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삶는 일요일

 

                            정하선

 

 

 

  “저것들을 좀 삶아야 하겄는디 엄두가 안 나네.”

  아내가 색이 죽고 변질되어 누렇고 얼룩이 있는 스테인리스 그릇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옛날 같으면 그런 말 할 새도 없이 삶아서 윤이 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무릎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마음만 앞서는 모양이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그릇들이 자꾸만 보챈다. 때가 끼고 투박해진 몸을 내보이면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시켜달라고 졸라댄다.

  일요일이다. 토닥토닥 떨어지는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깨었었는데 아침밥을 먹을 때쯤에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팔을 걷어붙였다. 그릇을 삶기로 한다. 벼르고 별렀지만 손대지 못하고 미루어온 아내의 일을 내가 하기로 한다. 힘든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삶아놓아야지 하면서도 이날저날 미루어온 일이기도 하다.

 

  냉장고 위에 포개어 얹어둔 커다란 찜통을 꺼냈다.

키가 닿지 않아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찜통을 꺼내는 일 같은 것들은 내 아내는 하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있어서 믿고 안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하지 못한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을 때도 그랬는데 무릎 수술을 한 뒤로는 아예 생각도 못하는 일이다.

  찜통을 두어 번 씻고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얹었다. 빙초산 쓰던 것이 있어서 약간 따라 부었다. 거기에 소다를 넣고 주방세재를 넣었다.

  양푼이나 주전자 같은 큰 그릇을 넣은 다음 속에다 중간 크기 그릇을 넣어 채웠다. 다시 작은 그릇들을 넣어서 빈틈없이 더 채운 다음 사이에 칼. 가위. 수저 등을 넣어 찜통을 꽉 채우고 불을 켰다.

  시골 살 때 빈 그릇을 삶는 것을 가끔 보았다. 그때는 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맹물에 그릇을 넣고 삶아도 깨끗해진 것을 보았다. 마을에 눈병이 오면 수저나 그릇을 삶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다른 집처럼 그릇을 삶아서 썼다. 여기 이사 와서도 아내는 그릇을 가끔 삶아서 썼다.

 

  불을 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끓기 시작하고 조용하던  찜통에서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작아도 경쾌하다. 처음 작게 나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음식은 끓기 시작하면 넘치기가 다반사인데 빈 그릇이어서 그런지 넘침은 없다. 경쾌한 소리만 주방과 거실을 가득 채운다. 그렇지만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넘칠까 보아 뚜껑을 열어본다. 맑은 물이 중심에서 솟구쳐 그릇 사이로 흐르면서 순환이 되고 있다. 끓는 물은 맑고도 맑다. 빈 그릇들이 가진 청렴의 투명함이 물에 어떤 채색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맑음 하나를 준 듯했다.

내가 젊었을 적, 산에 나무하러 갔을 때마다 보았던 산골 계곡물이 거기에 있었다. 거품을 내기도 했지만 맑음이 근육이 되어 바위 사이로 미끄러지면서 흐르던 물. 지금 찜통 속에서 그릇들 사이로 미끄러져 흐르는 물의 근육. 지금 저 물은 손을 넣을 수 없게 뜨겁고 산골 물은 손이 시리게 차가웠지만 그 맑음의 투명도는 한 치 한 푼의 다름도 없을 것 같다.

  밖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빗소리와 달그락달그락 그릇 끓는 소리가 산만할 법도 한데 산만하지 않고 안정되면서도 묘한 리듬감을 준다. 좋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빗소리는 더 커졌다. 이런 날은 집안일 하기가 안성맞춤이다. 아니면 낮잠이나 자던지. 시골 살 때는 비 오는 날이 공일이다. 시골 살 때 이런 날은 새끼를 꼬던지 가마니를 짜거나 낮잠을 자던 생각이 떠오른다. 눈이 빗소리에 홀려 자꾸만 창으로 나가 책 읽기는 좋지 않은 날이 비 오는 날이다. 차라리 친구들과 어울려 먹기 내기 화투놀이라도 하는 것이 안성맞춤인 날이다. 오늘 날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깝지 않은 날이다.

  일요일은 마치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빈 그릇 같다는 의미 없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의 빈 그릇 속에 들어간 그릇들이 달그락달그락 거리면서 소꿉 소리의 작은 꽃들을 피워내어 내 마음에 가득 채워주고 있다.

  그릇을 감싸 돌며 물이 끓어오른 지가 한참 지났다. 이제 됐겠지 하면서도 불을 끄기가 싫다. 그냥 그대로 더 두기로 한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도 좋지만 달그락달그락 그릇이 삶아지며 내는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어울려 더 싫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도 일인데 듣기 좋다고 무작정 놓아둘 수는 없다.  한참을 삶은 뒤 긴 자루가 달린 쇠 조리로 하나씩 꺼내어 거칠지 않은 수세미로 문질러 닦았다. 신기할 정도로 깨끗해졌다.

  씻은 그릇들을 맑은 물에 담그고 남은 그릇을 한 솥 더 안친다.

  처음에는 스테인리스 그릇만 삶을 생각이었는데 넣다 보니 사기그릇도 함께 넣어졌다.

   삶은 그릇들을 다 들어내어 닦고  가스 불을 끄고 플라스틱 그릇을 잠깐씩 넣었다가 꺼내어 닦았다. 플라스틱 그릇은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플라스틱 그릇도 좀 더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스테인리스 그릇처럼은 깨끗해 지지 않았다.

  다 쓴 물로 주방 설거지 다이를 닦으니 주방도 한 결 깨끗해졌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차갑다 해도 맑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영혼이 있다면 빛은 그 심성 위에 반짝거려야 한다는 듯이 밖에 비가 오고 있어서 환하지 않는데도 맑은 빛들이 스며들어 그릇들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시원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릇들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거실 바닥에 엎어 탑처럼 쌓아 말린다.

  금방 끝이 날 줄 알았는데 한 나절이 거의 다 되어서야 일은 끝이 났다.

  겨우 내내 더러워진 골목을 다 씻어내려는 듯 밖에는 주룩주룩 제법 많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0  -

 

  2018. 10..10

 

 

 

 

 

 

 

1970-01-01 09:00 2018-10-2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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