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특별한 계획이 없어 쉬고있다가 평택벌 라이딩을 나선다.

이젠 도반도 어느정도 숙달이되어 농로를 타고 다니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다.

한창 열심히 타고 달리는데 또 타이어펑크가 났다. 지난번에도 펑크가 나서 보수를 하였지만,제대로 조치가 되지않아 차를 가져가서 운반하여 A/S를 받고 튜브를 교체해 달라고 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여 그냥 가져와 탔더니 연속으로 펑크가 난다.

아마도 자전거 자체가 노후되어 그러하리라. 마침 주변을 둘러보니 자동차 검사소가있어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컴프레샤를 빌려 바람을 넣어보는데 역시 바람이 샌다.

가지고있던 보수키트로 펑크부위를 떼우고 다시 바람을 넣으니 조치가 된다.

손을 씻고 화장실을 다녀온다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니 그사이에 또 바람이 빠졌다.

더이상 조치 할 수가 없다. 아마도 튜브자체가 낧아 여기저기서 바람이 새는 모양이다.

그냥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도반은 걸어서 오고 천천히 타고는 귀가를 하였다.



귀가하니 전직장의 후배의 장모상을 알리는 카톡이 떳다. 저녁에 문상을 가기로하고 아직은 시간여유가 있으니 딸네집의 텃밭으로 달려간다. 늦게심은 배추와 무우가 그런데로 잘 자라고 있다.

지난번 농약을 치고 영양제를 주었지만 일부를 솎아내고 다시 영양제를 주었다.

처음에는 헷갈려 다른집의 고랑에 영양제를 주다보니 이상해 확인해보니 다른 사람의 텃밭이다.

솎은 것을 가지고 집에오니 이혼한 동서가 저녁에 일산에서 보잔다.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손윗동서이고 만나면 술을 마셨으니 않먹을수도 없는데,며칠전 임플란트수술도 하였고 일산까지 갔다온다는 것이 너무시간이 걸릴것 같아 다음에 보자고 하였더니

술을 주지도 권하지 않을테니 오라고 강요한다.

 


일년간이나 보지못한 얼굴이고 근황이 궁금하여 보고싶기도 한데,문상을 조금 일찍갔다가 일산으로 가는 것도 괜찮을것 같아 그러마라고 하고는 네시경출발을 한다.

군포의 장례식장에 얼굴만 비치고는 일산으로 출발하였으나,이미 퇴근시간과 맞물려 도로는 정체의 연속이다.

내비가 외곽보다는 서부간선을 선택하기에 그길로 달렸더니 두시간이 걸려 목적지인 서오릉에 도착한다.

반갑게 만나 해후?를 하고는 이런저런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장한 배속을 고기로 채운다.

 


다시 큰동서네 집으로 옮겨서 주차를 하고는 거기서 일박을 하기로 하였으니 노래방으로 이동한다.

예전부터 술을 마시면 노래방이 필수코스였으니 빠질 수가 없다.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정말 오랫만에 노래방에서 두시간이상을 보낸다.

보통의 사람들은 한시간정도이면 지겹고 목도 아파오는데,술과 노래에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력인지 끄덕도 없다.

열두시가 넘어 귀가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다가 한시가 넘어 취침하다.

아침에 조기국과 전어구이로 속을 채우고는 언제볼지 모르는 기약없는 이별을 한다.

1970-01-01 09:00 2018-10-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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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고나서 처형들과 사촌처남이 방문한다고해  같이 점심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집들이를 빙자한 방문이니 식사는 외식을 하기로하고 집에서 차나 마시면서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지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당진의 왜목마을을 가서 신선한 회에다가 점심을 먹기로했다.

예상보다 이른시각에 도착하여 집구경을 하고는 베란다에서 바라보이는 누렇게 익어가는 넓은 벌판의 전경에 감탄하고 수납공간이 잘 배치되어 깔끔한 집구조에도 좋다고 부러워들한다.

차를 달려 두곳의 방조제를 지나 왜목항에 도착하니 오래전 방문하였던 그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오랜세월이 흘러 모습도 많이 바뀌었지만 받는 느낌또한 그때와는 다르리라.

푸른 바다가 시야에 가득차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조금 해변을 걷다가 다시 대호방조제와 도비도를 건너 삼길포항에 이르니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복잡하고 수선스럽다.

조금더 지나 항구의 뒤편에 이르니 조금은 한적하고 조용한 횟집을 찾아들어가다.


신선한 회를 시켜 배불리 먹는다. 다만,엊그제 임플란트 수술을 하여 술을 마시지 못함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허나 내집에 온 손님과 같이 마시고 취하여 집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것도 좋지는 않고 처음으로 좋은 안주를 앞에 놓고 한번 참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오랫만에 배불리 먹고는 그래도 남아 매운탕에 넣어 밥한그릇을 비운다.

같은 서해바다인데도 경기도 인근의 뻘과 얕은 수면,푸르지 못한 바다와는 달리 이곳의 바다는 마치 동해의 바다처럼 푸르른 색깔의 청정바다색이다.

이동하여 커피를 마시기로 하여 예전 방문하였던 커피숍을 찾으러 하였으나 위치와 상호를 정확히 알지못해 찾기를

포기하고 평택호부근의 찻집에서 느긋하게 자릴잡고 커피를 마시고는 호수길을 걷다.



걷다보니 어느덧 석양이 물들고 있다. 이왕에 온것,저녁까지 먹자고해 아직은 배가 든든하나 유명하다는 냉면집으로 옮겨 시원한 냉면을 먹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다.

멀리까지 와준 걸음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더불어 현실에 만족하여 살고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다행스럽다.

건강하게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빌어본다.

1970-01-01 09:00 2018-10-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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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는 징표가 우선 이빨에서 나타 나나보다.

수년전 임플란트를 두개나 하였는데도 어금니 하나가 좋지않아 뽑고는 임플란트를 하려고 하는데

잇몸뼈가 튼튼하지 않아 보강이 될때를 기다리고 있던중, 그 바로옆 이빨도 흔들리니 아예 같이 발치를 하고는 그쪽의 잇몸이 튼실하니 그곳에 뼈를 심고 두개를 연결하자는 의사의 제의에 동의하고 이빨을 뽑는데 아주 힘들게 뽑았던것 같다.비록 흔들리지만 뿌리는 단단하여 느낌에 벤치등으로 뽑아도 잘 나오질않아 뿌려트렸는데 '딱'소리와 함께 뿌러진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우측아래 어금니부근이 무엇을 먹을때 어느순간 시큰하고 아파서 음식을 씹을 수가 없을정도라 이야기하였더니 아래위이빨의 간극이 맞지않다고 조정을 몇번이나 하였는데 별 차도가 없이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후 안중으로 이사를 하여서 기존 다니던 서울의 치과를 다니기가 멀어 근처에서 잘한다는 치과로 가서 우측 어금니를 이야기하였더니 잇몸에 염증이 생겨서 그렇다고 거울로 확인을 시켜주면서 고름을 제거하였더니 시큼한 것이 사라졌다.

이빨치료 때문에 먼거리를 다니것도 아닌것 같다. 그곳이 잘 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이 신뢰가 가기도하여 다니는 치과를 집부근으로 바꾸기로하였다.

그리고는 잇몸치료를 하여야 한다고해서 일주에 한쪽씩 4주에 걸쳐 잇몸치료를 받으면서 기존의 임플란트를 병행하기로 하였다.

치료비는 배가까이 비쌌지만 조금 더 신뢰가 가니 믿고 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리산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바로 임플란트 수술을 하였다.

한두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는 받았지만, 막상 수술을 들어가니 마취,드릴,연마...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가 싶더니 잇몸뼈가 부실하여 뼈이식을 병행하여야 한다고한다.

사전에는 뼈이식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안내를 받았는데,수술도중에 이식을 해야한다니 동의할 수 밖에없다.

시간반정도가 소요되어 드디어 수술을 끝났다.

막판에 꿰메는 작업은 느낄수 있을 정도였고 마취가 깨어나는지 통증이 와서 다시 마취를 하고는 종료를 하였다.

예전에 임플란트를 어떻게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때도 이러하였나 싶다.

거즈를 두시간을 물고 있다가 빼고는 식사를 하였는데 마취가 풀리는지 통증이 온다.

피는 계속 멈추지를 않는 것 같고 약을 먹고는 취침하여 아침에 일어나니 계속 혈액이 보인다.




병원에 들려 소독을 하고는 일주일후 실밥을 뽑기로 하였다.

아직 한번의 잇몸치료와 점검등을 하고는 3개월후에야 임플란트를 완료한단다.

부모로 부터 물러받은 이빨이 좋은데 살아오면서 관리를 부실하게하여 통증과 흔들림이 오니 치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기술이 좋아 인조이빨을 교체할 수가 있으니 다행이다.

아파봐야 느끼는 것이지만 건강할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길인것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1970-01-01 09:00 2018-10-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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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와 타프가 이슬에 젖어 축축하니 마르는 시간도 주어야 할겸,주변 갈만한 곳을 검색해보니

두번이나 들렸던 연곡사에 미처 둘러보지 못한 국보와 보물들이 있어 다시한번 들른다.

하마트면 절집만 들르고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놓치고 갈뻔 하였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좋기는 좋은 세월이다.

지리산에 많은 사찰들이 있지만 유홍준은 남도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오로지 연곡사만을 언급하였다한다.

그만큼 답사팀들이 빠지지않고 들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소요대사탑등의 보물과 북승탑과 동승탑,동승탑비등 국보를 둘러본다.

특히 동승탑은 신라시대의 유물로 오랜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정교하고 세련된 구도와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어제만해도 대웅전에 들렸을 때 다른사찰에서 들른것 같은 스님들을 안내하여 탑들을 둘러보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무심히 올려다보고 말았던 곳이다.

캠핑장에 들려 햇살에 습기가 건조된 텐트등을 철수하고는  이틀을 머물렀던 캠핑장을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


 


 


다시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쌍계사. 화엄사를 들릴까하다가 쌍계사와 화계장터를 보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벛꽃이 필 시기에는 벛꽃십리길로 유명한 도로를 달려 절집으로 들어선다.

구층석탑이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하니 자리를 지키고 절집마당에는 은행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대웅전에서 백팔배를 올리고 육조혜능대사의 머리를 모셨다는 금당을 찾는다.

공양간을 찾아 공양이나 하려했더니 이미 시간이 지났는지 공양주나 음식이 보이질 않는다.


화개장터를 들려 예전에 한잔하였던 옥화주막에서 제첩국에 탁주한잔으로 속을 채우고는 장터를 휘이 둘러본다.

평일인데도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제법 많이 장터를 찾아 온것 같다.

쑥떡과 부꾸미를 사고는 다시 차를 몰아 섬진강변을 달려 화엄사IC에서 고속도로로 올려 귀가길에 오른다.

4박5일의 지리산여정이 무사히 재미있게 마무리된다.


1970-01-01 09:00 2018-10-1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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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삼거리 산행도 무사히 마치고 연곡사를 들렸다가 캠핑장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는 남은찌개국물에 라면을 끓여 남은 밥을 말아 한끼를 해결하려하였더니 도반이 짜증을 낸다.

수고하였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지 식은밥에 라면이냐고...

할 수없이 햇반을 데워 대령해 드리고 어제 산 돼지껍데기를 살짝 데쳐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다.

대충 저녁을 먹고 좋은 안주에 술한잔 생각만 하였던것이 잘못이다.

 

캠핑장옆 건물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나길래 알아 보았더니 밤을 세척하고 분류하는 공장이란다.

들려서 만원어치를 구입하였더니 산지라서 그런지 4키로를 준다. 굵기가 큼직한 밤이다.

....화개장터에서는 2키로가 만원이다.

난로불에 구워서 배부를 만치 먹고 즐긴다. 캠핑의 묘미가 먹는 재미가 추가된다.


6시가 되지않은 시간부터 저녁과 맥주를 마시면서 즐겼는데 시계를 보니 9시도 되지않았다.

어제 있던 이웃들은 모두 철수를 하고 새로운 멤버 두팀이 들어왔다.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 팀은 평일임에도 아이들과 같이 와서는 한적한 캠핑장에서 자전거도 즐기며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깊은 밤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니 특별히 할일도 없다.

산행으로 피곤한데 잠이나 자자 싶어 9시전에 잠자리에 든다.

꿈나라로 빠져 실컷 잔것 같은데 눈을 뜨니 새벽1시,소변을 보고는 다시 잠자리로 든다.

전기장판이 뜨뜻하니 뒤척이다 다시 잠으로 빠져들어 아침7시에 기상하였으니 거의 열시간을 푹 잤다.

개운한 아침이다.

이틀간 즐거운 휴식처를 제공해준 피아계곡을 떠난다.

다시한번 이곳을 베이스캠프삼아 둘레길을 걸어볼 날을 기대해본다.

1970-01-01 09:00 2018-10-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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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는 백무동에서 세석산장이나 장터목을 오르는 계획이었으나, 캠핑장이 피아골이며 백무동코스는 올라본 적이있고, 피아골코스나 반야봉코스중 택일을 해야한다. 

캠핑장관리인의 안내는 당치마을을 지나 농평마을로 가면 반야봉을 최단시간에 오를수 있는 코스가 있다고해서 차를 몰고 산중턱의 농평마을을 구비구비 돌아 올라갔는데, 그곳 주민은 그복장으로는 어림도 없고 길도없으며,오르는데만 여덟시간이상을 예상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직전마을로 향한다.편도6km 왕복12km의 짧지 않는 피아골코스를 선택한다.

직전마을의 차가 올라 갈 수있는데까지 올라가서 주차를 하고는 바로 산행시작이다.

아직은 계곡에 단풍이 들지는 않고 있으나 단풍이 들기시작하면 장관이리라.

그래서 피아단풍이 지리산 십대명소 중 하나가 아닌가.

오르다보니 山紅,水紅,人紅의 삼홍소(三紅沼)이다.

이코스는 오르내리는 산객이 그리 많지는 않다. 두사람의 남자가 내려오면서 아침에 성삼재에서 올라 지금내려오는 길이라면서 내려오는 길도 힘이 무척이나 드는것으로 봐서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리 주의를 주어 나쁘지는 않지만 산을 다니다보면 격려의 배려가 더 많은 것을 자주본다.

상당한 거리가 남았음에도 얼마남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고한다. 실제로는 얼마남지 않은 것이 아니다.

힘든 상대를 위한 선의의 배려라고 해석하여본다.

드디어 피아골대피소. 화장실공사가 한창이다. 청정지역의 계곡옆에 위치하고 있으니 화장실의 오물을 커다란 플라스틱용기에 담고 그 용기를 넣는 케이스를 철골로 만들어 용기가 차면 헬기로 산아래로 운송하는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는 배려가 대단하다.

대피소에서 피아골삼거리는 2키로의 거리이나 거의가 오르막길의 된비알이다.

계단길을 올라 안부이다 싶으면 또 비알길이길 몇차례, 어느정도 산능성이 보이길 시작하지만  오르막길은 계속이 된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힘이 들 무렵 안부에 올라서면서 산객들이 보이길 시작한다.

군데군데 자릴잡고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중이다.

피아골삼거리다.

지리주능선에서 만나는 지점인 피아골삼거리이다. 세시간에서 십분이 부족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적당한 곳에 자릴잡고 허기진 배를 아침에 준비한 주먹밥으로 달랜다. 밥에 멸치볶음을 넣고 그냥 비빈것인데 꿀맛이다. 시장이 반찬인 것이다.

오늘이 휴일이라 주능선을 다니는 산객은 제법 많다. 종주를 하는지,일정코스를 오르는지 쉴사이없이 다닌다.

밥을 먹고는 삶은 밤과 과일을 먹는다. 지나치는 산객이 밤을 좀 달라고해서 주니 좋아한다.

종주길도 좋지만 이렇게 편도로 오르지 못한길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내년봄에 다시 종주의 길을 걸을때 오늘 걸은 이길이 생각나리라.

한참을 쉬고는 하산길로 들어선다. 내리는 길은 오를때보다는 수월하여 좋다.


 


 


코스가 길다보니 내리는 길도 쉽지는 않다. 대피소까지는 계단길과 경사가 심하고,대피소부터 계곡을 따라 걷는길은

바위투성이의 너덜겅구간이다.

걸어도 걸어도 쉽게 구간이 좁혀지지않는 느낌은 오를때는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고,내릴때는 안도감과 더불어

조금은 느슨해진 탓이 아닐까싶다.

오를때보다는 내릴때를 조심하여야한다.

오를때 마주친 내려오는 대피소공사를 위해 투입된 외국인근로자두명이 다시 올라오면서 만난다.

공기 좋은 산을 오르며 돈도벌고 좋지 않느냐고하니 다시는 같은작업을 하지않겠다고한다.

평소에 산을 다니지않은 사람은 무척이나 힘이 들리라.


드디어 계곡의 입구가 보이고 직전마을이 나타난다. 6시간에 걸쳐 12키로를 무사히 걸었다.

모든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지며 피아골 산행일정을 마친다.

1970-01-01 09:00 2018-10-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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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문의를 하니 와서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정하고 텐트를 설치하라고 한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에 피아골에서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다는 까닭에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으나, 본래는 이곳의 직전마을에서 오곡 가운데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한 데에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피밭골이 피아골로 변한 것이다.

연곡사에 수백명의 승려가 머물던 시절,식량이 부족하여 오곡중 하나이며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자라는 피(기장)을 심어 식량을 대체하게 하였고 이것이'피밭골'에서 피아골로 부르게 되었고 ,이곳 마을을 피직(稷)자,밭전(田)자를 써서 직전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지리십경중 하나로 피아단풍이 유명하다.

 

캠핑장을 들어가니 예약손님이 하나도 없다. 좋은 자리를 잡아 차를 세우니 관리인이 나타나 안내를 해준다.

글램핑,캬라반시설도 되어있고 사이트가 넓직하고 음용대와 화장실,샤워장등 시설이 상당히 좋다.

아마도 지금까지 다녀본 캠핑장중 시설이 가장 좋다.

관리도 잘되어 깨끗하게 정리되고 청소되어있다.

계곡옆에 자리잡고있어 여름철 물놀이도 좋을 듯하다.

천천히 텐트를 치기로하고 일단 피아골을 차로 올라가 본다.

골자기 마다 펜션과 식당등이 많으나 찾는사람이 없어 개장휴업이다.

더이상 차량이 올라갈 수가 없어 되돌려 내려오다 연곡사를 들려 이틀간 못한 백팔배를 올린다.

헬기소리가 요란하여 나중에 확인해보니 피아골대피소의 화장실작업용 자재를 실어나르고 있다.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 텐트를 설치한다.

이틀전 바람과 비의 경험을 하였으니 조금 더 견고하게 팩을 박아 고정을 시킨다.

이틀 연박을 생각중이니 더욱 그러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는 아구찜을 덥혀 안주로 술한잔을 기울이다 주변산책을 나선다.

캠핑장 위쪽을 걸어보니 길가에 떨어진 밤이 상당히 지금까지 본 밤보다 훨씬 굵다.

몇개를 주워 구워먹고 한가한 가을밤을 즐겨본다.



어둠이 깃드니 캠핑장엔 세팀만이 자릴잡는다.

우리와 부부한팀 그리고 술한잔을 나누면서 캬라반을 예약한 듯한 남자넷이다.

지리산 산수유막걸리와 쌀막걸리로 지리피아골의 밤은 깊어간다.

뱀사골에서 일박,피아골에서 일박을 하니 구례방향의 지리산은 어느정도 둘러본 셈이다.

이렇게 자연을 찾아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즐길 수 있음이 행복이요 즐거움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깨끗한 공기와 더불어 조금은 서늘한 기운이 심신을 상쾌하게 한다.

능선으로 해가 붉게 솟아오르고 또 하루의 일과가 시작이 된다.

오늘은 피아골을 올라 피아골 삼거리를 가거나 반야봉을 오르거나 둘중 하나의 산행을 계획한다.



1970-01-01 09:00 2018-10-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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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으로 이동하여 둘레길을 걷기로하고 면사무소에 물으니 둘레길코스를 잘 모른다.

아마도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관심도 없고 잘알지도 못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하기야 생업에 종사하는 일에 바쁘고,곳곳이 길인데 특별히 둘레길에 관심이 있으랴싶다.

안내책자를 보라거나 표지판을 보라고 일러준다.

 

지자체도 요란하게 홍보만 올리는데 열중이지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거나 코스를 관리하는데는 조금 소홀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정표 표지말뚝은 아주 좋은 것 같은데 갈림길이나 애매한 곳에 표식기를 달아 헷갈리지 않도록 사전에

안내하는 것이 부족하여 헤메일 경우가 있다.

햇살이 강열하고 길을 걷기가 쉽지않은데 도반은 시장하니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한다.

열두시도 되지않았는데 조금 더 가다가 보면 식당이 있겠지싶어 진행하다보니 도반은 짜증을 낸다.

여자의 마음도 몰라준다고....

수목원을 지나니 자세한 표지가 없어 물어보니 산길로 올라 재를 넘어야하고 두어시간은 걸린다고한다.

한시간정도이면 재를 넘어 다음마을로 이동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진행하였다간 욕만 진탕 먹을 것 같아 길을 되돌려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시켜 속을 채운다.

배가 부르니 다시 길을 걷기가 은근히 싫어지는 것은 같은가보다.

길을 되돌려 원점으로 회귀를 한다.

그래 가끔은 포기도하고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지리둘레길코스인 인월-금계구간중 상황마을에서 등구재를 지나 금계마을까지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가을 어느날이었고 여럿이서 재미있게 걸은 기억이 있다.

우리는 차라리 산행을 하는것이 나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시멘트포장길이나 도심길을 나오는 둘레길보다는 산행이 좋은가 보다.

오늘의 숙소를 피아골자동차캠핑장으로 정하고 먹을거리를 사서 피아골로 이동을 한다.

1970-01-01 09:00 2018-10-1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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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하여 아침을 차려먹고는 근처의 솔봉을 산책겸 오른다.

어제 저녁에 살짝 비가 내려서 공기는 더욱 신선하며 서늘하고 하늘은 청명하다.

호텔뒷편으로 산수유가 즐비한 언덕을 오르니 이곳저곳이 묘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지명이 묘재인 모양이다. 대나무 숲이 우거지고 조금 오르다보니 음양샘이라는 옹달샘이 보인다.

식수로 먹기에는 부적합한 한 것같은데 예전 도선국사가 발견한 것으로 주변산세가 음양이치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이 물을 먹은 연인들은 사랑을 이루고 부부는 백년해로를 한다고 안내판에 써있다.

조금 더 오르니 솔봉이다. 아마도 소나무가 많아서 솔봉으로 명명하였나보다.

맞은 편에는 정령치,만복대,묘봉치,고리봉이 연결되어 성삼재로 이어지는 지리의 능선이다.

오래전 그곳을 오르적이 있었는데 오르고 내리기가 쉽지않은 곳이었다.

일반적인 지리종주는 성삼재에서 중산리나 대원사를 이야기하나, 태극종주는 바래봉에서 만복대,고리봉을

지나 성삼재에서 주능선을 타고 대원사로 내리는 것이라 한다. 이코스는 상당히 힘이들고 준비할 것도 많아

3박4일은 잡아도 무척이나 힘이 들것같아 아직 도전을 하지못하고 있으며 아마도 실행이 어렵지 않나싶다.

솔봉은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한갓지며 조용하다. 이곳을 오르면서 산행으로 보아야 하나 싶은데

짧은 거리이나 봉을 오르니 산행기에 올리기로한다.

 



 


반대편길로 내리니 지리산온천지역이다.

이곳에도 길가에 밤이 떨어져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개를 까서 먹어보니 밤껍질이 텁텁하여 떨다는 느낌이 입안에 가득하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청명하고 길가의 산수유는 붉게 물들어간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후 다음행선지로 향한다.


 



 


 


 



1970-01-01 09:00 2018-10-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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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아 구례방향으로 달린다.

추위와 비에 젖은 몸에 시장끼가 도니 주변의 맛집을 찾는다.

얼큰뚝배기라는 음식이 있어 주문하였더니 해물이 푸짐하게 나오는 얼큰한 뚝배기이다.

새우,게,우렁,홍합이 가득하게 들어있다. 제주출신인 주인은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들며 신메뉴를 개발하여 선보이고 있다고한다.

맛있게 먹고는 저녁거리를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하고는 캠핑장을 예약하려 하는데,일기가 심상치 않을것 같다.

도반은 아예 숙소를 구하자고하여 k-hotel을 예약하고는 산수유마을을 찾는다.상위,하위마을과 반곡마을일대이다.

산수유야 이른봄에 온동네가 노랗게 물든 전경이 제대로인데 지금이야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아니,온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던 산수유가 붉게 익어가는 색다른 모습을 볼수가있다.

언젠가 찾았던 산수유마을의 전경이 어느곳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차를 몰아 수락폭포를 찾는다.지리산온천랜드인근으로 이번엔 수기리이다.

수락폭포주차장은 드넓은데 주차된 차량이 한대도 없다. 주차를 하고 마을길을 걸으니 길가에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이 뒹굴어 몇개를 줍는다.

폭포인근의 식당과 팬션들은 사람이 찾질않아 거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여름한철에는 인파로 붐볐을 것인데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썰렁하기만 하다.

아무도 없는 수락폭포를 둘러보는데 여름철의 이곳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조금은 상상이 된다.

물놀이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붐볐을 곳이 이젠 한산하다못해 적막감마져 느껴진다.


 

폭포는 우렁차게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제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얼어붙은 모습을 연출 할 것이다.

숙소로 들어가니 하늘을 맑고 날씨는 좋기만 하다. 캠핑을 할 것인데 괜히 숙소를 잡았구나 싶은데 이제와서 어쩌랴.

숙소에서 고기를 구워 술한잔을 마시다 얼핏 바깥을 보니 비가 내린다.

태풍의 영향으로 종잡을 수가 없는 날씨이다. 예보는 강수확율이 20%라 하였는데...

어쨌던 잡은 숙소이니 쾌적하게 수면을 취하다.
 

1970-01-01 09:00 2018-10-0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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