는 날 /추영탑

 

 

 

허망하게 녹아버릴 백야,

젊은 날의 첫 약속을 오늘이 알아보았는지

부끄럽게 페이지를 열고 눈꽃을 피우는데

 

 

 

겨울은 계절의 끝인가, 시작인가

끝에서 시작을 찾으려는 한 계절을 만나면

눈의 예보가 기어이 눈발을 데려오고 마는데

 

 

 

터진 입술 사이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로

죽은 가을이 아직 살아있는 가을의 등을 떠민다

 

 

 

찰나를 방관 하던 겨울이 찰나지경에 이르러서야

백국(白菊) 위에 다복스레 하얀 접시꽃을 피우고

백지란 백지는 죄 모아서 모자이크로

풍경화 한 장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깐 눈발 한 보따리에 놀라 헤어질 수 있냐며

아직 꼬투리를 꽉 붙든 옹고집 하나가

허공의 여백을 마른 잎의 무게로 흔들어 댄다

 

 

 

구름 떠가는 푸른 항로

하얗게 따라가는 가을을 놓아줄 수 없는 나는

자꾸 가을의 꼬리를 자르려는

겨울이 그렇게 미워지는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1-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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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 /추영탑

 

 

 

이 묘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차마 내 나이를

말할 수 없다

세월의 나이 앞에 내 생은 얼마나 하잘 것

없이 짧아지는가

 

 

 

빗돌에 비스듬히 내려앉은 가을이 계절의

옷을 갈아입는다

세상의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에 핀 주근깨

하나쯤으로 치부할 저 무덤 주인의 흔적

 

 

 

삶을 송두리째 바치면 죽음이 될 터인데

주검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죽음만 문장으로 빗돌에 살아난다

 

죽음으로 피어 다시는 지지 않을 당신의 죽음

 

 

봉분만 덩실하던 무덤을 곱게 단장했다

상석도 새로 바치고 비석도 새 것으로 바꾸었으니

저 세상에서 한껏 뽐내도 되겠다

자손 자랑하고 싶겠다

 

 

 

죽음이 있으므로 주검을 치장하였는지

주검을 위하여 죽음이 치장되었는지 모르지만

죽음에 헌신하는 산자의 치성이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보아 온 무덤이 새로운 묘가

되었으니

옛 기억을 치우며 새로운 기억을 내장한다

눈길 한 번 더 보내

“축하합니다.”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1-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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