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아침에 회원들과 테니스 시합을 하면 운동은 물론 덕담과 웃음이 오간다. 여성회원들이 가벼운 먹을거리도 갖고 오니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석이조 (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 오조 정도는 된다. 이런 날 아침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전화 한통이 날아들었다. 예전에 함께 운동하던 K씨가 자신의 아내가 이침에 사망했다는 비보다. K씨는 55년생이니 아직 60대 중반이 못되었고 그의 아내는 이제 겨우 60대 초반나이에 들어섰을 나이다.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 가보니 K씨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반쯤 넋이 나가 멍하니 앉아 있다. 힘없이 아주 수동적으로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은 어젯밤에도 아들하고 밤 열두시까지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침에 코피가 나는데 멈추지 않는다고 하여  119 구급차를 불러서 대형병원으로 기는 도중 절명했다고 한다. 이미 죽어서 병원에 왔기 때문에 최종 사인(死因)은 '불명'으로 기재되어있다고 한다. 이런 허망한 일이 어디 있나!

    

남편이자 상주인 K씨도 더 이상 사망원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고 자꾸 물어본다는 것도 고문에 가까운 질문으로 보여 더 묻기가 어려웠다. 문상 간 우리 일행들이 모여서 과연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추리형식으로 추정해 보았다. K씨는 공기업에서 퇴직 후 모텔의 관리인으로 취업하여 대부분의 주야 시간을 모텔에서 먹고 자고 지낸다. K씨의 아내는 착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 일에 매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고 있다. 이런 환경으로 남편이 집에 없으니 아내는 식사를 부실하게 먹거나. 라면 등으로 대충 때우거나 건너뛰기도 하면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들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주위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보면 남편이 있고 없고 에 따라 여자의 식사수준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옆집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티격태격 부부 싸움도 하지만 늘 시장을 봐오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남편인 할아버지가 죽자 늘 빈손으로 집으로 들어오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간다. 보살펴줄 사람도 없고 간섭할 사람도 없으니 대충 먹고 대충 지내는 것 같다. 젊은 여자들만으로 생활하는 방을 본 적이 있다. 스스로 생활하는 금남의 집이라서 그런지 옷가지가 여기저기 방구석에 널 부러져 있고 청소 상태도 불결하여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보호해주기도 하고 눈치도 봐야하는 가족이 함께 살지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생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퇴직하고 제2의 직장은 금여가 적어도 근무조건이 나빠도 나이든 나를 채용 해주는 것도 고맙지하고 감지덕지 한다. 평생현역이라는 말도 듣기 좋고 월 100만원의 수입은 은행에 10억 가까운 돈을 정기 예금한 것과 같다며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요구에 K씨처럼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렵지 않는 은퇴자도 일자리에 내 몰린다.

    

나이든 남편이 일을 하니 나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아내도 봉사활동이나 싸구려 허드렛일에  매달린다. 남편이 어렵게 돈을 버는데 나만 잘 먹을 수는 없다는 자격지심에 절약이 도를 지나치어 굶기까지 한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사는가! 가족들에게 유언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는 것은 비극이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 없이 무조건 일만하는 것도 문제다. 나이에 맞게 적당하게 일하고 영양보충에 돈도 쓰면서 인생을 즐겁게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1970-01-01 09:00 2017-12-24 11:10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아들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며느리가 급성 맹장염이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 셋을 당장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시 일산에 살고 있는 아들네는 요즘 보기 드물게 애국자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가 셋이다. 맨 위의 손녀가 7살이고 그 밑이 네 살 손자가 있고 그 밑에 두 살 손녀가 있다. 하나같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급한 김에  수원에 살고 있는 딸한테 전화를 했다. 딸은 전업주부이기는 하지만 거기도 돌이 갓 지난 아들이 하나있는데 움직이려니 기저귀, 우유병 등 짐이 한 짐이고 밖에는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만 하고 있다.

    

아이들의 할머니인 아내는 몇 달 전에 새로 얻은 직장에 나가고 있는데 맡은 일이 몇 사람이 서로 팀을 짜서 일을 하기 때문에 혼자 빠지기가 아주 곤란하다. 결국은 불똥이 할아버지에게 까지 튀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직장에 나가야하는데 휴가절차를 밟아야 하고 무엇보다 아들의 눈에 아버지가 아이 양육을 제대로 할지 믿지 못하는 눈치다.

    

결국 할머니인 아내가 직장에서 눈총을 받더라도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정을 했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전철로 이동을 하려는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이웃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돌봐 주기로 했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일단은 살았다는 안도감이 우선 들고 그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물론 아들이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간호도하고 틈틈이 집에 와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을 해야 한다. 아들이 집을 비우고 병원에 가는 시간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틈새관리를 해 줄 것이다. 맹장염 수술기법이 발전되어 예전만큼 크게 배를 가르지도 않아서 오래 병원에 입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3일은 걸릴 텐데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승낙해주신 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도시의 현대인들은 거미줄처럼 꽉 짜인 스케줄대로 너나할 것 없이 바쁘다. 갑자기 계획에 없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도와줄 일가친척이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서로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예전에 없던 산후조리원이 생겨나고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그전에는 이런 일들이 모두가 가족들이 해주던 일이였다.

    

도시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문을 닫고 산다. 이번일로 친한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들보다 백번 낫다는 생각이다. 살다보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 가까운 한동네 이웃 사람들을 몇 명 가깝게 알아두는 것이 보험에 가입해 드는 것처럼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1970-01-01 09:00 2017-07-03 13:30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처조카사위가 안경점을 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입으로 장사가 잘되기를 기원한다는 말보다 하나라도 사주는 사람이 고맙다. 안경점이라고 뭐 다를 것이 없다. 집 주위에도 여럿 안경점이 잇지만 전철을 타고 1시간을 가야하는 거리의 처조카네 안경점에 가기로 했다. 조카사위에게 전화를 해서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멀리 힘드실 텐데 이곳 까지 오시지 말고 집 가까운 동네 안경점에서 안경을 하라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고객이 찾아온다니 목소리는 밝게 빛나고 있다.

 

전철운임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지공선사에다가 시간부자인 내가 못갈 이유가 없다. 찾아가니 종업원이 휴가여서 혼자 일을 하고 있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먼저 갔을 때는 분명종업원이 있었는데 처조카사위 말처럼 종업원을 휴가 보낸 것인지 아니면 요즘 워낙 불경기여서 경비를 줄여보려고 종업원을 내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을 하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요즘은 안경점에도 안과병원 못지않은 검안 장비를 잘 갖추고 있다. 시력 측정도 글자판을 읽는 수준을 넘어 기계로 판정을 한다. ‘이렇게 하면 잘 보이세요?’하는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나에게 적절한 안경렌즈가 처방되었다. 그런데 검안 테스트 중 나의 왼쪽 눈에 백내장이 있다면서 병원에 가보시라고 말한다.

 

몇 달 전에 눈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도 의사로부터  백내장 운운의 말을 못 들었는데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백내장이 아닌데도 병원의 수익증대를 위해 무리하게 수술을 권하고 이를 자기들끼리 은어로 생내장 이라고 표현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조카사위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내게 거짓말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더 겁이 나고 눈이 보배라는데 이러다 실명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며칠 뒤 동네안과보다는 믿을 수 있는 안과 전문 병원에 갔다. 아파서 온 것이 아니고 안경점에 갔더니 백내장이라 하여 내 눈의 상태가 어떤지 확실한 진단을 받으러왔다고 우선 말했다. 이런저런 검사장비가 잇는 세 곳의 검사실을 돌아다니며 정밀 진단을 하는데 전문병원이라는 느낌은 받았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마지막에 안과 전문 의사 앞에 앉았다. 꽤 젊은 의사다. 의사가 말하길 “선생님의 눈에 백내장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백내장은 노화로 온 주름살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악화를 예방할 예방법도 없고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물도 없다. 심해지면 오직 수술만이 치료법인데 지금은 수술할 단계가 아니다.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수술할 이유가 없고 훗날 불편함을 느낄 때 그때 가서 수술하면 된다.” 라고 나를 그냥 돌려보낸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나이 들어 눈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연시키는 방법은 잇을 것으로 판단되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자외선이 눈에는 나쁘므로 자외선차단 안경을 쓰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한다. 추가로 불가마 같은 고열이 누에 직접 닿지 않게 하고 태양을 바로보지 말고 눈에 좋은 음식을 챙겨먹고 눈동자를 돌리는 눈 운동을 자주하라고 한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눈을 혹사하지 말고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다시 하게 되었다. 처조카사위의 엄포에 화들짝 놀랐지만 결과적으로 백내장이라는 질환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1970-01-01 09:00 2017-04-18 09:36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직장에서 젊은 후배사원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럴 때 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후배사원 말이 초등학생인 아들이 밥을 비벼먹다가 남겼다고 한다. 고기와 계란이 들어있는 꽤 영양가 있고 아까운 음식이었나 보다. 자식들이 먹던 음식들을 어머니가 설거지 하듯 먹어오던 모습을 자주 봐온 후배사원이 당연한 것처럼 아내에게 여보 이거 당신 먹어라고 말을 했다. 갑자기 아내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화를 내며 아니 내가 왜 먹어 내가 무슨 개나 돼지야?’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지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갑자기 한방 맞은 후배사원이 아내가 왜 그러는지 통 영문을 몰라 맨붕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밭에 일하러 나가시고 낮 시간의 아이들 양육은 밭일을 제대로 못하는 연로한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알맞은 온도의 밥을 준다고 입에 넣어 씹다가 뱉어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할머니 입에서 한번 걸러지니 뜨겁지도 않고 가시나 못 먹을 것들을 미리 검증받는 행위였다. 한때는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침이 면역력도 있고 소화흡수력도 있다고 했지만 위생관념이 철저한 요즘 세상에 젊은 엄마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말을 하다가 상대방의 침이 튀어오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는 입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침이 교환되어도 위생관념 어쩌고 하는 더럽다거나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 서로 좋아하는 사랑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애인사이에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 하기위해 한 그릇에 밥을 비벼 숟가락 끼리 부딪치는 비빔밥을 먹어보기도 하고 내가 먹다가 남긴 밥을 먹으라고 권해보기도 한단다. 빨대 하나를 이용하여 서로 번갈아 빨아먹는 모습도 봤다.

    

우리의 전통 식습관은 함께 먹는 것이다. 찌개 그릇에 숟가락끼리 부딪치고 큰 양푼이 함께 밥을 비벼먹었다. 가족은 식구라 하여 함께 밥 먹는 사람이다. 각자 조그만 접시를 앞에 놓고 떠먹는 위생 식습관은 아직도 가족끼리 하기에는 덜 정착되었다. 아이들이 먹던 밥을 엄마가 마져먹는 모습을 며느리나 딸을 통해서도 자주 본다. 자식사랑은 자기 몸 사랑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미워질 때면 자식도 꼴 보기 싫어져 남긴 밥도 먹기 싫을 때가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 후배사원도 전날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아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이 찾아야 할 일이다.

    

음식점 주인 중에서도 고객을 사랑하고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아 성공을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한 주인은 손님이 남긴 음식의 맛을 본다. ‘! 이래서 손님이 먹지 않았구나!’ 하는 이유를 알아채는 순간 피드백이 되어 음식조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엄마가 맛을 보고 아이가 밥을 남기는 이유를 알거나 아이의 성장과정의 입맛의 변화를 느끼거나 건강상태까지 알아차린다면 백점 엄마로 가는 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름다웠던 외모도 사라지고 추해지고 밥을 먹으면서도 국물도 흘리고 밥숟가락의 밥도 흘린다. 처음 숟가락질하는 유아가 밥을 흘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노인이 흘리는 음식에는 더러움이 느껴진다. 늙어지면 콧물 눈물도 나오고 목에서 가래도 끓는다.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노인들은 사랑방에서 별도로 식사를 했다. 따로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며느리로서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우리는 어른에 대한 예의요 효도라고 했다. 가족들이 나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해도 노인 스스로가 따로 먹기를 고집했다. 먹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식사예절이 있고 추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개도 밥 먹을 때 건드리면 주인을 문다.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고 아이들을 질책하면 밥맛도 없어지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가족의 식사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 존중의 시간 정이 넘치는 시간이여야 한다. 늙어서 밖에 나갈 일도 없다고 세수조치 하지 않고 밥상 앞에 나오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몸을 청결히 하는 것은 모든 일을 제치고 먼저 해야 할 일 순위다. 식구들끼리 건강한데도 무슨 전염병 환자 대하듯 자기만의 작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먹는 모습은 가족들을 서로 환자로 보는 병원식사 같아 찬성할 수 없다. 가족이 먹다 남긴 밥을 버릴 수도 있지만 가족끼리라면 서로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진정한 가족이며 식구다.

    

    

1970-01-01 09:00 2017-04-17 21:48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건강을 위해 아침 출근길 3km를 우회하여 농로(農路)길을 이용하여 걷고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로 농사철에만 경운기 정도가 다닐 뿐이다. 오는 도중에 200m정도 떨어진 곳에 소나무 수목원이 있다. 소나무를 장기적으로 키워서 조경용으로 팔기위한 목적의 수목원이다 소나무 값이 제법 나가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비닐하우스로 만든 가건물에는 한마디 말도 들어보지 못한 중년의 사나이가 산다. 다른 사람이 또 있는지는 본 적이 없어서 혼자 사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다보니 너무 적적하여 오히려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검은 비닐을 덮은 블랙하우스다.

 

그 집에는 조용한 주인을 닮아선지 별로 짖지 않는 암수 두 마리의 잡견이 집 주위를 맴돈다. 강아지 때부터 발정할 정도의 큰개로 성장할 때까지 나는 개들을 지켜봤다. 개의 목에는 목줄도 없어서 어디든 달아날 수가 있지만 항시 집 주위만 맴돌 뿐 멀리 떠나지 않는다.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나면 세상의 모든 위험과 맞부딪치고 끼니 해결도 장담하지 못해 계산상 여기 머물고 있는 것이 자유보다 이익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놈들이야 말로 영리한 놈들이다.

 

아침마다 시간 맞춰 지나는 나를 개들이 물끄러미 처다 보는 것으로 나와 강아지 시절의 개들과의 첫 만남의 상견례는 시작되었다. 개나 사람이나 오래 만나면 정이 드는 법이다. 날이 가면서 개들이 경계주의보를 낮추고 차츰차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가 내가 손을 내밀면 깜작 놀라 저만큼 도망갔다. 그런 횟수가 증가하면서 내가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어느 날부터 나에게 뛰어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었다. 개 밥통을 보니 바둑알 같은 동글납작한 사료뿐이다. 이런 개들에게 고기를 주었다가는 입이 고급으로 변해서 살아가는데 어려울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가방 속에 들고 다니기도 간편한 건빵이 생각났다. 다행히 전철 플랫폼의 가게에서 건빵을 팔고 있었다. 건빵 봉지에는 ‘추억의 건빵’이라고 표기되어있다. 배고팠던 그 시절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시던 아련한 느낌 그대로… 라는 설명이 군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향수에 젖게 했다. 

 

개들이 처음 먹어보는 건빵 맛에 처음에는 흥미가 덜하더니 차츰 맛을 들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살금살금 지나가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뛰어온다. 반갑다고 바짓가랑이를 물고 잡아 흔든다. 이렇게 내가 좋다고 매달리는 짐승은 세상천지에는 없다. 개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유는 매일 아침 내가 던져주는 건빵의 위력인지 내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의 따뜻함의 매력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나와 개들은 서로 정이 듬뿍 들었다. 아침마다 건빵 한 봉지를 살 때는 기뻐할 개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개들이 뛰어와 매달리며 내가 던져주는 건빵 맛에 행복해하는 개들을 보는 것이 또한 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런 애틋한 서로의 정은 몇 달이 가지 못했다. 평소는 늦잠을 자는지 보이지 않던 주인 사내가 어느 날 내가 개에게 건빵을 주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다. 아차!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란 주인의 속마음에 내가 개를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묻지도 않는 주인을 향하여 그것도 200m나 떨어져 있는데 나는 개를 절대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예감은 적중되었다. 다음날부터 개 주인은 개의 목에 쇠줄을 걸고 개 우리에 가두어 버렸다. 나의 친절이 개에게 자유를 뺐어버린 것이다. 이제 큰개가 다 되어 개 도둑이 있다면  탐낼 만큼 성장한 개에게 낮선 사내가 가까이 있고 개들이 사내를 향해 꼬리를 친다면 개 주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경계를 해야 하고 그런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진짜 개도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이 한 행동은 정당했다.

 

짐승인 개들이 복잡한 사람들의 속내를 어찌 다 알 수가 있을까. 내가 지날 때쯤이면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뛰어 오고 싶은데 갈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나에게 알리기 위해 결사적으로 신음소리를 낸다. 내가 베푼 건빵봉지의 정이 나와 개들에게 심적으로 아픔을 주는 고통으로 변했다.

 

이 개들은 결국 주인의 사육 방법에 따라야하는 가축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한다는 신파극처럼 개들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개들로부터 멀리 떠나야 했다. 다음날부터 다른 길을 찾아 더 멀리 돌아오는 우회도로를 이용하면서도 '이놈들 잘 있겠지' 하는 걱정은 한다. 

  

1970-01-01 09:00 2017-04-05 13:21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모 기업의 사장님이 직원들의 야근을 막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늦게까지 일할 필요가 없다. 근무시간에만 열심히 일해라’ 라고 아무리 애기해도 야근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아 부득이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만 되면 회사의 모든 인트라넷을 막아 PC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직원들도 퇴근 후 취미생활을 하거니 가족과 여유로운 저녁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정시퇴근은 공무원이나 회사원 들을 막론하고 ‘칼 퇴근’ 이라는 은어를 사용하며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만큼 정시퇴근이라는 것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번 신문보도 내용을 보면서 필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야근을 해 왔는데 갑자기 사장님 한 말씀에 정신이라도 번쩍 나서 업무효율성이 높아져서 정시퇴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건지 아니면 다음날 근무시간에 이어서 해도 될 오늘 일을 ‘오늘 일은 오늘 마치고 퇴근하자’ 는 관행이 사장님 말 한마디로 무너져 버린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필자의 직장시절에도 정시퇴근을 강조하는 사장님이 여럿 있었다. 심지어 늦게 퇴근하는 사람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어떤 사장님은 사장의 재실(在室) 싸인 전등을 정시에 끄고 이제 사장이 없으니 퇴근을 해도 좋다는 시그널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첫날 하루만 직원들이 속았지 사장님이 생쑈를 한다는 소문이 다 돌아 다음날부터 소용이 없었다. 위에서 야근하는 원인은 파악하지 않은 채 우격다짐으로 인기위주의 지시는 반짝 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도로아미타불인 경우가 허다했다. 굳어진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자의 확실한 철학이 밑에까지 심어질 때까지 몇 달이고 끝까지 될 때까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지시처럼 미지근하게 하면 직원들이 사장의 말에 간을 보고 앞으로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제조업체인 모회사의 사주인 사장님은 착실한 크리스천이여서 직원들에게 일요일 근무를 절대로 못하게 했다. 당연히 공장은 일요일 생산가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장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기계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정비가 필요하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공무부 직원은 정상적인 조업을 지원하기 위해 평일엔 쉬어도 일요일에는 일을 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 일을 하다가 사장님이 떴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비공들은 불을 끄고 죄인처럼 기계 밑으로 숨어야 했다. 왜 야근을 하고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지 현실을 모르는 고집불통인 사장님과 직언을 못하는 중간 간부의 답답함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던 경험도 있다.    

정시퇴근은 근무지의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회사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사실 어려운 문제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에서도 야간에 범죄 혐의자를 심문하고 고위층의 영장실질심사도 한밤중까지 이어지고 결과 발표도 새벽에 하기도 한다. 하루 당겨서 미리 심사를 시작하거니 아니면 하루 늦게 발표해도 될 것 같은데 심야에 이런 중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수사기법 상 필요하거나 내일 다시 나와서 수사를 받기보다는 늦더라도 오늘 끝내고 가겠다며 피의자가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퇴근시간을 무시하고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피의자의 인권문제도 대두되고 공무원 근무시간과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근로자는 퇴근시간이 되면 일손을 즉각 멈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하던 연장도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하고 민원인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퇴근이 늦어지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맞다. 퇴근 시간을 전사적으로 일률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장님은 부서별, 개인별 업무진단을 철저히 해서 과중한 업무 수행으로 야근하는 자도 없어야 하고 놀고먹는 방관자도 솎아 내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왜 늦게 퇴근하는지에 대한 현실파악과 고민도 없이 정시 퇴근을 대외 경영성과보고서에 기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직원들의 깜짝 박수만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이를 인위적으로 강제로 이루기 위해 PC를 막거나 심하면 단전단수 같은 극약처방만을 한다면 그것도 모든 부서에까지 확대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 한다.

1970-01-01 09:00 2017-04-04 08:58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요즘 들어 아내가 친정집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아내보다 열 살이나 많은 처남댁을 만나보기 위함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돌아가시니 딱히 꼬집어 말할 이유는 없지만 장모님 살아계실 때만큼 처갓집다운 맛이 덜했다.  세월 따라 어쩔 수 없이 장인장모가 돌아가시니 자연스럽게 아랫대 처남이 가장이 되었다. 권력자 처남의 사위는 내가 아니라 처남의 딸의 남편이 새 사위로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헌 사위로 전락했다. 즉 윗대의 사위로 물러났다. 나를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은 해 주지만 어째 한 다리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처남댁 자식들도 결혼해서 일가를 이루고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친정집이자 처갓집에 자주 오지 않는다.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오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어쩌다 처갓집에 가보면 처남내외 두 분만 덩그러니 옛집을 지키고 옛날방식대로 농사만 짓고 있다. 시골도 현대화 바람을 타고 많이 변했다. 예전 시골에는 마실 다닌다 하여 밤마다 농사일에 피곤해도 이웃집에 놀러 다니는 풍습이 있었다. 요즘은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으니 굳이 이웃을 찾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신기한 세상이야기가 쏟아지고 짜릿한 연속극이 주야장창 나오는데 이웃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 법하다.

하지만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일방적으로 정보를 쏟아내기만 할 뿐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나도 저랬지’ 하고  공감의 말을 하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옛날 마실 방은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중년 아낙은 아낙들대로 삼삼오오 모여 듣고 말하는 방이었다. 전해들은 말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소문을 키우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듣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가기도 하고 바다로 가기도 했다. 그래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처남댁이 말할 상대로 아내가 제격인 모양이다. 처남댁이 시집와서 시집살이 하던 시절에 이야기를 가장 옆에서 지켜본 아내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자연히 형성된다. 쉽게 말해 말이 통한다. 때로는 잃어버린 기억의 보완재로서 서로가 역할을 한다.

거의 밤을 밝혀 이야기를 하고나면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본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밤새워 할 것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면 빤한 일상사라고 한다. 이웃에 살다가 떠난 사람 이야기도 하고 시어머니 흉도보고 남편 흉들도 본다. 내가 내 남편 흉보는 것은 괜찮은데 옆 사람이 대화에 맞장구를 쳐준다고 함께 흉을 보다가는 오히려 어! 이건 아닌데 하고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까르르 웃는다고 한다.

불교에서 보시(布施)라고 하여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중생구제를 목표로 이타정신의 극치라고 찬양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도 보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한 보시가 대화할 상대가 없어 외롭고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는 사람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가슴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으려면 마음만 통해서 안 된다. 한 이불을 덥고 자는 남편에게도 못할 말이 있고 형제간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숨기는 말이 있다.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비록 나이 차이도 나고 전통적으로 사이가 나쁜 시누이 올케사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본 것이 같고 느낀 것이 같으니 할 말이 많은가보다. 아내도 ‘아휴 그 말을 다 들어줄라니까 지겨워 ’하면서도 호호 웃으며 또다시 찾아가는 것을 보면 내심 싫지는 않은가 보다. 처남댁도 그런 다음날에는 냉이도 캐서 아내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을 보면 할 말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한풀이 화풀이는 된 모양이다.  

문득 최성수의 ‘동행’이라는 가사가 생각났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 까지』나는 누구랑 이런 옛날이야기를 나눠보나 하는 생각에 까지 미쳤다. 옛날이야기를 함께 나눌만한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주위에 사람은 많아도 풍요속의 고독이라고 나를 속속들이 알고 나와 같이 이야기를 마음 편히 나눌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 세계에서 이런 오순도순 한 이야기를 밤새워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자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허세만 부리게 만들어진 건가 아니면 그렇게 길들여진 건가 .

세월이가면서 나를 알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갔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떠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긴 밤을 함께 이야기 한자리 나눌 사람하나 없다는 것이 원통하다 못해 서글프다. 이제라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이 닿았던 사람이나 앞으로 인연이 닿을 사람들을 사랑해야겠다. 살기에 급급해 내일로 미루다보면 막상 내일이 돌아오면 그 사람은 이미 떠나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70-01-01 09:00 2017-03-28 15:5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오늘이 우리부부의 결혼 기념일이여서 저녁은 아내가 좋아하는 돼지 갈비 집에 가려고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니 다른음식점에 가거나 아예 집에서 저녁을 먹을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긴다고 하지만 우리부부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가 특별한 이벤트를 한 적은 없다. 아내도 특별히 결혼기념일을 챙기자고 하거나 입 밖으로 결혼기념일과 관련하여 무슨 말을 꺼낸 적은 없다. 생각나면 함께 외식을 하거나 가끔 장미꽃 선물을 한 적이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멋없이 밋밋하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건국된 개천절은 국기도 내걸고 국경일로 휴무로 지정까지 했는데 가정의 개천절인 결혼기념일 정도는 소박한 이벤트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것이 잘 안 된다. 그 이유로 첫째는 우리세대는 부모님들이 그 분들의 결혼기념일 행사를 하는 것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세대가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이 자신의 결혼식은 알아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알지도 못한다. 부모님들이 당신들이 스스로 하는 결혼기념 이벤트를 보지도 못했다. 웃어른들이 있어서도 아니다. 집안의 제일 어른인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식 날도 틀림없이 있었을 터지만 그날을 위해 자식들인 아버지 어머니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특별히 해드리는 것을 본적도 없고 나아가 집안의 제일 어른인 할머니 할아버지 스스로도 당신들 결혼식 날을 기념하는 것을 통 보지 못했다.

둘째로는 돌아가신 조상의 제삿날을 생기고 살아계신 부모님의 생신날은 챙기는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효 사상이 스스로의 결혼기념일 따위를 챙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자식과 부모를 찾으러 돈을 싸들고 청나라까지 가서 돈이 부족하면 살아있는 자식을 못 데려오고 죽은 부모의 유골을 품에 안고 왔다는 역사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마음으로는 얼마나 자식을 데려오고 싶었을까?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마음과는 달리 부모의 유골을 들고 오면서 자식은 데려오지 못했다. 그런 시대에 자신들의 기념일을 챙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셋째로는 가난 때문에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 한가로이 결혼기념일 따위를 챙기지도 못했을 것이고 남존여비의 사상에서 여성 쪽에서 결혼기념일 운운을 따질 계제가 못되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여성들도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함으로서 남자와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였다. 아들보다 딸이 환영을 받는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결혼기념일을 부모 제삿날보다 더 챙긴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드려야 한다.

함께 살지 않는 아들과 딸은 물론 며느리와 사위까지 가족 카톡 방에 결혼기념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비록 사진으로 보내오는 그림의 떡이지만 화려한 축하 케익이랑, 축하 꽃다발도 받고 보니 기분은 좋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 졌으니 챙길 것은 챙기는 것이 좋겠다. 새삼 아내에게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온 지난날이 고맙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런 좋고 기쁜 날들이 모여 오늘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을 소중하게 보내야 하겠다.

1970-01-01 09:00 2017-03-23 17:34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며느리가 카톡으로 빅뉴스라며 좋은 정보를 알려왔습니다. 만65세 이상 어른들에 대해 보건소에서 무료로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한다는 정보입니다. 노인들에 대해 독감 예방접종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폐렴 예방주사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켜봤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더군요. 정신은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가슴이 들썩거릴 만큼 크게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돌아가실 때는 폐렴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말도 여러 사람들한테서 들었습니다. 사람의 오장육부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장기가 없지만 숨 쉬는 호흡의 대표 기관인 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며느리의 폐렴구균 예방접종정보는 귀와 눈이 번쩍 했습니다. 예방접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테니 당장에 뛰어가 봐야 했습니다. 내가 일하는 현장이 집에서 멀어서 아침에 일찍 나와야하고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가니 부득이 직장 가까운 보건소인 00보건지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주거지와 상관없이 전국 보건소 어디서나 가능하니  신분증만 갖고 오면 예방 접종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점심을 먹고 00보건지소에 갔습니다. 대기번호표를 뽑으니 내 앞에 3사람이 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예방접종을 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문진표를 작성해야 합니다. 몸이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혈압 약 등 먹고 있는 약은 없는지를 물어봅니다. 문진표상으로는 나는 건강합니다. 혈압을 재어보니 128/80입니다. 약간 높지만 혈압약도 먹지 않고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예방접종실로 들어갔습니다. 주사를 놓을 간호사가 내가 작성한 문진표를 근거로 재차 이것저것 확인하며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보건소에서 상주하는 의사에게 데려갑니다. 앗! 그런데 내가 아는 내과 전문 의사입니다. 출 퇴근 시 전철에서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입니다. 보건소 의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 보건소 의사인지는 몰랐습니다. 의사로부터 예방접종을 해도 좋다는 사인을 받고 다시 예방접종실로 왔습니다. 팔뚝 어깨 쪽에 예방접종을 합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 따끔 하지만 견딜 만합니다. 의사가 한가한 틈을 타 커피 한잔을 뽑아주며 여러 가지 건강 상식을 알려줍니다. 내가 아는 세상이야기와 한데 어울려 즐거운 대화를 했습니다.  

 

간호사가 예방접종 주의사항으로 당일 술을 먹지 말라는 말과 힘든 일은 오늘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혹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몸에 이상을 느끼면 보건소에 다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3일 뒤에 헌혈을 하기로 예약 하였는데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녁 무렵에 주사 맞은 부위가 좀 뻐근하고 자고 일어나서 주사 맞은 부위를 만지니 좀 아프지만 별 이상이 없습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로 변모되면서 의료비가 증가하여 이대로 가면 보험공단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라고 합니다. 예방접종은 건강으로 가는 첫걸음이고 시니어의 셀프건강 관리는 의무입니다. 이런 좋은 정보는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1970-01-01 09:00 2017-03-09 09:26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내가 일하는 건설현장의 머리위에는 고가 크레인이 빙빙 돌아가고 발아래는 흉기 같은 철근이 널려 있다. 온통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건설현장은 위험물 천지다. 근로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비계( 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도록 철 파이프나 나무 따위를 종횡으로 엮어 다리처럼 걸쳐 놓은 설치물)머리고 몸통이고 부닥치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나이 먹은 나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친구들도 있지만 과연 제대로 일이나 할까! 하고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보다 한평생을 손에 물 안 묻히는 화이트칼라로 살다가 온 몸을 연장삼아 일해야 하는 블루칼라 일을 한다는 것에 의심 반 부러움 반의 주위 시선들을 느낀다나는 공과 대학을 나오고 기술사라는 최고의 국가 자격을 갖고 있다. 회사에서도 일찍 간부가 되어 현장일은 제대로 배우거나 하지도 못하고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일만 한평생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을 입과 머리로만 했지 손과 발은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자동차공장에 다니면서 실제 자동차는 만들어보지 못한 꼴이었다. 머리는 많이 써서 유효기간을 지나 노후 되었지만 손발은 아직 신품에 가깝다고 자위하며 혼자 웃는다

이런 마음가짐이 나를 스스로 쇠뇌 시켜 현장 일을 해도 남들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하고 무모한 자신감은 예전부터 늘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만약 퇴직하고 제2의 일을 한다면 머리만 쓰는 관리자 일보다는 두뇌로 계산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노동에 가까운 현장 일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밑바닥 노동일을 하겠다는데 시비 걸 사람이 없고 수명100세 시대에 길게 현역에 남아있으려면 노동자의 다른 이름인 불루칼라가 딱! 이다. 노동자는 몸이 생명이므로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노동자 출신이 회사에서 노동자 몫의 임원을 역임한 후 임기가 끝나자 다시 노동현장으로 복귀하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불루칼라의 대부분 업종이 3D 업종이라 하여 열악한 직업이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스러운(dangerous) 일이다. 다른 쪽은 몰라도 필자가 잘 아는 건설현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젊은 노동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해외 노동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조선족이거나 동남아 인력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변했고 점점 더 그렇게 변하고 있다. 취업난이라 하면서도 노동현장에 오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무조건 탓할 수만 없는 것이 열악한 환경에 비해 보수가 턱없이 낮다는 현실에 있다. 소득 3만 불 시대에 대학을 나온 잘 교육된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불확실한 육체노동의 이런 일을 강요하기에는 솔직히 미안하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돈이라도 많이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자녀양육에서 해방되고 경제적 여유도 좀 있고 신체 건강한 시니어가 3D 업종에 종사하면 좋겠다. 많은 퇴직자들이 강사나 컨설턴트를 희망하고 잘 모르는 창업에 뛰어들어 그나마 갖고 있던 돈을 날린다. 노동은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된 자리다. 나이 들어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름의 진짜 엑티브 시니어다.

하는 일의 중요도에 따라 급여가 달라져야 정의로운 사회지만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켜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만한 보수를 줘야한다.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줘야 할 의무는 국가와 사회에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에 입사하여 연수가 늘고 숙련도에 따른 생산성 증가로 점차 급여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생산성과 역행하여 오히려 급여가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라는 제도를 받아드리는 것이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공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퇴직 후 제2의 직업에서는 수입이 적은 것이 당연해야 한다.

요즘의 노동현장은 무조건 힘만 쓰는 동물의 세계가 아니다. 힘든 일은 잘 발달된 기계가 한다. 기계가 하기 어려운 틈새에서 힘이 필요한 기술적인 일이 요즘의 노동현장이다. 찾아보면 자신의 체력에 맞는 그렇게 힘들지 않는 노동현장도 많이 있다. 노동현장에서 바짝 엎드려 일을 하다 보니 몸은 피곤해도 우선 마음은 편하다. 입사동기간에 서로 빨리 진급하려고 양 눈에 쌍심지 불을 켜고 경쟁하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웃음 짖는다. 살아보니 그렇게 경쟁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과장되고 부장되는 진급의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으니 여유롭다. 건강은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욕심을 줄인 자리에 만족을 넣으면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쓸 돈이 생겨 좋고 일하면 밥맛도 좋아진다. 

1970-01-01 09:00 2017-03-07 15:52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인천 부평에 살던 때였다. 큰아이가 6살 둘째가 세 살 이였고 방 두 개의 2층에서 전세를 살았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장인어른이 우리 집인 딸네 집에 오셨다. 경기도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와 전철을 바꿔 타고 와야 하니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먼 거리를 오신다.

 

장인어른은 평소 과묵한 성격 탓도 있지만 옛날 분들이 다 그렇듯 별 말씀이 없으셨다. 대화를 길게 이어 가려고 해도 공통관심사를 찾지 못해 서로 몇 마디만 하면 금세 말거리가 동이 났다. 직장 생활은 지낼만 하냐? 하는 정도의 말이니 단답형으로 끝나기 일수였다. 아내도 아버지에게 살갑게 매달리거나 다정다감한 말을 건넬지 몰랐다. 그때는 아버지라 하면 무섭고 어려운 존재고 아버지도 살가운 정을 자식들에게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몰랐다.  다들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았다.

 

장인어른이 집에 오시면 하루 밤을 주무시고 가시는 일정이지만 외식을 한다거나 어디 구경을 시켜드리는 것은 생각을 못했다. 밖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집에서 대접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장인어른도 외손자를 정답게 안아주시거나 아이들 손잡고 밖으로 놀러 나가거나 하지도 않으셨다. 진지를 잡숫고 혼자서 동네주위를 한 바퀴 돌거나 TV 뉴스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장인어른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내 딸이 시집을 갔다. 딸과는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영상통화도 하고 외손자의 재롱도 즉석에서 볼 수 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딸네 집에 가보고 싶다. 어떻게 사는지 다 알면서도 궁금하다. 내가 딸네 집에 가겠다고 하면 언제 몇 시쯤 올 것이냐를 시작으로 음식은 무었을 준비하면 좋겠느냐?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집에서 준비 할 테니 사양 말고 말하라 한다. 삼겹살을 먹고 싶다 하면 최상급의 고기를 사온다. 삼겹살 가격이 이렇게 큰 차가 있는지 몰랐다. 외식코스도 필수로 잡는다. 이러이러한 곳이 있는데 어디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온다. 나는 식도락가도 아니고 아무 음식이나 잘 먹기 때문에 먹는 것에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에 반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딸은 아버지가 딸이 돈 쓰는 것을 안쓰러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하면서도  딸이 신경써주는데 고맙기는 하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리세대가 부모님에게 하는 효심이 요즘의 젊은이들보다 결코 못하지 않을 텐데 실제 하는 행동은 요즘 아이들을 못 당한다. 장인어른이 그렇게 여러 번 오셨는데 제대로 된 외식도 못 대접하고 용돈도 별로 못 드린 걸 후회한다. 지금 마음 같으면 자가용 자동차는 없었으나 버스라도 타고 인근 유원지에는 모시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통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딸을 시집보내고 내 나이가 장인어른의 나이가 되고보니 장인어른이 우리 집에 자주 오신 것은 딸이 보고 싶어서였음을 알게된다. 시집간 딸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당신의 즐거움이었다. 고기반찬이고 유원지 구경 따위는 후 순위다. 자식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은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다. 옛날 어른들이 보면 체신머리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손자,손녀들과 함께 어울러 즐기며 시간 보내는 것이 즐겁다.   

1970-01-01 09:00 2017-03-06 11:25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오전에는 테니스를 한다. 벌써 40년이 넘은 나만의 특화된 운동이고 테니스 사랑이다. 휴일 날 비가오거나 결혼식 참석 등으로 운동을 하지 못할 때는 짜증이 날 정도로 운동중독이 되어있다. 어지간한 외부 약속행사는 오후나 저녁으로 잡는다. 테니스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흠뻑 흘리고 샤워를 하면 몸은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리고 동호회 회원들과 만원씩 각출하여 만원의 행복이라는 국밥에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며 덕담과 유머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막걸리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짜르르 내려가는 신호에 건강한 행복함을 느낀다. 막걸리의 텁텁한 느낌이 싫다고 맥주를 먹는 회원도 있지만 나는 막걸 리가 좋다. 예전의 막걸리는 발효의 영향으로 트림이 나오고 트림을 할 때 역겨운 가스가 분출되어 자칫 민망할 때가 많았지만 요즘은 막걸리 제조 기술의 발달로 먹은 후의 트림도 거의 없어졌고 이로 인한 불쾌함도 대부분 개선되었다.

    

막걸리는 몸을 보호하는 술이다. 동물의 위장에 막걸리와 소주를 담아두면 소주가 담긴 위장은 얇아지면서 결국 구멍이 나지만 막걸리를 담아둔 동무물의 위장은 더 튼튼해져 있다고 한다. 막걸리는 곡식으로 만드는 곡주에다가 알콜도수가 낮아서 몸이 약한 사람에게도 부담이 덜해 의사도 다른 술은 못 먹게 하면서도 막걸리는 한잔 정도는 마셔도 좋다고 한다. 물론 막걸리도 술임에는 틀림이 없어 과음하면 나쁘다.

    

나의 막걸리 사랑은 오랜 역사가 있다. 농부인 아버지도 막걸리는 즐겨 잡수셨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특이한 점은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일장에 가서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도 절대 취하게 드시지 않았다. 집에서도 아무리 즐거운 날이어도 친한 친구나 친척이 찾아와도 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한 주량을 기분에 취해  넘기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런 영향으로 아이들에게는 술을 못 먹게 했다. 딱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정월대보름날 귀 밝기 술이라고 병아리 눈물만큼의 딱 한잔을 준다. 그 술을 먹으면 남의 소리를 잘 듣도록 귀가 밝아진다고 했다. 술도 하나의 음식으로 성인이 되면 먹어야 할 텐데 무조건 못 먹게 하다가 나중 제어할 사람이 없는 어른 때 먹기 시작하면 주태백이가 될지도 모른다. 정월대보름 날과 제사 때 음복주(미성년자는 음복주에서도 제외했다)는 어른들 앞에서 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먹게는 했다. 술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일 것으로 추측 한다

    

어릴 적 내가 먹어본 막걸리 맛은 시큼 텁텁해서 얼굴이 찡그려 졌다. 어른들은 달콤한 과자를 먹지 왜 이런 술을 먹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 한 적도 있었지만 몸속에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인자 탓인지 막걸리는 입맛에 맞아 거부감 없이 잘 먹어왔다. 군대에서도 부대주변의 막걸리 집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군부대 PX(군부대매점)에서 주전자에 담겨지는 막걸리를 즐겨 먹었다.

    

술은 필요악이라고도 하고 생활의 일부분이라고도 한다. 금주한다고 새침 떼는 것도 꼴불견이고 나이든 사람이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도 추하다. 막걸리는 양이 많아 배가 불러 오기 때문에 많이 먹기 어렵다. 조금씩 분위기에 맞춰 막걸리를 먹으면 건강도 도모하고 분위기도 살린다.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예찬의 이유다.  

1970-01-01 09:00 2017-03-05 21:21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하류노인의 조건 3가지는 수입이 거의 없고 저축한 돈이 별로 없으며 의지할 사람이 없는 노인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이거나 약간 상위 계층을 일컷는다. 이런 노인들이 불과 3년 후인 2020년이면 대폭 증가 된다는 다소 섬찍한 주제를 다룬 이 책은 일본인 후지타 다카노리가 쓴 책이다. 저자는 사회복지사로 왕성한 현장 활동을 하고 있으며 비영리법인 홋토플러스 대표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젊어서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이 왜, 무슨 이유로, 어떻게 하류 노인으로 전락하는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알아낸다면 이를 반면교사 삼아 각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방이 될 것이다. 평소 내가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근본 이유다. 현장에서 하류노인을 무수히 만나본 저자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가 질병과 사고로 인한 과도한 의료비의 지출을 꼽고 있다. 아내의 병간호로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종일 아내의 수발을 몇 년간 든다면 어지간한 재력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둘째로 자녀가 일은 하지만 수입이 별로인 워킹푸어 이거나 하늘의 별따기 같은 취업전선에서 계속 낙오하여 종국에는 아예 직장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방안에서만 맴도는 은둔형 외톨이인 경우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재산은 머지않아 바닥이 난다. 결국 부모와 자식이 동반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족은 해체 수순을 밟는다. 세 번째가 황혼이혼의 증가로 그나마 있던 재산이나 수입을 반으로 쪼개다보니 빈곤한 살림에서 헤어나지 못 한다. 네 번째가 병든 몸을 받아줄 저렴한 고령자 요양시설이 부족하고 비싼 요금의 요양시설에는 들어갈 엄두를 못 내 지하골방에서 약으로 연명해 간다. 다섯 번째가 치매로 올바른 판단력이 흐려져 사기를 당한다. 보호해줄 가족이 없다. 가정은 점점 핵가족화 되고 저마다 살기가 바빠 부모형제를 돌봐줄 여력이 없어 치매노인의 돈을 보고 사기꾼들이 하이에나처럼 덤빈다.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젊어서 노력하지 않은 게으른 탓이라는 국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가난은 자기의 책임이라는 무관심과 한발 더 나아가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하류 노인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고 조용히 죽어가게 만든다. 집도 없이 떠도는 아프리카 난민들보다는 그래도 지하골방이라도 있으니 낮지 않느냐고 외국 난민의 절대적 빈곤을 들먹이며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일반인의 의식도 해결을 느리게 하고 답답하게 한다. 노인의 빈곤은 고령자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장차 노후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소비와 출산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개천에서도 용 난다는 말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가정의 경제적 사정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해 평생 저소득의 일 밖에 할 수 없고 대대로 가난이 고착화된다. 저자는 빈곤 대책 기본법을 만들어 정부가 나서야 해결이 된다고 강조한다. 소득 재분배기능을 높이면 자산가나 고소득자가 해외로 도피하거나 노동의욕이 오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고 이런 지적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동네 공원에 나가봤다. 할일 없고 갈 곳이 없어 공원 벤치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의 노인들을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65세 이상 빈곤율이 48.6%OECD 국가 중 으뜸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하류노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국가와 사회라는 말이다. 무소유는 있어도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가난은 영혼까지 비굴하게 만든다. 하류노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진행과정을 미리 알고 최선을 다해 예방하고 준비하는 길  밖에는 없다.

   

1970-01-01 09:00 2017-03-01 19:56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노년의 성(性)은 입에 올리기 망측한 것이 아니라 100세 시대의 다 함께 고민할 과제가 되었다. 부부간의 사별이나 이혼과 같이 홀로된 경우가 아니라도 한쪽은 성적인 욕구가 있는데 한쪽은 성적인 욕구가 아예 없는 노년의 성 문제가 있다. 시니어들의 광장인 유어스테이지에서도 한번쯤 다루어볼 문제라 여겨 글을 올린다.

A씨는 나와 같이 일하는데 올해 70세다. 돈도 있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A씨의 말을 빌리면 성적욕구가 아직도 왕성하다고 한다. 하지만 A씨의 아내는 66세로 겉으로는 건강한 편이지만 당뇨가 있다. 당뇨가 원인 인지는 잘 모르지만 성적욕구가 없고 부부관계가 고통스러워 A씨와 잠자리를 기피한다. 그동안 A씨는 자위행위도 하고 가끔씩 외도를 하면서 성적 욕구를 혼자 해소해 왔다.

그러던 중 A씨는 우연한 기회에 어렸을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란 B씨를 만나게 되었다. B씨는 동네 오빠로 A씨를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처녀시절 A씨를 좋아했던 감정도 갖고 있었다. 게다가 B씨는 남편이 죽은 과부였으므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B씨는 남편이 남겨준 부동산을 임대하여 넉넉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이 없다.

자연스럽게 둘은 술도 함께 마시며 잠자리도 같이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A씨가 직장을 갖고 있으므로 주말 데이트를 즐긴다. 토요일 오전에 미리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모텔에서 일박을 한 후 일요일 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멀리는 속초 강릉까지 가기도 한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A씨의 아내가 둘 사이를 눈치 챘다.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성적으로 A씨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내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B씨를 입에 올려 말은 하지 않지만 주말만 되면 한주일 동안 일하느라고 고생하셨는데 바람도 쐴 겸 밖에 나가서 놀다오라고 등을 떠민다고 한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주말은 A씨와 B씨가 함께 데이트 하는 날로 정해졌고 둘 사이는 성(性)적으로도 천생연분이라 할 정도로 잘 맞는다고 한다.

남녀가 만나면 데이트 비용이 든다.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비용부담이 정해져있는데 A씨의 자동차를 이용하므로 차량유지비와 호텔비용은 전적으로 남자인 A씨가 내고 음식이나 커피 값은 전부 B씨가 부담하는데 서로 경제력이 있어선지 데이트 비용 부담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은 없다고 한다. A씨는 ‘내가 가정을 버린 것도 아니고 월급을 아내에게 안 주는 것도 아니고 용돈 범위 내 에서 적절하게 쓰니까 아내도 다 이해 한다.’ 고 말한다.

주위에서 보면 남편은 성적 욕구가 있는데 아내가 이를 기피하고 각방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를 두고 남자들 사이에 은어(隱語)로 ‘아내가 문을 닫았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여자도 입에 올리기가 민망해서 그렇지 남편이 잠자리를 기피하는 바람에 아내가 불만인 경우도 있다. 짝이 있지만 노년이 되다보니 성적으로 짝의 역할을 못하고 차라리 각방을 쓰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나이 들어 재혼을 하는 것을 망측하다고 하고 쉬쉬하면서 혼자 지내길 강요했다. 엄마가 재혼하면 딸들의 혼사에 중대 하자가 되어 남편의 학대나 시댁의 냉대에도 오직 자식을 위해 인고의 나날을 보내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많았다. 요즘은 젊든 늙든 재혼하는 것이 더 이상 창피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권장을 하는 시대다.

재산문제와 자녀들의 반대로 법적으로는 부부의 연을 맷지 않고 연인처럼 즐기는 커플도 많다. 유명 연예인도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다고 밝힌다. 노년의 남녀가 만나는 이유로 혼자 있어서 외로우니 대화 할 상대가 필요해서 만난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만나는 경우도 많다. 

마음이 가야 몸도 간다는 말은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부부간에 정감 있는 말로 사랑을 속삭이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엄격한 가부장제도에서 살아온 지금의 노년들은 마음과 달리 살가운 말이나 다정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부부간에 살갑게 스킨십이나 말을 못하며 무덤덤하게 살아서 정신적인 이유가 성적으로 일찍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경우도 있고 노쇠한 육신이나 질병으로 몸의 문을 닫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부부가 함께 살아도 한쪽이 상대의 성적 욕구를 받아주지 못한다면 수명 100세 시대에 더 이상 쉬쉬하며 숨기지 말고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적극적 치료를 받아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노년의 성문제에 있어 A씨와 B씨의 관계를 욕하며 무조건 돌을 던질 일은 아니다.

1970-01-01 09:00 2017-02-28 13:17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책에서 여상을 졸업하고 신입여행원으로 근무했던 분의 수필을 읽었다. 자신의 봉급이 3만원이던 시절에 예금을 찾으러온 고객에게 만원을 내줘야 하는데 귀신에 홀린 듯 그만 이 만원을 내줬다고 한다. 저녁 마감 때 그 사실을 알아채고 황당했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되짚어보니 누구에게 돈을 더 줬는지도 짐작이 갔지만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고맙게도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서 더 많이 받았다고 돌려주지 않은 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교통이 불편해서 밤길을 걸으며 어렵게 번 봉급에서 고스란히 물어내야 했다. 삼 만원 봉급에 만원의 변상은 큰돈임에 틀림없어 눈물을 펑펑 흘렸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일반 독자는 별 의심 없이 그냥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과거에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경험이 있어 나는 느낌이 남달랐다.

 

지방도시에서 기업체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거래은행의 대리와 은행 출납여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은행에서 예금을 권유하던 시절이니 우리직원들에게 예금 권유를 위해 찾아 온지 알았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리 회사 경리여직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고 양해를 부탁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은행 거래에 무슨 오해가 있었는가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은행 담당인 경리 여직원을 지점장 방으로 불렀다.

 

은행대리가 경리 여직원에게 묻기를 ‘오해는 하지 마시고 혹시나 해서 묻는데 오전에 예금을 인출하면서 100만원 묶음 하나가 더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경리직원은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며 화까지 벌컥 내면서 잘못 내줬으면 내준 사람 잘못이지 왜 생사람을 의심하느냐고 말한다. 은행대리가 머쓱해 하며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혹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상급자인 은행대리와 함께 우리사무실을 찾은 은행 여직원은 방금 일어난 사태에 저의기 당황해하며 아니라는 대답에 절망하는 눈빛이 너무 애처로웠다. 100만원이라는 돈은 지금도 큰돈이지만 당시로서는 은행 여직원 한 달 월급에 버금가는 큰돈이었다. 한숨 쉬며 돌아서던 은행여직원의 안타까운 뒷모습이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여직원들은 다 돌려보내고 은행 대리는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내가 붙들었다. 왜 우리 여직원을 의심하느냐고 물어봤다. ‘지점장님 우리가 아무나 의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은행에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개인이면 현금으로는 10만원 미만입니다. 10만원 미만인 사람에게 100만원 뭉치를 내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전에 여직원이 200만원을 찾으러 왔고 100만원 뭉치 두 개를 내줘야 하는데 3개를 내준 것 같아서 이렇게 온 것입니다. 그 시간대에 100만원 뭉치 돈을 찾아간 곳은 여기뿐입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리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 회사 여직원이 큰돈에 현혹되어 실제 더 받고도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 여직원을 다시 불러서 물어보기도 어려워 그냥 덮어버렸다. 세월이 한참 흘렀어도 은행 여직원 이야기만 나오면 그 당시 일이 생각난다. 100만원은 큰돈이므로 그 돈을 실수로 더 준 은행 여직원도 평생 못 잊을 사건이고 누군가 더 받아간 사람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은행여직원은 용서하고 발 뻗고 자지만 더 받아간 사람은 두고두고 돌려주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살지 모른다.

 

1970-01-01 09:00 2017-02-07 15:30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느닷없이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고 아내가 직장으로 남편을 찾아온다는 그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 아내는 다짜고짜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여럿 있었고 여직원도 있었는데 창피하기도하고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아내는 애써 미소를 짓고 말은 나지막했지만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팍팍팍 튀어나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길에 분이 차서 씩씩거리는 아내에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아내가 말하길 며칠 전에 어떤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내용인 즉 ‘당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전화나 잘못 걸려온 전화가 아니가 하고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조용히 말하며 찜찜하지만 전화를 끊었고 내게도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그 여자가 아침에 또 다시 전화를 해서 남편이름과 신상에 대한 몇 가지를 말하는데 다 맞는 말이고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를 오늘 오후 2시 정각에 전화를 걸어서 알려주겠다고 말 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무시하려고해도 여자의 말이 거머리처럼 머릿속에 딱 달라붙어 윙윙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더란다.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무시하기로 해도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하고 안절부절 하는 마음에 마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남편이 직접 오후 2시에 그 전화를 받아보게 하기위해 나를 데리러 온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순간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귀던 첫사랑 P가 있었는데 수 십 년이 지나서 영화처럼 내게 연락이 왔다. P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은 뛰었고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서울 사는 P가 며칠 뒤 비행기를 타고 왔다.

 

기억 속에 멈춰있는 P의 풋풋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은 아닐꺼라고 생각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의 P의 모습에서 세월의 변화를 느껴야 했다. 아줌마, 아저씨의 재회의 현장에 불과했다. 대화의 주제도 서로가 가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팍팍한 삶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첫사랑으로 함께 들녘을 다니며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마음은 마냥 푸르렀던 과거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억으로만 남고 이제는 아니었다. 소년소녀시절의 가슴 뛰는 열정의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에게는 없었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고 상상 속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세간의 말들이 참말이라고 느끼고 다소 실망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다하여도 P와 나의 둘만의 만남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장난전화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고 아내와 적막함이 흘렀다. 정각 2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전화기를 받아들고는 몇 마디 통화를 한 다음 나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기 넘어 목소리는 낮선 여자 목소리였다. 여자는 전화 상대가 바뀐 지도 모르고 신바람이 나서 아내에게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아내 몰래 만난 첫사랑 P와 만남의 장소 먹은 음식을 말하는데 모두가 사실이었다. 내 표정도 굳어졌지만 그 여자에게 무슨 말로 대꾸해야할지 머리가 멍해졌다.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하고 말하자 갑자기 남자로 바뀐 전화기 목소리에 당황한 여자가 전화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발신자 번호표시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통화한  흔적은 바람처럼 사라져도 목소리는 귓전에 남아 윙윙거린다.

 

이건 틀림없이 P가 첫사랑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무슨 무용담처럼 친구에게 자랑을 했고  샘이 난 친구가 아내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 분명했다. 첫사랑이고 뭐고 정나미가 딱 떨어졌다. 남녀관계의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P가 먼저 말해놓고 소문을 낸 것이다. 아니 내가 좋아한 첫사랑 P가 이렇게 경박한 여자였단 말인가 허탈했다. P는 물론이고 고자질한 여자에게도 화풀이할 형편이 아니었다. 속으로 분통이 터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사랑했으면 둘이 결혼을 하지 나는 지금 당신의 무엇입니까?’ 나는 그 말에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아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면 적반하장으로 나도 거짓말로 둘러대고 괜한 생사람 잡는다고 딱 잡아 땠을 것이고  다음날 P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결국 싸움판은 커지고 자존심이 서로 강한 우리 둘 부부는 참지 못하고 가정파탄으로까지 발전했을 것이다.

 

옛날의 순수하던 첫사랑이고 지금 만나서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고 하여도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는 일은 부정한 짓이고 옳은 일이 아니다. 내가 즐겁다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며는 안 되는 첫 번째가 남녀관계이다. 아내가 ‘나는 지금 당신의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아내에게 우연히 한번 만나게 되었고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니 마음 두지 말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진작 말하지 않은 것은 괜히 말해서 가정의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 같아서 말을 안 한 것일 뿐이라고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감에 금이 가고 의심을 준 것은 분명하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니 이왕 후회한다면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첫사랑 P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다면 후회할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후회하더라도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가슴속에 늘 있어왔다. 그렇게 한번 만나고 풍파가 일어난 것으로 첫사랑의 재회는 끝이 났지만 다시 만난 것을 역시 후회했다. 맺어지지 않은 첫사랑은 그리워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 머릿속에는 초로의 아줌마가 아닌 10대의 풋풋하고 상큼하던 모습의 P만이 있었을 것이다. 첫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재회는 신중해야 한다.

      

 

     

 

 

1970-01-01 09:00 2017-02-03 14:01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요즘 방송이나 언론의 대부분이 박대통령 탄핵사건 보도가 차지하고 있다. 보도의 내용은 확실한 실체가 없이 의혹이 먼저다. 이러이러한 의혹이 있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잘못이다. 라는 말이 나오면 한쪽에서는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맞받아친다. 대다수 소리 없는 국민은 어안이 벙벙하고 촛불집회나 맞불성격인 태극기 집회에서 뱉어내는 말들을 들어보면 믿기 어려운 왜곡된 말들이 많아 혼란스럽고 막말은 듣기에도 민망하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라 하더라도 잘못보고 잘못 들을 수가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진실과 다르게 듣기도 한다. 거두절미하고 말의 한부분만 뭉툭 잘라버리면 말한 사람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말이 된다. 남의 말을 전달할 때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고 먼저 말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히고 말해야 한다.

 

불교의 금강경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으니(如是我聞)’라는 말로 시작된다. 부처님의 10대제자중 한사람인 아난존자의 말이다. 아난존자는 누구인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20여년이 지난 다음에 여러 제자들 중에서 선출되어 부처님을 시봉(侍奉)하는 제자가 되었다. 인물이 출중하여 여자의 유혹이 많았으나 지조가 견고하여 흔들림 없이 수행을 하여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 비상한 총명과 뛰어난 기억력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제일의 제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아난존자는 내가 어떻게 부처님이 이야기하신 그 진의를 그대로 말할 수 있으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들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내가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고 나의 의견이 은연중 말속에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확실히 들은 것만 이야기 하겠다는 본인의 강한 의지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의미는 부처님만이 아실뿐 나는 거기까지는 모른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으니’ 라는 표현을 쓰는 아난존자의 정직하고 진실한 자세 그리고 겸손한 모습을 그리게 된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로서 자식을 잘못 가르친 무한책임을 느끼고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했다. 자칫 남이 들으면 아들이 범인이 아니고 부모가 범인인 것처럼 들린다. 이 말을 잘못 전달하면 전달자가 증인이 돼버리고 일파만파로 번져 꼼작 없이 부모가 범인으로 만들어진다. ‘그럴 것이다.’ 라는 예단을 갖고 남의 말을 들으면 ‘역시 그렇구나.’하는 속단에 빠지기 쉽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것 중에 거짓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실망하는 첫 번째가 자식의 거짓말이다. 종교에서도 계율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엄격하게 주의를 준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애매모호해진다. 그러면 세상은 혼탁해지고 위계질서가 무너진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각자 만져보고 누구는 기둥 같다고 하고 누구는 커다란 산과 같다고 각자 다르게 말했다. 장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느낀 바를 사실대로 말하지만 고 결과는 얼토당토 아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귀로 똑똑히 듣고 내 눈으로 똑똑히 본 것도 사실이 아닐 수가 있음을 경계하고 늘 조심해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 

1970-01-01 09:00 2017-01-16 13:41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시집간 딸이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일단 추스린 후 친정엄마의 산후바라지를 받겠다고 친정집인 우리 집으로 왔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운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아이 양육법을 다 잊어버렸다고 새로 떠맡게 된  바라지 일에 내심 고민을 한다. 갓난아이라 키우는 일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먹이고 재우고 대소변 받아내고 씻기는 일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가 않다. 특히 두 시간마다 적절한 온도에 맞추어 제공되는 분유타기가 골치고 덜컥 아프기라도 한다면 이 원망을 어찌 듣는단 말인가 큰일이다.

어려운 것이 두 시간마다 하는 분유 타기다 . 내 아이 키울 때는 아내가 젖이 풍부하여 이유식하기 전까지 모유만으로 키웠기 때문에 통 해보지 않던 고민이었다. 아이가 자다가 배고프면 엄마 젓꼭지를 물리면 그만이었다. 항시 일정한 온도로 데워져있는 아기용 보온 젓 통을 엄마가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내나 딸 둘 중에 하나는 밤을 자는둥 마는둥 해야 한다. 아침에 보면 완전 그로키상태가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린다. 딸은 시집가기 전에는 까칠한 성격으로 톡톡 쏘는 버릇이 있었는데 동물의 본능처럼 새끼 사랑은 있어서 아이한테는 짜증한번 내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더구나 아이 때는 더더욱 더하다. 아이를 위해 분유를 타고 옷을 입히고 챙겨주는 것이 살아가는 엄마의 행복이다. 농사짓는 것은 나중 수확을 바라지만 어린 자식을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나에게 무슨 보답을 해줄 것이라는 이해타산은 없다. 나중에 늙고 병들면 자식이 도와주길 바라겠지만 키울 때는 그런 마음이 없다.

아이는 눈이 덜 발달되어 보지는 못하지만 귀는 열려 주위 소리를 듣는다며 아이에게 사랑의 말을 끝임 없이 건넨다. 엄마의 말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아이 키우는 행복이 철철 넘친다.

‘아유! 배가 고팠어.  배가 고프구나! 우리아기 얼마나 배가 고플까 엄마가 금방 준비해서 줄께’ 연신 아이가 하고 싶은 말, 하는 행동에 공감해 주면서 아이를 달래며 물을 끓이고  분유를 타고 알맞게 식혀서 30분이나 넘는 시간을 지루하게 짜증이나 귀찮음 없이 행복해하며 먹이고 있다.      

‘아유! 오줌을 쌌구나! 축축해서 짜증나지! 금방 귀저기 갈아줄게. 조금만 참아!’한다. 우리말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을 적반하장이라 하지만 이보다 더한 똥싸놓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적반하장은 없다. 아무리 똥을 싸고 포대기를 더럽혀도 엄마는 미워하는 구석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다. 연신 아이의 감정에 포커스를 맞춰 공감을 표시하면서 어르고 달랜다.

아기가 하는 행동 어느 것이나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다. 아이 행동 모두를 공감하니 부모로서 즐겁고 행복해 한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생길 것이다. 아이도 부모에게 반항하기도할 것이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의 아이와 부모처럼 공감을 한다면 얼마나 서로 행복할까? 공감지수가 사랑의 지수고 행복의 지수다. 부모자식 간에도 부부사이에도 친구사이에도 서로 대화를 많이하고 한발 양보하여 공감하는 일이 많은 한해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1970-01-01 09:00 2017-01-13 17:08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직장 후배가 내가 퇴직을 했는데도 해마다 우체국에서 구입하는 새해카드를 보내온다. 지금은 IT산업의 발달로 다양한 그림과 문자를 카톡이나 메일로 주고받으며 종이로 된 옛날식 카드는 보기도 귀하다. 몇 년 전만해도 년 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일상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수제카드를 길거리에서 팔기도하고 서예를 배운 사람은 직접 붓으로 연하장을 쓰기도 했다. 문방구에는 형형색색의 다양한 카드가 손님을 기다렸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해간다.

일 년 내내 전화 한통 하지 않던 사이도 몇 백 원짜리 카드를 보내면 인사치례는 한 것 같은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카드문화가 범람하자 부작용으로 회사의 책임자급은 거래처에 수백장의 카드를 인쇄하여 뿌렸다. 평소에 아무런 안부 전화 한번 없다가 년 말에만 카드를 보내는 것이 속보이는 허례허식이라 하여 자제해야한다는 말이 차츰 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 카톡으로 그림과 인사말을 주고받는 새해인사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더니 이 또한 너무 흔해 빠져 요즘은 카톡 또한 공해수준이라 하여 스스로들 자제하면서 해마다 줄어든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변해도 손으로 직접 쓴 편지가 전화나 문자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처럼 우편함에 넣어져있는 연하 카드를 받아보면 카톡으로 받는 기분하고 또 다르다. 나는 이미 퇴직하고 후배에게 도와줄 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잊지 않고 해마다 카드를 보내주는 후배가 고맙기는 하지만 시류에 따라가지 않고 카드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후배에게 물어봤다.

    

후배의 말이 예의란 격식이 있어야하고  격식은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쉽게 카톡으로 보내는 인사는 왠지 경박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카드 사러 우체국에 직접 가서 고르기도 하고 카드 속지에 짧은 몇 마디 인사말을 쓰면서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수고를 하고 싶다고 한다. 직접 카드를 만들 자신은 없고  앞으로 우체국에서 더 이상 카드를 만들지 않거나 시중에서도 절판되어  카드를 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 구입해서 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세 사람이 동시에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길 가던 사람들이 하늘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후배가 보내주는 카드를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인사치례 카드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을 해마다 계속해서 우직하게 보내주는 후배로 부터 세사람의 법칙처럼 카드속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몇줄의 글속에서 후배의 속마음을 캐고 있다. 점점 후배에게 고마움을 넘어 신뢰감이 싹트고 있다.

    

정말 후배가 이 세상에서 카드를 더 이상 만들어 파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보내준다는 약속을 지금은 했지만 사람의 약속이라 귀찮아하며 못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 카드를 해마다 보내는 것이 무슨 중요한 일도 아니고 어쩌면 영양가도 없는 미련한 약속이지만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후배가 점점 큰 인물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카드를 해마다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시류가 카드를 보내는 시대가 아닌데도 계속 실천하기는 아무나 하기 어렵다. 나에게 해가 된다면 지조와 약속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원수와도 동침을 하는 세상에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소신으로 사람 냄새나는 생활을 이어가는 후배에게 올해는 승진도 하고 행복이 충만한 한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1970-01-01 09:00 2017-01-08 18:53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노년에 글쓰기는 손가락운동을 많이 하게 되고 손가락에는 두뇌와 연결되는 신경조직이 있어 머리를 녹슬지 않게 하는데 효과가 있. 글을 쓰기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두뇌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히 치매예방의 성과도 있다. 머릿속에서 기억을 회생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글쓰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머리속으로야 시공을 뛰어넘어 원시시대의 장면을 떠 올릴 수도 있고 미래 달나라에 소풍가는 상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단지 머릿속 상상만으로 세계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것 또한 글쓰기의 매력이다.

    

일기를 쓰거나 자기만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글이 아니고 남에게 읽혀지게 하기위한 글이라면 글의 주제와 형식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유어스테이지의 리포터 글은 글쓴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글로 표현하도록 요구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채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시시콜콜한 가족이야기나 책 읽은 이야기 또는 영화 본 이야기를 쓰는데 이것이 독자에게 어떤 신선한 공감을 줄 것 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 요즘 글쓰기를 자제하고 있다.    

    

잡지나 신문사에 글을 보내보니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사실을 주장해도 그 내용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공익에 부합하면 받아준다. 오히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글을 국민의 소리로 높이 사준다. 기관에서 주제를 내걸고 현상 공모하는 글은 주제와 맞는 글이어야 우수상도 받고 가작으로도 뽑히게 된다. 예를 들어 연금을 취급하는 기관에서 글쓰기 현상공모를 한다면 어려운 형편에 연금불입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참고 계속 불입한 덕택에 지금 생활이 윤택해졌다거나 좋아진 사실을 글로 써야지 연금 불입액이 많아 살기가 어렵다는 푸념만하거나 연금 실 수령액이 적어 용돈수준의 연금에 불과하다는 글을 쓰면 보나마나 불채택이 될 것이다.

    

나는 00공제회에 가입하여 저축도하고 목돈을 맡겨 이자도 받아쓰고 있다. 일반 은행보다 공제회가 장점이 많아서 내게는 꼭 필요한 기관이다. 그런데 작년에 이곳 공제회에서 공제회 이용수기를 현상공모 했다. 널리 공제회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이다. 공제회 이용을 활발히 하고 수혜자인 나로서는 쓸 내용이 많았다. 나름대로 잘 정리하여 잘 썻다고 생각하고 응모 했는데 결과는 발표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실망도하고 저축액수가 적어서 입선하지 못했는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

    

올해도 똑 같은 주제로 현상공모계획이 공지되었다. 작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응모요강을 자세히 읽어보니 응모요강과 내 글이 서로 핀트가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응모요강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작년에는 퇴직 후에도 경제력이 있어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으로 내가 하고 있는 경제활동을 장황하게 썼다. 제목이 차라리 시니어의 바람직한 경제활동이라고 쓰고 다른 곳에 제출했으면 좋았을 내용이었다

    

올해는 00공제회가 하는 업무와 나와의 연관성을 골격으로 풀어 나가고 공제회이용으로 구체적인 나의 노후 경제계획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으로 수정해서 제출했다. 결과는 우수상을 받았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줘야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줘야한다. 주최측이 원하는 주제와 맞는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1970-01-01 09:00 2017-01-07 19:08
댓글
0 개

Comments List

댓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 6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