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회산행! 결코 적지않은 기록이다.

2000년에 접어들어 산행을 하면서 기록을 병행하기 시작하였고,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찾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이전에도 산을 찾지않은것은 아니나 가끔씩 시간을 내어 올랐을 뿐이고 이천년이 되면서 부터는 기록과 더불어 틈만나면 산을 즐겨 찾았다.

18년6개월이 흘러 800회를 돌파하였다.

생각같아서는 천회산행을 조기에 달성하고 싶지만 쉬이 이루어지는 기록이 아니다.

일년에 40회이상을 산행을 해야하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달에 거의 4회를 올라야 이룰수 있는 기록이다.

기록을 돌아보면 아득한 일이고, '아, 이런때가 있었지'하고 어렴풋이 생각이 나지만  고생과 더불어 웃지못할일,위험한일등이 많았던 산행이었다.

현재의 건강한 신체와 마음이 유지될수 있었던 것은 한회씩 누적되어온 산행의 덕분이고 모두에게감사한 일이다.

 


팔백회 기념산행을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한적한 주중에 북한산을 찾기로 했다.

집을 나온시각이 08시. 아침출근 버스와 전철을 타면서 출근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노는 사람이 바쁘고 복잡한 시간에 더욱 붐비는 교통수단을 만들었음을 미안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드는것이다.

두시간이 걸려 북한산성입구에 내린다. 효자동입구에서 내릴까하다가 그래도 익숙한 곳이 나으리라는 생각에...

평일이지만 산을 찾는 사람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이 보임은 그래도 현업에 종사하는

남성이 많음이리라.


 


둘레길코스를 걸어오르니 한사람도 보이질않는 한적한 코스이다. 원효봉으로 길을 걲어 숲길로 오른다.

찾을 때마다 한적한 코스지만 오늘따라 더욱 그렇게 보인다. 성하의 계절, 여름의 태양은 뜨겁게 대지를

비치고 숲속길을 오르지만 계속되는 경사에 호흡이 거칠어지며 땀이 연신 흘러내린다.

언덕에 올라 발아래 내려보이는 풍경에 빠져들며 물한모금을 마시고는 원효암에 잠시들려 합장을 한다.

조금더 오르니 원효봉.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눈앞을 가로막으며 염초봉이 눈앞이다.

계곡건너는 의상능선이 눈앞에 펼쳐지고 비봉능선이 시야에 걸려있다.


오래전 즐겨 찾았던 상운사대웅전에 참배하고 위문으로 오른다.

산성입구에서 보았던 여성일행이  오르는것을 보았는데, 어디로해서 오르는데 이제야 이곳을 지나치는지

궁금하지만 지나친다.

흐르는 땀을 씻으며 쉬지않고 오르다보니 위문이다.

처음 산을 찾을 이십년전의 체력은 몇번을 쉬어야 오를수 있는 것이었음을 비하면,세월은 흘렀지만 체력도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호흡이 좋아지고 인내력이 많이 늘어난 것도 있으리라.

위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백운대를 오른다.

백몇십회를 북한산을 찾았지만 백운대를 오른 기억은 그리 많지는 않다.

워낙이나 산이 크고 웅장하니 꼭히 백운대를 오르지 않더라도 다양한 코스를 즐길수 있기때문인가 싶다.


백운대를 오르는 길은 데크를 설치하여 조금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도록하였다.

드디어 백운대.

미세먼지가 아니라면 깨끗할 시계가 흐릿하지만, 멀리 감악산뿐만 아니라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다.

쉬지않고 산객이 올라오고 외국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독일인여성과 아시아계외국인도 간편한 차림으로 올라와 열심히 사진을 찍고있다.

인수봉을 내려다보는 그늘에서 간단히 김밥으로 속을 채우고는 위문을 경유하여 용암문방향으로 내려선다.


 



용암문에서 좀더 진행을 하려니 시간상문제도 있고해서 용암문을 통과하여 내리는 길로 하산코스를 잡는다.

긴코스를  생각하고 떡과 부침개를 준비하였는데 손도 데어보지 못하고 하산이다.

오랫만에 도선사를 들려 삼배하고는 차도옆을 걸어 우이령입구까지 내려오다.

그사이 우이동에는 경전철이 개통되어 신설동까지 쉽게 접근할수가 있다. 

무더위속에 근6시간을 산속에 머물렀다.

기록산행이 천산을 넘어가는 것이 당면한 목표이고,그것을 달성하면 다시 이천산의 목표를 세우리라.

그러나 기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1970-01-01 09:00 2018-06-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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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실 두번째탐방인 선정릉이다.

선릉역은 자주들렸던 곳이고 오래전 언제가는 이곳에 능이 있구나라고 느꼈을뿐,누구의 능인지도 몰랐고 실제 능역에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선릉은 조선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며,정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능이다.

 

재실의 뒷편에 탐스럽게 매실이 열려있다. 허락하에 한알을 따서 먹었더니 시큼한 맛이 온입안에 가득하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언덕이 성종,오른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은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13세에 왕위에 올라,제위기간중 '경국대전','국조오례의'를 반포해 조선의 법과 예를 완성하고,조세를 정비하여 관수관급제를 실시해 백성의 부담을 줄였으며,홍문관을 설치하고'동국여지승람'등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성종의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무석인,석마,장명등,혼유석,망주석,석양,석호등을 배치하였다.

정현왕후의 능침은 병풍석만을 생략하였고 성종의 능침과 같은 형태이다.



정릉으로 이동하는 구간의 소나무숲이 아름답다. 이젠 개발이 되어 금싸라기 땅이지만 오래전 왕조시기에는 산과 구릉이 있는 벌판이거나 야산이었으리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이 너무나 바뀌고,아름다운 자연이 황폐한 문명의 이기속으로 개발되어 가는것이다.

능역에서 바로 보이는 것이 숙박시설과 유흥시설이 즐비하니 지하에 묻힌 성종과 중종대왕도 통탄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릉은 중종의 단릉이다.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진성대군에 봉해졌다가 중종반정으로 연산군폐위됨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

인쇄술의 발달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고,비변사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고 한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후 두번째왕비 장경왕후의 희릉서쪽언덕에 능을 조성하고 정릉이라 하였다가,세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능을 옮겼다.문정왕후 본인이 중종과 묻히기를 원하여 옮겼으나,정릉이 홍수피해가 잦자 문정왕후의 능은 현재의 태릉에 조성되었다한다.


강남도심의 한복판에 아름다운 능이 조성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은 좋은일이나 ,고개를 들면 호텔과 음식점등 숙박시설과 유흥업소가 난립하니 그렇게 보기좋은 일은 아닌것 같다.

능이 먼저 조성이 되었고, 유산에 대한 관리가 잘 진행되었더라면 좀더 아름답게 유지할수 있었으련만,개발이 최우선이던 시기에 그러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리라.

그러한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도심의 한가운데 아름다운 숲을 가진 능이 잘 보존되고 있음도 다행스런일이다.

흐리다는 일기예보에 모자와 복장등을 갖추지않고 참석하였는데,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둘러보기가 쉽지 않았으며,꾸준히 참석하는 학습자들의 진지한 태도에 배울점을 많이 느낀일정이었다.

1970-01-01 09:00 2018-06-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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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西五陵).

한양을 중심으로 서쪽에 다섯 기의 능이 있다하여 붙여진이름이라한다.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敬陵),8대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昌陵),19대 숙종과 두번째 왕비 인현왕후,세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숙종의 첫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翼陵),21대 영조의 첫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이 그것이다.

그밖에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의 순창원과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수경원,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 희빈장씨의 대빈묘가 있다.

 


 

능은 왕과왕후,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말하며,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왕의 후궁이나 종친)의 무덤을 말하고, 그외 왕족의 무덤과 폐위된왕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한다.

오래전 군복무시절에 교육을 받았던 곳이고,최근에는 작년3월 잔설이 남아있는 이곳을 둘러보고는 서울둘레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퇴직무렵 신청한 인문학강좌의 일환으로 조선왕릉의 강좌가 있어 신청하여 첫번째 실내강의는 출석치 못하고 두번째의 야외강좌로 듣게 된 것이다.

두시간여에 걸쳐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매표소입구에 도착하니 약속시간인 10가 조금 지난시각이다.

다행히 강좌는 아직시작전이어서 체크를 하니 바로 입장하면서 강좌가 시작된다.

수강생은 20여명이 조금넘는 인원으로 대부분 여성들이 많고 남자들도 7~8명정도이나 머리가 희긋한 연세들인 것 같다.


 


첫번째 강좌를 듣지 못하였지만 배포한 인쇄물을 보니 왕의장례식과 그에 따른 용어의 해설,세계문화유산과 조선왕릉의 분포도 및 그 특징,그리고 왕릉의 구조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유네스코 등재된 세계유산은 2015년 기준으로 1,031건으로 문화유산802건,자연유산 197건,복합유산이 32건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문화유산11개와 자연유산1건이 등재되었다고 한다.

 

또한 봉분형식에 따라 단릉,쌍릉,합장릉 및 동원이강릉(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동원상하릉(한언덕에 왕과 와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능),삼연릉(한언덕에 왕과 두명의 왕후봉분 세기를 나란히 조성한 능)의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더운날씨아래 명릉과 순창원,경릉을 둘러보고 대빈묘에 이르니 예정된 2시간의 강좌가 종료되고 해산이다.

대부분의 수강생은 퇴장을 하고 몇몇사람들이 홍릉과 창릉을 찾는다.

작년에 둘러보았지만 다시한번 홍릉과 창릉을 둘러보고는 서어나무길을 한적하니 걷는다.

유월의 한낮기온이 무척이나 덥지만 서어나무길을 돌아 소나무길을 걸어나온다.

언제다시 이길을 걸을 수가 있을까하는 심정으로 걸으니 매걸음이 힘들지 않고 발길하나하나에 애착이 간다.

능을 벗어나 근처식당에서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는 서오릉안에 있다가 이전하였다는 수국사를 들려 삼배하고는 귀가길에 오른는 도중 동창이 저녁에 술한잔을 제의해와 귀가후 샤워를 하고는 다시 홍제동으로 걸음을 옮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하루이다.


 


 

1970-01-01 09:00 2018-06-2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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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눈을 뜨고는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는 주흘산을 오르기로 하였는데,날씨가 흐리고 기온이 떨어지니 서늘하고 준비도 하지않았다는 도반의 말에 새재길을 걷기로 한다.

하기야 팔당댐 120키로를 라이딩하고,다음날 고향으로 내려가 매실을 따고 다음날 산행을 한다는 것은

체력소모가 대단히 심하고 무리한 일이다. 그렇다고 걷는 것도 힘들지 않지는 않겠지만...

도립공원입구에 들어서니 이른아침이라 한적하다.

아침식사를 할 수있는 식당을 찾아 청국장으로 속을 채우고는 준비를 하여 걷기시작한다.


 


입구부근에 행사준비를 하는 곳이 있어 들여다보니 모교인 고교의 개교60주년 기념 산행대회를 한다.

카톡으로 행사를 알리는 것을 보기는 한것 같고 참석하기가 어려워 관심있게 보질 않았는데,

우연의 일치로 행사를 참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른시각이라 대회장은 썰렁하고 준비하는 사람몇명만이

보일뿐이다. 걷기를 종료하고 잠간 얼굴을 비치고 가야지 생각하고는 길을 걷는다.


아침에는 썰렁하고 도반은 춥다고 하였는데 길을 걸으니 구름이 끼어 햇빛도 비치지 않고 적당한 날씨이다.

백두대간마루를 넘는 새재길은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중심으로 사회.경제.문화등 문물의 교류지이자 국방상의 요충지라 한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가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억새가 우거진 고개'등의 뜻이 담겨있고,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꿈과 백성들의 삶과 땀이 서려있는 곳이라한다.

예전에도 몇번 찾기는 하였지만 조금씩 걷기만 하였고,제대로 걷기는 처음이다.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새재길을 햇볕을 피해걸어가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3관문을 오르고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재넘어의 고사리마을까지 걷기로하고 옛길을 내려온다.

중간쯤에 부산에 살고있는 동기가 올라오는 것을 반갑게 만나 해후하고는 행사장에서 보기로하고

길을 걸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있다.

장년대부터 어린학생까지 걷기가 좋은 길이다.반대편에는 휴양림과 더불어 숙소가 있어 거기서 머물다가 오는 사람들도 있는가보다.

마을입구까지 와서는 길을 되돌린다. 다시 3관문을 오르니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다.

빨리 걸을을 하여 2관문에서 잠시휴식을 취하고 다시걸으니 이젠 힘이든다.


 


 


행사장에 도착하여 졸업기수별로 설치된 천막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아직 시간이 일러 도착하지 않았나 싶은데,도반은 그냥가자고 한다.

하긴 아무도 없는곳에서 기다리기고 그렇고하여 아침식사를 한 식당으로 가서 비빕밥한그릇을

맛있게 먹고는 귀가길에 오른다.

한시간여를 달렸는데 도중에 만난 동기가 전화를 하여 왜오지 않느냐고 한다.

일찍내려와 일이있어 먼저 출발했다고 양해를 구하고는 귀가길에 오른다.

항상 밤에 도착하던 집을 해가 떠있는 저넉에 도착하여 정리를 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1970-01-01 09:00 2018-06-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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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후 첫날이다.

전날과음으로 조금은 숙취의 기운이 있으나 라인딩을 위해 안양천을 나왔다.

시화생태공원방향으로 가려하다가 팔당댐방향으로 달리고 싶어져 방향을 한강으로 잡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적당한 날씨에 공기도 시원하고 라이딩에는 그만이다.조금의 구름까지 드리웠으니 더욱 좋은 환경이다.

광진교를 지나서부터 처음달려보는 길이다.

강동을 지나 하남을 돌아서니 이왕내친걸음,팔당댐까지 달려보기로 한다. 혹 귀가가 늦으면 도반이 조금 성질은 내겠지만....

팔당대교를 지나니 우측에는 검단산이 좌측에는 예봉산자락이 짙푸른 기운을 더하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두군데의 산을 찾은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한가로운 평일 쉬엄쉬엄 종주도 하면서 즐겨보아야겠다.

 


눈앞에 팔당댐이 펼쳐지고 조금더 달리니 터널이다.터널을 지나 조금더 운행하여 팔당호가 바라보이는 곳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라이딩코스 옆의 전원주택이 한가롭고 앞마당을 조성한 잔디밭이 운치가 있다.저런 곳에 얼마간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른것은 두번째이다.

이길로 계속 달리면 양평과 여주등 4대강 종주길인데, 오늘은 여기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하반기나 도반이 어느정도 라이딩에 익숙해지면 한가로이 시간을 내여 부산까지 종주를 계획해본다.

쉬엄쉬엄 달리면서 경치도 구경하면서 피곤하면 쉬었다가고 해저물면 자고가면 되는 길이다.

걸맞는 체력과 준비가 수반되어야 겠지만...


 


댐아래 식당가에서 초계칼국수를 시켜먹는다. 조금 더울 것 같아 냉으로 시켰더니 양도 많거니와 국물이 너무나 차거워 먹기가 쉽질않다. 삼분의 일은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귀가길을 강북으로 선택하여 남양주를 달려 구리를 지나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주행거리가 80키로를 넘어서니 히프가 아파 무척이나 힘이든다.

장시간을 라이딩하니 골반뼈가 안장에 부딛히듯 하면서 얼마나 아파오는지 수시로 히프를 들고 타면서 통증을 완화시켜본다.


 

 

 


잠수교를 건너 다시 강남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여의도를 지나 선유도부근에서 휴식을 취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베낭을 옆자리에두고 그냥 출발하여 성산대교 못미쳐 아차싶어 길을 되돌려

돌아오니 다행히 베낭은 그대로이다.

신정교에 다다르니 아침에 완충한 핸드폰이 완전방전되어 전원이 꺼져버린다. 111키로.

아침에도 늦게 앱을 가동시키고,신정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있으니 거의 120키로를 달린셈이다.

8시간20분여 시간이 소요되면서 120키로를 주파하였다.

라이딩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거리를 달린셈이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4대강종주계획을 차분히 세워 빠른시일안에 달릴수 있도록 준비해봐야겠다.

아픈 히프는 3일후에도 얼얼하다.




1970-01-01 09:00 2018-06-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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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이 결정되었으니 향후의 버켓리스트중 하나인 캠핑카를 장만하려 오전에 캠핑카 매물과 제작업체를 방문하였다.

중고 캠핑카는 차량의 상태도 문제지만 각종기구나 장비들의 적합성여부가 확인되지않아 선뜻 내키지를 않는다.

캠핑카 제작업체는 차량을 입고하고 주문을 하여야 제작이 가능하고, 그 기일이 한달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한번 결정이 되면 장기간 사용할 것이니 마음 먹기가 쉽지않다. 

더군다나 캠핑카를 사용한 경험이라도 있으면 이리저리 판단하고 결정할수가 있으련만...

제일 좋은 것은 렌트로 사용이라도 몇번 해보고 불편사항이나 요구사항을 수렴하면 좋을 것인데

버스로 제작된 캠핑카는 렌트도 없는 것같다.

차선책으로 좋은것은 동일한 모델은 아니더라도 다른 캠핑카를 이용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군데를 둘러보고 시화공단의 제작업체를 가려는데 사위가 연락을 했다.

오늘 아라뱃길유람선을 타자고 했는데,저녁시간의 요금은 너무부담스러우니 오후3시 배를 타자고 한다.


 

 

 


시화공단일정을 연기하고 김포부근에서 삼계탕으로 식사를 하고 김포여객터미날로 달린다.

시간전에 도착을 하여 아침6시부터 일어나 피곤한 몸을 잠시 눈을 붙여 휴식을 취하고는 터미날로 갔더니 이미 승선중이다. 사위는 시각을 착각하여 3:30분 승선으로 알고있으니 연락하여 빨리오게하고는 기다리니 시간은 촉박한데 도착하지를 않는다.

겨우 출발직전에 도착하여 티켓을 발급받아 승선을 한다.

한겨울 아라뱃길을 라이딩할때는 거의 운항하지 않거나 빈배로 다니다시피 한 유람선이 하절기라그런지 승객이 많다.

출발하자말자 마술과 공연등으로 주변을 시선을 둘 수없게 만든다.

편도의 코스를 마칠무렵,노래공연으로 이어지면서 2층과 3층으로 올라 아라뱃길과 주변을 둘러본다.

아라8경중 폭포과 전망대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여름밤의 코스는 선상식사와 더불어 불꽃축제가 진행되면서 승선요금이 꽤나 비싼편이다.

한시간여의 코스를 돌아 원점회귀를 하고는 배에서 내리니 김포의 아웃렛에 조그마안 물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린애들이 물에 들어가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손녀도 얼씨구나 하고는 옷을 입은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나올생각을 않고는 한시간여를 놀고있다.

간신히 공연단을 따라 나온 손녀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한다.

예전에 즐겨먹던 곱창집을 찾았더니 먼저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시장변의 다른 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는 근처공원에서 조금 놀다가 귀가하여 피곤한 몸을 누이다.

 

 

 

 

 
1970-01-01 09:00 2018-06-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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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0년대의 고교야구의 열풍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프로야구에 버금가는 굉장한 관심거리이었던 추억이있다.

졸업한 모교도 70년대 중반경 야구단을 창단하여 야구를 시작하였는데,그렇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군복무시절 외박인가를 나왔다가 동대문운동장을 찾아 모교시합의 응원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의 상황.


 

 

 


 '1979년 봉황기 대구고와 서울고의 경기. 9회초까지 서울고가 13:9로 대구고를 이기고 있었는데, 이미 승세가 기울어졌다고 판단해서 캐스터와 서울고의 승리 요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캐스터가 "서울고의 승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서울고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뭉친 반면 대구고는 너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선수들이 안일하게 경기에 임했다"고 마무리를 지으려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경기는 대구고가 9회말에 뒤집어서 14:13으로 승리하고 말았죠.' 


대세가 기울어 졌다고들 판단한 9회말 마지막공격에서 대거5점을 내면서 기적적인 9회말 대역전극을 만들어 놓으니 그야말로 응원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이미 졌다고 생각한 경기가 막판에 뒤집어졌으니,현장의 응원단은 뒤집어진것이다.

술을 부어마시고 기분이 좋아 또 마시고....아마도 부대에 복귀시간이 늦었고 음주까지한 상태라 많이 시달린것 같은데,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회사에 근무를 하는데 카톡이 왔다.모교의 4강전응원을 가는데 같이 갈사람은 오라는 것이다.

며칠전에 시합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별반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또한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별반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던 참이다.

7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이다.

마침 경기장이 가까이에 있어 마음이 동해 퇴근후 경기장을 찾았다.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니 관객도 많이 줄어 빈자리가 더욱 많은 현실이다.

반갑게 동창몇명을 만나고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응원을 하는데, 선제점을 내주었으나 6회 대거 5득점을 하면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실로 오랫만에 찾은 야구장이고 동창들의 만남도 좋았지만, 목청껏 모교를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수 있었던것도 좋았고 거기에다 승리까지 하였으니 더욱 힐링이 된 하루였다.


 

 


늦은 시간이고 멀리까지 운전해야하는 동창들과는 내일 결승전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결승은 좀더 먹거리를 준비하여 간만의 기회를 누려보아야겠다.

동창들의 얼굴도 다시한번 볼것이고 결승이니 더욱많은 친구들이 올 것이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후배들을 힘껏 응원하는 하루밤을 또다시 가질것이다.

1970-01-01 09:00 2018-06-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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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후 32년만에 만나보는 동기들과의 산행겸 회합이다.

왜 입학으로 기준을 삼는가하면 일,이학년을 주로 같이 다녔고 그후로는 입대와 복학등 서로의 얼굴을 같이 보며 생활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서로 맞질 않았다. 

정확히는 입학후 이년정도를 같이 다니고는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였다.

워낙많은 동기들이라 같이 수업을 하지않은 친구들의 얼굴을 잘알지는 못하고, 삼십년만의 해후라

반가운 얼굴도 많지만 생소한 얼굴도 많다.

삼십년만에 만나보는 동기들의 얼굴은 세월의 흐름만큼 얼굴에 주름과 흰머리와 벗겨진머리등 외모는 육십을 넘은 초로의 형태이나, 마음은 다시 그시절로 돌아가니 이십대의 청춘이다.

 

 

 

 

 


사당에서 합류하여 인사를 하고는 차를 달려 화양구곡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은 시각이다.

도시락과 음료등 준비물을 지급하고는 산행팀과 트레킹팀으로 갈라 이십여분을 계곡길로 오른다음

산행팀은 등산을 시작한다.

쾌청한 날씨지만 미세먼지가 조금있어 시계가 흐릿함을 정상에 오르기전까지는 느끼지 못하였다.

구십년도초반 처가식구들과 큰동서가 청주에 살고있을 시절, 화양구곡을 한여름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폐차직전의 봉고를 빌려서 비포장길을 달려 찾아온 계곡은 사람이 없고 무척이나 외진곳이었다.

큰동서가 준비한 개고기를 끓여 보신으로 먹고는 수영을 하면서 보냈는데,새벽에는 추워서 덜덜 떨면서 장작불을 지펴야했다. 일박이일인가를 재미있게 보낸것이 아득한 추억속의 기억이 되었다.

 

 

 

 

 


산길로 접어드니 초반부터 경사지이다.

이십여분을 오르다보니 후미에서 도시락을 먹고 가잔다.

능선에나 오르고 먹자고 하였더니, 저녁이 네시에 예약이 되어있으므로 지금 먹어야 한단단.

초입에서 도시락과 막걸리를 한잔마시고 오르려니 더욱 힘이든다.

두어번 땀을 흘리고 나니 안부.다시 산길을 1키로정도 걸으니 정상이다. 

도명산(道明山).속리산 국립공원의 일부이고 정상에 서니 멀리 속리산자락이 바라보인다.

발아래는 푸른 숲의 산군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조금은 흐리지만...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는 인증샷을 찍고는 하산길.

 

 

 

 

 


세개의 마애석불을 지나 오름길과는 다른방향이다.

내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나이가 나이인지 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열심히들 일하면서 살았으니 이제부터 인생을 즐겨야하며, 그럴려면 건강이 제일이라고...

중간쯤 맑은 계곡에서 탁족을 하면서 피로를 풀어본다.

조금더 내려오니 화양구곡을 흐르는 물은 상류에서 무엇이 혼합되어선지 맑은 물이 아니고 흐리다.

나중에 조용히 다시한번 이곳을 찾아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걷다보니 어느새 예약한 식당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막걸리잔을 기우린다.

어느정도 취했다 싶어지니 자리가 비워진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대구,대전팀과 작별을 하고 귀가버스에 오르니 상경때까지 노래방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입력하지않아 기회가 넘어가 버리고 총무는 모두하라고 난리지만 

취중에 제대로 지켜질리가 없다.

사당에서 한잔 더하자는 것을 애들이 와있어 가야한다고 귀가버스를 타고오니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정도로 취했다.

 

 

 

 

 

 

1970-01-01 09:00 2018-06-0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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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후 집에서 쉬다가 어찌하여 취업이 되어 현직장을 다닌지도 14개월이 지나간다.

사실은 퇴직후 세번째 직장이 되는셈이다.

한군데는 인천공항을 다녔는데 3교대 근무라 출퇴근도 문제이고 무엇보다 퇴근이 일정치 않으니

노년에 떼돈을 벌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 다음직장이 오라고 요청이와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출근을 요청한 직장은 보름이 지났을까쯤에 회사와 잘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퇴직을,그것도

달랑 문자하나를 밤에 보내온 것이다.

익일 정리할것도 있고해서 출근하여 대표와 면담을 요청하였더니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길래 그냥

나와 버렸다. 선배이기도 하고 업무의 진행과정에서 허락을 받아야 함에도 독단으로 처리하여

그런가보다. 자사 제품구입고객의 제품이 고장이나서 입고되어 장기간 처리하지않은 것을 수리하여

송부하였더니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아마도 단종모델이니 A/S보다는 신제품을 팔려고 유도하였는데 그것이 성사되지 않으니 그런것 같다.

 

 


집에서 그냥 쉬기는 그렇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다보니 현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단순히 이력서만 내었으면 당연히 취업이 되지않았을 것이데,전화도 하고 면접을 보자고 이야기하여

면접이 성사되고 취업이 확정되었다.

이제 일년하고도 두달이 경과되었고,그렇지 않아도 금년말정도 퇴직을 마음먹고있었는데,마침 딸아이가

교통사고가 나고 후유증이 있어 옆에서 도와주어야 할 입장이라 퇴직을 결심하였다.

퇴직을 통보하였더니 근무조건등을 개선할테니 재고하라면서 후임자를 뽑으려 하지않는것을 

강력히 요청해 인수인계 후 정리하는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관리직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후 현장직으로 근무하면서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많았다.

우선 경험해보지 않던 일을 하는것이 쉽지는 않았다.

머리는 가벼울지 몰라도 몸은 피곤해지는 것이 현장직이다.

그리고 직원들이 아랫사람 부리듯 이것저것 요청을 하니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않는 일이다.

개념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그런사람이 하나둘인가...

 


이제 맡은일도 어느정도 숙련이되고 나름대로 시간적인 여유도 가질 위치가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조직이 잘 갖춰지지 않으니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비젼이 없다보니 조직에 대한 미련이 없는것이 문제이다.

물론 경영자입장에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가 있다.

경험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분야가 많다보니 그저 하던일만 열심히 성실히 할 수밖에 

없다. 한달한달을 정신없이 살아가야하다보니 미래에대한 구상도 전략도 생각할 여력이나

경제적인 여유도없다.

그러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시스템이 세팅되어 조직이 일을 하게 하여야하는데 그렇지 않은것이 문제인것이다.

 



학교를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십여년을 근무후 자영업을 꿈꾸며 퇴직후,많은 중소기업을 전전하며다녔다.

자영업,동업,GPS업체,모뎀업체,보험업,정보통신업체,소프트개발업체,운전직을 전전하다 

알찬 중소기업에 취업이 되어 14년을 다니고 정년후 2년을 더 근무하다가 정리하였다.

그후 노년에도 3군데를 다녔으니 화려한 직장전력이다.

이제 모든것을 내려놓고 가족들을 돌보면서 인생3막을 보람있고 재미있게 보내야겠다.

여행,산행,캠핑,트레킹,한달살기체험,전원생활,단기출가등 할일은 많고 인생은 짧다. 

1970-01-01 09:00 2018-05-3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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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종주후 월요일을 출근하고는 퇴근후 바로 차를 몰고 홍천으로 고고씽이다.

정말 좋은 체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일이다.

사위가 홍천에 글램핑을 예약해 놓았다고해서 용인의 약속을 취소하고는 저녁8시 홍천행이다.

시간이 늦어 차량의 정체는 그리심하지는 않으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연료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가슴을 졸이면서 간신히 가평에서주유를 하고는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시골길이다.

인적이 끊어진길.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니 너무 적막한 거리라 섬뜩하기도 하다.옆지기는 계속

서행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인적없는 길을 서행으로 언제 도착하라는 건지..

목적지부근에서 내비가 안내를 하지못해 조그만 다리를 건너니 길은 막히고 잘못들어왔다.

차를 돌릴수도 없어 후진이다. 수량이 가득한 홍천강을 후진으로 건너니 조그만 좌측길이란다.

 

 

 

 

 

 

고기를 굽는다고 부산을 떨고는 졸리운 손녀를 재우고는 담소시간.

세월의 흐림이 너무도 대단하여 우리시절에는 상상치도 못하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적 부모에 대한 서운한 이야기등..

거식증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딸아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주고 마음도 동화하려고 노력한다.

노년에 다니는 직장도 무슨 의미가 있냐싶어 부부모두 퇴직을 결심하고 딸아이 옆에서 

지원해 주려고 한다.

처음에는 무엇이 이아이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들었는지,왜 그런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나가는 것이 치료의 방법이라니 상황을 들어보면

어느정도 이해도 생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사람들이 직면해있는 문제이다.

앞으로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오월의 강가의 밤은 무척이나 춥다.

아니 춥다기보다는 어깨가 시릴 서늘함이다.

이층 침실로 올라가 누우니 전기장판으로 바닥은 뜨근한데 공기가 서늘하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이미 날은 훤하게 밝았고 일찍일어난 손녀덕에 더이상 누워있을수가 없어 일어나니

간밤의 어둠이 걷히고 온통 다른 세상이다. 푸르른 신록과 며칠전 내린비로 수량이 불어난 강물,

맑은 하늘이 드높다.

간단히 아침을 준비하여 먹고는 주변 산책을 나선다. 다리를 건너 강넘어 낚시하는 사람들 구경도하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한시간여 산책을 하고오니 사위와 딸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있다.

과일을 먹고는 벤치에 누워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는 체크아웃을 한다.


 

 

 

 

 

 

 

 


멀리 홍천을 왔고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이니 유명하다는 수타사를 가보기로 한다.

같은 홍천지역이지만 수타사까지는 30여키로를 달려야하는 거리이다. 국도를 한가로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달리다보니 수타사부근인데 석탄일이라 방문객이 무척이나 많은가보다.

경찰이 군데군데 교통정리를 하고 사찰에서 멀찌기 마련된 주차장이 빼곡하다.

다행히 SUV차량은 통과시켜주어 사찰내 임시로 마련한 산자락의 주차장으로 안내를 해준다.

초파일답게 사찰내에는 붓글씨쓰기,등만들기,나무에 색칠하기등 각종체험행사와 곳곳에 떡을 준비하여 먹을 수있게 하고 비빔밥과 아이스크림등을 제공한다.

대웅전에 들려 삼배를 하고는 손녀는 나무에 색칠하기와 연등만들기를 체험하고는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다.


 

 

 

 


사찰을 출발하여 삼십여분을 달리니 홍천의 먹거리촌이다. 쌈집을 목적지로 찾았는데 마침 공사중이라

유명하다는 화로구이집들어갔다. 말이 식당이지 그야말로 기업이다. 넓은 정원에 갖가지 화초를 가꾸고 

각종 볼거리와 놀거리를 구비하였고 본식당외 커피숍과 아이스크림가게,맥주집등등 부속 매점도 많다.

삼십여분의 순번을 기다려 고추장양념과 간장양념의 화로구이를 먹어보니 명성에 걸맞게 맛이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이유가 있는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맞나보다.

퇴직을 하면 이년정도는 딸네집근처에서 전세를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결론을 내고는 딸네는 평택으로

우리는 귀경길로 들어선다.

차량정체가 심해 세시간정도가 걸려 귀가하여 백팔배를 하고는 잠자리에들다.

 

 

 

 

 

1970-01-01 09:00 2018-05-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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