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이라는 여행의 시간에서 적어도 이틀만은 건강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섬으로의 코스 결정도 걸으면서 느끼는 그 지역의 문화와 풍경을 만나고 싶었다.
검색창에서 전달되는 사진의 느낌이 매우 평화로와 선택하였던 히라도는 몇 년 전에 다녀왔던 사세보에서 교통편이 연결되는 지역이라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세 개의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이미 섬이 아닌 육로가 만들어져 있는 지역으로 섬이라는 느낌보다는 우리나라 남도의 어느 지역처럼 평화롭게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붉은 색의 큰 현수교 “히라도 대교”를 건너 조용한 마을길을 지나자 히라도 관광안내소가 있는 교류광장이 나타난다. 교류광장 앞에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그때서야 이곳이 섬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며 안내소에 비치된 책자를 살펴본다.

한국어판, 영어판, 일본어판으로 분류하여 잘 정리된 자료들이  그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료가 눈에 뜨이지 않아  “한국어판 지도나 자료가 있나요?” 하고 물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디선가 반드시 필요한 내용들이 기재된 자료를 찾아다 주는 몇 번의  경험을 하였다.
자료가 없을 경우 그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하여 주는 친절을 지니고 있다. 자의던 타의던 패키지여행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여행에서만 느끼는 섬세한 감정의 배려이다. 
 
걸어야하는 코스가 있는 산언덕 위 히라도 성의 모습이 보인다. 포장된 숲길보다 산의 흙길을 좋아하는 내게는 난이도 하라는 표현보다 선호도 하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높지 않다는 마음이 평온을 유지하게 한다. 그러나 시작점의 평온했던 마음과는 달리 포장된 숲길을 비켜가자 정상으로 향하는 언덕의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자신들의 지역을 침범한 침입자의 걸음에 놀랐는지 눈앞에 하얀 실뱀이 꼬랑지를 흔들면서 숲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두 마리 하얀 실뱀의 꼬리를 보고 난 후 나는 빨리 그 숲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어디선가 그 실뱀의 어미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을 생각하자 그러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면서 앞서가던 학생은 “독 없는 뱀이라 괜찮다.” 고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실뱀이 사라진 어두운 숲길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커다란 고목들이 가득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우리나라하고는 다른 올레에는 아기 손바닥 만 한 거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편안한 도심 관광이나 할 것을...”하는 후회가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끝 지점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숲길은 비가 내린 여름의 흔적으로 작은 물줄기가 땅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어 조심스럽게 미끄러운 길을 피해서 걸어야 한다. 길은 미끄럽고 머리위에서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고 있다. 
 
낯선 길을 걸어가면서 배워가는 것은 어떤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 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상대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가는 것이다. 또 다시 언젠가 앞서가는 이에게 길안내를 부탁하는 상황이 발생 할지 모르는 시간을 마주하였을 때 그에게 남겨주는 나의 이미지는 먼 날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바쁜 시간을 할애하여준 그에게 “ 괜히 안내를 하여주고 있나 “ 가 아닌 한국의 어느 시니어에게 할애하여준 그 시간에 보람을 느끼게 하여주고 싶었다.
 
 
실뱀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였던 숲길이 끝나자 산안개 가득한 푸른 초원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뱀은 다시 만나지 않겠구나..” 라는 안도감으로 바라보는 30ha 의 광대한 초원이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이기 시작한다. 제주 기생화산의 모습을 닮은 가와치토우게의 정상에서 만나는 해무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본의 올레는 제주의 올레에서 만나는 잡상인들이 없다. 지난 경험으로 배낭에 넣어간 일본 팥떡과 양갱으로 눈과 함께 미각까지의 즐거움을 누린 후  마을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서 일본최초로 서양에 문을 열게 한 자비에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유럽풍 자비에르 교회의 모습을 만나고 그 길을 돌아 내려오면서 돌아보는 눈길에 성당의 종탑과 사이코지 절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여운을 남긴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던 히라도 올레길 사진도 사라져 버렸다. 방바닥에 그곳에서 가져온 안내장들을 펼쳐놓고 나는 안타까움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가 시작된 거점이 되어 준 히라도 섬은 네델란드 신부가 도착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신념과 신앙으로 사라진 역사의 지점이었던 그 곳에 잠시 마음이 머문다.
항구로 가는 마을의 길에서 만나는 성당의 종탑과 그들이 지켜내려 하였던 신념의 시간을 모습에 닮고 있는 것 같은 400살의 소철이 굴곡된 시간처럼 거대한 나무둥치를 지니고 조용한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두 어 명 관광객인 듯한 젊은 여성들과 마주했을 뿐 일본의 마을길에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지난여름의 경험으로 이번에는 발가락 보호기능이 강화된 신발을 착용하였고 발바닥에도 미리 밴드를 붙여 생애최초로 실뱀을 만나는 경험을 하였으나 올레 길의 끝 지점에서 나는 매우 평온한 마음이 되었다.버스를 타기위하여 땀으로 젖은 윗옷을 갈아입고 숙소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중요한 소지품을 넣어둔 작은 가방에는 며칠을 보고 또 보아 손때가 묻은 버스운행 시간표가 다시 용도를 알리고 있었다.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
 
1970-01-01 09:00 2016-10-18 06:40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10-20 14:5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실뱀을 보고 놀랐군요. 저는 깡촌에서 학교까지
    10리가 넘는거리를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다녔죠. 등하굣길에 뱀을 수없이 만났고 죽인 적도 있죠.

    사진을 잃어버려서 몹시 아쉽겠네요.역사적 의미가
    사진인데.....그래도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을겁니다. 사진은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가슴 속에 머물겠지요.

    항상 봐도 글은 좋습니다.

    1. 황수현 2016-10-21 12:4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싫어하는 동물을 꼽으라면 뱀,지렁이,쥐 등등인데 뱀은 상상으로도 무섭습니다. 그런데 하얀실뱀이 꼬물거리면서 사라지는데 상상력이 발휘되어서 어찌나 무섭던지..아차산에도 뱀이 있다는데 한번도 본 적은 없었습니다.사진은 복잡한 스마트폰의 기능으로 사라지고 생각만해도 아쉽습니다..

댓글 쓰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빈 주머니 하나를 마음 옆에 함께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여행에서 돌아와 가방을 풀면서 나는 또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한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보다 떠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더 큰 설렘을 주곤 한다.
 
 
제주도 풍광에 반해서 몇 년간 제주도를 열심히 드나들다가 이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는 생각을 하였다.
짧은 일어 실력으로 겁도 없이 일본 자유여행을 선택하였다.
후쿠오카는 예전 일어공부를 시작하면서 단체로 자유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하카다와 후쿠오카, 텐진,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스등이 켜져 있는 것 같았던  하우스덴보스의 몽환적인 다리가 어설프게나마 내 기억에 남아있었다.
 
지난 7월 제주 유휴인의 비 내리던 아침의 산안개가 자꾸 나를 부르고 있었고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아래쪽인 큐슈의 남쪽에서 다시 느껴보고 싶은 아쉬움이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게 하였다.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의 마음으로 나는 하카다 도심의 활기찬 거리를 걸어본다. 이런 거리를 다시 걸어볼 수 있는 것이 몇 날이나 주어질까가 여행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되어 진다.
다시 왔다는 설렘의 기억을 담고 도착한 후쿠오카 공항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 하카다로 이동을 하자 거리는 반짝이는 불빛이 가득하였다.
서울과 달리 후쿠오카의 거리는 낮 시간보다 밤의 불빛이 훨씬 더 아름답다.
 
실제로 이번 큐슈 여행의 몇 날은 머릿속을 텅 비운 날들이었다.
섬이 지닌 지역적인 특성과 도심에서 벗어난 힐링이 여행이 목적이었으므로 카메라도 없었고 머릿속에는 아무런 지도도 없이 필요할 때에만 스마트폰을 활용하였다.
인공위성이 쏘아주는 구글 지도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아프리카도 쉽게 갈 수 있을 만큼 모든 정보가 발달되어 있는 세상에서 일본도 마음만 먹으면 제주도처럼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네 개의 일본 섬에서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후쿠오카를 편안하게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으로 두 번의 방문을 하였고 세 번째 방문은 혼자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어오고 싶었다.
항상 헷갈리던 톈진 항과 하카다 시내 후쿠오카공항까지 전철이 이어지고 그 전철을 실제로 타기위하여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꼼꼼하게 메모를 하였다. “ 어머나 정말 이런 표지판이 있네!” 가 처음 느끼는 감동이었고 그 설명을 따라 지하철 승차권을 티켓 팅 하면서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껴보았다.
한글 안내판이 있었지만 나는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일본어안내판을 사용하였다.
 
혼자서는 걷기 어려운 일본의 올레 길을 언니에게 부탁하여 지난번 안내를 하여주었던 학생을 하카다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지난 7월에 지참하였던 올레가이드 책자를 보면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물었더니 이미 그 학생은 나의 체력을 인지하였는지 난이도가 하로 되어있는 오시마 섬의 미다케산의 코스를 선택하여 일정을 조절하였다는 말을 전한다.
일본 올레코스중 유일하게 배를 타고 가야하는 오시마 섬은 하카다에서 JR 열차를 타고 도고 역에서 내려 다시 고노미나토항 페리 선착장까지 버스를 타고 도착하는데 한 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본은 기차보다 오히려 배가 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전철이나 버스요금이 비싸다는 느낌이다.
지난 7월의 경험으로 나는 서울에서 상큐 패스를 여행사에서 구입하였다.
 
여행지에서의 첫날부터 바다를 보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늘 나를 그 시간 속으로 걸어가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 호기심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올레 길은 지난여름 보다 훨씬 쉬운 길로 안심해도 된다는 학생의 말처럼 매우 편안하여 오히려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잘 정리되어 있는 제주의 길과는 다른 관리가 되지 않은 야생의 지역으로 멧돼지 출몰을 알리는 방울이 곳곳에 매달려 있어 숲길을 지나는 몇 십 분간 두려움이 나를 따라왔고 멧돼지 출몰을 알리는 야생의 숲이 비와는 다른 곤혹을 느끼게 한다.
 

 
멧돼지 출몰을 알리는 숲길을 지나자 조용한 숲길에 사람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일본의 올레 길은 제주의 올레길 하고는 다르게 사람의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앞서가던 네 명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였다. 내가 두려워하던 숲길을 걷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스고이 데스”라고 인사를 하자 호호 웃는데 대략 70대 중반의 할머니들 같아 놀라는 마음이 되었다.
깊은 숲길을 미다케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탄성이 일어날 만큼 아름답고 넓은 평원이 이어진다. 예쁘게 정리된 일본의 정원을 보는 마음으로 계단으로 이어진 긴 길을 오르자 눈앞에 풍차전망대가 보인다.
두려움으로 걸었던 길의 끝에서 만나는 올레가 주는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원한 바람 앞에 눈길을 떨구자 여름이 멈추어 있는 먼 바다가 햇살아래 하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올레가 끝나는 지점에서 배를 타기위하여 윗옷을 갈아입어야 할 만큼 길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고 있었다. 그 섬을 떠나오는 10분의 시간동안 갈 때는 25분이었던 바닷길이 과학의 힘으로 짧은 사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는 시간의 길이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들 일상에서 늘 가깝고도 먼 마음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보이지 않는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이 끌어가는 무형의 이질감이다.

그 바닷길위에서 나는 내일 또 걸어야 할까 말까 하는 갈등을 한다.
숨차게 오르는 정상위에서 만나는 희열이 내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알면서 내일 코스도 난이도 하라는 권유에 의하여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밤 나는 그 풍차전망대가 전해주는 바다 빛 하얀 꿈을 만나고 있었다.
 
<찍어 온 삼백장의 사진을 핸드폰의 오류로 다 날려보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큐슈올레 안내책자와 방문하였던 곳의 팜플릿 사진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1970-01-01 09:00 2016-10-14 23:18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10-15 15:4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사진이 없으니 조금 아쉽네요. 하지만 저는 항상 사진보디는
    글을 중시했죠. 글이 사진의 없음을 상상으로 그려 봅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보다 준비과정이 설렘을 주지요.
    마치 인생을 사는 것보다는 꿈꾸는 것이 낫듯이....
    다음에 가실 때는 난이도를 중으로 높여보면 어떨른지요?
    바닷빛 하얀 꿈이란 말이 황수현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네요.

    1. 황수현 2016-10-16 07:28 # 수정/삭제 퍼머링크

      딱 세 장의 사진이 남았습니다.. 다녀온 것으로 만족하고 마음에만 담아놓으려 하였습니다.

댓글 쓰기
제목이 주는 느낌의 전달이 처음부터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공간이  전달하는 비밀스러움에 대한 감정적인 호기심이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연출에 대한 변화와 특별한 무대의상이 처음부터 시선을 자극하였다.
 
2015년 전국 고마나루 향토연극제에서 단체상 금상과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spaf에서 올해의 최고 예술가로 선정된 작가  한윤섭이  작품 연출을 맡고 2016년 신춘문예 단막극전, 클래식전 등 우수예술작품들을 공연해 온 기획사 후플러스 (대표 이준석)가 흥부이야기를 모티브로  공동제작하여 “공간 아울 ‘에서 공연되고 있는마당극 형식의 한국형 블랙코미디이다.
 
“경험이 많은 숫처녀”
대권을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하여 10년 동안 많은 처녀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였으나 후사가 없어 새로운 처녀를 찾아내어 후궁으로 들여야 하는 제조대감의 고민스런 발언이다.
제조대감의 고민에 궁중의 별정직으로 내시 중 가장 우두머리인 상선이 동참하여 두사람의 비밀스런 계획이 시작된다.
 
아기 15명을 낳은 숫처녀라는 언어로 에로 코미디가 전달하는 호기심과 함께 배우들의 언어와 행동이 폭소를 유발한다.
권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배우들의 연기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뒷면에 자리한 민초들의 비극적 삶이 씁쓸한 웃음으로 남겨지는 슬픔의 무게감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낀 많은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하여 표현의 수단이 사용되였다.
말과 글이 사용되기 이전에는 손짓, 표정 등으로 흉내 내기가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사냥해 온 동물의 가죽이나 머리등을 뒤집어쓰고 동물의 행동을 모방하였다. 이러한 모방의 행위가 연극의 출발점이다.
연극은 즐기기 위한 오락적 기능보다 실제 사냥 법을 익히기 위한 실용적 차원에서 시작된 연극에서 모든 인류는 다 연극배우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시간들이 큰 의미로 다가가면 무대라는 배경을 만들고 있었다.
 
 
“임금은 그나마 낫지요. 그깟 씨 좀 없으면 어때요, 없이 산다고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나 슬픔을 가득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가는 힘없는 백성들의 언어를 상선이 대변한다.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상선이지만 그 역시 인생의 슬픈 피해자이다.
 
가난한 백성 흥부 네의 아기 열다섯 명과 흥부네 부부는 그저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모습이다.
권력의 의지도 없이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하루의 삶을 이어가지만 가족들을 향하는 사랑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당신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어..”라는 흥부의 대사는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임을 이야기한다.
권력의 노리개가 되어서도 아기의 목숨을 대신하려는 흥부아내는 속고 속이는 궁중의 암투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소중한 것이 내 자식들의 목숨을 연명하여야 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성애이다.
 
비극은 인류가 창작한 문학작품에서 가장 오래된 극 양식으로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로 향하는 패배가 소재가 되는 내용으로 비교적 행복한 상태에서 재앙으로 옮겨가는 행동의 구조로 흥부네 가족들은 가난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문제 즉 인간의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면서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그때 나타나는 지배계층의 권력구조로 흥부부부의 사랑은 고통으로 변하게 된다.
지배계층의 욕심에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흥부아내는 자식들이 살아가야하는 원천적인 문제를 그녀가 가지고 온 떡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힘없는 백성들에게 거짓과 폭력을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하여 그들의 가장 소중한 삶을 빼앗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기득권의 폭력을 해학으로 풀어내어 폭소를 자아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픔을 함께 공감하게 하는 풍자극의 형식을 도입시켰다.
극중 인물의 대입관계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와 연결이 되는데 관계의 차별이 심각했던 고전극의 형태에서는 양반과 상민 천민의 관계에서 왕이나 왕족, 혹은 고관 같은 소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갈등요인이 늘 존재하였다.
이러한 신분제도가 극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장르는 동. 서양 어느 곳이나 비극으로 극화된다.
 
 
한바탕 웃었더니 그것은 희극이 아닌 인생의 한 단면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에 숨겨진 삶의 비극이었다.
한국 고전작품에서 나타나는 사회성이 표현된 대표적인 인물이 흥부네로 그들이 딛고 서 있는 현실이 불행할수록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열한 꿈을 지니게 된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환상을 비극에서 희극성향을 띤 작품으로 무대에서 그 변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은 민중의 애절한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마는 현실에 정곡을 찌른다.
 
“당신 혼자서 어찌 살겠오. 여기에 우리 아기들이 다 있어 당신도 곧 오시오.”
흥부의 영혼이 통곡하는 아내에게 전하는 극의 마지막 대사이다.
우리의 전통극의 요소로 나타나는 초월적 세계관이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먼 곳 다른 세상에서의 꿈으로 향하는 한바탕의 환상화이다.
 
주: SPAF (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의 약자로 세계 최고수준의 연극, 무용작품을
     관람 할 수 있는 예술제이다.)
 
1970-01-01 09:00 2016-06-22 23:50
댓글
9 개

Comments List

  1. 김 정 기 2016-06-23 21:5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연극의 시초가 아주원시적 동물들의 탈을 쓰고 그들의 행동들을 모방하면서 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
    한바탕 웃고보니 그 것은 인간 삶의 욕망에 숨겨진 비극의 응어리였더라~~~
    마지막 대사 헌실에서의 불가함을 아주 먼~~~ 다른 곳에서라도 풀고픈 애절함~~~
    많은 분들도 그러한 면은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무덥던 날씨였는데 저녘이되어서 인지 시원 합니다! 많은것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1. 황수현 2016-06-24 05:36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도 문화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깨우쳐가는 삶의 이야기들이 어느 한 순간 무대위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가끔 하게 됩니다. 방문하여 주시고 함께 공감하시어 고맙습니다!

  2. 장현덕 2016-06-24 17:4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우리의 전통극의 요소로 나타나는 초월적 세계관을
    해학적으로 나타낸 것이군요. 문화사를 공부한 흔적이 글 곳곳에 스며 있어요.깊은 내공을 확인했습니다.

    1. 황수현 2016-06-24 23:46 # 수정/삭제 퍼머링크

      언제나의 격려가 더 잘하라는 토닥임으로 알겠습니다..항상 감사드립니다.

  3. 추영탑秋影塔 2016-06-28 08:3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고통에 뿌리박은 지배계층의 행복?과 우월성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던 구 시대와
    서민들의 아픔에 그물막을 씌우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오늘날의 지베계층의 위선과 뭐가 다를까요?

    기득권이 기득권을 양산하는 사회의 병폐는
    사라져야 합니다.

    수현님의 논리적인 해설에 사견을 보태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

  4. 추영탑秋影塔 2016-06-28 08:4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민초들의 고통에 뿌리박은 지배계층의 행복?과 우월성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던 구 시대와
    서민들의 아픔에 그물막을 씌우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오늘날의 지베계층의 위선과 뭐가 다를까요?

    기득권이 기득권을 양산하는 사회의 병폐는
    사라져야 합니다.

    수현님의 논리적인 해설에 사견을 보태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

    1. 황수현 2016-07-07 23:25 # 수정/삭제 퍼머링크

      오랫만의 선생님 흔적이 반갑습니다!
      잠시 서울을 떠나 자유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이땅의 기득권세력들 어마무시한 권리를 누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5. 박미령 2016-07-02 01:32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고통도 웃음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제목 수상한 궁녀가 퍽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네요.
    우리는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걸까요/

    1. 황수현 2016-07-07 23:27 # 수정/삭제 퍼머링크

      헤르만 헤세가 그랬다지요. 바닷가에 What is life라고 쓰자 바닷물이 다 지우고 ?만 남았다고요.삶의 마지막날에는 알 수 있을런지 저도 늘 궁금합니다...

댓글 쓰기
달 밝은 밤 두견새 울적에 (月白夜蜀魂啾)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앉았어라 (含愁情依樓頭)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네 소리 없었던 들 내 시름 없을 것을 (無爾聲無我愁)
세상의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로니 (寄語世上苦榮人)
부디 춘삼월 자규루엔 오르지 마오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연려실 기술』, 『장릉지』에 수록된 조선 27대 왕들 중 가장 슬픔을 많이 간직한 임금이신 단종의 자작시 <자규사(子規詞)>이다.
청령포에 도착하기 전부터 열일곱 살 소년임금의 모습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마음이 먹먹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느낌이 싫어 뱃나루에서 청령포만 바라보고 걸음을 돌린 것이 2010년 여름이었다.
 
 
영월 동강의 봄밤과 정선의 아리랑, 아라리오의 뱃길은 늘 우리들 가슴한구석에서 척박한 땅의
아픈 삶을 살고 있는 민초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가슴을 시리게 하지만 그 중심엔
슬픈 임금 단종의 이야기가 더 깊은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마음으로 살펴보는 어린소년 단종의 슬픔이 가슴에 가득한 울림을 지니고
단종의 통곡을 들으면서 자라기 시작한 우람한 소나무의 자태가 단종임금이 지녔던 왕족의 기품을 대신하는 것 같아 그 마음을 다독이고 싶어진다.
 
 
지금은 700여 그루의 노송들이 울창한 송림을 이루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시려지는 초가지붕의 초라함 뒤로 어린 임금이 느껴야 했을 두려움이 절절하다.
육육봉이라 불리는 서쪽의 험준한 벼랑과 암벽이 그리고 삼면이 물길로 나룻배 없이는 출입을 할 수 없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단종이 유배살이를 했던 유지비가 비각 안에 있으며 당시에 세워 놓은 금표비(禁標碑)가 남아있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금표비란 “동서 300척(尺), 남북 490척(尺)”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임금이었던 노산군의 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다.
어린 임금 단종을 이토록 슬프게 만들었던 권력의 모습 뒤에 도사린 사람의 마음이 두려워진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임금은 유배지를 고을의 객사로 사용하던
영월읍 중심지 영흥리에 위치한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긴다.
관풍헌 동쪽에는 자규루(子規褸)라는 누각이 있는데 본래 이름은 매죽루(梅竹褸)였으나
단종이 관풍헌으로 옮긴 후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자규시(子規詩)를 읊었다 하여 자규루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종이 관풍헌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 1457년으로 9월에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였다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하여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고 10월에 사약을 받게 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왕명을 받들어 사약을 가지고 내려온 왕방연(王邦衍)은 관풍헌에 당도하였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공생(貢生) 복득(福得)이란 자가 단종의 뒤에서 활시위로 목을 졸라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였다. 이때가 1457년 10월 24일이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언하고 한양으로 가는 길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강가에서 지은 시이다.
 
 
청령포 뒷산 육육봉(六六峯)과 노산대(魯山臺) 사이 층암절벽위에 있다는 탑은
어쩐지 접근하기 두려운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단종이 올라 멀리 한양을 바라보았다는 노산대 푯말에 정순왕후를 향한 열일곱 살 단종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한양에서 이별한 정순왕후 한 사람만이 단종의 생애에서 그 시절 위로가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 그리움을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한 알 한 알 쌓아 올렸다는 망향대에서 바라보는 먼 곳
영월의 수려한 경치가 순간 살다가는 생의 한 차례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어 잘 정리된 나무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기는데 국어시간에 배웠던 왕방연의 시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1970-01-01 09:00 2016-06-10 07:06
댓글
6 개

Comments List

  1. 박미령 2016-06-13 19:3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아름다운 정경과 싯귀 때문에 단종의 삶이 더 애닮네요. 고시조는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네요.

    1. 황수현 2016-06-16 00:09 # 수정/삭제 퍼머링크

      할아버지 세종임금께서 직접 업어주시던 단종임금은 단아하고 총명하셨다 하니 그 맘을 읆으신 시구절에도 애닮픔이 가득합니다.

  2. 장현덕 2016-06-15 11:19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자규사를 읽으니 이조년의 시조가 생각나네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아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어린 단종이 어찌 잠인들 편히 잤겠어요. 두견새가 피를 토하는
    울음을 울듯이 단종도 그러했겠지요.

    1. 황수현 2016-06-16 00:10 # 수정/삭제 퍼머링크

      보호하여 줄 모후나 대왕대비 할머니가 계셨으면 이런일이 없었을 것이라 역사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합니다.
      조선왕조의 그늘진 한 부분입니다.

  3. 박택균 2016-06-20 22:34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우리역사의 슬픈 이야기 입니다..

    1. 황수현 2016-06-23 00:02 # 수정/삭제 퍼머링크

      권력의 구조로 나타나는 가장 슬픈 역사이지요..방문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쓰기

청령포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를 잃고 청계천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의 이별이
17년의 짧은 생으로 이생의 그리운 마지막 이별이었다면 단종임금의 장릉은 그가 살아서 누리지 못한
아픔의 위로가 되는 곳이었다.
한번 비가 내리면 폭우가 내려지는 곳 영월은 강원도의 지형이 지닌 특성으로 하여
구름이 산을 넘어가다 숨이 차서 머물러 그곳에 한꺼번에 비를 내리는 곳이라는 설명으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을 한다.
 
 
 
영월 장릉의 스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월 더구나 장릉에 특별한 애착을 지니신 분의 특별한 건축학 해설이었다.
조선왕실의 건축방법 중 용마루를 설정하는데 새끼줄로 한밤을 세워 이슬을 맞힌 후에 이루어가는
등시곡선에 관한 설명은 건축을 전공 하신 궁궐클럽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감탄을 할 만큼의 깊은 애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주(宇宙)는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로서
우(宇)는 하늘과 땅이 지닌 사방의 방위로, 주(宙_)는 태고 적부터 이어오는 시간의 흐름으로
그 안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공간이 담겨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독특한 건축의 생활방식이 현재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한국 궁궐의 건축문화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에서 방문하는 궁궐문화연구회 회원의 자격으로 장릉의 역사에 깊은 애정을 지니신 해설을 해주시는 분을
만날 수 있었음에 누리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재실이나 배식단사가 일반 왕릉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 건축의 모습에 시간의 흐름과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 변화시킨 공간의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단종이 숨을 거두고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 하는데 아무도 그 후환 때문에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을 때,
평소에 밤을 이용하여 단종이 거처하는 청령포로 남몰래 물길을 건너와 문안을 드렸던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동월지산 기슭에 암매장 하였다 한다. 그가 지게에 시신을 지고 길을 가는데
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장릉이다.
 
장릉의 장석배치는 곡장 3면, 상석 1, 장명등 1,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석마 1쌍, 석양 1쌍, 석호 1쌍, 정자각, 수라청, 망료위, 표석, 홍살문, 재실등이 있는데 다른 능과 다른 모습을 지닌 배식단이 있다.
다른 왕릉과 다르게 배식단(配食檀)이 설치되어 있음은 단종에게 충절을 다하였던 신하와 궁녀들까지
장릉에 배향하기 위해 1791년(정조 15년) 왕명으로 장릉 밑에 배식단을 설치하였다.
장릉의 능역에는 배식단사(配食檀祠)와 영천(靈泉), 엄흥도정려각(嚴興道旌閭閣), 배견정(拜鵑亭)등이 있다.
망루석에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細虎)가 없다.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된 택지가 아니어서 홍살문에서 청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가 “ㄱ” 자로 꺽여 있다.
 
조선 왕조 500년의 왕후와 후궁들 중 한 많은 여인의 한 사람이 된 단종 비 정순왕후는 1440년 (세종 22년) 여산 송씨 인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현수(玹壽)의 딸로 1453년(단종 1년) 열다섯 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2년 뒤 1457년 열 여덟 살에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으로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될 때 부인으로 강등되고 궁궐에서 추방당하여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峰)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던 왕후는 단종의 죽음이후 아침 저녁 이 산봉우리에 올라 소복하고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을 하였다 한다.
이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리면 온 마을 여인들이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을 치는 동정곡(同情哭)을 했다고 하며 동냥으로 끼니를 잇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세조가 집과 식량을 내렸으나 거부하며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여생을 살았다 하여 그 골짜기를 지금도 “자줏골”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기구한 운명이 지닌 단종임금과 정순왕후의 혼령이 무속신앙인들에게 가장 많이 모셔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피로 물든 삶과 죽음의 어느 선상에서 인간의 혼령이 거주하는 곳으로 영혼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의 위로가 되는 곳으로 선택이 되고 있음이다.
그 삶의 아픔과 한이 아직도 이승의 어느 곳에 멈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조상들이 지니고 있는 민속신앙의 한 모습이 그 힘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병든 영혼들의 위로가 될 수 있음 역시 혼이 머무는 공간성의 특성이 지니고 있는 신령함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지 않았던 시간을 걸어갔었다.
그곳에는 과거의 우리가 있었고 현재의 우리가 있었고 또 우리가 걸어가는 미래의 우리 모습이 투영이 된다.
아라리촌에서 만나는 양반과 서민들의 삶이 남기고 간 유형의 문화들이 그러하였고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스카이 뷰의 유리전망대가 그러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이 순간의 찰나임을 깨달아간다.
투명한 유리를 통하여 보이는 발아래 풍경들이 아찔한 짜릿함을 지나 현기증을 동반한다.
짜릿함이 현기증으로 전이되는 건 순간이었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권력의 욕망도 재력의 허망함도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온 우주의 시공간을 빌려 바라보면 찰나의 순간이 된다.
높은 전망대에서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면서 빈 마음이 된다.
높다 라는 단어하나로 순간이었으나 마음에 가득하던 욕심을 몇 길의 아래쪽으로 던지는 마음이 된다.
같은 시간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과 하나의 마음이 되던 순간이다.
누군가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마음 전부를 내려놓고 나는 함께 하는 분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어린 소년들이 되어서 오디를 따서 손바닥을 빨갛게 물들이며 전해주시는 마음이 고마움으로 전달된다.
내 입에도 오디의 붉은 물이 들어간다. 붉은 물빛이 입안에서 전해지는 고마움의 달콤함이다. 
 
 
내가 살아가지 않았 던 시간속을 망서리지 않고 성큼 걸어갔던 날
그 오래된 시간의 역사가 망설임 없이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늘 그리워하던 동강 봄밤의 달빛이었다. 그러나 봄날의 달밤이 아니어도 여름날의 금계꽃빛을 띄고 강물을 따라
반짝이던 시간의 빛이 물결 따라 내리고 있었다.
 
“능은 임금의 역사이고 임금은 그 시대의 역사” 라며 해설을 하시던 분의 말씀처럼
그 시대의 역사를 새로운 역사로 만들어가는 영혼을 지니신 임금이 존재하였음으로
단종 임금은 장릉의 영혼으로 남아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있었다.
왠지 듣는 것 만으로도 서글퍼지는 정선 아리랑, 가슴시린 삶의 슬픔을 지닌 아우라지의 한을 움켜진 듯한
척박한 땅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의 변화를 만나 던 날 동강의 올갱이 국은
새로운 시작의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살아있음의 생생한 확인을 그리워하였을 단종임금의 마음이 아니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살아있음의 생생한 확인이 되어준다.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1970-01-01 09:00 2016-06-10 06:53
댓글
4 개

Comments List

  1. 박미령 2016-06-13 19:37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단종보다 더 애닯은 삶은 자줏골에서 산 정순왕후의 삶이네요. 어찌 그 세월을 살아냈는지 짐작도 못하겟네요.

    1. 황수현 2016-06-16 00:11 # 수정/삭제 퍼머링크

      비운의 조선왕조의 여인들 중 한분으로 그 긴 세월이 얼마나 아득하였을런지요..

  2. 장현덕 2016-06-15 17:4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이 글은 단순한 답사기가 아닙니다. 깊은 역사의식이 담긴 답사기의 화룡점정입니다.

    1. 황수현 2016-06-16 00:12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이제 시작인 저의 역사공부를 과찬하여 주심이 부끄럽습니다. 항상 격려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쓰기
5월 17일자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반가운 소식 하나를 만났다. 내게는 조금은 낯선 이름 한강이라는 작가이다. 몇 년 동안 거의 소설은 읽지 않았으며 또한 소설자체를 나는 거부하고 있었다.
지난 17년의 시간이 내게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생활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청했던 지인께서 “이 책을 읽고파 할 것 같아서요..” 조용히 내 가방에 넣어준 책이다.
며칠 전 신문기사를 읽고 난 후 사러갈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책을 보는 순간 오래전부터 갖고파했던 마음의 욕심하나가 반짝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귀가를 하여 그 밤부터 나는 다음날 오후까지 거의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 상을 수상 하였다.
영국 최고의 맨부커 상은 프랑스의 콩쿠르문학상, 노벨문학상과 함께 가장 권위 있는 세계 3대 문학상이다.
한강작가는 영국 현지 시간으로 5월 16일 밤 빅토리아앤 알버트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채식주의자>(영문명 : The Vegetarian)는 2004년 발표된 작품으로 지난해 해외에 처음 소개됐다. 작품을 번역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도 이번 상을 공동 수상했다.
맨부커 상 심사위원회는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와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라고 <채식주의자>를 극찬했다. 한강작가는 인터내셔널 작가로 7번째 수상을 하였다.
 
첫 장을 펼치면서 한동안 느끼지 못하던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던 하루였다.
심사위원들의 평처럼 문장의 나열은 매우 조용하지만 극적인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문장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의 감각이 다음 페이지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게 하였다.
읽어가는 동안 정말?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지니게 하면서 혼자 고요하고 깊은 숲길을 걸어가는 섬뜩한 느낌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 느낌은 혼자 바라보는 깊고 고요한 숲길 저쪽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지니게 되는 기묘하다는 표현이 맞는 동물적인 감각을 내 안에서 살아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쁘다고 할 수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 주인공 영혜를 자신의 아내로 선택한 남자의 이야
기로 시작이 되는데 그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혜는 일반의 여자들이 열심히 몸맵시를 위하여 착용하는 속옷을 불편하게 느끼는 여자다. 그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선택한 남자의 둔감성을 동반한 이기심이  영혜가 지니고 있는 현실도피의 어느 일면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동원해본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을 영혜는 꿈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사고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유아적인 사고라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영혜가 도피하고 싶어 하는 꿈은 또 다른 꿈으로  강도를 높여가면서 그 꿈이 영혜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평범하고 조용하기를 원했던 남자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남자의 생각과는 어긋난 하루의 일상들로 하여 영혜의 가족들 그리고 예술가를 자처하는 형부와 두 자매를 향하는 어긋난 시선들이 강력한 불협화음으로 이어진다.
남자는 생활력이 강하며 영혜보다 섬세한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영혜언니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영혜의 형부는 생활력을 지닌 아내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지만 스무 살 까지 영혜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그동안 영혜에게 느끼고 있었던 몽고반점이라는 단어에 정신적인 위장을 하고 영혜에게 접근한다. 예술가의 감각으로 바라보던 이상형인 처제에게 규범에서 벗어나는 앎의 호기심으로 다가가서 스스로의 일상을 파괴시킨다.
타인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사건이 되어버린 처제와 형부사이의 일들이 채식주의자로 시작되어 또 다른 시공간에 머물기를 원하는 영혜의 기억에는 자책감도 도덕적인 죄책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악스런 사건 이후 가족들은 영혜와 언니부부를 자신들의 일상에서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도망가고 싶고 기억하기 싫은 인간답지 않았던 사건은 오롯이 영혜를 동생으로 아끼고 있는 언니의 몫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혜는 음식물을 거부한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자신이 나무가 되는 상상의 세계에서 스스로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영혜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처로움에 혼자 안타까워하며 영혜보다 더 깊은 상처를 껴안고 있는 자신을 깨달아가면서 언니는 영혜의 행동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길이 아니었던가를 생각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 의미의 해독이 필요했던 날에도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상행동만 정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집단속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그 이질감을 자신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완벽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더듬이만 내밀고 있다는 느낌을 지니게 한다.
두 개의 꽃이 하나의 몸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기를 원했던 영혜에게는 세상이 원하는 어떤 규범의 세계가 아닌 철저히 세상과 단절된 자신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영혜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는 주변이 없이 비정상으로 구분되어 그녀는 하얀 집의 붉은 벽돌 안에 갇히는 환자가 된다.
 
점점 그녀는 음식을 거부하면서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는 언니에게 가해진 도덕적 법규에 따르는 일반사회가 요구하는 의식 자체가 없다.
그만큼 그녀는 철저하게 모든 것들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프로이드의 심리유형분석이론에서 나타나는 성장기 발육과정을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치유시키는 또 다른 힘이 있어서 자신의 올바른 사고를 키워갈 수 있는데, 성장과정에서 맞이하는 도피처가 없을 때 차라리 포기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느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갑각류 같은 두터운 의식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무장하게 되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어린 날들의 상황이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면서 모든 여인들이 착용하는 브래지어에 대한 답답함을 거부하게 되는, 스스로를 집단에서 자의적으로 제외시키는 정신적 사고의 영역이 형성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영혜의 꿈에서 만나는 또 다른 폭력은 자신이 키워온 피해의식의 또 다른 무의식이다.
영혜 안에 존재하고 있는 아직 성장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의식세계이다. 그것은 영혜가 성장하는 시간동안 줄 곧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피해갈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모든 것들에서 마음의 눈을 닫아버린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생각했다.
일반적인 삶에서 일어날 수 없는 4차원의 세상을 만나고 그곳에서 직선이 아닌 시간의 줄위에서 직선이 아닌 또 다른 삶의 경로를 따라가기 위한 공간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정신의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벽 하나의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가게 한다.
영혜 역시 현실의 도피를 위하여 나무라는 식물의 공간을 선택한다.
그곳만이 그녀가 존재할 수 있는 정신의 위안을 만나는 곳이다.
 
세상에 모든 숨쉬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 또 다른 시간을 향할 수 있는 정신의 날개를 원한다는 사실을...
다만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한 해설도 작가의 말도 이 글을 쓴 이후에 읽었다. 그들의 글이 나의 느낌에 불쑥 들어와 내 생각 속에 자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내 나름의 보호차원이었다.
현대문학이나 예술에서 의도하는 독자 나름의 완벽한 느낌으로서만이  또 다른 내면의 나의 자아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글. 풍경소리 황수현>
1970-01-01 09:00 2016-06-03 12:47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06-03 17:2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이 소설에 나타나고 있네요. 주인공 영혜 역시 존재하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영혜는 현실도피를 위해 나무라는 식물공간을 선택하는데, 그 곳만이 그녀가 정신의 위안이 되는 곳이라서 그렇겠지요.

    후기의 마지막 문장에 황수현씨의 이 소설에 대한 깊은 의미가 나타나 있네요. 세상에 모든 숨쉬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 또 다른 시간을 향할 수 있는 정신의 날개를 원한다는 사실을...
    다만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내용으로 보이는데 황수현씨의 탁월한 통찰력으로 소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예술 작품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지요. 황수현씨의 평론도 황수현씨만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바라 본 것이라 여겨지네요. 그동안 많은 글을 쓰시면서 쌓은 내공이 이 평론에서 번득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네요.

    1. 황수현 2016-06-03 21:36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이 책을 읽은 후 다른생각이 침범하기 전에 제 느낌을 쓰고파서 바쁘게 썼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일치되지 않아도 예술의 세계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능성으로 지니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격려를 하여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댓글 쓰기
객석은 조명이 켜지기 전부터 찔레꽃 노래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요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 <가을밤>이라는 곡을 그대로 살려,
1972년 가수 이연실이 가사를 새로 붙여 부르면서 애창되기 시작한 곡이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연상시키는 이 찔레꽃의 노래가사는 연극 동치미의 내용을 미리 말해주는 듯 노래의 곡 만 으로도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시작된다.
 
2009년 초연을 시작으로 2013년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도에는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및 연극부문 전 부문 석권을 하였고, 2015년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연극상” 수상에 빛나는 검증된 내용으로  연극 동치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4년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씨가 60여 년간 해로 했던 부인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엿 새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연극의 초기 연출가인 김용을 씨에 의하여 우리들은 연극 동치미를 만나게 된다.
 
2012년도 주말 어느 날에도 나는 북촌 아트홀에서 연극 동치미를 관람하였다.
그날 세상에서 만난 그 인연들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섬세하고 예리한 아픔이 되던 날 나는 함께 했던 동행들을 떠나 창덕궁 담장 옆 돌 의자에 앉아서 눈이 붓도록 울고 말았다.
눈물로 기억되는 연극 동치미의 새로운 시높시스를 2016년도에 다시 만나던 날이다.
평생을 고지식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내의 생일날에도 준비한 생일 선물 한번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전달하지 못하는 소리만 지르는 봉건적 가장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르는 일이 많았는데
온산의 산짐승들이 살기 위해 다 도망을 가도 꿩만은 가까운 연못을 날아다니며 온몸을 물에 적셔 뜨거워진 자신의 알을 식히고 또 식히고 하면서 보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이 꺼지고 산에 오르면 새카맣게 타버린 꿩의 품속에는 꼭 알들이 있었다 한다."
다정하지 않은 아버지 김만복 씨가 들려주는 “꿩 먹고 알 먹고” 라는 말의 유래는 그가 자식들에게 향하는 사랑의 간접 표현이다.
 
새끼를 위하여 연못과 알 사이를 날아다니는 꿩의 모습은 어느순간 내가 되기도 하고 객석에서 가슴속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있는 관객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내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할 때 객석 사이사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주(宇宙_)는 무한한 시간과 온갖 사물을 포괄하는 공간으로 우(宇)는 하늘과 땅  천지 사방을 이르는 말이며 주(宙)는 태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시간을 말함이다.
그 무한대의 기로 태어난 질긴 인연의 고리를 지니고 있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모래알보다도 작은 한 사람의 힘으로 끊을 수 없음이 우리들의 자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 어미 꿩이 온몸을 까맣게 태우면서 품어 세상에 남겨지는 알들처럼 그 사랑으로 부화가 되어 또 다른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 인간 삶이 지니고 있는 역사이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되돌리지는 못해도 다시 자식에게로 돌려주는 사랑이다.
절대로 끊을 수도 없으며, 원한다고 절대로 인연이 되어주지도 않는 거대한 시공간에 의하여 만들어 지는 소중한 인연이 그 이유이다.
 

 
오랜 시간의 관록을 자랑하는 노년의 배우 김진태씨의 연기와 더불어 우리들 일상의 특별하지 않는 나날들이 연극이 되어 무대 위에서 특별함의 의미를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몇 년 전의 그 흐느낌을 되풀이 하지 않게 된 나는 오랜 시간의 공연을 지속하고 있는 연극 동치미의 숨은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창덕궁 담 모퉁이에서 가슴속의 먹먹함이 눈물이 되어 흩어지던 그 어느 날의 내가 아닌 우주라는 시공간에서 주라는 흐름의 줄을 타고 그날보다는 조금은 길어진 시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투영시킨다. 뼈가 다 삭아지고 심장 속에서 진통제가 녹아내리지 못할 만큼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웃음만을 보여주던 어머니의 사랑이 아주 조금 내안에 녹아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의 인연들이 행복할 수 있는 날까지 연극 동치미는 이어질 것입니다” 라던 무대 위 앤딩의 멘트를 빌려 귀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세상의 모든 인연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의 축복을 보낸다.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1970-01-01 09:00 2016-06-02 12:41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06-02 14:15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그 연극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부모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 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니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드는군요. 그렇게 유명한 연국인데
    부끄럽게도 그런 사실을 황수현씨의 후기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고급문화의 소비를 듬뿍하시는 황수현씨가
    부럽네요. 후기 또한 가슴에 스며듭니다.

    1. 황수현 2016-06-02 22:54 # 수정/삭제 퍼머링크

      당연히 울게되는..이 세상 오든 부모님의 모습을 만나니까요..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쓰기
살다보면 어느 날 결코 떨구어 버릴 수 없는 햇빛의 잔상하나가 눈으로 들어온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모습으로 남겨져서 생의 전부를 지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맘마미아(Mamma mia)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일상의 일들을 만나게 될 때 고통을 호소하는 이탈리아어로 “어머나~~?” 또는 “어떻게 하지..?” 라는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며 스웨덴의 혼성 팝 그룹인 아바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영국 뮤지컬로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이다.

언어의 어원처럼 도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가 주제가 되어 음악으로 그녀의 모든 것들을 감정으로 풀어내는 뮤지컬 맘마미아를 만나던 날이다.
무대는 그리스 지중해의 작은 섬에서 아름답게 꾸며진 호텔을 운영하는 도나가 딸 소피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어느 날로 시작이 된다.
21살의 소피는 결혼식을 앞두고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엄마의 일기장에서 세 명의 남자친구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당연히 그 세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 하고프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오래 전 친구이던 세 남자 샘, 빌, 해리에게 엄마 도나의 이름으로 결혼식 초대장을 보낸다.
 
이들이 오기 전 엄마의 오랜 친구 두 명이 소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도착한다.
도나의 두 친구는 특이한 언어와 수준 있는 노래솜씨로 그들 나름의 재치를 발휘하여 시종 뮤지컬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웃음을 선사한다.
 
딸 소피의 결혼식을 앞두고 호텔을 방문한 세 남자를 맞이하면서 당황하는 도나는 이들의 예약을 거절하지만 이미 딸에게서 예약을 받은 상황이므로 이들은 도나의 호텔에 머물게 된다.
걱정이 된 도나는 두 친구에게 오래전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게 되고 그들이 이어가는 무대의 분위기와 노래의 내용들이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개방적 시선의 다름을 느끼지만 그들이 지닌 멋진 노래와 대사가 관객에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전달력으로 함께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국의 도시에서 섬으로 온 사윗감 스카이가 맘에 들지 않는 엄마는 소피의 결혼을 만류하지만 소피는 사랑을 이유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고 그 사이 샘은 아직도 도나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소피의 결혼식이 미루어지고 소피를 위하여 준비하였던 식장은 오래전 사랑했지만 오해로 헤어지게 되었던 샘과 도나 두 사람의 결혼식장이 되어 모든 사람의 축하를 받는다.
엄마를 마음을 이해하게 된 딸 소피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하여 스카이와 여행길을 떠난다.
 

 
삶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어딘가로 향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머물고 싶다고 머물러 질 수 있는 것도 아닌 인생의 시간들은 우리들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음이 아님을 배우고 있는 나날들이다.
우연이 아닌 시간이 흐른 후에도 꼭 만나게 예정되어진 사람들의 운명이 있음을 생각한다.
철없던 젊은 시절 한때의 사랑이 아닌, 도나 에게는 잊고 싶었던 기억속의 어느 날이 소피의 운명과 이어지면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바라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인간은 항상 더 깊게 알기위하여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실은 더욱 모호한 존재가 되어간다.
긴 이별의 시간에서 젊은 날에는 믿지 않았을 샘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도나는 샘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멀리 떨어진 후에서야 깨달아가는 서로의 마음속 진실이었다.
 
희곡이나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볼 때 대사나 음악을 통해 파악이 되지 않는 숨겨진 뜻을 서브텍스트라고 한다.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라브스키(Const.antin Stanislavski, 1863~1938)는 자신의 저서인 “배우수업(An actor prepares)”에서 “관객이 공연을 보러가는 것은 연극의 텍스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서브텍스트를 보러 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계절이 바뀌면서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냥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의 생각도 가슴에 고여서 그것은 오히려 철없는 젊은 날의 사랑보다 더 깊게 두 사람의 가슴에 쌓여가고 있었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무심하게 스치고 지나 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샘에게 도나가 선택의 손을 잡았다. 솔직하게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음도 시간이 가져오는  삶의 지혜라는 생각을 한다.
 
뮤지컬 배우인 최정원 씨의 노래가 맘마미아의 품격을 높여가는 존재감이었다면 말 그대로 신 스틸러들의 매우 독특하고 재능이 가득했던 무대는 관객을 환호하게 하는 새로운 기대감을 지니게 한다.
해피엔딩의 스토리로뿐 만이 아닌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의 깊이 감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대작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가치의 존재감으로 매우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
    * 가운데 사진은 공개된 지면에서 옮겨 왔습니다.
1970-01-01 09:00 2016-05-30 21:29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05-31 13:08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저도 오래 전에 영화로 맘마미아를 봤습니다. 창피하지만 오늘 황수현씨의 글을 통해서 맘마미아의 뜻을
    알았어요. 서브텍스트라는 말도 오늘 처음 들었어요. 영화 내용은 사실 좀 우리 정서하고는 안 맞지요.
    저는 노래로 만족했지요. 그런데 황수현씨의 후기를 보니 맘마미아가 그런 영화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의 무지를 깨우쳐 주셨어요. 역시 황수현씨는 심미안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1. 황수현 2016-05-31 20:47 # 수정/삭제 퍼머링크

      저도 영화를 보았을때는 도데체 이상한 내용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노래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이제는 그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언제나 격려하여 주시는 장선생님 덕분에 많이 자랐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쓰기
늙은 도둑이 아닌 늘근 도둑이라는 제목은 나무늘보를 연상시켰다.
도둑이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첫 이미지에서 느꼈던 것은 운명 같은 사랑도 아니고 떠나보낸 후 애타는 그리움도 아닌 어떤 삶의 절박함 같은 것이었다.
제목의 이미지 전달은 예상을 거의 맞혀가고 있었다. 새 책을 구입하면 책의 카탈로그에서 알아가는 느낌과 동일 시 되는 언어가 전달하는 이미지였다.
 
 
극의 시작은 캄캄한 어둠이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로 그곳은 일반 가정집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늙은 도둑이 노년의 마지막을 위하여 한탕을 계획하여 잠입한 곳은 그분의 미술관이다. 세계적인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나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두 늙은 도둑은 금고만을 노린다.
그들은 세상이 증오하는 끔찍한 강도나 엄청난 보석들을 훔쳐내는 계획적인 도둑들이 아니다. 치밀하지도 않으며 계획적이지도 않다. 어설픈 그들의 말투와 행동들이 오히려 웃음을 유발시키며 연민을 불러내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욕심은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금고를 훔치기도 전에 배분율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은 경비견에게 붙잡혀 조사실로 끌려간다.
수사관의 치밀한 취조에 한심한 변명만을 늘어놓는 두 늙은 도둑의 어설픈 행동들은 노년을 걱정하는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으로 웃음과 함께 오히려 동정심을 불러온다.
수사관을 향하는 그들의 태도가 웃음을 날리게 하지만 그것은 관객과 함께 안타까운 세상을 향하여 공감하는 통렬한 웃음이다. 관객 모두가 공감하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돌 직구가 매순간 관객들과의 애드리브로 공감 100%가 되어서 객석에는 웃음이 날린다.
 
 
2015년 신 스틸러(Scener Stealer) 상에 빛나는 연기자들이 등장하는 연극답게 그들에게서 특별한 신선함을 선사받는다.
2014년 12월 1일 국립국어원이 신 스틸러의 우리말 순화어로 “명품 조언”으로 선정한 신 스틸러는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 이상의 주목을 받는 조연을 이르는 말이다. 종종 주연보다 더 그 자체의 상황을 받쳐 주는 빛나는 존재감을 지니는 배우들이 있다. 주연보다 더 뛰어난 조연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요즘의 '신 스틸러'는 기존의 주연을 받쳐주던 조연과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는 이들에 대해 시선을 집중시키며 점점 중요한 존재감을 부각시키면서 2009년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이다.
 
한바탕의 웃음은 단순한 웃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신명나고 재미있는 마당극 한편을 보는 기분이 되었다. 예전 우리의 전통극인 마당극에는 관객과 배우가 함께 어울리게 되는 장소로 무대가 따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무대라는 관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문화가 우리에게 유입되면서 극장이 생기고 신파극이 공연된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 무대가 생기고 관객과 배우의 구별이 생기기 이전 우리 전통의 마당극에는 양반들을 향하는 서민들의 분노가 해학과 웃음으로 풍자되고 있었다.
 
늘근 도둑들이 이어가는 무대는 연극의 3대 요소인 배우 관객 무대에서 관객을 완벽하게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는 부분적이나마 마당극의 형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일정 부분이기는 하였으나 무대와 관객이 함께 하는 관객의 애드리브가 함께 공감하는 웃음의 무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관객과 배우가 한마당의 장을 펼치면서 함께 웃어가는 공감의 시간인 것이다.
연극의 요소에 중요 부분인 관객과 함께 웃어가며 함께 공감하는 신명나는 마당극의 놀이마당이 되기도 한다.
 
 
고전 문학 중 특히 한반도가 공유하던 고전극의 내용들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텍스트만이 아닌 텍스트가 설정되는 상황의 중요성이 일정부분을 차지한다. 그 상황을 무대 위의 배우들은 기지로 도입시켜 관객에게 공감대를 유도하고 있었다.

연극을 통하여 통쾌한 복수를 하듯이 웃어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단면들이 막이 내려진 무대 위에서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회상을 배우들의 언어와 행동으로 100분의 시간을 함께 웃어가지만 그것은 오히려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늘근 도둑에는 민속극인 마당극에서 중시되었던 춤과 마임(Mime) 등의 표현성이 타나나고 있었으며 도둑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의 내포성에 스스로를 비하하는 이미지를 도입시켜 부조리한 현실을 향하는 도전하지 못하는 어설픈 행동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조 그리고 내면적 저항의 언어임을 깨달아 간다.
 
웃음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는 전통극의 모습을 만나게 되던 날 오래전 서민들의 통렬한 저항의식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문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언어와 사고로 변화되어 그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이라 하였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바른 사회를 향하여 웃음과 표현을 창조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도 소리 없는 마임(Mime)의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
1970-01-01 09:00 2016-05-29 23:37
댓글
2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05-30 14:4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늙은 도둑이야기군요. 늘근 도둑이라고 쓴 것이 이유가 있군요. 이 새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의 슬픈 자화상같은
    연극이네요. 문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언어와 사고로 변화되어 그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황수현씨는 바꾸어 가는 그 모습을 보며 , 변화하는 문화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시네요. 닮고 싶습니다.

    1. 황수현 2016-05-30 21:28 # 수정/삭제 퍼머링크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늙은이 아닌 늘근이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느낌으로 그 내용이 매우 궁금하였습니다. 특별한 연기자들의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쓰기
 
흔히 쉽게들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실체를 우리는 알고 있을까?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단어이면서 정작 이 사랑에 정의를 내리라하면 꽤 여러 가지의 해석을 하게 된다.
예전 어느 여름날 인사동 길을 걷다가 “사랑- 그 즐거움에 대하여”라는 전시제목에 이끌려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었다.

나의 시선을 끌었던 제목처럼 전시된 작품들은 사랑을 속삭이는 시간의 밀어들처럼 화려한 색채로 옷을 입은 즐겁고 화려한 단어들이 캔버스위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 즐거움을 그대로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인지 또한 운명의 여신은 사랑의 지속을 허락하려는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랑에게 묻고픈 날이 있었다.
사랑은 약속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운명의 신이 도와주어야지만 그 약속의 이루어짐이 가능하다는 “사랑은 운명이다.” 는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그 운명적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유(Behind you)를 창덕궁 옆 북촌 아트홀에서 만났다.
두 남녀의 운명적 이야기는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날 뮤지컬의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 앞에서 시작이 된다.
뮤지컬의 팸플릿을 들고 벤치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윤아(엄태리 분)를 보게 된 동현(정승조 분)은 그 순간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같은 우산을 쓰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장소에서 내리게 되는 이들의 우연은 이미 운명적 만남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첫 만남에서 당당하게 말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고 하며 시력을 잃어 절망하는 윤아에게 헌신적인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인생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가는 것 같은 미로이지만 그 미로를 찾아나가는 길에서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의 실체를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사랑의 완벽함으로 개념적인 이해를 동반하고 있었다.
 
시력을 잃은 윤아와 함께 한 호흡처럼, 한 생명처럼 살아감이 가능한 것은 "인생은 보이는 것이 아닌 상상력" 이라는 동화작가로서의 동현의 상상력으로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될 만큼 헌신적이다.
동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을 질투하는 운명의 여신 모이라의 의하여 동현은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의 여행을 준비하여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생의 시간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동현은 윤아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너무 가까워서 한 생명 같았던 두 사람의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순간 그들에게는 완전한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력을 잃은 그 순간부터 그녀를 지켜주었던 남편 동현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던 그녀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녀를 위하여 이웃을 만들고 자신이 떠난 후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냉정하리만치 스스로 배우게 한다.
윤아를 남기고 먼 길의 여행을 떠나야하는 동현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동화 같은 상상의 시간이 아닌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홀로 두고 가는게 아니고 하늘에 그녀를 맡기는 거야. 하늘이 품어 줄거야” 라는 동현의 사랑으로 윤아는 남은 시간들을 씩씩하게 이어간다.
 
연출가 서영은 씨는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포자기를 하거나 이러다 괜찮아 질거야 라고 위로를 하지만 어느 순간 희망의 끈을 놓게 되는데 이 뮤지컬을 통하여 광야를 지나는 고통 속에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커플의 이야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는 의도대로 두 사람의 사랑은 애처롭고 안타깝지만 잘 짜여진 직물의 씨줄과 날줄같은 정밀함의 순수를 지니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해서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시간들보다는 아프고 상처투성이의 시간이라고 하여도 스스로 가슴에서 느끼고 배워가는 성장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작은 들꽃도 여린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수만 번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생은 아픈 만큼의 성장 통을 필요로 한다.
 
수없이 아프고 수없이 상처받아도 그 안에 나를 향하는 사랑이 담겨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된다.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였었고 그 사랑의 마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남은 시간들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뮤지컬 비하인드 유는 제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윤아는 동현이 떠난 시간들을 가슴에 담고 웃으며 살아간다. 무대에서 불려지는 다양한 노래와 다양한 색채의 우산들은 윤아가 변화하는 희망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믿음 하나로 그 절망의 시간에서 벗어나 마음의 성장을 지속시킨다.
하나의 믿음을 마음속에 담고 있을 때 우리는 상상으로만 꾸어가는 꿈이 아닌 희망을 키우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음이다.
윤아의 마음속에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용기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다.
 
<글. 사진 풍경소리 황수현>
1970-01-01 09:00 2016-05-23 01:37
댓글
4 개

Comments List

  1. 장현덕 2016-05-23 10:21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사랑의 정의를 과연 내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너무나 그리고 자주 사용하지만 정확히 그 의미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비하인드 유에서 사랑은 아마도 믿음일 것 같네요. 사랑은 믿음에서 나온다?
    맞는 것 같기도 해요. 황수현씨가 맨마지막 줄에서 결론을 그리 내리지 않았나요?

    1. 황수현 2016-05-23 23:32 # 수정/삭제 퍼머링크

      모든 인간의 관계가 그러하겠지요. 서로의 마음으로 언어가 필요하지 않는 관계! 어쩌면 이상형의 인간관계 일런지도 모르는..

  2. 박미령 2016-05-24 20:13 # 수정/삭제 답변달기 퍼머링크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저 환상을 쫓는 것은 아닐지... 인정하기 싫은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어쩜 우리가 사랑의 실천이라 믿는 것은 의리나 성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관계는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관계임에는 틀림이 없읍니다.

    1. 황수현 2016-05-25 21:31 # 수정/삭제 퍼머링크

      평생 지속되는 사랑도 곁에서 지켜보았고..가족이나 형제의 사랑은 그 밀도가 또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사랑을 믿고픈 사람이고 각자의 삶과 견해의 차이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사랑의 정의가 아닐런지요...^^*

댓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 3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