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경험

                                        

   뿔 달린 사람이 있을까? 처음으로 봉사를 갈 때 느낌은 그랬다.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이니까 뿔이 달렸거나, 도깨비처럼 험악한 인상일거라고 생각했다. 옆에 가기만 해도 찬바람이 돌고 숨 막힐 듯 주눅이 들어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일정에 맞춰 일행들과 함께 출발하는 차 안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여행하는 설렘도 아닌 특별한 느낌이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전라도 광주의 모 교도소를 찾은 것은 막 출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10시부터 교육시간이어서 넉넉히 도착했다. 교정직 프로그램에 인성교육의 과목을 우리가 맡기로 한 것이다.

   다른 것은 갖고 들어갈 수 없어 커피와 과자 등 몇 가지 먹을 간식을 챙겼다. 현장에 도착하니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 처진 건물 모습이 마치 난공불락의 성처럼 버티고 섰다. 담벼락 위에 철조망이 쳐 있고 군데군데 초소가 보였다. 면접대기실에서 주민등록증을 주고 대신 출입증을 교부받았다. 갖고 있던 스마트 폰, 카메라 등은 갖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모두 반납하고 나니 주머니가 헐렁해졌다. 안내자에 따라 몇 개의 철문을 통과했다. 그것도 문마다 비밀번호가 장치돼 있었고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야만 되었다. 영화에서 간혹 보긴 했지만 직접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약간은 으스스하고 긴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이곳은 흉악범들이 수용되는 곳이라고 일행이 귀 띔을 해 주는 바람에 더 쪼라 들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한 참을 걸어 교육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푸른 제복을 갖춰 입은 삼십 여 명의 수형자들이 일제히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둠 속에서 레이저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둣 강렬함이 느껴졌다. 잔뜩 겁을 먹고 왔으니 더욱 그랬다. 마침 오랫동안 봉사를 해왔던 일행 중 리더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우리 일행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함께 수고해 주실 일행을 소개하겠습니다. ”

우리는 앞으로 나와 한 사람씩 간단히 소개 하였다.

자 그럼 우선 커피 한 잔씩 하실까요? 오늘은 교육을 한다가 보다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여기저기서 잡담이 나오고 어디서 오셨느냐고 수형자들이 묻고 대화가 오가며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오늘 교육프로그램은 성격진단과 분노조절 등 몇 가지였다. 짤막한 영상과 함께 진단지가 활용되었다. 영상을 볼 때나 진단지를 활용할 때 모두 열심히 참여하였다. 수형자 중엔 나이 어린 청년들부터 장기수인듯한 노인들까지 다양한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고 갈 때는 교도관의 엄격한 통제가 따랐다. 교육장안은 자율이 보장되어서인지 교육장은 일반 교육장과 다를 바 없었다. 토론시간에도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진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그렇게 오전 교육이 끝나고 우린 식사를 위해서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높다란 담벼락 밖으로 나오니 왠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 자유다

우리가 외친 한마디였다. 이 짧은 시간이지만 담벼락 안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이라도 밖으로 마음대로 나올 수 있는 자유, 평소에는 그렇게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린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꽉 막혔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확 풀리는 것 같은 통쾌함 같은 것이었다. 이 조그만 자유로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태양은 더 밝고, 보이는 들판의 생물 하나하나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실제 겪어보지 않고서야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다.

바로 이 맛이야!” 하면서 우린 유쾌하게 점심을 즐겼다.

   오후 몇 시간 교육을 더 마무리 하면서 언제 볼지도 모르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교도관에 의해 줄지어 그들은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그들은 각자의 방에 갇혀 남은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곳에 수용된 수용자들이 천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전국에 크고 작은 것을 합하여 50개의 시설이 더 있다고 한다. 관리 인력까지 합치면 수천수만 명이다. 무슨 돈으로 이들을 관리하지? 생각해 보니 바로 우리가 내는 세금이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지급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인성교육이다. 마침 국회에서도 인성교육법안이 통과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더는 이런 곳에 우리의 세금이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고 생각했다. 물론 의도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수용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순간적인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여 잠깐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교육 중 마음 아팠던 것은 한참 꿈을 펼치고 살아야 할 젊은 청년들이 수의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교육장에서의 그들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요 팽팽한 피부의 젊은이들이었다. 거기엔 내가 생각했던 뿔 달린 사람도 도깨비처럼 생긴 사람도 없었다. 이웃에서 보는 똑같은 젊은이요 아저씨들이었다. 교도소에서의 사후처방이 아니라 학교나 가정에서 사전교육이 더 절실함이 느껴졌다. 많은 과제를 남겨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1970-01-01 09:00 2015-01-0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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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종섭

  민속 박물관에 손풍구가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멈춰버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때 아버지가 가장 애용하셨던 물건이었다. 아궁이에 잔뜩 젖은 솔가지를 넣고 군불을 지피면 아침 안개처럼 잔뜩 연기가 피어올랐다. 솔잎은 타닥타닥소리를 내곤 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밖엔 눈보라 몰아치고 낡은 부엌 대문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도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면 온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손풍구는 아버지의 마술도구였다. 이 도구만 있으면 꺼져가는 불도 살려내셨다. 손으로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이 도구가 그 위력을 발휘하는 때는 무엇보다 쌀 방아를 찧고 난 왕겨를 땔 때이다. 불씨를 덮어 왕겨를 가득 쌓아 놓은 아궁이는 긴장감에 휩싸이곤 했다. 모락모락 덮인 왕겨 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화산폭발을 앞둔 조짐을 보는 듯 긴장을 주기 때문이다. 계속 손으로 돌려 바람을 주입하다 보면 이내 점점 압축되었던 공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펑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솟아오르곤 했다. 미처 도망가지 못해 머리카락이 지지 직~’그을려 곱슬머리가 된 적도 몇 차례나 된다.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옛날에는 이것은 유용한 도구였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 항상 부엌 가장 큰 솥에 물을 잔뜩 부어 군불을 때셨다. 끓인 물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이 돌아가며 세수를 하였다. 잠시후 어머니가 아침상을 차리는데 그릇을 씻거나 하실 때 사용했다. 우리 형제들은 일어나기 싫어 밤새 식은 방바닥 아랫목으로 올챙이 떼처럼 파고들었다. 아버지의 풍구 돌리는 소리와 함께 방바닥엔 온기가 돌고 이내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풍구는 복잡한 기계가 아니다. 달팽이처럼 생겼다. 그 속에 바람을 일으키는 날개가 있다. 굵은 고무줄로 연결된 손 바퀴에 의해 작동된다. 간단한 몇 개의 수동식 물건으로 여간 고장이 잘 나지도 않는다. 작동원리도 의좋은 형제와 같다, 바퀴와 바람개비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등지지 않는다, 둘이 함께 힘을 모아 불을 피운다. 불을 피워야 할 곳에 약간의 불씨만 있으면 된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터질 듯 불은 타오른다

   살다 보면 가끔 풍구가 있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이다. 이때마다 이 신비의 마술풍구를 돌리면 마치 이 불편한 기운을 몰아 한꺼번에 토하듯 불길을 쏟아낼 것만 같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에게 풍구였는지도 모른다. 학교도 제대로 없던 시절 자신이 못한 공부를 자식들에 시키시면서 부지런히 날개로 몸을 혹사하셨는지도 모른다. 꺼질듯하던 불씨를 살리려 자신의 몸을 돌려 불을 피우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더는 풍구를 돌리시지 않으셨다. 풍구도 주인을 잃고 이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동작을 멈추었을 때 그도 역시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박물관에 박제된 새처럼 들어와 있다.

   손풍구는 한 번 더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지 모른다.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힘든 세상을 한 번 더 세찬 바람으로 밀어주시고 싶은 아버지, 오늘 나는 아버지가 그립다.

    

1970-01-01 09:00 2014-12-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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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처녀 가슴에 안고....
                                                                                           박 종섭.
  중학교 음악시간 이었다. 우리는 건물 맨 뒤쪽에 있는 음악실로 옮겨 이동수업을 했다. 지금처럼 피아노가 아니라 오래된 손풍금 하나가 전부였다. 발로 밟아가며 건반을 두드리면 소리가 되어 나왔다. 노래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은 누가 작사를 했고 작곡을 했는지 그리고 이 곡을 만들 때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어 그 곡에 한층 맛을 살리셨다. 주로 음악책에는 가곡이 실려 있었고 선생님이 한 소절 한 소절 가르쳐 주실 때마다 따라 불렀다. 배에 힘을 주고 아랫배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내야 하며 입 모양을 동그랗게 내는 것까지 세심한 지도가 이루어졌다. 가끔 멜로디가 안 맞을 때는 풍금을 ‘탁탁!’ 두드리며 지적을 하거나 고쳐주기도 하였다. 

  노래가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반을 나누어 한쪽씩 노래를 시켜 평가도 하였다. 때로는 돌림노래를 부르게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분위기를 이끄셨다. 책에 있는 가곡을 주로 하셨지만, 흥이 나면 최근 유행가 하나 정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곡보다도 유행가가 훨씬 재미있고 흥겨워 목소리가 커졌다. 사실 학교 교실에서 유행가를 부르기는 쉽지 않지만, 선생님의 특별한 서비스였던 것이다. 흥이 날 때도 그렇지만 노래가 잘 안 풀릴 때도 양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별히 안 가르쳐 주어도 잘 도 불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제 다시 가곡으로 돌아왔다. 몇 번 전체적으로 합창 하고 나면 이어지는 순서는 개별 노래 부르기였다. 천성적으로 소질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음정 박자 다 틀리는 친구들이 있게 마련이다. 함께 부를 때는 전체에 묻혀 나타나지 않았는데 개별로 부를 때는 적나라하게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었다. 선생님을 따라 부를 때는 다 잘 불렀는데 혼자 하려니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다. 어느 때 들어가야 하는지 어디서 잠시 멈추었다 가야 하는지 쉽지가 않았다. 음정도 각각 틀려 ‘솔’ 음을 내야 하는데 ‘미’ 음을 내기도 하고 천차만별이었다.

  잘 부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겨우겨우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한 친구의 차례가 되었을 때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그날의 노래는 ‘봄 처녀’였다. 가사는 이랬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한 참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설레게 하는 가사였다. 그는 앞으로 나가더니 약간은 긴장한 듯 노래를 시작했다. ‘봄 처녀 제오시네~’하며 처음에는 잘 나갔다. 그런데 중간 소절에 가서 그만 가사가 꼬이고 말았다. ‘꽃다발 가슴에 안고~’ 해야 하는데 갑자기 ‘봄 처녀 가슴에 안고~’로 가사가 둔갑하고 만 것이다. 순간 교실은 뒤집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꽃다발이 봄 처녀로 헛나온 것이었다. 노래는 중단이 되었고 선생님은 이내 풍금을 ‘탁탁!’ 치면서 ‘다시!’를 외쳤다.
“무슨 봄 처녀를 가슴에 안아 인마! 꽃다발이지. 다시!”

  반주가 시작되었고 친구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제는 잘 넘어가려나 모두 시선이 친구에게 집중되었다. ‘봄 처녀 제오시네~’ 노래가 시작되고 잘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그 대목에 와서 다시 꽃다발 대신 ‘봄 처녀 가슴에 안고’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교실은 다시 뒤집어지고 선생님도 어이가 없으셨는지 ‘무슨 봄 처녀를 자꾸 가슴에 안아 인마!’ 하며 혀를 끌끌 찾고 정작 노래 부른 본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가 앉고 말았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친구의 표정이 떠오르고 풍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봄 처녀’는 잘 있니? 하며 안부를 묻고는 한다.
1970-01-01 09:00 2014-12-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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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박 종섭

 

   바람맞았다’ ‘바람맞히다.’라는 말은 자동사와 타동사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바람맞은 것이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바람맞힌 것이 된다. 사전적 의미에서도 어떤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허탕을 치게 한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Keep a person waiting in vain "바람을 맞히다 로 쓰인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바람을 맞히다. ‘라고 할까? 아마 그 유래는 중국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어에 放鴿子(fanggezi)라는 말이 있는데 비둘기를 날리다라는 말이다.

 

    옛날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날려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비둘기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하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편지를 보내지 않고 비둘기만 돌려보내 약속을 어긴 것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하는 설이 유력하다.

어찌 되었건 바람맞았다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같게 쓰이지만, 차이가 있다. 지금이야 약속시각에 조금만 늦어도 미리 전화해 늦게 되는 사유를 곧바로 알려준다. 반대로 기다리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카 톡이나 문자로 어디쯤이야.?‘라고 물어 더 기다려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러니 굳이 이런 상황을 바람맞았다.’라고 할 수도 없다. 진정한 바람이란 정말로 소식이 깜깜할 때이다. 그 당시엔 그랬다. 도저히 알 길도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유행했던 노래도 있다.

 

   6-70년대 대히트곡이었던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이다.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지금 같으면 이런 노랫말이 있을 수나 있을까? 그러나 당시에는 그랬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특히 남녀 사이의 만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으면 거의 바람맞은 것이 틀림없다. 바람맞은 사람들은 뒷모습만 봐도 안다. 기다리다 지쳐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돌아선다.

그 시절은 마음에 안 들면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으면 된다. 완곡한 거절의 의사 표시요, 무언의 행위표현이다. 그 정도면 대충 눈치를 채라는 말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참 이해 못 할 일이다. 무작정 기다린다는 의미조차 생소하다.

 

   지금도 그 다방을 기억한다.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육교 밑에 왕자다방이라는 조그만 찻집이 있었다. 그 다방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시각이 다 되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이내 약속시각이 지났고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이제나저제나 지켜보았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는 말은 이럴 때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일이십 분도 아니고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삼십 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갔다. 지칠 대로 지칠 때쯤 그녀가 나타났다. 버스가 밀리고 문제가 생겨 이제야 도착했다는 것이다.

난 형이 갔는줄 알았어!”

늦게라도 그녀가 왔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온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고로 나는 바람맞은 것이 아니다.

 

    

1970-01-01 09:00 2014-12-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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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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