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ㄷㅗㅇ안 내꿈을 펼칠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시행 착오도 많었지만  그동안 행복해ㅆ다 여행 갔다 오면 컴앞애 제일 먼저 앉ㅇㅏ 아무것도 못한채 그ㄹ 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다 내꿈ㅇㅡㄹ 펼친다 ㄴ말인가, 부지런히 글을 써 두어야 게ㅆ다 혹시 다시 유어스테이지가 낵ㅔ 닥아올지 모르니까,...그동안 성원해준 여러분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쉬어 미칠것만 같습니다. 이러다 우울증 생기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1970-01-01 09:00 2019-01-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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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인문학 강의가 있는 날이다.매달 마지막 목요일 19시 30분엔 이 곳에서 인문학 예술 콘서트가 있다.오늘은 '내일을 여는 행복의 춤'이라는 제목으로 발레무용가 김인희 교수님이 연사로 나오시고 배우 오지명의 따님 배우 오지혜가 사회를 본다. 밖엔 날씨가 소스라치도록 춥다.움추러든 어깨들이 마치 자라 목 처럼 들어가 눈만 빼꼼히 내놓고 걷는 사람들 틈에, 만나기로한 권선생님을 찾기위해 두리번 거리자, 저 멀리서 알록 달록한 모자를 쓴 예쁘장한 용모의 사람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선생님은 볼 때 마다 단정한 용모에 75세라는 연세를 가늠하기가 힘들정도로 건강하고 젊으시고 패기가 왕성하여 아무래도 장수인자가 어딘가에 있으신 것이 틀림없다. 힘든 일을 하고나면 몸살이 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조금 아푼 듯 하다가는 원 상태로 바로 회복하는 속도가 남보다 빠르다고 한다. 같이 걷다가도 숨이 턱에 차서 힘들 때 쯤 선생님은, 뭐가 힘드냐며 되 묻곤 하신다.특별히 건강 식품을 드시는 것도 없으시다고하고 타고 난 것이 분명하며 부럽다. 둘이 오니 대학로까지 오는 시간이 족히 한시간 걸리는데, 단 몇분만에 온 느낌이다. 이래서 혼자 보단 둘이가 더 좋은가보다.예술가의집 3층 다목적 홀에 도착하니 아무도 오지 않었으며, 공지를 보니 모두들 근처에서 잔치 국수를 드시는 중 이라고한다. 골려주고 싶고 심술도 나서 '좌석이 없어요 어서 오세요'라고 공지에 올리기 바쁘게 모두들 헐레벌떡, 국수도 드시는둥 마는둥 달려오셨고,대신 난 꿀밤을 몇대 맞었다. 그래도 즐거우신지 우리를 웃고 즐겁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은 성연이 밖에 없어라고 하시며 너무도 즐거워 하셨다. 추운 날씨에도 강당을 가득 메우고도 좌석이 더 필요했다.
사회자 오지혜의 인사와 함께 콘서트가 시작 되었다. 김인희 선생님은 발레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최초로 민간직업 발레단 <서울 발레시어터>를 창단한 발레무용가 이다.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김인희 선생님은 초등학교 시절, 발레가 아닌 고전 무용으로 시작 했으며, 그 당시 가정 형편은, 엄마가 화양 시장 노점상을 하실 정도로 어려웠다고하며, 이런 사정을 알게된 안무 선생님은 어린 김인희를 무료로 고전 무용을 가르쳐 주었으며, 중학생이 되어서 발레로 전향하게 되었다고한다.외국 유학 시절 학비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으나, 비행기표를 살돈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벽돌 공장에서 일년치를 가불했고,유학 생활비를 걱정하던 차에, 부모님이 전세집을 정리하고 무허가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까지 보내 주셨고, 부모님은 발레리나 김인희를 위해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사셨다고한다. 나중에 유학에서 돌아와 집이 자기 때문에 그지경이 된걸 알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지금 현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12년째 치매를 앓고 계시다고 한다.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발레를 3일 쉬었는데, 발레는 하루를 쉬면 일주일이 틀리고,이틀을 쉬면 한달이 틀리고, 삼일을 쉬면 일년이 틀리다고하는데, 공연을 앞두고 3일을 쉬고 공연을 하는데 어떻게 공연을 했는지 무아지경에서 공연을 마쳤다고 하며 아버지께서
도와 주신것으로 믿고 있으셨다.
기적은 또 다른 이름의 참사랑 이라고 하셨고, 김인희 선생님의 역경과 절망을 이겨내고 희망의 내일을 여는 예술가의 힘을 본 받고 되새겨야겠다. 발레라는 공연은 항상 외국에서 기술을 사가지고 오는데, 우리도 우리 기술을 만들어 팔아보자는 의미에서,창작을 시작 하셨으며, 몇 작품 만들어 팔아 로얄티도 받고 있다고 하신다.와이어에 연결 된 줄을 타며 추는 발레는 처음 접해보는 우리의 완전한 창작이라고 하신다.이런 창작과 서울 발레시어터는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에게 패기와 열정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어린 김인희를 무료로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지금은 미국에서 많은 연세에도 어린이를 가르치는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고 하니, 잘된 제자 보다는 선생님이 더 훌륭하시다.한사람의 훌륭한 제자을 알아 보신 걸까, 아님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신 걸까, 어찌 되었든 김인희 선생님은 인복이 있으신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오늘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 생애에 최고의 날이라고 하시며,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되고, 일주일 네번 모여 한달이되고 한달이 열두번 모여 일년이 되 듯이. 오늘, 지금이 가장 최고의 날이고 가장 소중한 날이라며 오늘 콘서트를 마쳤다.
1970-01-01 09:00 2018-12-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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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내리자 멀리 청계천 야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슨 일 인지 모두들 청계천 쪽으로 몰려 가고 있었다. 모두들 나 처럼 청계천 야경을 보러 가는 모양이다. 청계천 야경은 티비에서나 봐 왔지 이렇게 직접 나와 보기는 처음이며. 진작 부터, 올해는 꼭 한번 보러 나올 것을 다짐 했었다. 우리는 회장님께서 사 오신 김밥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듯 서로의 꼬리를 놓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청계천으로 진입했다. 옛날 20대 때 명동에서 자양동 집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걷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이틀밤을 날을 새도 거뜬했고, 고고장에서 밤새 놀고 출근해도 피곤 한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청춘들이 여기 다 모였다. 아니 우리나라 인구 절반은 모인 것 같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 명절인것만 같다. 청계천 입구엔 커다란 무대가 설치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이 무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유명 가수가 나와 노래 부르며 춤을 한바탕 출것같은 기새이다.
형형 색색으로 변하는 야경 앞에서 추위도 잊은 체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해 본다.살짝 몸도 흔들어 보고 신나게 손뼉도 쳐보며 모두들 어린 아이가 된 듯 신나 보인다.앞으로 전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트리가 가로 막고 서있다. 서있다기 보다는 트리보다 많은 사람이 에워 싸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젊은 커풀들이 사진 찍느라 더이상 앞으로 나갈수가 없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들 또한 우리에게 양보해 주었고, 설 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오늘 우리곁에 젊은 청춘들은 더 할 수 없이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사랑스러웠다. 우리의 꼬리 잡은 모습을 보고는 박수를 쳐 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었다. 이런 젊은 청춘이 있기에 아직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다라고 누군가 말씀 하시며 손 인사를 하시기도 하셨다.
모자도 썼겠다, 마스크도 썼겠다,누가 날 알아 보겠는가, 누가 주책없는 아줌마로 볼것인가, 또한 그렇게 보면 어떠리 '메리 크리스마스' 젊은이들과 함께 힘껏 소리쳐 본다, 절로 신이 난다. 같이 간 선생님들도 함께 소리쳐 본다. 우리들의 소리는 음악 소리에 파 묻혀 잘 들리진 않었지만 옆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로 받아 주었다. 아무리 둘러 봐도 우리 나이대는 없는것 같았다.물론 우리 일행중에 내가 제일 어리긴 하지만 선생님들 연세가 가장 많은것 같으나, 선생님들은 나이 따윈 잊은지 오래이신것같았다.
이 북세통에 짜증을 낼 만도 하건만 모두들 함박 웃음이 가득하신걸 보니, 그옛날 청춘으로 돌아가신 것 같기도하다.
간신히 청계천 입구에 가까워 지자 나팔을 부는 천사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우리들의 이곳 까지 도착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힘찬 나팔을 불어 주는 듯했다. 우리들은 행여 놓칠새라 꼬리를 잡고 한명의 낙오도 없이 이곳까지 잘 도착하여 서로를 쳐다보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지금 오늘 이시간 우린 아무것도 생각이 없다. 모든 것이 백지다. 하얀 도화지에 우리만 있는 것이다. 마냥 즐겁다. 선생님들이 갑자기 10년은 젊어 보이셨다. 왜일까, 많이 웃으셔서 일까, 정말 젊어 지셨다.
더 이상 청계천 진입은 불가능했다. 청계천 양쪽은, 많은 사람으로 꽉 차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이곳을 쳐다 보고 있었다.잠시후 있을 페스티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놀라웠고 2000년 새해 새천년이라고 광화문에 나왔다가 집에도 못가고, 종로3가까지 떠밀려 갔던때가 기억나 아찔했다. 종로 3가에서 간신히 빙빙 돌아 나왔으나 집까지 가는 차가 전면 통제되어,걸어서 무악재까지 갔던 생각이난다. 그때는 젊기나 했지 지금 그랬다간 지래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아, 어서 이곳을 탈출하기로 했다.반짝이는 청계천 야경이 멋지게 빛을 발하긴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에 떠 밀려 몸살을 앓는건 아닌지 안타깝기도하다.
멀어지는 청계천 야경을 뒤로하고 사람이 뜸할 때 다시 한번 오기로 약속 하고, 청계천 야경과 작별을 했다. 선생님들은 못내 아쉬운지 자꾸 뒤를 돌아다 보신다. 야경을 보러 오셨다가, 젊은이들 틈에서 잠시나마 젊음을 느끼셨음이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청춘들 틈에서 반짝이는 야경처럼 20대 청춘으로 되 돌아갔던 한 밤이었다.
1970-01-01 09:00 2018-12-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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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애니 공연을 관람하기로 한날이다. 마침 취소하는 회원이 있어 내 차례까지 오게 되었다.  애니를 관람 하게 되어 쓸쓸한 성탄절이 되지 않음에 행복한 하루가 될 것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감기 몸살기도 없는데, 목소리가 전혀 나오질 않는 것이 목이 따금 거리기 시작한다. 신경쓸 일이 있어 너무 한꺼번에 온 정신을 쏟았던 모양으로 신호가 오는 모양이다.그러나 씩씩하게 세종문회관으로 향했다. 세종문화 회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웅성 거리며 줄을 서 있어 뭔 일인가 가까이 가보니 애니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들을 앞세워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었다. 과연 아이도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건지가 의심 스러웠다. 엄마의 등살에 떠 밀리듯 사진을 찍는 진 풍경도 보였다. 우리 일행은 3층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티켓도 나누어 갖고 좌석도 자세히 확인해 두었다.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 더욱 사랑 받는 품격 높은 가족 뮤지컬이라고 한다.[뉴욕의 한 고아원에는 11년전 떠나면서 남긴 부모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는 애니가 살고 있다.언젠가는 부모님이 찾으러 오실테니 자기는 고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애니는 부모님이 자신을 못 찾는다면 자기라도 나가서 보모님을 찾겠다며 틈만나면 고아원을 빠져 나갈 궁리만 한다.]어린이 9명이 한 목소리가 되어 꾀꼬리 같은 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 애니는 천의 목소리를 가졌는지 작은 아이의 몸에서 어찌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관중을 압도 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애니의 노래 하나 하나에 모두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편 고아원의 원장 해니건(변정수)은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아이들을 괴롭히는게 취미인 고약한 노처녀였다.해이건은 몇 번이나 고아원을 빠져 나가 자기를 해고 당할 위기에 몰아 넣는 애니를 가장 싫어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 오고 이 고아원에 세계적인 갑부 올리버 워벅스씨의 개인 비서 그레이스가, 워벅스씨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고아를 고르러 찾아온다. 마침 해이건의 사무실에서 벌을 받고있던 애니가 그레이스의 눈에 들고, 해니건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애니는 워벅스씨 집에 크리스마스 손님으로 초대 받게된다] 행운은 뜻하지 않게 어느 순간에 찾아 오는 것 같다.
조급해 하지 말고 묵묵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옆에 오는것 같다.뮤지컬 애니를 보면서 많은걸 느낀다.
[생전 처음 보는 큰 집에서 애니가 만난 워벅스씨는 일에만 몰두해 세계적인 부자가 된, 정이라고는 모르는 차가운 어른이지만 워벅스씨는 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사는 고아 애니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때 묻지 않은 아이 애니, 긍긍적인 삶을 사는 애니, 어린 아이지만 우린 많은 것을 배운다. 현실에 촉박하게 살다 보니, 늘 시간에 쫒겨 살고, 늘 제 때 식사를 못해 소화불량에 시달려야하는 우리세대, 이 아이 애니는 그런 우리들에게 또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세상을 밝게 웃으며 살다보면 웃는 만큼 내게 돌아 온다고나 하까, 삶을 어른 보다 더 잘 들여다 보는 것같다.
뮤지컬 애니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40 주년을 맞아 연말 대작으로 7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라고 한다.2006년 부터 역대 워벅스 역을 도 맡았던 주성중과 뮤지컬에 첫 도전하는 변정수가 애니를 괴롭히는 해니건으로 나와 눈기를 끌었으며,우스꽝 스러운 변정수의 연기도 볼만했다. 그녀의 걸걸한 목소리와 휘청 할 정도로 커다란 키에 비틀거리며, 술 취한 연기는 우습고 기발 할 정도로 연기를 잘 한다. 모처럼 뮤지컬 애니를 본 2018년 성탄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2-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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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강북삼성병원 방향350m,서울 역사 박물관근처,경희궁옆,경찰박물관옆, 돈의문 전시관이 있다. 서울시 종로구 세문안로 35-54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차장은 별도로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모처럼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물론 관람료는 무료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 부터 6시까지 이며, 매주 화요일과 1월1일은 휴관이다. 원래 9000원의 입장료가 있으나 지금 현제는 면제 기간 이기도 하다. 오늘 도슨트와 미팅은 12시반이지만 우리는 조금 일찍 11시20분에 만나 사진도 찍고 투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곳을 미리 둘러 볼 예정이다.
조선시대 도성인 성곽에 4개의 큰문이 있었는데 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이, 정동, 정서,정남,정북 자리에 있었다.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문득 생겨난다. 아련한 기억속에 발자취를 따라 가 보면, 어느새 너무도 많이 변해있어 아련한 옛날이 되어 버리고, 내 머리에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좁다란 골목, 길가의 뽑기 아줌마, 다닥 다닥 붙어 살던 집들,웃음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 듯 들리던 이웃들, 청계천에 휘날리던 수양버들은 안직도 눈에 선하다. 눈깔사탕이 먹고 싶어 이 다음 커서 가게 주인이 되려고 했던 어린시절,커다란 개를 키우던 옆집 개가 사람이 지나칠 때 마다 짖는 통에 겁없이 발로 걷어 차다 물렸던 기억, 엄마한테 혼날까 두려워 물렸다는 말도 못했던 기억,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억들 뿐이다. 추억이 그립고 어린 시절이 그립다면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놀러 오세요.적극 추천합니다.
우리가 살았던 집, 우리가 보았던 50년대~90년대 사이의 집과 음식점들이 각각 박물관과 전시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쪼로록 줄지어 있는 한옥집은, 멀리서 보면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듯 장난감 처럼 보인다. 좁다란 골목을 들어서니 어릴적 친구들과 숨바꼭질 하던 때가 생각난다. 술래가 된 친구는 숨은 친구를  찾다가 못찾으면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며, 삐져서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고무줄 놀이를 하다 달려온 남자 애들한테 고무줄 끊김을 당하여, 끝까지 달려가 남자애들과 싸우던 좁다란 골목, 구술치기,딱지치기, 사방치기,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슴이 아쉽다. 한옥집 내부는 옛날 집들이 그러하듯 조그마한 마당에 ㄷ자로 둘려있는 방들과 그 조그마한 마당 한 구석에 만들어진 화단, 아마 이 화단엔 채송화 봉숭화는 당연히 있었겠지, 그 옛날에도 그러 했으니까,
어린 시절엔 타일로 벽을 붙였던 집들이 있었다. 이 타일 공법은 우리 나라와는 맞질 않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에서 들여온 공법이라고하며, 공전도 많이들지만 잘 떨어져서, 화장실에 많이 사용할 뿐이라고 도슨트는 말한다. 여관이라는 간판이 왠지 정겹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간판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통금을 피하기 위해 머무르기도 했고,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잠깐 머무르기도 했다고한다. 낭만이 있는 여관이다. 요즘은 여기도 모텔 저기도 모텔 유명한 관광지를 찾으면, 번쩍 번쩍한 모텔 천지 이다. 얼마 전 장흥에 밥을 먹으러 간적이 있었다. 얼마나 집 나온 사람이 많은지, 여기 저기 멋들어지 모텔이 장흥 유원지를 뒤덮었으며, 못내 안타깝고, 눈 살이 찌푸려졌다.
조선시대의 이 마을 사진을 보니 정겨우리 만큼, 예쁜 집들이 다닥 다닥 옹기 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있다. 공기 또한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산 밑에 모여 있는 집들이 누구네 숟가락이 몇갠지 까지 알것 같은 동네이고, 이런 동네에서 옹기 종기 살고 싶다. 저렇게 다닥 다닥 붙어 살아도 불도 않나고 싸움도 없고 도적도 없고 보기만 해도 인심좋고 정겨울것 같음이 물씬 베어 나온다. 현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이사 왔는지 알 수가 없고, 이사 온 집에 전화 번호를 물어 보면 정보 도용 관계로 함부로 알려 줄 수 없다니 이게 왠 말인가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동차 아저씨가 우릴 맞이해 주었다. 나도 기동차 세대인 만큼, 기동차를 탔던 기억이 한토막 생각난다. 동대문까지 엄마의 손을 잡고 기동차를 타고 내렸던 기억이 토막으로 생각난다. 정거장에 도착할 무렵 딸랑 딸랑 종소리도 났던 기억이 어렴 풋하게 난다.그 때만해도 이런 시대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땐 기동차 운전 아저씨가 어찌나 멋있어 보였던지, 대통령보다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 모든 것들이, 아련히 그리워 질 때가 가끔은 있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 볼수 있는 돈의문 골목 투어 ,돈의문은 없어졌지만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재개발 조합측에서 그 부지를 기부 했다고 한다.재 개발로 밀려버릴 처지에 있던 옛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재미있는 박물관 마을로 재탄생 시켜 볼거리를 재공해줌에 감사한다. 사라진 옛터가 100여년 만에 시민의 기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1970-01-01 09:00 2018-12-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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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데이케어 OT가 있는 날이다. 며칠전 데이케어 대표와 면접을 간단히 마치고 언제 오라는 연락도 없이 연락 하겠다는 말만 듣고, 집에 왔으나 영 석연 찮아서 그곳에 근무 중인 지인을 통해 알아 봤으나  별 말이 없어 포기하고 있는 참에, 전화 연락을 받아 서둘러 서류를 준비했다. 건강 검진증을 보건소에서 하라고 했지만 보건소는 일주일이나 걸리고, 시간이 촉박하여 병원에서 33000원을 들여 채용 건강검진증을 만들어 서류를 완벽하게 갖추고 오라는 시간에 조금 일찍 갔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좋았고, 이곳은 우리 모임이 봉사를 가는 곳이고, 나도 몇번 봉사를 했던 곳이라 낯 설지 않고 익숙하여 지원하게 된 첫번째 이유이다. 발 걸음이 가볍고 무엇을 물어 볼지도 준비하고, 혹시 시킬지도 모르는 웃음치료도 몇가지 준비를 했고, 어르신들을 위해 불러 줄 노래도 연습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모두들 회의중이였고 맞이해주는 선생님들 표정은 모두들 밝았고 친절했다. 사무실 밖 쇼파에 앉아 회의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근무 하시는 선생님들 사진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직원은 모두 21명이었다. 21명 직원이 한결 같이 가족 같은 마음이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고, 기다리는 동안 인사말도 준비했다.이윽고 회의가 끝났는지 직원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왔으며 모두들 나를 향해 눈 인사를 건냈다.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대표가 가르키는 의자에 앉아 고문 아닌 고문이 시작 되었다. 서류를 훌터 본 대표는 건강 검진증을 들고 왜 병원에서 했냐고 따지 듯 언성을 높였다. 보건소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고 하루 굶고 오라고 하기도 하고 해서 병원에서 돈까지 들여 가면서 했다고 이유를 설명 했지만, 대표는 막무가내로 시키는 데로 하지 않음을 꾸짖기 시작했다. 마치 여기 직원이 되려면 내가 시키는데로만 해야 한다는 듯 들렸다. 거기다 내 건강검진표를 손에 들고 흔들며 사무장에게 이거 되는지 알아보라고 소리 치기도 했다. 별로 흥분 할 일도 아닌것 같은데, 그 자리를 뛰쳐 나오고 싶었으나, 소개해 준 사람 채면도 있고 해서 꾹꾹 눌러 참었다.의사소통이란 둘 이상의 개인이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일련의 활동 체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배웠다.의사소통에는 말을 통한 의소통과 글을 통한 의사소통,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있다. 대표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은 눈을 흘겨 본다거나, 서류를 들고 흔든다거나, 성질이 났는지 안절 부절 못함이 내가 생각한 그런 대표의 상이 아니였다. 네네 대답만 하지 말고 물어 보라기에 몇가지 질문을 했더니, 자기 말할땐 끼어드는 버릇 고치라고 호통을 쳐서 완전 기가 죽은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만 가고 싶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사무실에서 현장을 모니터로 확대해 가면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현장에 내 던져진 난, 같이 일 할 사람만 마음에 맞으면 되니까 하는 생각으로 오늘 실습을 시작했다.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반장이라는 사람을 따라 다니며 일도 도와주고, 웃음 치료, 레크레이션,노래,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했고 보여줬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으나, 대표가 올라오면 분위기는 싸 하게 변했다. 우리팀이 봉사 왔을 때 나를 봤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모두들 대답하자 왜 못 봤냐고 꾸짖기 시작했고 몇번씩 계속해서 질문하기도 했다. 꾸짖음에 사기가 떨어진 일부 직원은 내게 조차도 말을 건내지도 않은 채 속상해 하며 그만 두려는 생각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의 의사소통이 다 나쁜것은 아니지만 직원들과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말에 귀 기울일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윽박 지르다보면 직원들은 뒤에서 수근 거릴 뿐 진솔한 말한마디 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데이케어가 생긴지는 족히 10년은 된걸로 아는데,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10개월이라니 그동안에 일을 한눈에 파악 할 수 있었다. 전에 봉사 왔을때 보았던 사람은 한명도 내 눈엔 보이질 않었다. 어찌되었든 6시쯤 되어 대표가 마칠 것을 알렸으며, 이곳 출입에 시스템을 알려 주기 시작했으며, 메모나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악을 쓰기 시작했으며, 당황스러운 난 우왕 좌왕 햇갈리기도 했다. '그래가지고 어찌 일하냐'는 말까지 들었다. 평생 들어 보질 못한 말이다. 하물며 눈을 희번득이며 노려 보기까지해서 무서웠다. 할만하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으나 그의 말은 "한일이 없으니 할만 하겠지?"라는 대답이었다. 완전 사기 떨어지는 의사소통이다.  9시에 시작한 OT, 아니 출근이 7시에 끝이 났으며, 마지막으로 대표로 부터 들은 말은 "여기 내 밑에 직원이 21명이요, 내가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지 알아?" 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었다. 어서 이 지옥에서 달아 나고 싶을 뿐이였다. 달아나 듯 집에 돌아온 난 짧막한 문자를 보냈다. '이일이 저와는 맞질 않아 입사를 취소합니다'라고 뒤어어 대표로 부터 전화가 왔고 '관심이 많이 가기에 그리 했다고' 마치 본인도 갑질을 느끼고 있었는지, 누구러진 목소리로 달래 듯 했으나, 의사소통이 원만하지 못한 대표가  걱정스럽고, 또 어떤 사람이 이런 고통을 당할지 안타까웠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난 그 일의 충격으로 결국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1970-01-01 09:00 2018-12-2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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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
1. 마아가린 49g  2. 설탕 560g 3.계란 490g(8개) 4.박력분 700g 5.전분140g 6.베이킹파우더28g
7.분유 20g 8.물190g 10. 오렌지필 140g 11.건포도 140g 12.아몬드 슬라이스 105g
1.마아가린을 거품기로 부드럽게 풀어준다. 부드럽게 잘 풀어졌으면 설탕 560g을 넣고 혼합한다.
2.계란을 3회로 나누어 혼합하는데, 처음에 4개를 넣고 거품기고 혼합하고, 다음 2개 넣고 혼합, 그리고 나머지 2개를 넣고  혼합하여 잘 섞이 도록 합니다.
3. 체친 가루재료 박력분,전분, 베이킹파우더,분유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혼합합니다.
4. 잘 썩였으면 준비한 물190g을 넣고 반죽을 합니다.
5. 오렌지와 건포도를 넣고 다시 또 혼합 합니다.
6.팬닝을 하는데, 짤 주머니니에 옮겨 담아서,구겔 호프 팬에 약 70%가량 차게 짜 줍니다.
이때 구겔 호프팬은  쇼트닝을 칠한 후 아몬드 슬라이스를 붙혀 놓는다.
7. 170도에서 약40분 가량 굽는다.
다 구운 구겔 호픈는 엎어서 꺼낸다. 크리스마스 케잌이나 생일 케잌 데코를 하여 꾸미면, 맛나고 예쁜 케잌이 된 답니다. 맛나게 드세요. 맛은 고소하고 달콤하고 간식이나 한끼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 이랍니다.
1970-01-01 09:00 2018-12-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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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호두까기 인형 국립 발레단 공연이 있는 날이다. 처음 10명이 모여 가기로 한 것이 65명이 되었다. 100명을 채우시는 건 아닌가 생각도 했으나, 65명으로 마감을 하셨다. 우리 일반인으로서는 특혜를 받은 날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선택 받았다고나 할까, 좀처럼 있을 수 없는 기회를 얻은 것은 틀림없다. 단돈 5000원에 발레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이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하여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예술의 전당까지 걷기로 했다. 골목 골목을 구경해 가며 걷는 것도 시간적인 여유로움에 소소한 행복감이 있는 것 같았다.
1층 로비에는 꽤 많은 사람으로 붐볐으며, 조그마한 전구로 꾸며진 곰돌이 모형 앞엔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 줄지어 서 있었다. 곰돌이 만큼이나 사람들도 빛나고 아름다웠다. 회장님께서 건네준 한 웅큼의 티켓을 건네 받은 난 회원이 도착하는데로 체크와 함께 나누어 드렸다. 시간이 되어 갑자기 몰려든 회원들 때문에 혼잡이 이어지기도 했고, 내 등엔 땀 방울이 주루룩 흘러 내림이 느껴졌다. 한꺼번에 이름을 데며 티켓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회원들을 진정시키고 한 사람씩 이름을 데면 다시 한번 되 묻고 체크와 동시에 표는 나누어졌다. 한장의 오차도 없이 잘 진행 되었고, 늦게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몇몇의 회원 티켓은 안내소에 맡기고, 시간이 된 관계로 우리는 입장을했다.
가득 메운 객석은 어린이들도 청소년들도 꽤 많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은 책이나 설명을 먼저 읽고 왔으면 좋으련 만, 그렇치 못 하면 지루 할 수도 있을텐데, 은근 걱정이 되었으며, 내 옆 자리도 어린이 한명이 앉아 있었다. 흘낏 보니 아빠와 둘이 온 것 같아 부러웠다. 내 어릴적에도 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리고 다니시길 무척이나 좋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무섭기만한 난 같이 다니는 것이 싫고, 주눅이 들어서 말도 제데로 못하고, 부끄러워 쭈벗쭈벗 하기 일수며, 아버지가 인사를 시키면 뒤에 숨기 일수였다. 아버지 앞에서는 머리가 백지가 되는 느낌 그 자체였다. 저렇게 아빠 품에 안기고 기데고 하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하다.
회장님 설명에 의하면 12월이 되면 전 세계의 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은 준비한다고 한다. 발레계에서는 (달러박스)라는, 호두까기 인형 없는 12월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표토르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울려 퍼지며 막이 오르고, 마리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며 시작된다. 눈이 펑펑 아름답게 내리고 모두들 멋지게 차려입고 파티를 즐기기 위해 마리네 집을 향해 가고있다. [파티가 한창인 마리네 거실, 즐거운 파티 중에 가면을 쓴 마리의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등장한다. 그는 어린이 들에게 지팡이를 서게하는 마술을 보여주고 커튼 뒤에 숨겨둔 태엽 인형도 꺼내 보인다. 높이 솟아 뛰는 할리퀸과 빙그르르 도는 콜롬빈, 깜짝춤을 보여주는 여자 악마와 남자 악마를 보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동호회장설명-]
[루셀마이어는 가면을 벗어 박수에 화답한다. 그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한다. 마리가 받은 선물은 호두까기인형이었고, 시샘이 난 프릿츠는 마리의 호두까기인형으로 장난을 치다 망가 뜨린다.
눈물을 쏟는 마리,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어른들은 축배를 들며 춤을 춘 뒤 아이들을 재우려 간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분한 어린이의 동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귀여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고.굳어 있는 움직임 없는 표현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박수 갈채와 환호를 한몸에  받었다. 얼마나 많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안스럽기도 했다. 정말이지 인형 그 자체였다.
마술사가 안고 나갈 때는 웃음을 자아 내기도했다. 유난히 키가 큰 마술사의 한 팔에 덜렁 들려 나가는 호두까기인형, 그 표현은 일색이었다. 멀리서 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잠에서 깬 마리는 망가진 호두까기 인형이 걱정돼 한밤중에 거실로 내려가 본다. 호두가기인형을 품에 안고 스르르 잠이든 마리는 꿈나라를 여행한다. 드로셀마이어는 마법사이고, 그의 마법에 걸린 물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거대하게 자라고, 트리 밑에 놓여 있던 각 나라의 인형들도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인다. 그때 갑자기 생쥐들이 나타나 인형들에게 겁을 준다. 호두까기 인형은 다른 인형들을 이끌고 생쥐들과 전쟁을 벌인다.] 옆에 자리하고 있던 어린이는 아니나 다를까, 몸을 뒤틀고 앉았다 일어났다 어쩔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슬쩍 귀에 데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으나, 이미 지루함이 극에 달한 내 옆자리 어린이는, 아빠에게 기대고 내 속삭임이 귀찮은지 내 옆에서 더 멀어져 아빠 옆으로 가버렸다. 엄마랑 왔었으면 또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쥐왕과의 결투에서 위험에 빠진다.마리는 드로셀마이어가 가르쳐준 대로 불 붙힌 초를  쥐 왕에게 던져 쥐들을 전멸시킨다. 마리의 인형들이 쓰러지자 호두까기인형을 일으키려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캄캄해지더니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로 변한다. 왕자는 고마움의 표시로 마리에게 크리스마스 나라를 함께 여행하자고 재안한다. 그 길에 마리는 마법의 눈송이들을 만나 함께 춤을 추고 해저 나라를 지나 하늘로 올라 간다. 장난감 인형들도 따라 간다.]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도착한다. 따라온 쥐들과 다시 전투가 벌어지지만 왕자는 이 들을 가볍게 무찌른다. 마리와 왕자는 승리의 기쁨에 행복해하고 인형들은 두 사람을 위해 축하의 춤을 춘다. 스페인춤, 인도춤, 러시아춤, 프랑스춤의 화려한 왈츠가 이어진다.] 2인 1조가 되어 각 나라의 춤을 선 보이는데는 볼만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각 나라의 춤을 발레와 접목해서 추는 춤은 넋을 잃기에 충분했다. 의상 또한 그 동안 보질 못했던 아름다움이 넓은 무대를 꽉 메웠다.넓은 무대를 작은 발레리나 둘이서 춤을 출지언정, 무대를 꽉 메우기에 충분했으며, 우리를 매혹 시키기에 압도적이 었다.
마리는 왕자와 환상적인 춤을 추면서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에 왕자의 뒤에 두른 망또는 얼마나 멋있었 던지 백마 탄 왕자가 따로 없었다. 모든 것이 꿈을 꾸는 것 같다.이런 왕자라면 싫어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잠에서 깬 마리는 모든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그녀는 호두까기 인형을 품에 안고 지난날의 환상적인 꿈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 한다.]이렇게 모든 막은 내려지고 열광적인 박수에 화답이나 하는지 커튼 콜이 계속 이어졌고 우린 아쉬움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너무나 환상적이 발레 공연에 오늘밤 나도 호두까기 인형 꿈을 꾸는 건 아닌지, 꿈이라도 꾸어 봤으면 좋겠다.  너무나 현실에 병들어 버려서 이런 환상적인 꿈은 그저 동화일 뿐일 것 같다. 그래도 오늘밤 우리 65명은 동화의 나라로 가보련다, 빨간 망또를 두른 멎진 왕자와 함께~
 
 
1970-01-01 09:00 2018-12-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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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동산 어린집에서 산타 잔치가 있는 날이다.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이곳 원장님은 족히 4년은 됐다. 그림자극도 같이했고, 어린이 집에서 구연동화, 마술동화, 등등 봉사를 1년 가까이 해 주었다. 주방 선생님으로 일해 줄 것을 부탁 했으나, 요리에 관심도 많고 자격증도 있으나, 물칠을 워낙 싫어해서 쾌히 승낙을 못했다. 복진관 일을 하면서, 유치원을 도와드리 진 못했지만, 매년 산타 잔치에 초대 받아 가서, 어린이들과 재미있게 놀다 오는 즐거움도 있다. 언니들은 무료로 왜 해주냐고 묻지만, 나름 뿌듯함도 있다. 어린이 집에 가는 동안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거리 곳곳에 반짝 반짝 트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상한 우리 성당의 트리, 간촐 하고 추워 보이긴 해도 깔끔한것을 좋아라 하시는 신분님 성격이 그데로 나타나 보인다.
성당 입구에 두 팔 벌려 환영이나 하는 듯 눈사람이 예쁜 모자와 장갑을 끼고 목도리도 두루고 엄마와 아이 같이 웃음 가득 맞이해 준다.동네 모퉁이를 지나는 길가 옆 교회 계단 위 트리는 화단을 이루 듯 지나는 객들을 멈춰 서게 한다.
허전했던 유리 한 부분을 이렇게 장식하니 허전 함을 메워 주고, 마음 마저 한가득 채워 주는 것 같다.
여름에 파란 잎이 많이 나와 있던 커다란 나무 화분이, 겨울이 되자 월동 준비를 하듯 사라지고, 이렇게 겨울 트리 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리 거리 마다 예전 처럼 징글벨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절로 노래를 하게 만드는 트리들이 모든 힘든 일들과 생각들을 떨쳐내게 한다.
반짝 반짝 빛나는 어린이 들은 나에 어설푼 마술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기하게 넋을 잃고 쳐다 본다.
신이 한 껏 난, 나는 세가지 만 보여 주려 던 마술 가방을 계속 계속 풀게 된다.아무 것도 없는 까만 보자기에서 예쁜 꽃이 나오자 깜짝 놀라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요술 주머니에서 한없이 나오는 줄줄이 반짝이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했다. 조그마한 하트4개가 커다란 하트로 변할 땐, 신기함에 잠시 정적이 흐르기도 했으며,선생님들에 소리에 놀라 박수를 치기도 했다. 종이 봉투에서 한없이 나오는 꽃을 보며, 엄마 아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울지 않을 것을 약속 하기도 했다. 하얀 스케치북에 상상으로 그려보는 그림은 이해 못하게 그림이 그려지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도 그려 볼래요"라며 손을 번쩍 드는 어린이를 보고, 어릴 적 난 수줍음이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도 부끄러워 해서 엄마 뒤에 숨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는 다르다. 시켜주지 않으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잘 봐서 고루 고루 시켜 줘야 평정을 유지하고 시끄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 땐 교회에서 유치원을 했었고, 더더군다나 유아원은 없었다. 육아를 혼자 도 맡아야 했던 우리 시절의 엄만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군다나 우리 엄만 아버지 일까지 도왔으니 고생이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을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로 변해서 선물을 들고 나타나자 순진고 깨끗한 영혼의 어린이들은 박수를 치고, 산타 앞에 달려 나오며, 서로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를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허연 수염이 무서웠는지 울먹이는 어린이도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호명하여 선물을 나누어 주고 밥 잘먹고, 손가락 빨지않고, 이 잘 닦고, 일찍 일어나고, 등등 손가락 걸며 약속을 하기도 하고,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 하고 산타 잔치를 마쳤다. 수업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내가 즐기러 간 것 같기도 하다. 신이난다. 목청껏 할아버지 목소리로 어린이를 칭찬하고, 약속하고, 쓰다듬어주고, 격려해주고 사진도 찍고 금새 한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은 10분을 한자리에 한자세로 있질 못 한다. 오늘 어린이들은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자리를 뜰 생각도 각자 방으로 갈 생각도 없이 앉자있다. 못내 아쉬운지, 나도 아쉽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1970-01-01 09:00 2018-12-2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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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부터 너무 바빠 탐방을 취소 하려 했으나 동행 하기로 한 샘이 계셔서 시간 여유도 없이 허겁 지겁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1시20분에 이촌역에서 만나기로 해서 서둘렀던 만큼, 늦지 않게 적당하게 잘도착했다.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 참석하기로한 인원 25분중 2분을 제외한 23분 모두 모였다.  박물관이 더운 관계로 외투를 벗어 보관함에 맡기고 해설사와 함께 대 고려전 관람을 시작했다. 우리 인원도 많은데, 해설사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들은 더욱더 많았다. 필기 도구를 들고 열심히 필기를 하는 청춘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여 앞 자리도 양보해 주었다. 밝아오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열심히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이 나라의 젊은들이 있어 살 맛이 난다. 입구에는 '태조 왕건은 분열된 시대를 극복하고 통일 국가 고려를 세웠습니다' 라고 시작되는 문구가 써 있었다. 전시의 이야기는 고려 수도 개경에서 출발 한다.1100년의 지혜가 담긴 신비한 마법과 같은 세계를 느리게 걸으며, 고려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불교 미술을 살펴 볼 것을 당부하는 글과, 고려로 부터의 선물이 이곳에 도착했으니 흐르는 강물 처럼 긴 이야기를 모았고 천 백년 전 그 어느날 처럼 2018년 고려와의 결정적인 만남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쓰여 있었다.
                                           [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시왕경 이라고도 하는 이 경전에는 인간이 죽어서 만나게 되는 지옥의 모습이 묘사 되어 있다. 제5 염라왕은 동그란 업경대에 비추어진 살아 생전 지은 죄로 판결을 내린다.] 멀리서 보면 뭔지 모르겠고 가까이에 와서도 구분이 어려우나,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서 보니 그 시대에 했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으리 만큼 정교했다. 11월에 해인사에서 고려 대장경판이 도착하는 장면을 직접와서 봤으나, 가까이 보니 보관 자체 도 너무 잘 되어서, 1098년대의 물건 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였다. 고려는 중국의 대장경을 가져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고려의 대장경을 만들었다고한다.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은 고려의 길고 긴 대장경 역사를 알려준다.
[화로의 센 불에 손수 차를 달이니 찻잔 빛깔과 차 맛이 서로 뽐내네,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어린아이 같도다. -이규보-] 청자 의자에 앉아, 청자 받침에 살포시 올려있는 청자 국화무늬 잔에, 청자 참외 모양 병에 담긴 물을 따르면, 그 소리가 명쾌하고 차 맛이 절로 날것 같다.  그 옆에 청자 구름 학 모란 무늬 장구를 두드리면, 그 소리 또한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소리 같음이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줄것 같기도하다. 저 모든것을 어찌 자기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나전 국화 함]
경전을 담는 함으로 아주 작은 노란 국화 모양 나전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있다. 지금으로서는 남는거 없다고 만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자잔한 국화가 수없이 많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옛날것 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 되었으며 먼나라 영국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건데 왜 영국까지 가 있었던건지,안타까웠다.
                                     [청자 참외 모양 병]
은은한 청자색에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듯이, 벌리고 있는 병입구와 참외를 꼭 닮은 몸통은 누가봐도 한여름 참외 밭에 노랗게 익은 참외를 연상 시킨다. 볼록 볼록 참외의 겉 모습을, 아래로 내려 올수록 좁아짐이 너무도 잘 표현 했으며, 아랫부분의 주름 치마 같이 한겹 한겹 주름을 잡음이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병이다. 너무도 아름다워 자리를 뜰수가 없었다.
[수도 개경은 왕과 왕실, 중앙 관료 등 고려의 지배충 대 다수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이었고 이들을 위해 대내외 최고급 물산이 이곳으로 집결 되었다고한다. 외국산 수입품은 바다와육로를 통해 개경으로 들어 왔고,고려의 각 지방에서 수취한  조세와 공물 역시 물길을 따라 개경에 도착했다고한다. 태안  대섬 인근 해역에서 출수된 2만여 점이 넘는 도자기는, 지방의 최상품이 개경으로 향하던 모습을 보여준다. ]출토된 물건 중엔 중국 물품도 있었으며, 그당시 수출도 수입도 했슴이 입증되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영문 명친 코리아는 고려인이 사는 나라, 고려인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됨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곳에 쓰여 있는 글에는,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 같이, 저 광야에 외로이 걷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숫타니파타-]  [좋은 벗이란 첫째, 그대가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했을때 일깨워 주는 친구, 둘째, 그대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때 마음속 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 셋째, 그대가 괴로움에 처 했을때 그대를 저버리지 않는 친구이다. -이과경-] [재물을 구한 뒤에는,그것을 나누어 4등분해라, 1/4로는 음식 만들고,1/4로는 농사의 밑천으로 삼고,1/4은 간직하여 저축했다가 급할때 쓰도록 하라. 나머지 1/4은 농사꾼이나 장사꾼에게 주어 이자를 나게 하라. -중아함경-]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 곳까지 오길 참 잘했다. 고려 그 찬란한 도전은 이촌역2번 출구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월3일까지 전시하며, 입장료는 8000원으로, 경로는 무료이다.
                                [청자 칠보 무늬 향로로 향로를 받치고 있는 동물은 토끼]
 
1970-01-01 09:00 2018-12-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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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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