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쌀뜨물을 받다

 

                              정하선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희뿌연 새벽이 창을 들여다보며 맑아지고 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보니 아침밥 지을 쌀이 바가지에 담겨 있다. 물에 불린 콩이 그릇에 담겨 곁에 놓여있다.

  아내의 숨소리가 고르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 밤새도록 불면증에 시달리다 이제야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잠자는 아내를 깨우고 싶지 않다.

  팔을 걷고 쌀을 씻었다. 쌀에 물을 부었다. 한번 대충 휘저었다. 이물질이 있는 첫 쌀뜨물을 따라 버렸다. 손바닥을 펴고 접고 하면서 물 묻은 쌀을 박박 문지른다. 물을 붓고 휘휘 젓는다. 고운 쌀뜨물을 설거지통에 있는 플라스틱 그릇에 받아놓았다. 다시 콩을 쌀에 섞고 물을 부어 한 번 휘휘 저어서 생긴 쌀뜨물을 받아놓은 그릇에 더 받았다.

  물을 부어 한 번 더 헹구어내고 밥을 안쳤다. 밥솥에 씻어놓은 쌀을 붓고 물을 부으며 손바닥을 얹어보았다. 손등에 물이 살짝 덮일 둥 말 둥 하다. 밥을 안치고 취사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버튼 소리와 함께 빨간 불이 켜졌다. 나는 압력밥솥에 지은 밥은 질고 찰 떡 같아서 일반 밥솥을 쓰고 있다.

  밥을 할 때 20분 정도 쌀을 건져 불려야 밥이 뜸이 잘 들고 맛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밥보다는 밥을 안치고 바로 취사 버튼을 눌러서 지은 밥을 좋아한다. 마른 쌀 속에 물이 천천히 베어 들면서 밥이 되어서 씹으면 씹을수록  단단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우러나와 입안에 황홀감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또 나는 진밥이나 떡밥을 좋아하지 않고 된밥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받아놓은 쌀뜨물은 아침 설거지할 때 쓰라고 받아놓은 것이다. 쌀뜨물로 그릇을 씻으면 세제를 쓰지 않아도 그릇이 깨끗이 닦인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쌀뜨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매일 끓이다시피 하는 시래깃국을 끓일 때는 꼭 쌀뜨물을 받아서 썼다.  시래깃국을 끓일 때 맹물을 붓지 않았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서 끓였다. 거기에 중간 멸치 몇 마리를 넣어서 끓였다. 쌀뜨물과 된장과 멸치가 들어가야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났다. 돼지김치찌개를 할 때도 맹물을 부으면 맛이 덜하다. 그때도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끓여야 맛이 좋다. 말려둔 생선을 물에 담글 때도 쌀뜨물을 사용했다. 고사리나 토란대 등 마른 나물을 불릴 때도 쌀뜨물에 담가 두었다가 쓰는 방법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가 하던 방식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돼지를 주거나 소에게 주었다.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었다.

 

  새우젓이나 전어 젓, 멸치젓을 담가놓고 며칠 지나서 물을 끓여 부을 때도 맹물을 끓여 붓는 것이 아니다. 쌀뜨물을 받아 끓여 부어야 맛이 더 좋다. 쌀뜨물을 끓여서 식은 다음에 부어주는데 그러기를 서·너 번 하면 젓갈이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새우젓은 색깔이 약간 붉어져서 식감이 있게 보인다.

  햅쌀이 나오는 늦가을이나 겨울철에는 쌀뜨물을 숭늉으로 끓여먹었다. 쌀뜨물 끓인 물은 고소한 맛과 함께 우유처럼 보얀 것이 바로 살로 갈 것 같았다. 또한 어차피 따뜻하게 물을 끓여먹어야 했기에 쌀뜨물을 자주 끓여먹은 것이다.

  지금은 더 맛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니 쌀뜨물을 누가 끓여먹겠는가.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우리 집은 두 번째 받은 쌀뜨물을 끓여먹는다. 맛은 예전의 맛 그대로다.

  오늘 아침 받은 것은 끓여먹으려고 받은 것이 아니다. 그릇을 씻으려고 받아놓은 것이다. 쌀뜨물로 그릇을 씻으면 세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무공해 세제다. 버려야 할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설거지물도 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 한두 번 사용하는 것은 별거 아니겠지만 계속 사용한다면 세제 값이나 수도요금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쪼잔하고 구두쇠 같은 말을 했는가. 그러나 아끼는 것과 구두쇠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면 손도 보호가 된다. 어렸을 적. 손의 때를 벗길 때 비누 대신 쌀뜨물이나 쌀겨를 쓰기도 했다. 손이 부드러워지고 윤기가 돌았다. 머리 감을 때도 쌀뜨물을 썼다. 머리가 찰랑거리고 윤기가 흘렀다. 그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하얀 길이 나게 가르마를 탄 젊은 새댁을 보면 아련한 그리움의 꿈길이 나있는 듯했다.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아내는 그런 방식을 그대로 전수받아 살로 가고 맛이 좋은 집 밥을 지어먹었다.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던 쌀뜨물이 지금은 세제와 조미료에 밀려서 그 진가가 사라진 지 오래다. 문명과 과학이라는 괴물에? 짓눌려 잊히고 영원히 사라져 가고 없다. 사서 쓰는 것이 무조건 좋은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밥을 잘 지어먹지 않아 쌀이 남아돌고 대접을 못 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런 말을 해 무엇하랴. 늙은이 캐캐 먹은 푸념에 불과하겠지. 그러면서도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 하고, 또 쓰고 싶어서 쓰고 있으니 내가 나를 보아도 참 한심한 일이다. 쌀뜨물이 흘러가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면 옛날에 불렀던 우유 빛 맑은 노래는 사라지고 슬픔이 젖어드는 한의 노랫소리가 들릴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0-2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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